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0
110회. 넉넉하게 해야 아쉬움이 없다.
중원상방은 정주에서 세력이 큰 상방이다.
당연히 그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객점, 반점, 주루도 여럿 된다.
중원반점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중원상방의 것이다.
중원상방의 대행수 임해수가 이곳을 찾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오늘은 그에게 백미주라는 동행이 있었을 뿐이다.
대행수답게 임해수와 백미주의 탁자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임해수는 관탕포(灌湯包, 국물이 든 만두) 하나를 들어 백미주 앞의 빈 접시에 놓아 주었다.
“이 집의 별미요. 백 부인도 드시면 그 맛에 반할 게요.”
“후후. 고마워요.”
백미주가 접시에 담긴 만두를 젓가락으로 찢자 국물이 꿀렁 쏟아져 나왔다.
“어머. 재밌네요. 향기도 좋고.”
백미주는 만두 속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는 임해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작게 오물거리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보고 있으려니 몸 한 부분에 힘이 실린다. 그녀에게는 색기와 다른,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참, 소식은 들었소. 궁장에 새 거처를 마련하셨다지요? 왜 나에게는 말하지 않으셨소?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집수리가 끝나지도 않았답니다. 그리고 이미 임 대인에게는 충분히 도움을 받았어요. 임 대인이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백미주는 임해수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가 팔주령에 관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와룡장의 재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금은 역시 백가장에서 융통한 것이오?”
“백가장에서 절반, 나머지는 양가장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랬구려. 양가장이 거저 도와주는 사람들은 아닌데. 괜찮겠소?”
“그들이 뭘 원할지 아세요?”
“최근 양가장 출신의 제자들에게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소. 양가장이 혼자서 뒤치다꺼리를 다 할 수 없으니 와룡장에도 도움을 요청할 거요.”
“그런 거라면 문제없어요. 어차피 낙양에서도 충분히 경험한 일이니까요.”
“낙양과는 상황이 다를 게요.”
“다르다고요?”
“그렇소. 양가장의 제자들을 노리고 있는 문파가 한둘이 아니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사파라서 수단이 잔혹하고 악랄하오. 혹시 와룡장은 사파와 싸워 본 경험이 있소?”
“녹림도 외에는 딱히 없어요.”
“사파에 비하면 녹림은 순수한 편이오. 사파는, 으…….”
임해수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중원상방도 과거 몇 차례 사파와 싸운 적이 있다.
결과가 어땠냐고?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정주 사파 연합인 ‘삭풍회’에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망했을 것이다. 중재 과정에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음은 물론이다.
중원상방도 그 지경이었으니 와룡장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했다.
“임 대인의 말씀을 들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네요.”
“혹시라도 나중에 중재가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시구려. 내가 다리를 놓아 줄 터이니.”
“고마워요. 임 대인밖에 믿을 사람이 없네요.”
백미주가 섬섬옥수를 뻗어 살포시 임해수의 굵직한 손등을 덮었다.
십 년이면 세월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십사 년 전 여섯 살이던 연적하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인 백미주는 다르다.
더구나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안이라 십사 년 전의 얼굴이 거의 그대로였다. 덕분에 연적하는 보자마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터질 듯 쿵쿵거리던 심장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여섯 살 때처럼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연히 연적하와 심통 사이에 대화는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두 중년 남녀의 대화는 고스란히 두 사람에게 전해졌다.
후루룩. 쩝쩝.
심통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아니, 하는 척했다.
‘부인’과 ‘와룡장’, 그리고 귀신을 본 듯한 연적하의 굳은 표정.
‘설마…….’
쉬지 않고 입속으로 뭔가를 쑤셔 넣었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아직 절반도 먹지 못했는데 연적하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심통은 젓가락을 팽개치고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대로를 따라 한참 걷고 있는 두 사람 앞에 높게 솟은 전각이 나타났다. 입구에 ‘정주제일루’라고 쓰인 걸 보니 주루가 아니면 기루다.
높이는 무려 칠 층.
연적하는 슬쩍 높이를 확인하더니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낮임에도 일 층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연적하는 제일 꼭대기인 칠 층까지 멈추지 않고 단숨에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손님이 줄더니 칠 층은 거의 비어 있었다.
연적하와 심통이 창가 쪽에 앉자 사십 대 여자가 아가씨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호호호. 어서 오세요. 처음 뵙는 분들 같은데, 인사드리겠어요. 저는 정주제일루의 주인인 장보옥이라고 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칠 층은…….”
장보옥이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뒤늦게 노인과 소년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도검을 발견한 것이다.
칠 층의 술값은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손님은 대부분 고관대작이 아니면 무림 방파의 주인들이었다.
‘어디 보자. 이 화상들에게 돈이 있으려나?’
물론 술값으로 시비가 일어나면 무사들을 부르면 된다.
정주제일루의 뒤를 봐주는 방파는 사파인 통천방. 혹시라도 싸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통천방의 무사들 셋이 상주하고 있었다.
“호호, 너희들 뭘 멀뚱히 서 있는 거니? 나리님들 모시지 않고.”
장보옥이 나무라듯 옆에 있던 기녀의 등을 찰싹 때렸다.
허락이 떨어지자 기녀들은 노인과 소년의 옆자리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장보옥은 기녀를 무려 넷이나 떨궈 놓고 사라졌다.
뒤이어 점소이들이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요리와 술을 주르륵 내왔다.
이런 자리는 처음인 심통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옆자리의 기녀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주문을 받지도 않고 알아서 가져다주느냐?”
“예, 나리. 이것이 기본이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따로 시키면 됩니다.”
“험, 험,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닌데, 이런 곳은 술값이 얼마나 되느냐?”
“이것저것 다해서 은자 사십 냥이에요.”
