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32
1032회. 이건 자연 균열이 아니오
주변의 시선을 느낀 데니스 로빈 남작이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
“그야 모르지. 제국의 메이지들이 왔는지, 마구스가 왔는지는 비공정이 내려와야 알지 않겠나. 제국의 마법 병단을 북방에서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정말 난세(亂世)가 오려는 건가. 그런데 엘리오 경은 제국의 마법 병단을 본 적이 있습니까?”
데니스 로빈 남작이 엘리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워낙 의외의 일을 많이 겪다 보니 확인차 물어본 것이다.
엘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 병단이라는 말 자체도 처음 접하는데 봤을 리가 있나.
“없어요. 제국의 마법 병단이 뭔지도 몰라요.”
“아, 그러시겠군요.”
데니스 로빈 남작은 새삼 그가 야인 출신임을 자각했다.
“엘리오 경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로디나 대륙에 처음 정착한 인간들이 세운 나라가 ‘론디니움’입니다. 그 뒤 인간들이 대륙 곳곳에 흩어져 여러 도시들을 세웠지요. 도시가 발달해서 왕국 소리를 듣게 될 때, 론디니움은 인근 왕국들을 점령해 제국이 되었습니다. 론디니움과 왕국들 간의 전쟁을 제국전쟁이라고 하는데, 그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부대가 바로 저 마법 병단입니다. ‘마법 병단을 보면 전쟁이 터진 줄 알아라’는 말도 그때 만들어졌지요.”
“그럼 히르헤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요?”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일선 중대장이 뭘 알겠습니까?”
데니스 로빈 남작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더 아는 척을 하고 싶어도 정보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
히르헤라의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중앙에 있는 공터로 거대한 배 한 척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배의 아랫부분이 열리며 지면에 맞닿았다.
곧이어 마법 병단 기사단 깃발을 앞세우고 기사 오십 명과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배에서 내렸다.
주둔지의 귀족들과 함께 마중 나온 에스카토스 공작이 복잡한 눈으로 제국 기사단의 깃발을 응시했다.
검은 까마귀가 그려진 것을 보니 ‘전쟁 선포자’로 악명 높은 ‘코르보 기사단’의 깃발이다.
기사단 이름도 아예 고대어로 ‘까마귀’를 뜻하는 ‘코르보’다.
흉악한 강도단에나 어울릴 검은 까마귀를 제국의 마법 병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이내 잡념을 떨치고 마법사들 앞으로 나아갔다.
순간 젊은 기사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십니까?”
“스타우로스 에스카토스 공작이오.”
그제야 젊은 기사는 묵례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기사를 한번 본 후에 마법사들에게 걸어갔다.
7서클의 마법사,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웃으며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마주 나아갔다.
“에스카토스 공작, 오랜만이오. 얼굴이 더 좋아지셨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마구스 킬리언 헤일의 나이가 더 많은지라 에스카토스 공작은 자연스럽게 존대를 사용했다.
“에스카토스 왕국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잘 지냈소. 창조신의 스쿠툼(방패)에 균열이라니, 그게 사실이오?”
에스카토스 공작은 피식 웃었다.
빙벽을 ‘스쿠툼’이라 부르는 것은 제국인들 특유의 언어 습관이다.
북방인들과 달리 평생 빙벽 볼 일이 없기에 신화와 전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탓이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그리고 어제는 균열에서 마족 싸이클롭스까지 출현했습니다.”
“흑마법사가 소환한 게 아니라 제 발로 나왔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군.”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빙벽에 균열이 갔다 해도 마족의 출현은 의외였다.
인간의 도시가 빙벽에서 먼 것처럼 마족들도 비슷했다.
다시 말해 마수나 마물이면 모를까? 마족이 외진 곳의 빙벽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사실 에스카토스 공작이 마족의 출현을 말한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는데 그건 균열을 확인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십시다. 현재 균열의 보수 상태는 어떻소?”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의 질문에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가 나섰다.
“에스카토스 왕궁의 메이지 오스번 칼로스입니다.”
“반갑소. 메이지 칼로스 경.”
“제가 ‘아이스 월’로 균열을 메꾸려 했지만……. 균열의 규모와 빙질의 문제 등으로 완전한 차단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제 마족 싸이클롭스가 3중첩으로 다져 놓은 ‘아이스 월’을 완전히 파괴하여, 지금은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조금도 복구하지 못했다는 거요?”
“마족과의 싸움에서 마나를 소진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아! 고생이 많았겠구려. 스쿠툼(빙벽)의 두께가 상당하니 5서클 ‘아이스 월’로는 어려웠을 게요.”
“마법 병단에 도움을 청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7서클의 ‘메가 아이스 월’이 아니면 힘들 것 같습니다.”
“가서 보십시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장담하지 않았다.
메이지 칼로스는 두께와 빙질의 문제인 것처럼 말했지만 자신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하고 있었다.
‘메가 아이스 월로 수리가 가능할지 모르겠군.’
스쿠툼에 깃든 ‘창조신의 권능’과 인간이 만든 ‘아이스 월의 부조화’로 인한 것이라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애초에 격이 다르다면 봉합도 불가능한 까닭이다.
만약 그런 문제라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창조신의 권능을 파괴한 존재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직접 코르보 마법 병단을 균열로 안내했다.
최전방의 알파 중대를 지나치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문득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응?’
