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14
1114회. 저는 새 군주님이 진짜 부라퀴족이면 좋겠어요
아카드 산지(山地).
고산준령에는 그 규모에 맞게 상위 마족부터 상위 마물, 상위 마수 및 다양한 야생 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러나 아카드 산지에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없다. 고만고만한 산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을 뿐이다.
환경이 그러다 보니 상위 개체들은 아카드 산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카드 산지를 휘어잡고 있는 마족은 중급의 델루나족이다.
하급인 부라퀴족은 델루나족의 눈치를 보며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아카드 산지 동편.
작은 동산 위에 인간처럼 보이는 마족 열둘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
사냥을 나온 부라퀴족 전사들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한가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백여 마리의 기간틱 버팔로들이었다.
기간틱 버팔로는 마물이지만 하급인 부라퀴족에게 쉽지 않은 상대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자그마치 15미터나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 크기인 만큼 한 마리만 잡아도 부족 전체가 보름은 먹을 수 있지만, 흥분하면 마족도 들이받는 마물이라 주의가 필요했다.
흥분한 기간틱 버팔로에게 목숨을 잃은 부라퀴족도 많았다.
기간틱 버팔로들이 좀처럼 흩어지지 않자 공격대 지휘관인 쏘우가 손짓을 보냈다.
부지휘관 씽과 다섯 명의 전사가 벼락처럼 튀어 나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아아아!”
“와아!”
조용히 풀을 뜯던 기간틱 버팔로들이 깜짝 놀라 한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단체가 움직이다 보면 선두와 후미가 나눠지는 법이다.
쏘우는 남아 있던 여섯을 이끌고 후미를 덮쳤다.
후미가 또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쏘우 일행과 씽 일행은 그중 가장 가까이 있는 기간틱 버팔로에게 달라붙었다.
공중으로 도약한 쏘우가 들고 있던 창을 기간틱 버팔로의 목덜미로 날렸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장창이 기간틱 버팔로의 목덜미에 박혔다.
그걸 신호로 부라퀴족 전사들도 창을 투척했다.
퍼퍼퍼퍽―!
기간틱 버팔로의 몸통에 열두 개의 창이 박혔다.
그러나 기간틱 버팔로의 거대한 체구에 비하면 창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슬프지만 이게 하급 마족인 부라퀴족들에게 중급 마물에 불과한 기간틱 버팔로의 사냥도 쉽지 않은 이유다.
기간틱 버팔로의 한 걸음이 부라퀴족의 다섯 걸음이다.
두두두두―.
기간틱 버팔로는 몸통에 박힌 창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풍처럼 내달렸다.
쏘우와 씽 일행은 악착같이 기간틱 버팔로에 따라붙었다.
이윽고 기회를 엿보던 씽과 라이가 기간틱 버팔로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둘은 자세를 잡자마자 들고 있던 칼을 미친 듯 휘둘렀다.
기간틱 버팔로의 강철 같은 거죽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그래도 치명적인 부상은 아닌지 기간틱 버팔로는 멈추지 않았다.
둘의 칼질에 마침내 피부가 갈라지고 뼈가 드러나자 기간틱 버팔로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흥분한 것이다.
공격대 지휘관 쏘우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흥분한 기간틱 버팔로의 전투력은 상급 마물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고비를 잘 넘기면 곧 고꾸라지니 위기 관리만 잘하면 기간틱 버팔로의 사냥에 성공하게 된다.
그때다.
돌연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를 가진 마족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새의 날개에 호랑이의 몸을 가진 바아라크족 전사였다.
바아라크족 전사는 씽과 라이가 올라탄 기간틱 버팔로의 옆에 있던 기간틱 버팔로를 덮쳤다.
깜짝 놀란 기간틱 버팔로는 이내 씽과 라이가 올라탄 기간틱 버팔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마리 기간틱 버팔로가 부딪쳤다.
쿠웅―!
그 충격에 씽과 라이가 기간틱 버팔로 몸에서 추락했다.
씽과 라이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몸을 굴러 기간틱 버팔로를 피했다.
