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542)
라이토르백작의 기사들이 적들을 랜스 차징으로 밀어 버리는 광경은 참으로 가슴 벅차오르는 광경이었다.
물론 그렇게 꼬챙이가 되어서 날아가는 사람을 본다는 게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만,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현실 앞에서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법이다.
“진짜 손님은 사람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만.”
벽에 박힌 성창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사이 내게 다가온 칼 칸시는 팔다리에 피칠갑을 한 상태로 언제 나와 같이 웃어 보였다.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안도하는 것과 별개로 라이토르 산 침식체와 싸울 때 보여줬던 힘 조절을 떠올리면 저렇게 피가 튀길 이유가 있나 싶어 의아해했더니, 귀신같이 내 의문을 눈치챈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실용을 위한 거지 딱히 취미는 아니라고.”
팔다리로 육체를 파괴하는 존재를 두고 적들이 느낄 위압감. 적의 눈에 피를 튀겨 시야를 막을 수 있는 유용함. 제 몸뚱이만으로 무투가라서 그런 것인지, 칼 칸시의 전투법은 ‘편하고 안전하게.’가 모토였다.
“그럴 거면 그냥 무기 쓰는 게 낫지 않냐?”
그런 모토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치고는 영 안전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 여겼더니 되려 칼 칸시가 날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무기가 없어지면 싸우기 힘들잖아.”
마치 무슨 대단한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는데, 처음으로 녀석이 멍청해 보였다. 팔다리는 뭐 안 없어지냐? 누가 보면 다시 자라나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할 말은 참 많았지만 피곤해서 참았다. 빈말이 아니라 바로 눕고 싶을 만큼 피곤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 그럴 수 없다는 게 슬플 따름이다.
“그나저나 그게 대체 뭔데 놈들하고 싸워가면서까지 지킨거야?”
“성창.”
“아… 아?”
얼빵한 소리를 내는 칼 칸시를 무시하며 벽에 박힌 성창에 손을 뻗었다.
그냥 피부로 느껴지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확연한 신성력과 악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성유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기에 이게 대체 무슨 상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닌 건 확실했다.
“왜 조용하지?”
그도 그럴 것이, 성창인 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에스테 특유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악신의 잔재를 섞어 개수작을 부리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내 반응을 보고 의아해하는 칼 칸시만큼이나 나도 의아한 와중에 한바탕 욕지거리를 떠벌린 뒤로 침묵을 유지하던 내 쪽의 에스테가 천천히 말했다.
[죽었으니까.]“뭐?”
[성창 에스테는 죽었어. 저 빌어먹을 자식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잔재’이자 복제품이야.]순간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다.
질 나쁜 농담이냐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에스테와의 ‘대화’는 언어로 구성되는 걸 넘어서 진심이 담기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녀석의 말대로 내 눈앞에 있는 성창은 정말 성창의 편린에 불과한 것이다.
“손님? 뭐 하고 있어? 아, 성검이랑 대화하는 건가?”
칼 칸시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지만 대답할 기분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한 손은 에스테의 손잡이에 올려 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창을 쥔 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취해야 하는 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나름 기대하고 있었다.
메스가키 에스테와 그런 에스테를 보며 성숙한 성창 에스테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성창 에스테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었으니, 기대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게 이런 식으로 파토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 역시 불쾌함의 원인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 성자, 어이쿠 아니지. 용사님! 굉장한 실력이…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라이토르 백작군이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바닥의 진동조차 아련하게 느껴질 무렵, 타지가 다가와서 살갑게 말을 걸었지만 역시 반응할 수 없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아까 소하라는 새끼가 악신의 기운으로부터 정신을 되찾는 순간만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놈은 오롯이 자력으로 악신의 잔재를 밀어낸 게 아니다. 성창을 쥐고 있었던 왼팔부터 악신의 기운이 빠르게 사라진 건 성창에 담긴 신성력이 놈을 보호하고자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성창을 쥐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비록 내부에 악신의 잔재가 섞여 있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오염에 가까운 것일 뿐, 사용자를 강제로 보호하게끔 유도하는 기능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에스테의 말이 맞다면 성창은 ‘죽음’이라는 형태의 자아의 소멸을 겪고도…
“좆같아서 안 되겠다.”
…악신의 기운으로부터 마신의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뭐?”
“엥?”
[자, 잠깐. 주인? 뭐 하는 거야? 이거 뭔데?]마족들은 마력을 폭주시킬 수 있다.
그 원리 자체는 대수로울 게 없다. 컴퓨터에 오버클럭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 마력 기관을 몸에 달고 난 뒤로는 어딜 어떻게 끌어올려야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인지 금방 이해했을 정도로 단순한 원리였다.
하지만 알기만 하고 한 번도 쓰진 않았다. 이미 마력 기관없이도 마력을 무난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내 육체 기반이 마족보다 튼튼하다는 게 기정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리스크에 비해 얻는 게 너무 미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꽁으로 강한 힘을 가불 받아 쓰는 방법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칼 칸시만큼이나 나도 ‘편하고 안전하게’가 모토니까 당연히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오늘 그 새끼들만큼은 꼭 잡아 족쳐야 속이 후련할 거 같다.”
