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94
94화
큰눈은 움막에서 누운 상태로 전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뭐? 그 망할 놈이 악어머리 전사들을 자기 부하처럼 부리고 있다고?”
“예, 족장님께서도 땅속에서일어서의 말을 잘 들으라고 했습니다.”
“……왜?”
“제비꽃의 아들이고 이달투 동굴을 공격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면서 놈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제비꽃…… 제비꽃의 아들이라…….”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큰눈이었다.
‘설마 아버지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큰눈이었다. 아니, 큰눈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망할 놈한테 용의 뼈로 만든 검도 주셨어.’
용의 뼈로 만든 골검도, 자신과는 정반대인 대우를 생각한 큰눈의 눈에는 절망감과 분노, 그리고 야박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휘돌고 있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그 망할 놈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거야?”
“그게…….”
전사들은 큰눈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
“……족장님의 지시입니다.”
“내가 그놈 말은 듣지 말라고 했잖아!”
큰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족장은 아니죠.
사이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증오해 마지않는 놈도 그에게 똑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젠장…… 젠장, 젠장!’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리는 큰눈이었다.
“강한주먹!”
“예, 큰눈 님!”
“너는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땅속에서일어서. 그 망할 놈을 쓰러트려라.”
“예?”
강한주먹은 당황한 눈빛으로 큰눈에게 되물었다.
“코뼈를 아예 부러트려 버리라고!”
“하지만 땅속에서일어서는 족장님의…….”
“그래, 그놈은 제비꽃의 아들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족장님께서는 당분간 땅속에서일어서가 하는 말이면 다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너는 내 창이다. 아버지의 창이 아니라 내 이빨이고, 내 창이다!”
이빨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름이 아니라 족장을 지키는 근위대장의 의미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늙었어.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족장이 된다. 지금 내 말을 듣지 않는 놈은 나중에 내 옆에 세우지 않을 것이다. 가서 그 망할 놈에게 시비를 걸든 뭘 하든 반쯤 죽여!”
“예, 알겠습니다.”
강한주먹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다 알아서 책임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끄떡도 없다. 내일이면 벌떡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망할 놈한테 시비를 걸어서 완전히 뭉개 버려라. 알았냐?”
“예, 큰눈 님!”
“악어도 아닌 놈이 악어를 부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다. 어떻게 아버지 눈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망할 놈은 악어가 아니다.”
“맞습니다. 놈은 악어가 아닙니다.”
“어서 가라. 네가 그 망할 놈을 반쯤 죽여 놓으면 너와 함께 물소의 간을 같이 먹을 것이다.”
부자지간의 소통 없는 관계가 오해를 낳고 앙금으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야.’
이건 어쩌면 강한 훈육이 부자지간의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 것 같다.
* * *
“이게 송진이라는 겁니다.”
이달투가 사는 동굴이 있는 산을 올라 소나무가 무성히 나 있는 곳으로 온 나는 열 명의 전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스무 명의 여자들에게 소나무 껍질을 벗겨 내고 말라서 반들거리는 송진을 뜯어내어 보여 줬다.
“그래서?”
모두가 내가 지시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표정이고 저들 중 하나가 무슨 이유인지 무척이나 삐딱한 어투로 되물었다.
“이걸 다 따서 통에 담아서 와!”
처음에는 존댓말을 했지만 강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반말을 시작했다.
“이걸 따면 돼?”
연꽃이 내게 물었다.
“너는 나만 따라다녀.”
“왜?”
어제 이달투가 사는 동굴에 들어가고 나서 이 산은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의 이달투가 출몰한다. 이 산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내 근처일 테니 내 곁에 꼭 붙어 다니게 할 생각이다.
“너는 다른 것을 시킬 것이 있어.”
“알았어.”
“그런데 이걸 따서 어디에 쓰려는 거냐?”
전사 하나가 내가 명령을 내린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해서 묻는 거야? 따지는 거야?”
악어머리 족장은 저들에게 내 말을 잘 따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눈빛부터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사사건건 퉁명스럽게 따지듯 말하고 있다. 특히 내게 묻고 있는 저놈은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족장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데…….’
그러니 아무리 전사라고 해도 나한테 저렇게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놈이 내게 개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 저러는 거라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놈은 딱 한 놈이다.
큰눈!
놈과 나는 내가 악어머리 족장에게 용의 뼈로 만든 검을 받을 때부터 사이가 틀어진 것 같다.
그리고 큰눈은 속이 좁은 놈이 분명했다.
거대한 악어가 도롱뇽을 낳은 꼴이다.
‘본보기를 보여 줘야겠어.’
아직 나는 꼬마로 보인다.
‘키가 150센티미터밖에 안 되니…….’
대중의 인식 속의 원시인이란 다들 가죽으로 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으며 이족 보행을 하지만 굽은 허리로 인해 어수룩해 보이며 다들 하나같이 ‘키가 작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 말은 틀린 말이다. 구석기시대, 정확히는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남자의 평균 신장은 177센티미터다. 이 정도면 현대인 키보다 살짝 큰 정도다.
그리고 내 키는 150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레벨 업을 하면서 키도 크고 근골도 강해졌지만 아직 이들에게는 어린애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도 나는 연꽃보다 작다.
‘연꽃은 무엇을 먹고 이렇게 발육이 좋은 거야?’
문뜩 떠오른 생각에 나도 모르게 힐끗 연꽃의 가슴을 봤다. 현대 사회에서 동양인이 저런 가슴을 가지기 위해서는 신의 가호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말이 좀 엇나갔지만 지금 나한테 개기는 놈은 여자들을 보호하러 나온 전사들보다 약간 더 크니 180센티미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왜 이걸 따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또 반말이다.
“너, 내가 싫지?”
나는 전사를 노려봤다.