“헐! 사십 냥? 고작 술 네 병과 요리 한 상이 사십 냥이나 한다고?”
“호호. 나리. 대신에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성심껏 모실 터이니 어여삐 보아 주셔요.”
심통은 슬쩍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술과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뚱한 얼굴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단지 전망을 보기 위해 올라온 것 같았다.
“너희들은 그만 가 보거라. 우리 공자님께서 혼자 있고 싶어 하시는구나.”
“어머, 나리…….”
“대인, 잘 모실게요. 네에?”
기녀들이 애교를 떨었지만 심통은 단칼에 거부하고 끝내 모두 돌려보냈다.
한참 만에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와룡장이 멸문당했을 때 나는 시원섭섭했어. 내 복수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말이야. 오늘 누굴 보니까 알겠더라고.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심 노인도 들었지? 궁장에 와룡장이 다시 세워진다는 거.”
“예.”
“정주에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
“크흐흐흐…….”
심통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심술맞게 웃었다.
연적하의 서늘한 눈빛을 보니 이제야 제대로 밟아 줄 모양이다.
“공자님, 말씀만 하십시오. 아주 제가 뼈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을 테니까요.”
“기억나? 내가 전에 누구도 와룡장과 관계를 맺지 말라고 했었잖아.”
“그러셨지요.”
“백가장과 양가장도 와룡장만큼이나 싫어졌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복수를 할 때는 넉넉하게 해야 아쉬움이 남지 않습니다.”
“아, 그래?”
“예, 제 첫 번째 스승은 원수의 가족들까지 모두 찾아서 모가지를 슥삭…….”
“아휴! 그건 아니지. 이 노인네는 중간이 없어. 마두들은 다 그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해 댔다.
심통은 연적하가 점점 말이 많아지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조금 전까지의 그는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경직돼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점심을 먹다 말고 나왔기에 술보다 요리로 배를 채웠다.
겨울이라 그런지 한 시진(2시간)쯤 앉아서 떠들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어 갔다.
해가 지자 비어 있던 칠 층도 조금씩 손님으로 차기 시작했다.
“공자님, 이제 슬슬 객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벌써 그렇게 됐군.”
연적하는 지체하지 않고 일어섰다.
객점은 늦게 갈수록 좋은 방을 차지하기 어려우니 서둘러야 했다.
두 사람이 계단 쪽으로 가자, 장보옥과 기녀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호호호! 나리님들, 벌써 가시게요? 즐거운 시간 되셨는지요?”
“얼마냐?”
심통의 물음에 장보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매향이가 가르쳐 드렸다는데 뭘 또 물어보셔요. 은자 사십 냥이에요.”
“무슨 헛소리냐? 기녀들을 데리고 있지도 않았는데 사십 냥이나 내라니?”
“값은 나리들께서 아이들을 옆에 앉히실 때 이미…….”
“흥! 개소리! 앉힌 것은 너지. 술값과 요리값이나 얼마인지 말해라.”
심통이 차갑게 여자의 말을 끊었다.
옆에 연적하가 없었으면 주먹부터 날렸을 텐데, 억지로 참으려니 입술이 다 떨렸다.
“어머, 비싼 기루에 와서 잘 노시고 왜 이러실까. 매향아 안 되겠다. 얼른 가서 통천방 오라버니들 좀 모셔 오너라.”
그러자 매향이라는 기녀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른 손님들이 힐끔거리자 괜히 미안해진 연적하가 나서서 수습을 시도했다.
“저기요, 우리도 규칙을 몰랐으니 적당히 서로 양보를 하지요? 기녀를 부르는 값의 반을 낼게요. 잠깐 앉았다가 일어난 값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기루가 처음인 연적하는 나름 합리적인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 정도 선이면 더 이상의 다툼 없이 조용히 끝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연적하의 바람에 불과했다.
대체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사람’과 반대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이다.
연적하가 전자라면 칠 층에서 특별 손님만 관리하는 장보옥은 후자였다.
장보옥은 노인의 상전으로 보이는 소년이 숙이고 들어오자,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소년이 ‘통천방’을 두려워한다고 착각했다. 술에 취해 소란 피우던 무인들도 ‘통천방’ 소리를 들으면 조용히 수그러들었으니까.
장보옥의 얼굴에 경멸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봐요, 어린 공자님. 계산은 정확하게 해 주어야겠네요. 돈이 없으면 이런 비싼 곳에 발도 들이지 말았어야죠. 칠 층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술을 마시니까 기분이 좋았죠? 하지만 그건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얘들아, 돈 없으면 어디다?”
그러자 기녀들이 ‘꺄르르’ 웃으며 답했다.
“바닥이다!”
“들었죠? 돈 없으면 일 층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시면 되는 거예요. 사람은 분수에 맞게…….”
“흐흐흐. 네년들이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게로구나. 감히 공자님 앞에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다니.”
심통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자 장보옥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때마침 매향이 통천방의 무사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찔끔 놀라 물러났던 장보옥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오라버니들 왜 이제야 와요! 이분들이 술값을 내라니까 나를 죽이겠다고 막…….”
무사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저지한 뒤 심통에게 말했다.
“본인은 통천방의 양진생이오. 이곳은 통천방이 관리하는 곳이니 조용히 계산하고 갑시다.”
양진생은 말하면서 슬쩍 노인과 소년의 무장을 살폈다.
뒤늦게 유엽도와 고풍스러운 검을 확인한 그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정주에서 붉은 유엽도와 검을 쓰는 늙은이와 소년이 누가 있더라?’
정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떠올려 봤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럼 된 거다.
양진생이 내심 안도하고 있을 때다.
“키키킥.”
살짝 꼬인 경박한 웃음에 양진생의 시선이 노인의 옆으로 돌아갔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