두 마리 기간틱 버팔로는 몸통을 붙인 채 저만치 멀어졌다.
기간틱 버팔로의 등에 올라탄 바아라크족 전사가 뒤를 돌아보며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비틀거리는 씽과 라이에게 쏘우와 다른 부라퀴족들이 몰려갔다.
“괜찮은가?”
공격대 지휘관 쏘우의 물음에 부지휘관 씽이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저 빌어먹을 바아라크족 놈이 고의로 부딪치게 한 겁니다. 우리의 기간틱 버팔로를 빼앗아 가려고요.”
“알고 있다.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기간틱 버팔로는 많으니까.”
“바아라크족은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겁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사냥할 때마다 방해를 하니……. 이러다 진짜 무슨 일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앞에서 반발만 하지 않으면 된다.”
“굶어 죽게 돼도요?”
“바아라크족에 맞설 수는 없다. 차라리 아카드 산지에서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싸움을 벌여서는 안 돼.”
쏘우의 단호한 말에 씽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그건 쏘우의 말이 맞았다.
부라퀴족이 중급 마족인 바아라크족과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체급부터가 다르다.
바아라크족은 부라퀴족보다 세 배는 컸다.
싸워 본 적이 없어 정확하지 않지만 공격력의 차이는 더 심할 게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쏘우의 딸 라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아카드 산지와 비슷한 곳이 있어요?”
“찾아보면 있겠지.”
“바아라크족과 같은 마족이 없으면 좋겠어요.”
“…….”
쏘우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카드 산지와 비슷한 곳은 있겠지만 그곳에 간다고 하급 마족의 운명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다.
기간틱 버팔로의 사냥에 실패한 그들은 주변을 정찰하다 왕뿔 사슴 한 마리를 잡은 뒤, 행여나 다른 마족들에게 그것마저 탈취당할까 봐 급히 마을로 돌아갔다.
쏘우 일행이 부라퀴족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삼십여 명의 부라퀴족 남녀노소가 우르르 마중을 나왔다.
선두에 있던 족장 판은 평소와 달리 왕뿔 사슴에는 눈도 주지 않았다.
“쏘우, 어서 오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돌아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네.”
“저를요?”
부라퀴족에 하나뿐인 공격대 지휘관 쏘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족장이 왕뿔 사슴을 쳐다보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근엄하던 족장의 표정이 평소와 너무도 달랐다.
“따라오게. 손님이 있네.”
“손님요? 다른 부라퀴족과 연락이 닿은 겁니까?”
그는 마을에 다른 부라퀴족이 방문했다고 생각했다.
“아나킨족이 찾아왔네.”
“예에? 아나킨족요? 왜요? 그사이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쏘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나킨족은 중급 마족인 바아라크족마저도 두려워하는 상급 마족이다.
그런 아나킨족과 문제가 생겼다면 빨리 짐을 싸서 달아나야 했다.
“타메이온의 새 군주가 부라퀴족이라며 우리에게 코디악으로 이주를 하라는데…….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네. 지금 당장 이주를 해야 한다니 자네가 좀 만나 보게.”
“지금 당장 이주를 하라고요?”
“그렇다니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블러디 카리브도 서른 마리나 끌고 왔더라고.”
“…….”
쏘우의 얼굴이 굳었다.
블러디 카리브는 상급 마족이 아니면 잡기도 어려운 마물이다.
그런 마물을 서른 마리나 끌고 왔다니 기가 질렸다.
잠시 후 족장의 집에 도착한 쏘우는 아나킨족 사자 와일드를 만났다.
와일드는 ―그래도 상대가 군주와 같은 종족인지라― 짜증 내지 않고 족장에게 했던 설명을 반복했다.
“……헤일록의 군주인 샤모스 님이 새 군주님이 부라퀴족이니 부라퀴족에게 시중을 맡기자고 하셨다. 코디악의 족장들이 군주님들의 심기를 건드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사흘 안에 반드시 ‘몰록의 성’에 도착해야 한다. 너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한 시간 후에 출발할 것이니 꼭 필요한 짐만 챙기도록 해라.”
