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40
40화
토닥! 토닥!
할머니와 제비꽃은 고부 사이인데, 내가 알고 있던 고부와는 다르게 잘 지내는 것 같다.
원시시대는 이랬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그 관계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뿐이리라.
“이제는 제가 족장이니까 앞으로는 제 말 잘 들어야 해요.”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신뢰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족장이 됐다.
‘……족장이라니, 진짜로 소년 가장이 됐네. 이 가족을 내가 다 건사해야 한다니!’
책임감에 한층 더 무거워진 어깨로 나는 앞으로 할 일들을 떠올렸다.
“저, 통발 좀 확인하고 올게요.”
“나는 뭘 해야 하나? 족장!”
큰바위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족장이라고 불렀다.
정말 이제는 아들이 아닌 족장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큰바위의 지능이 낮아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빠는 허벅지 정도로 굵은 대나무를 잘라서 아빠 키 3배로 많이 잘라 놔요.”
붉은개 부족이 네안데르탈인들에게 허망하게 당한 것은 야간 보초가 없었고, 울타리가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강한 육식동물이든, 아니면 같은 원시인들이든 약탈을 당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이 주변에서 악어머리 부족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말이겠지.’
나는 제비꽃을 힐끗 봤다.
‘그런데 왜 그녀는…….’
문득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직업은 창녀와 도둑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원시시대이기에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알았다. 아주 많이 가져온다!”
쉬라고 해도 큰바위가 절대 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뭐라도 시켜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럼 나는 족장이 만들던 걸 계속 만들면 되겠지?”
누워 있던 늑대발톱이 제비꽃의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일어나서 앉았다.
“저도 도울게요.”
씨족의 구성 수가 적지만 합심은 잘되고 있다.
그럼 된 것이다. 부족민의 수는 차츰 늘려 가면 되니 말이다.
낳아서 늘리든지 아니면 잡아 와서 늘리든지 방법은 많으니까.
“네! 그렇게 하세요.”
다른 것을 몰라도 식구들이 나를 족장으로 부르는 것은 어린애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내가 먹여 살리고 있으니 내 능력을 인정했고,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역할을 준 후, 대나무 통을 하나 들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럼 꿀을 구하러 가보실까.’
* * *
동굴 밖으로 나와 정면으로 30미터 정도 걷다가 돌아섰다.
“동굴이 잘 안 보이네.”
대나무 자체가 방패다.
동굴 앞을 막은 대나무들은 빽빽하다 못해 뗏목을 세워 놓은 듯 촘촘하게 자라 있었다. 마치 커튼을 쳐 놓은 것처럼 조금만 거리가 있으면 동굴 자체가 가려진다.
하지만 내가 운이 좋아 동굴을 발견한 것처럼 외부 침입자가 동굴을 발견하고 대나무만 넘으면 그대로 위기에 노출된다.
지형이 험한 것도 아니고 평지에 나 있는 평범한 동굴의 한계였고, 혹시 모를 위기에 대처해야 했다.
“그래도 힘은 대단하시니까.”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내가 전 어비스에서는 몇백 년을 살아왔지만, 여기서는 그저 머리 좋은 원시인 꼬마일 뿐이다.
“아무튼, 여기서 오래 버티자.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고.”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다시 돌아서서 주위를 살피며 걷기 시작했다.
대나무 숲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야생동물은 없다. 하지만 죽은 이빨호랑이…… 아니, 여기서 이빨호랑이로 불리는 놈의 체취가 빠르게 사라질 테니 앞으로는 어떤 놈이 터를 잡기 위해 넘어올지 모른다.
그리고 체취가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 터를 잡으려는 놈이 있다면 이빨호랑이만큼 강한 놈일 것이다. 혹은 다른 이빨호랑이가 올 수도 있다. 그러니 꼭 인간이 아니라 해도 맹수들을 방비할 준비가 필요했다.
* * *
나는 멸망한 붉은개 부족 부락이 눈으로 보이는 곳까지 걸어왔다.
며칠째 동굴에서 나오면 버릇처럼 바짝 엎드린 상태로 여기로 와 강 너머를 살피고 있다.
이미 븕은개의 부족 부락은 초토화가 된 상태라 재만 남은 상태였다.
“뭐 특별한 것은 없네.”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나기 전처럼 강가는 평온해 보였다.
비록 활활 타 버린 부락의 잔재가 그 평온에 을씨년스러움을 끼얹고 있었지만.
“강가에도 통발이 여러 개 있는데…….”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리새를 잡기 위해 쳐 놓은 통발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장죽 꼭대기에서 떨어진 벌통의 반쪽이 그대로 있을 거다. 그때는 의도치 않게 벌통의 조각을 담아 갔지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만약 운이 좋게도 야생동물이 건드리지 않았다면 벌통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부우웅! 부우웅!
벌통이 떨어진 곳으로 다가가자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그리고 반 토막 난 벌통이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었다.
벌통이 떨어진 곳 근처에는 버둥거리는 애벌레를 쪼아 먹고 있는 다리새들이 몇 마리 모여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떨어진 벌통 주변에는 벌들이 없었고, 벌통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듯 그때 그 모양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붕붕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자극했다. 어딘가에 다시 벌집을 만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네.”
벌들은 원래 벌통이 매달려 있던 곳에 다시 벌통을 만들고 있었다. 저런 습성을 가진 벌 떼라면 꿀을 찾느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두고두고 꿀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만 잘 피우고 진흙을 뒤집어쓰면 말이다.
