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1
111회. 그런 더러운 기분으로는 못 살아
연적하는 근본이 착한 사람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마음이 넓은 건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그랬다.
하지만 두부처럼 물렁하다가도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럴 때면 예외 없이 온 힘을 다해 상대를 깨부쉈다.
산채에서의 서열 쟁탈전과 상방 무사들, 녹림도와의 싸움이 모두 그랬다. 그를 무시하거나 조롱한 사람들은 대부분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그렇지 않아도 백미주를 본 뒤로 기분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녀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 조롱을 받았으니 눈이 뒤집힐 일이다.
“키키킥.”
여자를 보고 있으려니 아랫배에서 자꾸만 단단한 뭔가가 툭툭 치밀어 올라왔다.
그게 목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간헐적으로 기침 같은 웃음이 났다. 아무리 누르고, 참아 보려 해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냥 웃겼다.
장보옥과 양진생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볼 때다.
미친놈처럼 혼자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던 연적하가 돌연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 들어 장보옥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자꾸 삐뚤어지고 싶지?”
“뭐라는 거야!”
화가 난 장보옥이 빨리 해결하라는 듯 양진생의 등을 앞으로 밀었다.
마지못해 양진생이 입을 떼려는 순간이다.
“심 노인.”
“예, 공자님.”
“객점 안 찾아도 되겠어. 여기가 마음에 들어. 그냥 여기에 자리 깔아.”
“으흐흐흐흐. 감사합니다.”
선량함과 거리가 먼 심통은 저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물론 사고를 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습관이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다.
심통은 이름까지 바꾸었지만 종종 분노 조절이 안 돼서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차에 연적하의 지시는 그야말로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과거의 그였다면 이미 칠 층은 피에 잠겼을 것이다.
하지만 참스승인 연적하의 잠자리를 피로 물들일 수는 없는 법.
심통은 창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탁자 두 개를 이어 붙였다. 그리고 행장에서 천때기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길게 깔았다.
그러고 나니 마치 침상처럼 보였다.
근엄함과 거리가 먼 염소수염의 심통이 그러고 있으니 영락없는 객점 주인이다.
기막힌 표정으로 지켜보던 양진생이 두 명의 수하에게 턱짓했다.
두 명이 무사가 심통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하나인 윤지평이 노인의 어깨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늙은이! 여기는 기루지 객점이 아니야!”
순간 심통이 다가오는 상대의 손을 가볍게 툭 쳐 냈다.
내력이 실린 손짓에 윤지평의 팔은 물론 상체까지 뒤로 홱 돌아갔다.
“아아아!”
윤지평은 팔이라도 빠졌는지 다른 손으로 어깨를 움켜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채앵.
깜짝 놀란 또 한 명의 무사 양일이 신속하게 박도를 뽑았다.
그러나 양일은 칼을 휘두를 틈도 없었다.
어느 틈에 귀신처럼 다가간 심통이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철썩.
쿠당탕.
양일이 옆의 탁자 위로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기루가 갑자기 싸움터로 변하자 손님과 기녀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몸을 피했다.
“으흐흐흐흐흐!”
칠 층이 온통 심통의 기괴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건 거의 음공(音功) 수준이었다.
머릿속을 긁어 대는 듯한 섬뜩함에 담이 약한 사람들은 풀썩 주저앉았다.
양진생은 노인이 고수라는 걸 알고 재빨리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급한 김에 그라도 붙잡아 인질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양진생이 와락 소년을 덮쳤다.
퍼억.
연적하의 손바닥에 얼굴을 가격당한 양진생은 뒤로 훌훌 날아갔다.
믿고 있던 통천방 무사들이 쓰러지자 장보옥은 슬그머니 기녀들 속에 몸을 숨겼다.
그걸 그냥 두고 볼 연적하가 아니다.
“아줌마. 객점에 묵어 본 적 있어?”
소년이 자신을 빤히 보자 장보옥은 슬금슬금 앞으로 나왔다. 처음 듣는 아줌마 소리에 한순간 ‘울컥’했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 없는데요.”
“손발 닦으라고 따뜻한 물통을 가져다주더라. 그것도 주인이 직접. 나 감동했잖아. 아줌마도 그렇게 해 봐. 나 감동 못 시키면 안 나갈 거야. 여기 전망도 좋고, 정말 마음에 들거든. 그러고 보니 객점으로 꾸며도 장사 잘될 것 같네. 내 말 믿어.”
“무, 물통을요?”
“어. 따뜻한 거로.”
“소, 소협, 여기 칠 층인데요?”
“알아. 전망 좋잖아. 아! 물론 객점으로만 쓰겠다는 건 아니야. 종종 술도 마실 거니까, 그때는 술과 요리도 부탁해. 원래 가격에 맞게 계산해 줄 테니까 손해는 아닐 거야.”
‘이 미친놈아. 여기를 객점으로 쓰는 것부터가 손해다.’
장보옥은 기가 막혀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연적하가 말했다.
“아줌마. 너무 걱정하지 마. 저기 창가 앞자리만 내가 숙소로 사용할 테니까. 다른 자리에서는 그냥 손님 받아도 괜찮아. 나 혼자 칠 층을 다 사용할 생각은 없다고.”
“소협,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소협이 주무시는데 누가 그 옆에서 기녀들과 술을 먹으려고 하겠어요?”
“아줌마.”
“네?”
“왜 이래,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면서? 나 아줌마 말에 상처받았어. 마음의 병은 의원들도 못 고쳐. 아줌마가 나를 아프게 했으니까, 치료도 해 줘야지.”
“…….”
장보옥이 멍하니 소년을 보았다.
골탕 먹이려고 억지를 부리는 건가? 아니면 정말 상처를 받아서 그러나?
