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87
87화
“가라! 족장은 한 입으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예!”
당당하게 돌아섰다.
그때, 연꽃의 모습이 시선에 잡혔다.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다.
“전사들은 이 움막을 지켜라! 나는 하늘 부족 족장을 믿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아침까지 땅속에서일어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늑대발톱과 큰바위의 목을 잘라 장대에 걸 것이다!”
악어머리 족장이 우렁차게 소리쳤고, 큰눈이 비릿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열 명이 넘는 전사들이 움막을 에워쌌다.
“연꽃! 가자!”
큰눈이 내 옆에 서 있는 연꽃에게 말했지만 연꽃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조심해야 해.”
연꽃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듯 울먹이며 말했다. 딱 하루를 만난 사이인데 나를 위해서 저런 표정을 지어 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울지 마.”
남자답게 그녀를 달래 주고 멋진 말로 안심을 시켜 주고 싶었지만 쪽팔리게도 연꽃보다 내 키가 작다 보니 내가 연꽃을 올려다봐야 했고, 영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안 울어.”
“걱정할 필요 없어.”
“어떻게 걱정이 안 돼? 산은 위험해.”
“내 이름은 땅속에서일어서다.”
“뭐?”
“한 번 죽은 자는 두 번 죽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죽이지 못해.”
내 말에 연꽃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들어가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나, 안 가. 여기 있을 거야.”
“왜?”
“나도 이제 하늘 부족 사람이니까.”
연꽃의 말에 큰눈이 인상을 구겼다.
제비꽃이 반드시 연꽃을 짝으로 맞이해서 데리고 오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족장님!”
“……맞는 말이다. 연꽃도 이제는 하늘 부족 사람이다. 내일까지 하늘 부족 족장이 돌아오지 않으면 늑대발톱과 큰바위와 함께 연꽃의 목을 자른다.”
악어머리 족장은 대단한 족장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이번 일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지 부족민들에게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부하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는 우두머리는 부하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신임을 잃는다.
만약 이게 고도로 계획된 쇼라고 해도, 그리고 딸을 잃는다고 해도 부족민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이끌어 낼 것이 분명하다.
‘배울 점이 있는 만큼 무섭다.’
원시인이라고 해서 깔볼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버, 족장님!”
“너는 닥치라고 했다!”
“……예.”
“가자!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 난다.”
그렇게 움막을 포위한 열 명의 전사를 빼고 모두가 돌아갔다.
그리고 나 역시 내 부족민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면서 악어머리 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산으로 향했다.
* * *
악어머리 족장과 이빨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악어머리 족장의 손에는 피우다가 끈 담배가 들려 있었다.
“너무 심하셨습니다.”
“뭐가?”
“큰눈에게 소리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때, 주위에는 전사들이 있었고, 족장님이 소리치신 것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바뀌어야 했어. 바꿔서 태어나야 했어.”
악어머리 족장의 말에 이빨이 인상을 찡그렸다.
“족장님, 땅속에서일어서가 그렇게도 마음에 드셨습니까?”
“물론 마음에는 들지. 하지만 땅속에서일어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땅속에서일어서는 제비꽃의 아들이라 해도 결국 반쪽짜리 악어다. 진짜 악어는 아니지.”
역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악어머리 족장이었다.
“네? 땅속에서일어서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꽃을 말하는 거다.”
“여, 연꽃이라고요? 하,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이빨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시다시피 연꽃은 여자입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에는 여자가 족장이었다고 했다. 여자라 해서 족장이 될 수 없지는 않다.”
“저도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여자는 결국 여잡니다. 남자보다 약하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큰눈보다 연꽃이 악어처럼 입이 크다. 땅속에서일어서는 운까지 좋은 놈이다. 그런 연꽃을 가지게 될 테니까.”
“그것도 땅속에서일어서가 살아 돌아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땅속에서일어서는 어려서 그런지 너무 겁이 없습니다. 이 깊은 밤에 동굴을 찾겠다고 갔습니다. 어리석은 놈입니다.”
“다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아직 애입니다. 어린놈이 오기를 부리는 겁니다.”
“아니, 애가 아니다. 늑대발톱도 괜찮은 놈인데, 늑대발톱이 땅속에서일어서를 완벽하게 믿는 눈빛이었다. 분명 땅속에서일어서가 족장이 맞다.”
악어머리 족장이 땅속에서일어서를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십니까?”
“……내 손으로 제비꽃의 아들을 죽여야 할까?”
처음으로 악어머리 족장의 눈동자에 살기가 담겼다.
“예?”
“이빨! 나는 땅속에서일어서가 내 아들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비꽃의 아들이라지만 내 아들보다 귀하지는 않다.”
족장의 말에 이빨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죽일까요? 명령만 하시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제가 죽이겠습니다.”
“아니지, 그럼 연꽃이 슬퍼하겠지. 딱 하루를 봤을 뿐인데 좋아하는 눈빛이었다. 아니, 연꽃은 이미 하늘 부족 사람이다. 그리고 죽은 제비꽃에게도 미안하고…….”
악어머리 족장은 지금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땅속에서일어서는 홀로 산에 갔으니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으음…… 그럼 연꽃도 죽겠지.”