‘독이 상당하기는 했어.’
벌에 쏘이자마자 땅강아지는 컥컥거리며 쓰러졌다. 심지어 진흙을 두껍게 발랐다지만 진흙을 뚫고 내 몸 곳곳에 쏜 벌도 있었다.
쏘인 곳은 커다랗게 부어 있었다. 아마도 원시시대의 벌은 말벌 이상의 독을 가진 모양이다. 그리고 내 눈에 보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말벌보다는 3배 정도는 더 큰 것 같다.
그럼 침도 최소한 3배는 더 클 거다. 물론 그 벌침으로 독침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3배나 크다고 해도 2센티미터를 넘지 않을 테니까.
푸드득! 푸드득!
내가 떨어진 벌통에 접근하니 다리새들이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부우웅! 부우웅!
그와 동시에 장죽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벌들이 튀어나와 다리새에게 몰려들었다.
끽끽! 끽끽!
다리새가 요란할 정도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벌 떼들이 다시 푸드득거리는 다리새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의 아지트인 벌집을 공격하려는 존재로 벌들이 인식한 것 같다.
툭!
놀라운 것은 벌 떼에 공격당한 다리새가 그대로 파르르 떨며 바닥에 떨어졌다는 거다.
“……뭐야, 이거?”
대담하게 접근하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멈칫할 수밖에 없다. 바닥에 떨어진 다리새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은 껌뻑이고 있었다. 한동안 미세하게 경련하던 다리새는 갑자기 온몸을 비틀었다.
“마비 독인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벌에 쏘인 땅강아지가 과도한 호흡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한 것은 그의 체질 탓만이 아니라 벌침에 강력한 마비 성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죽었나?”
나는 벌통이 매달려 있는 장죽 위를 신경 쓰며 발로 툭툭 바닥에 떨어진 다리새를 찼다.
다리새는 눈을 이리저리 뒤룩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다리새의 발이 살짝 떨리는 것을 봤다. 역시 이 벌침에는 강력한 마비 성분이 있다.
오늘 먹을 다리새를 손쉽게 얻었으니 어부지리인 것은 확실했다. 나는 바로 덩굴로 다리새의 두 다리를 묶고 덩굴을 이용해 어깨에 멨다.
이제는 벌집만 대나무 통에 담고 가져가면 된다.
벌들이 내 머리 위에서 요란하게 날갯짓을 했지만 직접 나를 공격하는 놈들은 없었다.
벌통과 나와의 높이는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벌들이 다리새들을 공격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도약해서 새로 지어지는 벌통에 접근해서인 듯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벌통의 겉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안은 꿀로 가득했는지 묵직한 무게감이 있었다.
“이게 남아 있는 건 대단한 거지.”
미소가 머금어졌다.
오늘은 따지고 보면 운수 좋은 날이리라.
꿀도 따고 닭도 먹는 날이니까.
“애벌레도 좀 있네.”
겉으로는 흉물스럽고 혐오감이 들 수도 있지만 애벌레는 소고기, 돼지고기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단백질 덩어리다. 또한 각종 영양소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나 같은 어린애의 성장에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헌터의 스킬과 능력들이 소프트웨어라면 내 몸은 하드웨어다. 하드웨어가 충실해야 상호 보완적으로 능력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레벨 업을 하면서 내 빈약한 신체도 환골탈태를 하듯 빠르게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레벨 100 정도가 되면 전투를 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신체로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하여튼 바짝 말라 있는 벌통을 대나무 통에 담고 나서 혹시 벌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면서 자리를 이탈했다.
다시 한동안 걸어 통발을 쳐 놓은 곳으로 이동했다.
“있군.”
대나무밭에 설치한 통발의 사냥 성공 확률은 생각보다 높았다.
강가에 쳐 놓은 통발에 물고기가 생각만큼 많이 잡히지 않은 것도 운인 것 같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지.”
오늘 나쁘다고 해서 내일도 나쁠 법도 없고, 오늘 한없이 좋다고 해서 내일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러니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겨울이 있으려나…….”
대나무 숲을 보니 이 지역의 겨울의 추위는 그리 혹독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식량이 부족할 것이고 땔감으로 쓸 장작도 부족할 거다. 원시인들은 비축하는 습성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다르다.
“고사리가 올라오고 있으니까…….”
아마 지금은 봄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기 시작했다.
봄부터 준비한다면 겨울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겨울에는 헌팅을 중심으로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시대에 생존도 해야 하고, 부족도 지켜야 하고, 레벨 업도 해야 하는 헌터라서 정신없이 시간은 잘 가고 바쁠 것 같다.
“오늘은 두 마리만.”
다리새 두 마리면 내일까지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터전을 이곳으로 잡았으니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할머니를 위해서 대나무 문을 설치해 동굴 입구로 들어오는 찬바람도 막아야 하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몸에 좋지 않으니 대나무 침대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것저것 할 것이 산더미였다.
“아이고…… 괜히 족장 한다고 했다.”
그놈의 완장을 차니 자꾸 책임감만 늘어나는 것 같다.
“족장! 너, 이 꿀을 혼자 땄어?”
큰바위의 표정이 변했다.
며칠 전 볼기짝을 맞았을 때의 그 표정이다.
원시시대에서 벌통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분명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벌통을 건드린다는 것은 죽여 달라는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