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82
81. 놋쇠의 기사 1
아자딘 일행은 그 후 하루 동안 서진했다. 높은 언덕에 당도한 아자딘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선견조 마법을 사용하게 하고 자신 역시 나무에 올라가 후방을 감시했다.
심판자 젝트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는지 추격자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후우. 좋아.”
뒤에서 추격이 없는 걸 확인하고 아자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액막이 인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군.”
“그럼 이제 어쩌실 거죠?”
“일단 백작 영지에서 도망친 나가를 추격하자. 신왕진서를 상당량 가지고 있을 거야.”
“당신이 회복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그 성기사랑 투닥거린 시간도 있는데 그 정도면 벌써 도망가고도 남았을 텐데요.”
이스마일은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당신이 회복하는 데 나흘을 허비했습니다. 나흘 차이면 엄청나지요. 그런데도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가를 추격하는 거 말고 달리 신왕진서 사본의 정보가 없잖니? 가다 보면 뭐 다른 정보가 들어올지도 모르니 나가들의 흔적을 추격해보자.”
아자딘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나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스마일, 뼈완드를 써봐.”
“네? 지금요?”
“그래.”
“별 쓸모 없을 텐데요.”
탐지마법을 회피하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미 살라스마 백작의 궁성에서 도망친 나가들은 그 수단을 사용한 뒤였다.
이제 와서 사용해봐야 탐지에 걸릴 리 없이 괜히 뼈 완드의 마력만 소모할 뿐이다. 이스마일이 그렇게 말하며 뼈 완드를 사용했지만….
“어?”
가까이에 신왕진서 사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역시.”
아자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불의의 사고로 고생하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니까.”
*********
나가들은 자부심이 강한 종족이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인간을 가축으로 사육하고 매일같이 피의 축제를 벌인 잔인하고 끔찍한 종족이지만 나가들 입장에서 그들은 네더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제일 처음 휘브리스 땅에 문명국가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나가들의 지배를 종식시킨 야에가스 신족을 인간들이 숭배하듯, 나가들은 그들 이전에 휘브리스 대륙을 장악했던 이형의 신들, ‘네더’의 지배를 종식시킨 자신들의 제국을 숭배하고 있었다.
오르테시아 자매는 그러한 나가의 일원으로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시금 나가가 이 땅의 주역이 되게 하기 위해 카젤 백작의 부하가 되었다. 신왕진서 사본을 획득해 야에가스 신족의 힘의 비밀을 밝히고 나가슈라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증오스러운 황제의 전령에 의해서 카젤 백작은 사망하고, 그를 보좌하던 오르테시아 자매도 둘이나 사망했다. 오르테시아 자매의 막내 샤티는 신왕진서 사본을 들고 무너지는 백작 성을 탈출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그녀는 축축한 지하실에 있는가?
“여기는….”
샤티는 눈앞에 있는 쇠창살을 보며 의아해했다. 허름한 지하실, 토실 벽에 녹슨 쇠창살이 박혀 있지만 굵고 튼튼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다.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된 거지?”
입을 열자 속에서 위액이 올라온다.
“약물인가?”
그제야 기억이 돌아왔다. 분명히 어젯밤, 여관에서 주는 식사를 하고 잠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감옥에 있는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샤티는 자신이 인간 악당들의 협잡질에 걸렸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원래 어지간하면 남이 주는 음식물을 안 먹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근처가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고 또 워낙 급작스럽게 도망쳐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받아먹었더니만 이런 꼴이 된 것이다.
“빌어먹을 온혈원숭이 놈들! 내가 나가기만 하면….”
쇠창살을 부수기 위해 그녀는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그때.
-쾅!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악! 뭐, 뭐야? 이건!”
“젠장! 마, 마물이다!”
“크르르르!”
지하실 안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샤티와 함께 탈출하던 나가 요원이 인간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마르틴?!”
샤티는 나가 요원의 이름을 부르며 쇠창살을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가 간신히 쇠창살을 부수고 나왔을 때는 이미 지하실 모두가 잠잠해진 뒤였다. 당황한 그녀가 감옥 밖으로 나와보니 그곳에는 커다란 도축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벽에는 인간들의 시체가 걸려 있었다.
“읍!”
이 여관 녀석들은 동족인 인간들을 습격해 여자는 팔아먹고, 남자는 죽여서 고기로 만들고 있었다. 걸려 있는 인간들이 전부 남자인 데다가 대부분이 고기로 도축되어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그 도축장 한복판에 창을 맞은 나가의 시체와 그 주위에 죽어 있는 여관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아마도 이놈들은 샤티는 여자라서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 내버려 두고 남자 요원은 도축해서 고기로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급한 마음에 요원은 본모습을 드러냈지만 인간들이 묶어둔 쇠사슬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 꼴로 맨손으로 싸운 나가와 무장한 식인종들의 싸움은 결국 두 쪽 다 죽는 결말로 끝나 버렸다.
“오, 맙소사.”
샤티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벽장에서 자신의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신왕진서 사본은 무사히 안에 들어 있었다.
“이 천벌 받을 온혈원숭이 놈들… 응?”
그런데 그녀가 지하실을 나오니 그곳에는 무장한 강도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어?!”
“이 여자, 감옥에 있지 않았냐?”
“젠장!”
