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90
1190회. 바다로 둘러싸인 녹색 섬
견시 선원의 외침에 엘리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수평선만 보일 뿐 섬은 없었다.
‘이런 제길! 섬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런 그의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마일로가 다시 소리쳤다.
“9시 방향에 섬이 보입니다!”
엘리오는 급히 좌현으로 달려갔다.
과연! 수평선 위에 깨알 같은 점 하나가 보였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찾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정도로 작은 점이었다.
견시 선원의 소리를 들었는지 마력범선이 천천히 죄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엘리오는 급한 마음에 조타실로 뛰어갔다.
“선장님! 좌측에 보이는 게 로도스 섬은 아니죠?”
방향타를 돌리던 알트헬름 선장이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아닙니다. 로도스 섬은 멀어서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저 섬은 뭔가요? 원래 있는 섬인가요?”
“마의 해역에 섬은 없습니다. 저도 처음 보는 섬입니다.”
선장의 말에 엘리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문득 천공성이라는 고대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히페리온의 사자는,
바다로 둘러싸인 녹색 섬을 지키고 있다.
어쩌면 저것이야말로 그 시에 나오는 녹색 섬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의 해역에 섬이 없다’는 걸 확인한 엘리오는 다시 뱃머리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파비안이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작님? 저거 녹색 섬 아닙니까?”
“그런 것 같아.”
“녹색 섬 맞을 겁니다. 이 근방에 섬은 없었잖습니까?”
“선장님도 그러더라고. 처음 보는 섬이라고.”
“와아! 수천 년의 신비가 이렇게 풀린다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호들갑 좀 그만 떨어. 네가 그러니까 부정 탈 것 같다.”
엘리오는 조바심에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천공성이 지난 수천 년간 모습을 감춰 온 걸 생각하면 은근 불안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눈에 띄었으니 신비고 지랄이고 다 필요 없다.
무조건 저 섬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그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다.
갑자기 맑기만 하던 바다에서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면은 안개로 뒤덮였다.
뒤늦게 안개를 발견한 파비안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안개다! 빌어먹을! 이거 뭐야!”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엘리오 경, 마의 해역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엘리오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상이변이지만 지금은 섬을 발견해서 그런지 원망스러웠다.
수평선에 찍혀 있던 점은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범선이 방향을 돌리지만 않는다면 머지않아 마주치게 되리라.
스멀스멀 피어오른 안개가 갑판 위까지 올라왔다.
안개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차오르더니 마침내 마력범선을 집어삼켰다.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조타실에서 나온 선장이 소리쳤다.
“모두 밧줄로 몸을 배에 묶어라! 그리고 다른 지시가 있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잠시 후 안개 속에서 파비안의 긴장된 음성이 들려왔다.
“자작님, 우리도 묶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자신 없으면 너는 묶어도 돼.”
“예, 저는 묶겠습니다. 오마르 백작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조금 더 지켜보겠네. 급하게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십쇼. 저는 두 분만 믿겠습니다.”
파비안은 밧줄로 자신의 몸을 난간에 꽁꽁 묶으며 구시렁거렸다.
“소드 비기너가 살아남기에는 너무 위험한 세상이라니까. 그런데 태풍도 아닌데 왜 묶으라고 하는 거지? 자작님? 왜 묶으라는 걸까요?”
“앞도 안 보이는데 괜히 돌아다니다가 바다에 빠질까 봐 그러는 거겠지.”
“자작님 목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으니까 기분이 묘합니다.”
“너 무섭냐? 왜 그렇게 계속 말을 걸어? 좀 조용히 해 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노래 같은데요?”
“노래? 세이렌이 부른다는 그 노래인가?”
묘한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래도 세이렌의 노래 같습니다.”
엘리오는 가만히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백 명이 내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확실히 바르도스들이 부르던 노래와 닮아 있었다.
마의 해역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리 없으니 정말 세이렌의 노래리라.
시간이 지나자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선명하게 들렸다.
“파비안.”
“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싸울 맘이 나겠냐?”
“안 나죠?”
“노래를 들은 선원들이 서로 싸워 엄청 죽었다고 했잖아.”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흐음!”
엘리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둘의 대화를 듣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독버섯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귀로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엘리오는 오마르 백작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강호를 주유하며 본 독버섯들은 울긋불긋한 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생각하자 달콤한 음률이 마냥 좋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문득 나른한 느낌이 들자 엘리오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안개를 노려볼 때다.
돌연 서너 걸음 앞에 사람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이내 모습이 또렷해졌다.
젊은 남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자, 여자는 버티면서도 조금씩 끌려갔다.
씁쓰름한 얼굴로 지켜보던 엘리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여자야. 싫으면 확실하게 싫다고 거절을 해야지.’
저건 누가 봐도 싫은 게 아니라 ‘싫은 척’하는 것이었다.
호기심에 엘리오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어느 순간 남자가 팔을 확 잡아당기자, 여자의 상체가 빙그르르 돌았다.
‘헉! 누님?’
싫은 척하던 여자는 놀랍게도 남궁연이었다.