“그렇죠.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족장은 강하다. 하지만 전사들의 절대적인 복종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일로 딸을 잃게 된다면 전사들의 충성심은 더 높아질 거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전사들은 내 말을 악어 신의 말처럼 따를 수밖에 없다.”
“예, 맞습니다. 족장님은 정말 악어 신이 내리신 족장님이십니다.”
“그런데 말이야…… 살아서 올 것 같다. 그리고 연꽃이 하기 나름이다. 연꽃이 땅속에서일어서의 마음을 움직여서 큰눈에게 힘이 되어 줄 거다.”
이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분명했다.
“예, 땅속에서일어서가 동굴을 찾고 돌아오고 이번 일이 잘 해결이 된다면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빨의 말에 악어머리 족장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정말 이것의 연기를 마시면 걱정이 조금은 날아가는군. 마셔 봐라.”
“……족장만 마시는 거라고 했습니다.”
“괜찮다.”
악어머리 족장이 담배를 건넸다.
이빨은 악어머리 족장이 한 것처럼 담배를 깊숙이 빨더니 거친 기침을 토해 냈다.
“처음에는 다 그렇지. 으음…….”
* * *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가 강가에 온 것은 어둠이 밤하늘을 지배하고 별들이 총총 떠 있는 때였다.
나는 끼옥을 어깨 위에 올린 채 강에 올 때까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했다.
끼오옥!
“날개 달린 것 중에 쥐처럼 생긴 것을 죽이지 말고 잡아 와야 한다.”
끼옥!
끼옥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게 박쥐라는 건데 꼭 잡아 와야 한다.”
끼옥!
“가라! 끼옥! 모든 것이 너한테 달렸다.”
끼오옥!
끼옥은 힘차게 한 번 울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라 어둡고 거대한 숲으로 사라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미션은 떴다.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을 구해 내야 한다.
거기다가 연결 미션까지 클리어를 해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동굴 전투란 말인데…….”
일반인이 상상하는 동굴은 보통 바닥이 평평하고 땅 위에 불쑥 솟아 있는 동굴이다.
하지만 현실의 동굴은 보통 좁고,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뜬금없는 곳에 있다.
이달투 놈들의 키가 작은 만큼 동굴 입구도 좁다면 차후 악어머리 전사들이 동굴을 습격할 때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투 놈들이 조금이라도 머리를 쓸 줄 아는 것들이라면 좁은 동굴 입구를 막고 버티면 미션 클리어는 요원해진다.
‘또 언제까지 여자들을 구하려는 의지를 보일지도 의문이고.’
악어머리 족장의 입장에서는 부족 안에는 여자들이 넘쳐 나고, 부족하면 또 잡아 오면 그만이니 분노한 전사들만 진정시키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러니 이달투를 공격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1인 원정대가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쩝!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네. 젠장!”
끼옥이 날아간 어두운 산 쪽을 보며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하지만 1인 원정대라도 원정대는 원정대다. 또한 미션 난이도가 A등급이다. 미션만 클리어하면 상당한 레벨 업과 명성 수치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혼자 가면 갔지, 포기할 수 없는 미션이 분명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일꾼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독해져야 해, 아주 독하게!’
가장 빠르게 내가 그리고 내 하늘 부족이 성장하는 방법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깡패가 되면 된다.
원시인이 보이는 족족 두들겨서 테이밍을 하면 된다. 그럼 내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야생동물이나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기에 완전한 충성을 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괴물은 되지 말자.’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세뇌해서 종처럼 부리려는 짓이다. 아무리 원시시대이라 해도 내가 강해지기 위해 다른 세력을 착취하고 강제로 억압하는 행위다.
그러니 그걸 시작하면 괴물이 되는 것과 다름없지만 상관없다. 나는 무엇보다 내 가족이 더 소중하다.
* * *
“망할 놈의 새끼!”
자신의 움막에 돌아간 큰눈은 자기를 따르는 전사들 앞에서 땅속에서일어서를 욕하고 있었다.
“산으로 갔다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달투들이 작기는 하지만 밤에는 잘 보이는 눈 때문에 강합니다.”
“……놈이 돌아오지 않으면 연꽃이 죽는다.”
“연꽃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재수 없는 새끼다. 마음에 안 들어. 왜 아버지가 그놈을 감싸고도는지 모르겠다.”
큰눈은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남 탓만 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일 어떻게든 산으로 간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잡혀간 여자들을 구한다.”
“그런데 구해 오는 일도 어렵지만 구해 와도 큰일입니다.”
전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큰눈은 모르시지만 동굴에서 잡혀 갔다가 도망쳐 온 여자들이 이상한 것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예, 이달투 놈들이 새끼를 낳으려고 잡아간다고 하잖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땅속에서일어서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내가 그놈을 죽여 버릴 테다.”
큰눈은 살기를 자제하지 않고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큰눈은 납치를 당한 여자들을 걱정해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자신의 아버지의 눈에 든 것 때문에 땅속에서일어서에게 아버지를 빼앗긴 것처럼 느껴졌고, 혹시 이러다가는 제비꽃의 아들인 땅속에서일어서에게 차기 족장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고는 없었다.
‘아버지의 손자니까…….’
엉뚱한 생각을 시작한 큰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