다들 지나치게 경계하며 창으로 샤티를 겨누었다. 이들은 조금 전 지하실에서 죽었던 도적들의 동료인 듯했다.
인간인 줄 알았던 남자가 나가로 변신해서 싸우자 그 일행인 여자도 나가일 거라 추측해서 원군을 불러온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샤티는 여관의 악당들 모두가 죽은 줄 알고 무방비하게 지하실을 빠져나왔으니….
“윽….”
샤티는 자신을 노려보는 도적 떼들의 시선에 당황했다.
숫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떠오르는 정욕의 눈빛이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언니들은 카젤 백작이라는 놈을 구워삶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내줘야 했지. 하지만 그건 신왕진서 사본을 입수한다는 대의가 있어서였어. 이 더럽고 추악한 온혈원숭이들이… 신왕진서 사본도 관계없이 감히 날 넘봐?’
그러나 상대가 너무 많은 데다 창과 육척봉같이 긴 무기는 무술에 소양이 없는 이들의 손에 들려도 무서운 무기였다.
“이 여자 엄청 예쁜데요. 정말 이 여자도 괴물일까요?”
“아니면 뭐?”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데….”
“야! 나가를 우습게 보지 마. 조금 전에 양팔을 다 묶어놨는데도 독액을 입으로 뿜어서 사람을 죽이더라니까.”
그들은 이미 다른 나가와 싸워봤기 때문인지 방심하지 않고 샤티를 포위한 채 다가왔다. 그때 그들의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샤티에게 말을 걸었다.
“야, 투항해라, 나가 여자.”
“네?”
“두목, 무슨 생각이십니까?”
“란타릭 영주가 비싸게 살 거야. 나가 여자, 너도 여기서 꼬치 신세가 되느니 그쪽이 좀 더 도망칠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
“…….”
“어때? 투항한다면 이 칼을 차라.”
도적 두목은 그리 말하고 나무에 쇠로 보강되어 있는 구속구를 내밀었다. 목과 손 하나를 같은 널빤지 안에 끼우게 되어 있는 구속구였다.
“나보고 스스로 차라고?”
“그래. 한 번 채우면 자물쇠가 자동으로 잠겨서 그냥은 안 풀리니까 편할 거다.”
“…….”
샤티는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가방을 붙잡았다. 이 가방에는 신왕진서 사본을 추적하는 마법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보호마법이 걸려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보호마법을 굳이 해제해서 신왕진서를 노리는 날파리들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일단 끌어들이는 게 낫겠지?
‘신왕진서를 노리는 놈들을 끌어들여서 이 도적놈들과 싸우게 만들어야지. 지금 나는 약 기운이 남아 있어. 맞서 싸우다 죽느니 일단 투항하고 이후 기회를 노릴 수밖에.’
샤티는 가방에 걸린 보호마법을 풀고 도적들에게 가방을 넘겨주었다.
“알겠다. 칼을 차도록 하지.”
샤티가 스스로 칼을 차자 도적들은 그제야 안심했다.
“이야, 역시 두목이라니까. 대단하십니다.”
“아니. 좋아할 일이 아니다. 여기에 순응하는 걸 보니까 이 나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나가 시체 이건 어떻게 합니까?”
“음,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박제할까요?”
“우리가 나가를 잡았다고 하면 다른 놈들이 믿지 않을 거라서… 뭔가 남겨서 자랑하고 싶은데요.”
“아니, 고기로 쓴다.”
“네?”
도적들도 놀라고 샤티도 놀랐다.
“미개한 온혈원숭이 놈들. 지금 뭐라고? 마르틴을 잡아먹겠다는 거냐?”
“그래.”
도적들도 주저하며 서로에게 물었다.
“그거 먹을 만할까요?”
“나가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인데.”
“인간도 고기로 만들어 팔았는데 이제 와서 나가 정도야….”
“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독이 있을 수 있잖습니까?”
“뱀독이라면 끓여서 먹으면 다 괜찮아. 독사도 그렇게 끓여 먹는데 뭘.”
사람을 죽여서 고기로 팔아먹던 식인 도적들은 나가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샤티로서는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는 촌극이었다.
영광스러운 나가슈라 제국의 후손이 이런 온혈원숭이들 따위에게 잡아먹히다니!
“윽. 이 더러운 온혈원숭이 놈들!”
샤티는 그 모습을 보며 분개했다.
“얌전히 있어, 아가씨. 애초에 우리가 이 친구를 희생물로 삼은 건… 당신 때문이라고. 예쁜 여자가 있길래 팔아 먹으려고 손댔더만 설마 나가였을 줄이야. 우리도 피해가 막심해.”
도적 두목은 그리 말하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쇠창살 마차 준비해. 노예들은 빨리 팔아치워야지.”
*********
샤티는 칼을 찬 채로 노예들을 보관하는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에는 여자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녀처럼 목에 칼을 찬 사람은 없고 다들 발목에 족쇄를 차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원 이것들 하나도 안 먹었네. 먹이를 줄 때 먹어둬라. 몸 상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까.”
도적들은 창고 안 죽그릇에 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죽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인간을 먹일 셈인가? 제정신이 아니군. 네놈들!”
“너는 나가잖냐? 인간을 잡아먹던.”
“미리 말해두지만 그건 오래된 전통이다. 요즘 젊은 나가들은 인간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네놈들은 일종의 혐오식품이라고!”
“하하하하.”
도적들은 샤티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