“당연히 싫지.”
아마도 내 옆에 늑대발톱과 큰바위만 있었어도 저렇게 나를 깔보는 눈빛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덩치만 크다고 내가 우습게 보이지? 멍청한 놈!”
나는 의도적으로 악어머리 부족 전사를 자극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전사의 눈빛도 기다렸다는 듯 돌변했다.
“따, 땅속에서일어서! 왜 그래?”
연꽃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말렸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
“저 전사는 강한 전사야! 큰눈 오빠가 데리고 있는 전사라고!”
연꽃이 내게 속삭였다.
역시 큰눈이다. 저 망할 놈의 배후에 더 망할 놈이 있다.
‘강한 놈이면 더더욱 좋지.’
아예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묵사발을 내놓는다면 더 이상 나에게 뭐라고 태클을 걸 놈들은 없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악어머리 부족도 오래가지 않겠군.’
다음 족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큰눈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큰눈은 이 거대한 부족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능력도 없는 놈이 족장이 된다면 죽은 붉은개처럼 부족을 다른 놈에게 빼앗기거나 부족을 망하게 한다. 만약 큰눈이 족장이 되고 내가 어느 정도 강한 부족을 이끌게 된다면 분명 우린 적으로 만날 것이다.
그리고 큰눈이 늑대발톱이 붉은개에게 족장의 자리를 빼앗긴 것처럼 부하에게 족장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면 나는 악어머리 부족을 차지할 명분이 생긴다. 물론 내가 거느린 부족이 악어머리 부족을 공격할 정도로 강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족의 통폐합이 가장 빠른 성장 방법이지.’
나도 모르게 몇 수 앞을 내다봤다.
“어린놈의 새끼가!”
원시시대에서도 어리다는 것이 욕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멍석을 깔아 주니 놈이 대놓고 내게 적의를 보였다. 그리고 누구도 이 상황을 말리는 전사들은 없었다.
지켜보겠다는 거다.
내가 저놈한테 묵사발이 나는 것을 보고 싶은 눈빛이다.
“나이만 처먹은 것이 자랑이다. 이 거북이 같은 새끼야!”
어느 곳에 가든 이방인은 제일 먼저 그곳의 욕부터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악어머리 부족에서 가장 심한 욕이 거북이 새끼라는 소리를 들었다.
“뭐? 거북이 새끼?”
바로 놈의 눈깔이 뒤집혔다.
“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족장님만 아니었어도 내 돌도끼가 네 대가리를 벌써 찍었을 것이다.”
전사가 으르렁대며 나를 위협했다.
보통 어른이 이렇게 윽박지르듯이 위협을 하면 아이들은 겁을 먹는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싸우고 싶은 것은 너겠지.”
“허! 거북이 새끼 같은 놈이 정말 겁이 없구나!”
일반적으로 어린애와 어른이 싸우면 어른이 이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눈에 봐도 나와 저놈의 키 차이는 머리 하나 정도가 난다. 놈도 내 도발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며 피식 웃었고, 그놈의 뒤에 있던 전사들도 나를 비웃듯 따라 웃었다.
“진짜 거북이냐? 나한테 쫄은 거야? 싸우고 싶으면 여자처럼 꺅꺅거리지 말고 어디 한번 덤벼 봐!”
나는 바로 매고 있는 활을 연꽃에 목에 걸어 주고 골검도 연꽃의 손에 쥐여 줬다.
“하하하! 설마 나한테 맨손으로 덤비겠다는 거냐?”
“왜? 어린애 상대로 쫄았냐? 그러면 돌도끼를 들든가. 거북이 새끼처럼 목도 정말 기네. 덤비고 싶잖아? 덤벼 봐!”
내가 최고로 심한 욕설을 내뱉으며 도발을 했지만 놈은 쉽게 덤벼들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악어머리 족장 때문이리라.
“내가 뒈져도 여자처럼 악어머리 족장에게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덤벼!”
내 말에 놈이 비릿하게 미소를 보였다.
“정말이지?”
“너나 나한테 맞고 엄마한테 가서 이르지는 마라. 다 큰 놈이 그러면 주책이다.”
“이 새끼가 정말!”
“덤벼 보라니까!”
“이 망할 놈! 좋다.”
전사가 들고 있는 돌도끼를 땅에 던졌다.
“땅속에서일어서!”
“왜!”
“네가 말한 대로 내게 죽도록 맞았다고 족장님께 고자질하기 없기다.”
“너나 고자질하지 마라. 거북이처럼 뒤집히면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 새끼야!”
나는 최대한 놈을 도발하고 있다.
“뭐야?”
놈이 나를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덤빌 것 같다.
‘맨손이라도 저 새끼 정도는 이제 때려죽일 수 있다.’
저놈은 아마 내가 붉은 사자를 죽였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저 새끼를 죽도록 털어서 테이밍을 해 버려?’
그럼 평생을 내게 충성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어린애에게 진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평생 충성한다? 놈은 사회적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평생 동안 부족민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살 것이고, 실제로 죽은 것보다 더한 수치를 받고 살 것이다.
순간 사악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준비됐어?”
딱 좋은 기회 같다. 말벌의 독이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한 번 더 확인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강아지가 게거품을 물었던 것은 말벌 알레르기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허리 뒤춤에 끼워 놓은 바람총에 독침을 넣고 놈을 노려봤다.
“정말 화가 난다. 저 망할 놈이 무엇을 믿고 설치는지 모르겠다.”
“강한주먹! 잡혀간 여자들의 복수를 해라!”
“저놈을 죽도로 패라!”
“아예 죽여 버려!”
싸움이 벌어지자 흥분한 전사들이 소리쳤고, 같은 부족이라 그런지 여자들도 강한주먹을 응원했다. 싸움으로 인한 광기가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