남자가 비틀거리는 남궁연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뭐야! 야 이! 개새끼야!”
엘리오가 욕설과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갔다.
퍼엉!
바닷물 속에서 엘리오는 눈을 부릅떴다.
여전히 서너 걸음 앞에서 남궁연의 허리를 안은 남자가 있었다.
“누님! 우읍!”
물이 입과 코로 밀려들었지만 엘리오의 눈은 남자와 남궁연을 좇았다.
‘죽여 버린다!’
강렬한 살의에 엘리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죽어!’
엘리오가 손을 뻗자 그의 손끝에서 한 자루 구천검령이 쏘아져 나갔다.
파아앗―!
눈 깜짝할 사이에 구천검령이 남자의 신형을 관통했다.
쏘아져 나갔던 구천검령은 백회혈을 통해 다시 엘리오의 몸으로 돌아왔다.
쓰아아아―.
뒤통수를 타고 흘러내리는 청량한 느낌에 엘리오는 정신을 차렸다.
‘응?’
분명히 뱃머리에 있었는데 바닷물 속이다?
한순간 엘리오는 마력범선이 침몰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자신이 바닷물 속에 있는 걸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팔다리를 움직여 위로 올라가던 엘리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바닷속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많은 사람들의 하반신이 물고기처럼 꼬리로 되어 있었다.
‘세이렌인가?’
온통 세이렌들 속에서 버둥거리는 두 다리를 보니 반가웠다.
두 다리의 주인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
백작은 뭔가의 목을 조르는 듯한 자세로 가라앉고 있었다.
엘리오는 허공섭물로 오바르 백작을 끌어당겼다.
그가 백작을 구하려 하자 멀리 있던 세이렌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엘리오가 한 손으로 천둔검을 뽑아 휘둘렀다.
진검강에 세이렌들의 몸이 썰려 나가자 깜짝 놀란 세이렌들은 물고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 위로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
그러나 자욱한 안개로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허공에서 재빨리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을 펼쳤다.
휘우우웅―.
태풍처럼 일어난 검풍이 엘리오 주변의 안개를 밀어냈다.
안개 사이로 마력범선의 일부가 드러나자 엘리오는 마력범선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마력범선의 갑판에 내려섰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연신 물을 토해 냈다.
“우웩! 웩!”
그사이 엘리오는 재빨리 파비안과 선원들을 살폈다.
파비안은 줄을 풀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얼마나 잘 묶었는지 옴짝달싹 못 했다.
그에 반해 줄을 푼 선원들은 맨주먹과 몽둥이로 미친 듯 싸우고 있었다.
엘리오는 그 난폭함에 혀를 내둘렀다.
파비안이 항구에서 수집한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저들이 무장한 기사였으면 태반은 죽었을 터였다.
그 아름다운 선율 속에 이런 흉험함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다시 세이렌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두 귀로 파고들었다.
다급해진 엘리오는 서둘러 큰 소리로 정신신주(淨神神呪)를 외웠다.
“신령스러운 보배이신 하늘의 존귀하신 분이시여 위태로움으로부터 몸을 지켜 주옵소서[灵宝天尊 安慰身形]……. 보호자시여, 법령대로 신속하게 시행하소서[侍卫身形 急急如律令]!”
주문이 끝나자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뚝 그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엘리오 본인에 한해서다.
파비안은 여전히 밧줄을 풀기 위해 버둥거렸고, 선원들은 서로를 물고 뜯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엘리오는 지풍으로 그의 마혈을 점했다.
‘쿵!’ 소리와 함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신형이 뒤로 넘어갔다.
엘리오는 가볍게 발을 굴러 주 돛의 탑캐슬로 뛰어올랐다.
견시 선원은 아래로 내려갔는지 탑캐슬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니 마력범선 주변에 새카맣게 몰려든 세이렌들이 보였다.
문득 세이렌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사람은 아니고, 마물이겠지?’
마물이라면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다.
엘리오의 손에서 천산검영(千山劍影)이 펼쳐졌다.
천백억이나 되는 ‘검의 화신(化身)’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하던 ‘검의 화신’들이 유성처럼 바다로 떨어졌다.
콰콰콰콰―!
비처럼 쏟아붓는 천산검영에 바다가 끓어올랐다.
마력범선 주변의 바다가 세이렌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사람을 홀리던 아름다운 노래는 한순간에 끝났다.
착잡한 표정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던 엘리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물이라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친 그는 갑판으로 뛰어내렸다.
조금 전까지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서로 싸우던 선원들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뱃전에 있던 선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바람이다! 안개가 물러간다!”
엘리오는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강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마혈을 풀어 주고 뱃머리로 달려갔다.
수평선에 점처럼 찍혀 있던 섬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강풍에 안개가 쓸려 나가자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섬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에게 파비안이 말했다.
“자작님, 죄송한데 줄 좀 풀어 주십쇼. 내가 이렇게 묶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엉켰지?”
“그 덕에 무사한 줄 알아.”
밧줄을 풀기 위해 다가갔던 엘리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얼마나 심하게 엉켰는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