순하게 생긴 걸 보면 단순히 어깃장을 놓기 위해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
“나 여기 올라와서 진짜 기분 좋았거든? 그런데 아줌마가 그 기분을 제대로 짓밟았다고. 나 심약한 남자야. 제발 부탁해. 앞으로 높은 누각만 보면 아줌마 말이 생각날 것 같아. 그런 더러운 기분으로는 못 산다고.”
‘그런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아줌마래.’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인데 하물며 그것이 듣기 싫은 소리임에야!
입술을 자근자근 물어뜯던 장보옥이 돌아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통천방에 사람을 보내 단단히 따질 생각이다. 장사를 할 수 없게 됐으니 제대로 된 무사들을 보내라고 말이다.
***
정주.
통천방.
초저녁.
부방주 삼절독검 금원성은 통천각에서 몇몇 수하들과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누군가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실력이 부족해 잡단(雜團)에 속한 남자였다.
통천방의 무사들은 실력에 따라 일단, 이단, 삼단과 잡단으로 나뉜다. 잡단은 가장 하수들로 심부름이나 수금 따위의 일에 동원되곤 했다.
금원성은 이름도 모르는 사내와 눈을 맞추었다.
“무슨 일이냐?”
“헉! 헉! 정주제일루에서 사내 둘이 분탕질을 치고 있습니다. 주인이 빨리 해결해 달라고 난리입니다.”
“거기라면 삼단의 애들이 있을 텐데?”
“셋 다 놈들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뭐? 잡혀 있어?”
“예.”
“미친, 뭐 하는 놈들이라더냐?”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타지에서 건너온 놈들 같았습니다.”
“헐! 타지 놈들이 감히 정주에 와서 깽판을 친다고?”
정주는 무인의 도시다.
정사파 무가와 무관, 방회를 합치면 그 숫자가 무려 백을 넘는다. 오죽하면 ‘정주에서 무예를 자랑하지 마라’는 말까지 있을까!
마침 동석하고 있던 삼단 단주 원 주신이 벌떡 일어났다.
“부방주님, 제가 남아 있는 애들 다섯을 데리고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쯧! 다른 방파가 알기 전에 해결해. 이게 무슨 망신이야.”
“예, 술이 식기 전에 후딱 돌아오겠습니다.”
원주신이 삼국지 관우의 흉내를 냈다.
“껄껄! 원 단주. 내가 이래서 원 단주를 좋아한다니까. 기다리고 있겠다.”
원주신이 읍을 해 보인 후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반 시진(1시간)이나 지났을까?
예의 그 잡단에 속한 남자, 마삼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헉! 헉! 아이고 죽겠다. 부방주님! 원 단주가, 원 단주가…….”
사내가 버벅거리자 화가 난 금원성이 욕설과 함께 술잔을 집어 던졌다.
“이런 병신 같은 놈!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퍽.
술잔이 마삼의 이마에 맞아 박살났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마삼은 감히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예, 예, 원 단주가 놈들에게 맞아 기절했습니다.”
“함께 간 놈들은 뭘 했기에!”
“그들도 다 같이 쓰러졌습니다.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뭐라고! 내 이 개 같은 놈들을…….”
부들부들 떨던 금원성이 함께 술 마시던 사내들에게 명했다.
“지금 당장 일단주 단석천에게 전해! 일단을 데리고 가서 처리하라고! 아니, 이리 끌고 오라 해! 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발칙한 짓을 하는지 봐야겠다.”
“예!”
사내들이 우르르 통천각을 떠났다.
금원성은 통천각에 홀로 남아 타지 놈들의 정체가 뭔지 곰곰 생각했다.
그러나 정주 사람이라면 모를까?
두 명이라는 정보만으로는 추측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그는 단석천이 놈들을 잡아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탁.탁.탁.탁.
갑작스러운 발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금원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잡단의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사내의 우는 듯한 표정을 보니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믿고 있던 단석천과 일단도 당한 것이다. 통천방 최고의 무력 단체인 일단이 말이다.
금원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장을 점검했다.
아무래도 삭풍회 원로와 만나고 있는 방주를 찾아야 할 것 같다.
***
정주의 밤은 삭풍회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파 고수들은 틈이 날 때마다 삭풍회 고수들과 어울렸다.
통천방 방주 탈명수라 천문광이 초저녁부터 기루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 깨졌다.
갑자기 찾아온 부방주 금원성이 황당한 소리를 한 것이다.
“누군지 모를 두 놈이 정주제일루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원주신은 물론 단석천까지 죄다 깨지고?”
“예.”
“모두 몇 놈이나 당한 것이냐?”
“……스물다섯입니다.”
“헛! 고작 두 놈에게 스물다섯이 당했다고?”
“송구합니다.”
금원성은 고개를 처박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삭풍회 장로 암영귀살 임태근이 한마디 했다.
“천 방주, 통천방의 일단과 삼단이 당했으면……. 보통 고수가 아닐 게요. 어쩌면…….”
임태근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칠파이문이나 유명교가 관계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통천방이 알아주는 사파라지만 그건 정주에서나 통할 소리다. 칠파이문이나 유명교에 비하면 촛불 앞의 반딧불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파 고수가 기루에서 난동 피우지는 않을 테니 유명교 쪽인지도…….’
그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임태근만은 아니었다.
천문광이 임태근을 힐끔 보았다.
“임 장로, 어쩌면 통천방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소. 함께 가 보시겠소?”
“그럽시다. 인사를 나눌지, 모가지를 딸지는 만나 보고 정해도 되니까.”
“고맙소.”
천문광은 평소 임태근을 대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태근과 함께라면 상대가 유명교 고수라 해도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