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13
1113회. 샤이틴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엘리오가 내성 중앙 홀의 보좌에 앉은 지 30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예정에 없는 갑작스러운 부름임을 고려하면 짧지만, 군주의 소집령에 대한 반응 속도로는 누가 봐도 늦었다.
코디악에 거주하는 족장들의 능력이 인간 소드마스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샤모스의 얼굴이 굳어 갔지만 정작 엘리오는 보좌에 두 발을 올리더니, 급기야 옆으로 몸을 돌려 길게 누웠다.
“나 눈 좀 붙일 테니까 족장들 모이면 깨워.”
“예.”
공손한 대답과 달리 샤모스는 이를 갈았다.
엘리오가 눈을 감자마자 약이라도 올리듯 코디악의 족장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마족들이 내는 기척에 눈을 뜰 법도 한데 엘리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엘리오를 본 샤모스의 눈에 긴장이 어렸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의 모습은 미묘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동행한 5일 동안 그는 인간 챔피언처럼 매사에 흐물흐물했다.
그런데 지금은 족장들이 내는 발소리에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저 자세가 실은 분노 폭발의 전 단계라면?
샤모스는 한 번 더 엘리오 라고아 군주의 안색을 살폈다.
술에 취한 듯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도통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30분 동안 반듯하게 앉아 있던 그가 옆으로 누운 채 눈도 뜨지 않는 것은 족장들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코디악에 거주하는 마족 중에 최강은 드라고니안이다.
드라고니안의 족장이 된 세르베지야는 홀에 들어서자마자 보좌부터 확인했다.
보좌 위에 가로 방향으로 누워 있는 것은 인간으로 보이는 존재였다.
그 아래 헤일록의 군주인 샤모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보좌에 왜소한 인간이 누워 있고 샤모스가 그 아래 서 있다니?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지만 그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인간은 아닐 테고……. 누구지?’
그런데 보좌에 앉은 존재의 복장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그의 시선이 샤모스 옆에 붙어 있는 인간에게 향했다.
히르헤라에서 본 기사의 복장이었다.
그는 다시 보좌로 눈을 돌렸다.
과연! 보좌의 존재가 입고 있는 것도 인간과 같았다.
그는 인간 기사일까?
인간 기사라 생각하며 다시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설마 아니겠지.’
‘그 무시무시한 인간이 모쿠바스를 가로질러 코디악까지 올 리가 없다’ 생각한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윽고 세르베지야는 아나킨의 족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몰록의 성’을 관리하는 아나킨족 족장 멘티로어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헤일록의 군주님, 코디악의 여섯 개 종족 족장이 모두 모였습니다. 저희들이 모쿠바스의 새로운 군주님에게…….”
샤모스가 그의 말을 끊고 나섰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께서 발록, 발람, 라몬, 랍바를 죽이고 모쿠바스의 새로운 군주가 되셨다. 새 군주님은 로디나 대륙에 남아 있던 부라퀴족으로 이번에 타메이온으로 넘어오셨다.”
그녀의 폭탄 발언에 족장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히르헤라에 원정을 나갔던 몇몇 족장들만 연신 보좌를 힐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샤모스는 계속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은 마왕에 필적하는 권능을 가지셨다. 군주님의 부름에 지금처럼 굼떴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드라고니안, 아나킨, 포투, 마쿠아, 수쿠토, 이즈모, 여섯 개 종족의 족장들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군주의 부름에 자신들이 늦은 건 사실인 까닭이다.
이야기를 끝낸 샤모스는 엘리오 라고아 군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눈조차 뜨지 않고 있었다.
중앙 홀에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머뭇거리던 샤모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자신이 그와 모쿠바스의 마족들을 연결하는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 코디악에 거주하는 여섯 종족의 족장들이 모였습니다.”
“…….”
그러나 여전히 엘리오는 말이 없었다.
샤모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았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는 코디악의 족장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엘리오 라고아 군주의 숨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샤모스가 기막힌 눈으로 그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깨어 있던 그가 지금은 완전히 잠에 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디악의 족장들도 그들의 새로운 군주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치를 살피던 세르베지야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헤일록의 군주님.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이 잠에 든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샤모스가 차가운 눈으로 세르베지야를 보았다.
드라고니안은 코디악에 있는 종족들 중 가장 강했다.
어쩌면 족장들이 늦은 것도 그가 꾸민 짓일 수도 있었다.
새로운 군주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던 군주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으니, 이건 또 뭔가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지, 돌아갔다가 다시 모일지…….”
“네가 간이 부었구나.”
“예?”
“군주가 소집을 했으면 기다리는 게 예의거늘 돌아갔다가 다시 모이겠다고?”
“그런 뜻이 아니라…….”
“이름이 무엇이냐?”
“드라고니안의 족장 세르베지야입니다.”
“세르베지야여, 후계자는 있느냐?”
“제가 족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미리 정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보니 너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용서해 주십시오.”
세르베지야는 감히 이유를 묻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군주가 휘하의 마족을 죽이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러니 죽음과 관계된 말이 나오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우둔한 세르베지야여. 헤일록의 군주인 나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거늘, 한낱 너희 족장들 따위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순간 세르베지야는 철퍼덕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리석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미친놈.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이 깨면 어쩌려고 큰 소리냐? 나를 핑계로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을 깨워 보겠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세르베지야는 급히 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그런 소란 속에서도 엘리오 라고아 군주는 깨지 않았다.