마족이 출현했다기에 혹시나 싶어 탐지 마법을 발동했더니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영기가 느껴진 때문이다.
그는 즉시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물었다.
“왕국군에 영기 수련자가 있소?”
“예, 영기 수련만으로 소드 익스퍼트에 도달한 검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와 관계돼서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로 해야 할 정도의 일이오?”
“예.”
에스카토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가 목격한 흑마법사와 말뚝의 사건은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의 조언이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이곳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졌었다는 것도 모른다.
이래저래 그에게는 해 줄 이야기가 많았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균열에 도달하자 앞으로 나섰다.
심각한 눈으로 균열을 살피던 그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따라붙은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말했다.
“공작. 이건 자연 균열이 아니오.”
“그럼 인위적으로 파괴한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하지만 빙벽은 소드마스터의 검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걸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 방법은 나도 모르오. 하지만 이 균열은 자연현상이 아니오. 애초에 자연의 힘으로는 창조신의 권능이 깃든 스쿠툼을 깰 수도 없소. 히르헤라는 스쿠툼에 무리가 갈 환경도 아니지 않소?”
“그건 그렇습니다만……. 자연 균열이 아니라고 하시니 당혹스럽군요. 보수는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한지 아닌지는 해 봐야 알 것 같소.”
말과 함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균열과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마법 영창이 흘러나왔다.
“차가운 바람에 실려 온 냉기여! 얼음과 눈의 근원이여! 여기 스쿠툼의 갈라진 균열을 채우라! 메가 무로 데 케오(거대한 얼음의 벽이여), 에르게테(일어나라)!”
쿠드드득―!
설원에서 솟아난 얼음이 균열을 채우기 시작했다.
과연 7서클의 마법답게 균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워졌다.
뒤에서 보고 있던 알파 중대원들이 ‘와아아!’ 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신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격하게 반응한 것이다.
에스카토스 왕국 귀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귀족과 병사 들이 지긋지긋한 얼음 지옥에서 해방된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을 때다.
한 몸처럼 단단하게 붙어 있던 빙벽과 ‘메가 아이스 월’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갔다.
쩌어어억― 투툭―!
곧이어 ‘메가 아이스 월’이 빙벽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쉬이익― 쉭!
빙벽과 ‘메가 아이스 월’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들락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 끝의 틈새가 벌어졌다.
누가 봐도 앞으로 더 벌어질 기세다.
틈새를 응시하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한 번 더 ‘메가 아이스 월’의 마법 주문을 영창했다.
콰드드득―!
연이은 7서클 마법에 얼음 벽이 더 두툼해졌다.
그러나 빙벽은 마치 사람을 놀리기라도 하듯 또다시 ‘투툭’ 벌어졌다.
고개를 젓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돌아섰다.
“이건 마법의 문제가 아닌 것 같소. 스쿠툼이 인간의 마나로 만들어진 얼음을 거부하는 것 같소.”
그게 아니고서는 이렇게 혹독한 추위에서 ‘메가 아이스 월’이 빙벽에서 분리될 리가 없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누군가 고의로 균열을 만든 거라면…… 그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머지않아 드러날 게요. 그만 내려가십시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미련 없이 빙벽 앞을 떠났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급히 그에게 따라붙었다.
“조금 전에 자연 균열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증거라고 여길 만한 게 있습니까?”
“균열 틈새에 희미하게나마 마력의 악취가 남아 있었소. 마족이 균열 틈새에서 죽은 게 아니라면, 흑마법의 잔재가 분명하오.”
“그렇군요. 그 일과 관련해서 은밀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이 들어서 안 되는 이야기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공작께서도 제 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알겠소.”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받아들이자 에스카토스 공작은 그를 자신의 막사로 안내했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자리에 앉자 에스카토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히르헤라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소문은 들었소. 백성들의 헤르헤라 출입을 왕국에서 막는다고. 비공정에서 내려다보니 이유를 알겠더이다. 혹시 히르헤라 전역에 걸쳐 있는 크레이터를 감추기 위해서였소?”
“맞습니다. 지난해 11월 히르헤라에서 최초의 균열이 목격되었습니다. 그해 12월에 균열의 수리를 위해 북방 3개 영지에서 일천백 명의 병력을 파견했지요. 수리가 시작되고 두 달 후,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졌습니다. 그 사건으로 균열을 수리하던 세 개 영지군 병사 일천백 명과 기사 백 명이 사망했습니다. 생존자는 코드란테스 백작과 영지군 병사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지금 ‘메테오 스웜’이라고 했소?”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황당한 눈으로 에스카토스 공작을 보았다.
‘메테오 스웜’은 인간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까닭이다.
“코드란테스 백작이 메테오 스웜이라고 했습니다. 생존한 영지군 병사의 증언도 일치했습니다.”
소드마스터가 그랬다니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그 괴상한 흔적이 전해져 오는 북방 전설의 일부인 줄 알았소. 그런데 얼마 전에 생긴 것이라니……. 실로 놀랍구려.”
“조금 전 빙벽 앞에서 마구스께서 관심을 보인 영기 수련자가 메테오 스웜의 생존자인 영지병입니다. 그 일로 베르나르도 후작의 눈에 들어 그의 가신이 되었지요. 조만간 왕궁에서 남작의 작위를 받을 예정입니다.”
“소드 비기너는 아닌 것 같던데.”
“소드 익스퍼트 상급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야인 출신이라 조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제국의 정보력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