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
10회. 왜 그러셨어요?
인상을 찡그리던 백미주가 큰아들 연무백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연 조카는 원래 저러니?”
연무백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들의 반응에 백미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몰라요.”
연무백의 말에 백미주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한편 남궁연은 마치 집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안마당까지 들어갔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연적하가 쓰던 작은 방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홱 돌아서 백미주를 쏘아보았다.
백미주는 내심 찔렸지만 시치미를 떼고 억지로 웃음 지었다.
“그래요. 거기가 적하의 방이에요.”
십 년도 전에 사용하던 연적하의 방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뒤로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다. 그 방은 연적하가 여섯 살 때 이후로 언제나 빈방이었다.
그녀는 연적하를 창고에 가두었지만 그의 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남궁연은 섬돌에 신발을 벗고 연적하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궁천이 재빨리 숙모에게 설명했다.
“막내가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연아가 관심을 가지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곧 막내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백미주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흥! 십 년 전부터 비워 둔 방을 뒤진다고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느냐? 저년이 용한 무당이라도 된다든?’
일각쯤 지났을까?
남궁연이 무덤덤한 얼굴로 나왔다.
그녀는 다시 섬돌에 놓인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경만 하고 있던 백미주가 나섰다.
“조카님, 우리 적하가 어디로 갔는지 알면 좀 가르쳐 주세요. 그동안 제가…….”
백미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연은 그녀를 스윽 지나쳤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구는 남궁연의 태도에 백미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는데 남궁연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울컥한 백미주가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다.
남궁연이 바람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백미주에게 남궁천이 읍을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연아에게 급한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저도 이만 떠나겠습니다. 숙모님, 아무쪼록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사제, 나는 먼저 가겠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백미주는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뻑거렸다.
십 년 만에 맞은 귀한 손님들이 오자마자 바로 간단다.
그것도 동생이 휙 나가니 장자가 허겁지겁 마무리로 인사를 한다.
그녀의 상식에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남궁천이 동생을 야단치고 꿇어앉혀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연무백은 말리기는커녕 당연하다는 듯 허리 숙여 화답했다.
“사형, 멀리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살펴 돌아가십시오. 언제고 강호에서 다시 뵐 날이 있을 겁니다. 그때 꼭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 우리가 남이더냐. 십 년간 한솥밥을 먹은 정이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남궁세가로 기별을 넣거라.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가마.”
백미주는 그나마 큰아들 연무백과 남궁천의 작별 인사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게 정상이다.
십 년 만에 가문을 대표로 인사를 왔다가 적하의 방만 들여다보고 확 나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남궁천이 움직이자 연씨 일족은 다시 우르르 대문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자존심이 크게 상한 백미주는 마루에 걸터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큰아들 연무백이 배웅을 마치고 돌아왔다.
“무백아, 그들은 갔느냐?”
“예. 마차가 골목 어귀를 빠져나가는 걸 보고 들어왔습니다.”
백미주가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그년은 본래 그러는 년이냐?”
‘마차가 골목 어귀를 빠져나갔다’는 말에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연무백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니, 그만하기를 다행입니다. 사저가 한번 손을 대면 풀리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년이냐? 말도 못하는 반푼이가?”
“못하는 게 아니라 잘 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직례성에서 사제의 별호가 화용독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지요.”
“흥! 헛소리.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는 남궁세가에서 그녀가 사람 속을 읽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습니다. ‘귀신을 속일지언정 화용독심은 속일 수 없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짜고 하는 수작들이겠지.”
백미주는 아들도 속은 거라고 생각했다.
“저는 아까 사저가 냉소를 칠 때 깜짝 놀랐습니다. 사저가 사람을 벨 때처럼 살기를 풀풀 날려서요. 어머니, 정말 막내가 가출을 한 게 맞습니까?”
“왜? 내가 그 천한 놈을 죽이기라도 했을까 봐?”
“만약 그랬다면 사저가 그냥 갔을 리 없습니다. 대체 막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래도 명문세가에서 십 년간 교육을 받은 덕에 연무백은 꼬박꼬박 막내라고 칭했다.
백미주는 못마땅했지만 십 년 만에 보는 자식이 어른스러워서 탓하지 않았다.
“가출했다고 했잖니.”
“정말요?”
연무백이 동생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가 답해 보거라. 적하가 정말 가출을 한 게 맞느냐?”
연승백과 연설주는 큰형이 정색을 하고 묻자 은근히 양심이 찔려 왔다. 그래도 연적하가 가출을 한 건 사실인지라 나름 떳떳했다.
연승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그녀석이 가출을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었다고.”
그제야 연무백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그랬다면 다행이다. 사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몰라서 그러는데 그녀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저기가 적하의 방이지?”
“맞아 오빠. 그런데 별거 없을 거야.”
“왜?”
눈치 없는 연설주가 백미주의 비밀을 툭 털어놓았다.
“적하는 거기 안 살았거든. 걔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창고에서 살았어.”
