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얼떨떨할 표정으로 종이를 받아든 아르센을 향해.
칼리드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띤 채로.
비무대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승부사들을 찾아가서. 내 이름에 이 금액 전부를 베팅해. 네가 원한다면 네 돈까지 한번에 걸어도 좋고.”
“네에?”
“승부사들은 대부분 내가 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며?”
“그, 그건 그렇겠지만….”
우물쭈물 답하는 아르센을 보며.
칼리드는 고개를 꺾어 레베로 쪽을 쳐다보았다.
“상단장님. 아마 직접 승부사들을 만나시면서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은데. 배당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레베로 씩이나 되는 대상인조차도.
칼리드에 거금을 베팅해 놓고는 불안했던지.
이름난 승부사들을 찾아가 칼리드의 승리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고 다닌 모양이었다.
‘뭐, 나야 그 덕에 거금을 벌 기회가 생겼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칼르드의 물음에 레베로는 쭈뼛쭈뼛 망설이는가 싶더니.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이 들은 정보를 토해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13에서 17 정도….”
“17이라면….”
“칼리드 공자님께서 로이 발데아 공자를 꺾었을 때. 1골드를 걸었다면 17골드를 되돌려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거 좋네.
사실 몇 배가 되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칼리드에게는 그저 확정적으로 들어 올 돈이나 다름없었기에.
“여, 열일곱 배요?! 그러면 도련님께서….”
“공자님께서 이길 확률을 점치는 사람이 거의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지.”
“들었지, 아르센?”
“예, 예에?”
“목숨값과 3천 골드를 걸었으면, 17배 정도는 먹어야 거래가 성립되는 거 아니겠어?”
“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들은 탓인지.
아직까지도 멍한 표정을 짓는 아르센을 보며.
칼리드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난 분명 부자가 될 기회를 줬다, 아르센.”
***
“이번 창립절 축제는 제법 크게 기획했더군, 보르도 발데아. 사람들이 아주 바글바글해.”
“그렇습니다.”
보르도는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발끝에 닿을 듯 희고 기다란 사제복과.
머리에는 새빨간 사제 모자를 쓴 남자.
그는 자연스레 손을 들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가주의 자리에 턱 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별일이 다 있군. 근래 들어 발데아 가문의 사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이번에는 특별히 네그모 상단과 울티마 상단 쪽에서 거금을 쾌척해 주었습니다, 관리관님.”
“흐음. 그래?”
관리관이라 불린 남자.
그는 가주의 공손한 말에 무언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띠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위대한 제국과 동부 관리관님께서 발데아 영지에 신경을 써준 덕분입니다.”
“허허허, 늘 날 선 소리만 하더니, 웬일로 바른 소리를 하는구먼, 보르도 발데아.”
그는 가주가 아랫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오만하게 내뱉더니.
턱.
책상 위에 두 발을 얹었다.
그 안하무인 격인 태도에 보르도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그는 이를 악다무는 것으로 무례를 견뎌낼 수 있었다.
‘참자. 상대는 동부 관리관 도르진이다.’
거대한 신성 제국은 한 명의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이지만.
그 커다란 땅을 오롯이 혼자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사방에 관리관이라는 직책을 두고 고위 사제들에게 그 자리를 맡게 했는데.
발데아 영지가 속한 곳이 바로 제국의 동부였고.
그 동부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관이 바로.
고위 사제 도르진 이링겔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발데아 영지처럼 자그마한 곳은 제국의 진노를 그대로 직면하게 될 수도 있기에.
제아무리 제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지닌 가주 보르도라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그보다, 광장 가운데에 설치한 저 비무대는 무슨 정신에서 한 일인가?”
이제는 아예 갑갑한 사제화를 벗어던지고선.
맨발로 책상 위를 탕탕 두들기는 도르진.
그의 무례함에도 이제는 면역이 생긴 건지.
가주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축제의 흥을 돋우기 위해 간단한 비무를 준비했는데….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무고 뭐고 다 좋은데 말이야. 크기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크지 않나, 이거지. 하여튼 보르도 자네는 말귀를 못 알아먹어 큰일이라니깐.”
“죄송합니다.”
“됐네, 됐어. 자네에게 센스 있는 대답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으응.”
머리를 휘휘 젓자 위에 매달려 있던 사제 모자가 아무렇게나 흔들렸다.
그의 앞에서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보르도.
도르진은 창밖을 몇 번이고 쳐다보는가 싶더니.
“그래서. 축제는 언제 시작하는가?”
“…한 시간 이내로 시작할 겁니다. 상인들이나 구경꾼들은 거의 자리를 잡았을 테고. 따로 개회식은 없이 비무부터 시작할 거라고 합니다.”
“그래? 그건 마음에 드는구먼. 쓸데없는 잡소리를 떠들어대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는 것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 비무대 위에는 누가 올라가게 되어 있는가?”
느릿한 말투와 함께.
보르도를 향하는 새빨간 눈동자.
그의 물음에 가주는 일순 망설이는가 싶더니.
담백하게 사실을 전했다.
“로이 발데아와… 칼리드 발데아입니다.”
“으음? 두 사람 다 발데아 사람인가?”
“…제 넷째 아들과 다섯째 아들입니다.”
“으하! 하하하! 그거, 참 웃기는 일이구만, 그래. 아들 둘을 내세워서 축제를 하다니. 이번 창립절에 가문의 명운이라도 건 건가?”