근데 오늘은 아닌 거 같다.
성창을 뽑으며 성창에 담겨 있던 신성력을 흡수하고, 아까 어거지로 마력을 끌어올리던 감각을 통해 한 번 더 마력을 끌어온다.
마력 기관에 부하를 주고, 성법을 통해 육체를 보호하며, 육체 강화의 성법을 단순 시전으로 끝마치는 것이 아닌 신성력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그릇과 그대로 연결하여 억지로 마력 기관의 엔진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든다.
[주인! 잠깐! 이거 뭔가 많이 이상한데! 이게 뭐으잉에에엑!]방금까지 침울하던 에스테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치는 탓에 분노로 돌아갔던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며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화가 나도 머리는 차갑게 해야지.
“따지고 보면 나랑 에파가 님은 굉장히 연이 깊은 관계거든. 이 정도면 친구까진 아니라도 아주 돈독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 근데 그분을 욕한 것도 모자라 그 분과 평생을 함께 해 온 끝에 성물이 된 성창 에스테를 죽였으면… 이는 곧 에파가 님을 건드린 것이니, 이건 내 지인을 건드린 거라고 봐도 무방하잖아?”
내게서 느껴지는 마력에 당황하는 타지와 그런 타지의 반응과 내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칼 칸시의 눈동자가 열심히 굴러간다.
그들에겐 잘못이 없었기에, 나는 최대한 웃어 보이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난 내 주변 건드리는 새끼들 곱게 못 보내겠다.”
가끔 사람은 뒷일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저질러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
부관 올바 이오드는 축 늘어진 소하를 등에 짊어진 채로도 속도가 줄어드는 일 없이 열심히 달렸다.
안전한 퇴각을 위해 많은 특작부가 목숨을 잃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소하의 안전은 최우선순위다. 주변에 남은 다른 특작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군말 없이 그를 따라 나선 것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 괴물 같은 용사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마력까지 써가며 급하게 이동했다. 그 와중에도 흔적을 지우는 데에 최선을 다 했으니, 여기까지 쫓아올 방법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긴 올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행동을 지시하자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은 공간 이동을 준비하기 위해 마법을 펼치는 이를 제외하고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퇴각 중에 합류한 이들이었기에 부하들은 침착했다. 정작 공간 이동을 준비하는 마법사가 그러지 못해 준비가 지연됐으나, 올바는 그런 부하를 이해했다. 오히려 놈이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상황 속에서 저 정도면 침착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는 우연히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하늘로 치솟는 소름 끼치는 빛의 기둥을 보면서도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그 한 마디조차 편하게 내뱉지 못한 건 조금이라도 마법사의 시전이 빨리 끝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 없던 그조차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소하가 내뿜던 분노에 감염된 것처럼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모르는 척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우리를 원치 않는 불멸자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서 알아서 살겠다는데 대체 왜…
“이상 포착. 관측 하겠습니다.”
너무나도 훤하게 들어나는 빛의 기둥이었기에 마법에 집중 중인 부하를 제외한 다른 특작부도 금방 이를 발견하고 마법을 시전했다.
그가 시전하는 건 간단한 불가시 감시 마법이었다. 교본 대로의 행동이었고, 그렇기에 명령을 받을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행동. 그래서 부하의 말을 듣고, 마법이 완성되어 하늘로 오르는 걸 보는 그 순간까지 올바는 반응하지 못했다.
뒤늦게 떠오르는 건 마도구의 발동과 동시에 투사체를 날리던 용사의 모습.
“아, 안 돼!”
“예?”
황급히 마법을 멈추게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건 의문을 표하는 부하의 얼굴과, 그가 마법을 시전 하여 올림과 동시에 사라져버린 빛의 기둥이었다.
올바의 심장이 마치 하루 종일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쿵쾅거리기를 세 번.
-콰드득!
“컥…?”
네 번째 심장 소리에 맞춰 의아한 얼굴로 올바를 바라보던 부하의 흉부에 새하얀 창이 솟아나고, 그 창이 바닥에 박히며 충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용사가 나타나 창에 꿰뚫린 특작부를 짓밟으며 착지했다.
폭발적인 마력과 신성력이 몰아친 건 그다음이었다.
-콰아앙!
미처 눈으로 따라갈 틈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용사의 모습을 눈에 담은 올바는 순식간에 식은땀이 솟아나는 걸 느끼며 제발 마법사가 공간 이동 마법의 시전을 멈추지 않았길 빌었다.
“자기소개가 좀 많이 늦었다.”
아까까지 쓰고 있던 투구는 대체 어디에다 버리고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용사가, 뿔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머리를 차분하게 들어 올바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엘드미아 에가라고 한다.”
신성력이 넘쳐나서 생긴 찬연한 안광 너머의 짙은 남색 눈동자는 올바가 기억하는 소하의 눈과 같았다.
소하와 달리 족쇄조차 보이지 않는 분노를 드러낸 용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