“뭐?”
깜짝 놀란 연무백은 신발도 벗지 않고 연적하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작은 이불 한 채와 서탁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청소는 꼬박꼬박 했는지 깨끗했지만 사람이 산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자신의 눈에도 그게 보이는데 화용독심이라 불리는 사저가 모를 리 없다.
연무백이 밖으로 뛰어나가 다시 물었다.
“창고, 창고는? 설마 가산 뒤에 있는 그 창고냐?”
그동안 백미주에게 꼬집히기라도 했는지 연설주가 연신 팔을 주무르며 답했다.
“……응.”
그 순간 연무백의 신형이 바람처럼 담장을 넘어갔다.
얼마나 급했는지 경공술로 달려간 것이다.
백미주를 비롯한 연씨 일족은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히 창고로 몰려갔다.
연무백은 크게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활짝 열린 창고 문 앞에 엿가락처럼 툭툭 끊어져 나간 쇠사슬이 보였다.
벌써 누군가 다녀간 모양이다.
잘린 단면을 보니 절정의 검기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보나 마나 남궁천의 솜씨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창고에 적하를 가두어 두었다니?
강호의 흉악한 마두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작 여섯 살이었을 적하는 아니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괴롭힌 것과 개처럼 가두어 키운 것은 다른 문제다.
‘헉! 설마?’
고작 여섯 살짜리를 십 년간 창고에 가둘 정도의 분위기라면, 죽였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와룡장은, 자신은, 날아 보지도 못하고 날개가 꺾이게 된다.
‘어머니 제발…….’
그런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허겁지겁 달려온 백미주가 변명처럼 말했다.
“정말이야. 가둔 것은 맞지만 죽이지 않았어. 그 천한 놈이 제 발로 달아났다니까.”
연무백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창고는 오물과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남궁세가에서 십 년간 공부하며 강호행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이 죽어 나간 곳에는 귀기와 혈흔과 죽음의 냄새 따위가 있다.
다행히 창고 안은 퀴퀴한 냄새만 가득할 뿐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최소한 이곳에서 사람은 죽어 나가지 않았다.
‘아아! 다행이다.’
연무백은 창고 안을 찬찬히 살폈다.
사람이 꼬물거리며 살아온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삭고 헤진 어린아이의 옷가지들과 웅크리고 잤을 게 틀림없는 잠자리.
창고를 나간 연무백과 백미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그러셨어요?”
“그년과 관계된 것들이 보기 싫어서. 그 천한 녀석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차라리 집 밖으로 내보내지 그러셨어요.”
“내 인생과 와룡장을 망친 그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연무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머니는 작은 어머니와 적하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제정신이 아니다.
“사형과 사저가 여길 보고 갔어요. 남궁세가에서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사실 백미주도 남궁세가는 예정에 없던 일이다.
그 예쁘기만 하고 얼빠진 여자애가 적하를 기억할 줄이야.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창고에 갇힌 그놈을 보았다면 사태는 더 나빠졌을 테니.
“하아! 그래도 여기저기 떠벌리지는 않을 게다. 독한 년이라고 나를 욕할지라도……. 네가 그 집의 제자니까. 자기들의 체면도 달린 일이니까.”
연무백이 멍한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검왕 남궁벽의 제자이기도 하니 소문은 내지 않을 게다. 하지만 이후로 자신과 와룡장은 남궁세가의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은 다르다. 연무백은 존경하는 스승과의 관계가 엉망이 된 현실이 슬펐다.
***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남궁천은 동생을 힐끔 바라보았다.
와룡장을 돌아다닐 때는 살기를 풀풀 날리더니, 지금은 오히려 차분하다.
자신은 이토록 마음이 무거운데 말이다.
과거와 달리 와룡장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작은 창고가 눈에 아른거린다.
“연아야, 괜찮으냐?”
창밖을 보던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운 얼굴에 그늘 한 점 없는 걸 보면 정말 괜찮은 거다.
“적하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느냐?”
그 부분에서 남궁연은 고개를 저었다.
남궁천은 더 묻지 않았다.
동생이 아무리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다고 해도 귀신은 아니다. 머리가 좋아서 표정과 주변 사물만 보고 정황을 추측해 낼 뿐이다.
“어디 가더라도 잘 살겠지…….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살았으니, 잘 살 게다.”
창가로 비치는 햇살에 남궁연은 눈을 감았다.
연적하를 만나던 십 년 전의 날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엄마…….”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연적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안았다.
곧이어 팔뚝으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옷자락으로 그의 눈물을 쓱쓱 닦아 주었다.
친해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잡자기 연적하가 자신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개구멍 앞에 도달한 그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의 작은 두 발이 꼬물거리며 멀어져 갔다.
자신도 그의 두 발이 사라지기 전에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연적하는 그때처럼 개구멍을 통해 세상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떠난 것이리라.
남궁연은 속으로 가만히 응원했다.
너를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