샤모스 군주와 코디악의 여섯 족장들은 내성의 중앙 홀에서 엘리오 라고아 군주가 깨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쯤 잠들었던 엘리오는 내성의 창문으로 석양빛이 흘러 들어올 즈음 눈을 떴다.
“아이고! 뻐근해. 자세가 나빠서 그런가? 몸만 더 피곤하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만 샤모스는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모쿠바스를 가로지르느라 피곤하셨나 봐요. 주무시는 동안 코디악에 거주하는 여섯 종족의 족장들이 모였어요.”
말과 함께 샤모스가 족장들에게 턱짓을 해 보였다.
드라고니안, 아나킨, 포투, 마쿠아, 수쿠토, 이즈모, 여섯 개 종족 족장들이 우르르 보좌 앞으로 나아갔다.
곧이어 세르베지야가 말했다.
“모쿠바스의 지배자이신 엘리오 라고아 군주님께 드라고니안의 족장 세르베지야가 인사올립니다. 저와 코디악의 모든 드라고니안들은 군주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맹세를 어긴다면 샤이틴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뒤이어 아나킨, 포투, 마쿠아, 수쿠토, 이즈모의 다섯 족장들도 같은 맹세를 했다.
족장들의 맹세에도 엘리오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뚱한 얼굴로 여섯 족장들을 내려다보던 엘리오가 말했다.
“샤이틴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
여섯 족장들은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건 바로 나야. 나를 배신하면 샤이틴까지 갈 것도 없어. 내 손에 다 죽는 거야. 너희는 물론 너희 부족까지.”
족장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붉은 얼굴에 붉은 눈동자로 그런 소리를 하니 부라퀴족보다 더한 악마족으로 보였다.
일찍이 엘리오 라고아의 검술을 경험한 세르베지야는 물론 구경만 했던 족장들까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엘리오가 떨고 있는 족장들에게 확인시켜 주듯 다시 말했다.
“다 죽일 거야.”
기괴한 살기가 중앙 홀에 가득 찼다.
족장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잠시 후 아나킨 족장 멘티로어만 남고 모두 나갔다.
멘티로어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굽실거리며 말했다.
“군주님. 대관식은 언제쯤 여는 게 좋겠습니까? 날짜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안 해.”
“예?”
멘티로어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새 군주와 눈을 맞췄다.
“대관식 안 한다고.”
“아, 예……. 그러시면 무엇을 준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준비할 거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니까.”
“아무것도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
잔뜩 움츠린 멘티로어에게 샤모스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너희의 새 군주님은 행사를 싫어하시니 대관식이나 만찬 따위는 생각도 하지 마라. 그리고 모쿠바스에 거주하는 부라퀴족이 있느냐?”
“소수의 부라퀴족이 아카드 산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디악으로 이주시켜 군주님을 가까이서 모시게 해라. 너희 아나킨들보다는 부라퀴족이 편하실 테니까.”
“예.”
멘티로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괴팍한 새 군주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뻤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엘리오가 멘티로어에게 물었다.
“어이, 아카드 산지는 머냐?”
“블러디 카리브의 속도로 왕복 육 일쯤 걸립니다.”
“육 일 후에나 온다는 거네?”
“예.”
엘리오가 애매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앞으로 엿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답답한 느낌이다.
“샤모스, 내가 성을 비울 건데 꼭 부라퀴족이 있어야 돼?”
“모쿠바스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부라퀴족이 있어야 할 거예요. 아나킨들은 몰록이 불러들인 마족이기도 하지만……. 군주님에 비하면 너무 커서 여러모로 불편하실 거예요.”
“불편할 게 있어?”
“잠자리요.”
샤모스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군주를 응시했다.
“잠자리?”
“군주님의 밤시중을 들어 줘야 할 텐데 아나킨은 너무 커서……. 군주님에게 맞지 않을 거예요. 아나킨에 비하면 저도 작은 편인데……. 군주님은 저조차도 크다고 뭐라 하시잖아요.”
“아, 그 소리였어? 그런 거라면 필요 없어. 말했잖아. 나 결혼했다니까.”
“그래도 지금 곁에 없잖아요.”
“됐어. 그런 문제로 부르는 거라면 부르지 않아도 돼.”
하지만 샤모스도 부라퀴족을 부르는 것은 물러서지 않았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부라퀴족을 곁에 두셔야 돼요. 군주님의 눈과 귀가 될 마족이 있어야 하거든요.”
“흐음.”
엘리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자신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몰록의 성’에 자신의 편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이름부터가 벌써 ‘몰록의 성’이다.
코디악에서 몰록의 잔재를 걷어 내야 모쿠바스도 안정될 터였다.
한편으로 인간과 닮은 부라퀴족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대체 얼마나 인간과 닮았기에 자신을 부라퀴족으로 믿는단 말인가!
‘앞으로 타메이온에서 마족 행세 하려면 부라퀴족에 대해 알아 두는 게 낫겠지?’
지금은 부라퀴족 행세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했다.
엘리오가 멘티로어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라퀴족이 오는 데 육 일 걸린다고?”
“예.”
“당장 가서 데려와. 그들에게 내성의 일을 맡길 테니까.”
“명대로 하겠습니다.”
내성의 일자리를 뺏기게 된 상황임에도 멘티로어의 표정은 밝았다.
‘내성을 부라퀴족에게 맡기고 우리는 외성으로 나가자.’
불길한 눈을 가진 새 군주와 내성에서 지내는 것보다 외성이 백배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