“….”
비웃음 섞인 관리관의 물음에 보르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이를 악문 채로.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동부 관리관님! 곧 있으면 축제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이잉. 귀찮게.”
묘한 침묵을 두고.
그 사이로 끼어드는 비서 사제의 외침.
문밖에서 들려오는 그 알림에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가주 보르도는 고개를 쳐들었고.
도르진은 씨익 웃으며 그를 재촉했다.
“빨리 가자고. 집안싸움이라니, 이거 참. 축제 기획이 기가 막히구먼그래. 이런 걸 어떻게 구경하지 않고 배기겠나?”
사제복은 거슬리지도 않는지.
잰걸음으로 앞서 달려 나가는 도르진.
다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그가 움직이자마자 여기저기에서 갑옷을 걸친 수호 사제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더니.
관리관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관이네.’
그 기괴한 행렬은 비무대 앞까지 지속되었다.
겉보기에도 위압감이 드는 관리관의 행색과 갑주를 걸친 이들 탓에.
이미 비무대 주위로 빽빽하게 들어찼던 시민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좌르르 길을 내주었고.
자연스레 도르진과 가주를 비롯한 이들은 비무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 셨습니까, 관리관님.”
“아하! 누군가 했더니, 발데아의 영원한 꼴통, 벨톤이구만!”
벨톤이 굳은 얼굴로 예를 표하자.
껄껄거리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도르진.
“저도 있습니다, 관리관님! 섭섭합니다!”
“아아, 그래, 그래. 우리 귀염둥이 에르드먼도 왔구나.”
가주와 동부 관리관이 자리를 잡자.
벨톤이 먼저 합류했고 질세라 그 뒤를 따라.
에르드먼 발데아가 거구의 몸을 이끌고 뒤뚱뒤뚱 끼어들었다.
가문의 명줄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만큼.
힘 있는 관리관이 행차하자 기다렸다는 듯.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발데아 가문의 요인들.
어느새 관리관과 가주의 주위에는 발데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가득 들어차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영양가 없는 대화를 몇 마디씩 섞는 사이에.
비무대 위로 남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저놈이 로이 발데아구만.”
로이 발데아.
그는 드넓은 비무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여유로운 얼굴로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환호성.
“로이 발데아! 난 너한테 전부 다 걸었다!”
“야 XX, 칼리드고 뭐고 그냥 박살 내 버려!”
“야야, 벌써부터 힘 빼지 마.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 건데.”
“하긴. 어차피 로이가 이길 게 거의 확정인 싸움인데. 응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개중에는 로이와 칼리드.
두 사람의 승부를 가지고 돈을 건 이들도 제법 많았는데.
그들 역시 대다수는 로이에 베팅한 이들이었다.
그 덕분인지.
저벅. 저벅.
반대편에서 칼리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현격히 줄어든 환호성.
몇몇은 야유를 보내는 이들까지 있었다.
“어차피 결과 정해진 판인데, 그냥 설렁설렁하다가 항복하고 내려갑시다! 예?”
“야야, 두들겨 맞을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되냐?”
“킬킬, 그건 그렇네. 칼리드 선생님, 살살 때려 달라고 부탁이라고도 해 보세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와 함성.
그리고 야유까지 뒤범벅이 되어 알 수 없는 소음이 되어 버렸지만.
칼리드의 표정은 그저 조용한 침실에 있는 것처럼.
그저 무덤덤했다.
‘많이들 모였네.’
돈을 많이 쓴 효과가 있는 건지.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들어선 관중들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저 사람까지 온 건가.’
주변을 훑어보던 칼리드.
그는 가주 보르도를 비롯한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동부 관리관 도르진. 저 인간이 왔다는 건…. 제국 쪽에서도 제법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데.’
차라리 잘된 일인가.
예전이었다면 몰라도.
이제는 슬슬 제국과 다른 영지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칼리드를 우습게 여기는 이도 줄어들 테고.
가문 안팎으로 그의 입지를 다지는 일도 수월하게 이루어질 테니.
“오랜만이구나, 칼리드.”
맞은편에 먼저 올라와 있던 로이 발데아.
녀석은 반가운 동료를 만난 것마냥.
칼리드를 향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저건 승리를 확신한 사람의 얼굴인데.’
즐거운 얼굴일 수밖에 없나.
웃으며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칼리드는 마주 손을 내밀어 인사하고는.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발데아 가문의 창립절 행사에 찾아주신 많은 손님들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진행자도 심판도 없는 비무대 위에서 전해지는 말에.
일제히 쏟아지는 박수갈채.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지라.
자연스레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로 비무대 위의 칼리드의 말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발데아 가문이 세워진 날을 기념하는 축제, 많이들 즐겨 주시고. 흥을 돋우기 위해, 먼저 가벼운 비무를 준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하고 가벼운 식전 멘트.
“…만. 이곳에 모인 분들께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칼리드는 로이 발데아를 지나쳐.
비무대의 가장자리까지 다가가더니.
귀를 쫑긋 세운 채로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관중들을 향해.
천천히 준비했던 말을 내밀었다.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후계 순위 10위, 칼리드 발데아는, 이 자리에서 로이 발데아에게 9위 후계 순위를 두고 결정전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뭐, 뭐라고?!”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2년 11월 24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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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