“예…….”
아나킨족의 앞에서 물러난 쏘우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처가 벌써 짐을 꾸려 놓아 그가 할 일은 없었다.
황망한 얼굴로 짐 꾸러미 앞에 서 있는 그에게 라이가 다가갔다.
“아버지, 새 군주가 부라퀴족이라는 게 사실이에요? 새 군주를 모시기 위해 우리가 이주해야 한다면서요?”
“그렇다는구나.”
“와아! 잘됐다. 그럼 바아라크족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요?”
“좋아할 것 없다. 늑대를 피해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아카드 산지보다는 나을 거예요. 이건 제가 들은 소문인데 바아라크족이 우리를 괴롭힌 게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델루나족에게 노예로 바치려고 그러는 거래요.”
“노예?”
“델루나족과 뭘 두고 거래를 하는데 델루나족이 그보다는 차라리 부라퀴족을 노예로 바치라고 했다네요.”
“종이 아니라 노예라고?”
쏘우가 황당한 눈으로 라이를 보았다.
종은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지만 노예는 다르다.
아무것도 받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정확히는 성 노예요.”
“…….”
쏘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한 마족이 약한 마족을 성 노예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대상이 부라퀴족이라는 게 기가 막혔다.
이런 상황에 새 군주의 부름이라니!
너무도 시기적절하다 보니 아나킨족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멍하니 서 있는 그에게 라이가 말했다.
“델루나족의 성 노예보다는 새 군주를 섬기는 게 낫겠죠?”
“낫겠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건 부족의 영광이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요. 부라퀴족 군주라니. 그게 가능한 건가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그렇게 강하지 않잖아요.”
“부라퀴족이니 부라퀴족이라고 하겠지. 우리 부라퀴족이 뭐 좋다고 부라퀴족 행세를 하겠느냐?”
“그건 그렇네요. 저는 새 군주님이 진짜 부라퀴족이면 좋겠어요.”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두 부녀는 기대 어린 눈으로 맞은편 산을 바라보았다.
***
아카드 산지를 떠난 부라퀴족은 사흘 후 코디악에 도착했다.
부라퀴족은 와일드의 안내로 ‘몰록의 성’까지 막힘 없이 나갔다.
많은 코디악의 마족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왔다가 아나킨족이 함께 있는 걸 보고는 슬며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라이가 와일드를 힐끔거리자 와일드가 말했다.
“무슨 일이냐?”
“마족들이 왔다가 와일드 님을 보고 조용히 물러나서요.”
“우리 아나킨들이 ‘몰록의 성’을 관리했으니 그러는 것이다. 나중에 부라퀴족이 새 군주님을 모신다는 게 알려지면 너희 근처에도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몰록의 성’에 다가갈수록 상위 마족인 와일드의 말투가 부드러워지자 라이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새 군주님은 어떤 분이세요?”
“어떤 분이냐고? 내 평생 그렇게 무서운 마족은 처음 본다. 생김새는 너희 부라퀴족과 닮았지만……. 군주님의 불타는 눈을 보면 너희도 오금이 저릴 것이다.”
“불타는 눈요?”
“용암처럼 끓는 눈이지. 그 눈을 마주하고 서면 숨 쉬는 것도 쉽지 않다. 군주님을 너희와 같은 부라퀴족으로 생각하지 마라.”
“…….”
라이는 ‘부라퀴족 군주가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상위 마족인 그가 저런 소리를 다 할까?’ 궁금했다.
그러는 동안 부라퀴족은 외성을 통과해 내성으로 들어갔다.
내성에 있던 아나킨족들이 앞다퉈 달려와 사십여 명의 부라퀴족을 맞이했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맞이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살았다! 살았어!”
“이제 우리도 외성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우리도 숨 좀 쉬면서 살아 보자!”
아나킨들의 열광적인 환대에 부라퀴족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거대한 궁전의 문이 열렸다.
순간 벌 떼처럼 모여들었던 아나킨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지고, 장내에 적막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