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17
1217회. 금선탈각(金蟬脫殼)
구천현녀경은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걸 본 남궁연은 급히 구천현녀경을 한쪽 벽에 세웠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듯 구천현녀경은 조금씩 깨끗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녹과 때가 모두 사라졌다.
깨끗해진 구천현녀경은 ―청동 거울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끈했다.
그 놀라운 선명함에 남궁연과 연지안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때다.
거울 저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날아왔다.
구름 위에는 선녀로 보이는 누군가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간절한 부름에 구천현녀가 응답한 것일까?
구름이 정면으로 다가오자 남궁연과 연지안은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거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왠지 튀어나올 기세에 놀란 것이다.
역시나!
거울 끝까지 다가온 구름이 돌연 ‘훅!’ 하고 쏟아져 나왔다.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방 안의 절반이 하얀 구름으로 차오르더니, 급기야 선녀가 거울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연지안이 놀란 눈으로 어머니와 거울에서 걸어 나온 선녀를 번갈아 보았다.
선녀와 어머니는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어, 어머니…….”
구천현녀가 자신과 닮았다는 걸 알고 있던 남궁연도 한순간 흠칫할 정도였다.
무덤덤한 눈으로 방을 둘러보던 구천현녀의 시선이 연지안에서 멈췄다.
그리고 뭔가 말할 것처럼 손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다시 내렸다.
연지안은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윽고 구천현녀가 남궁연을 보았다.
“남궁연, 조금 전 네가 말하기를…….”
“네, 알아요. 상계와 하계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보내주었어요. 그건 저의 오만이었어요. 저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망각하며 살았거든요.”
“그래, 너의 선택이기도 했다.”
“맞아요. 나와 구천현녀님의 선택이었죠. 하지만 적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 그도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렴풋이 짐작만 했겠죠. 구천현녀님이나 저와는 달리요.”
“그래서,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냐?”
“저와 지안이에게 그를 돌려보내 주세요. 벌써 삼십 년이나 지났잖아요.”
“불가하다. 그는 아직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창조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임의로 천문(天門)을 열 수는 있겠으나 하계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를 그가 있는 곳으로 보내 주세요.”
깜짝 놀란 연지안이 남궁연의 팔을 잡았다.
“어머니!”
남궁연이 애잔한 얼굴로 딸을 돌아보며 말했다.
“삼십 년이다. 네 아버지는 육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할 게다. 이대로라면 나는 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
그녀는 자신의 수명을 백이십 년으로 생각했기에 연적하와 만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너와는 삼십 삼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냈잖니. 내가 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사 년밖에 안 된단다. 이대로라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구나.”
그제야 연지안은 잡았던 어머니의 팔을 놓아주었다.
이해는 하면서도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궁연과 연지안의 대화를 지켜보던 구천현녀가 말했다.
“연적하가 임의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너도 그에게 가지 못한다. 나는 물론 너에게도 천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 천문은 없어요. 하지만 천문을 대신할 방법은 있을 거예요.”
“이번에는 네가 틀렸다. 이 우주에 천문을 대신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조차도 네 번째 하늘에는 갈 수가 없다.”
“아니요. 있을 거예요.”
“없다.”
그러나 남궁연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문과도 같았기에 그런 방법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구천현녀와 남궁연은 마치 싸움이라도 하듯 뚫어져라 서로를 쏘아보았다.
보다 못한 연지안이 막 어머니를 만류하려 할 때, 남궁연의 입이 열렸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무불통지(無不通知)라고 해요. 한 번 본 것은 영원히 잊지 않아 모르는 게 없죠. 처음에는 남들보다 똑똑한 것이려니 생각했어요. 적하가 ‘구천현녀를 닮았다’고 할 때도 그러려니 했어요. 세상에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
연지안은 어머니가 왜 지금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이한 것은 구천현녀가 어머니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중요한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적하를 기다리며 삼십 년이나 단장을 했어요. 그래서 내 얼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머리카락과 눈썹은 물론 눈동자 구석구석까지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구주에 다녀온 뒤에야 나는 비로소 우주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알고 보면 수많은 차원과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구천현녀님은 다른 차원의 나일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차원의 내가, 이 초월적인 머리로 수도를 해서, 선계에 올라갔겠죠. 아니라고는 말하지 마세요. 구천현녀님의 얼굴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나 그 자체니까요.”
구천현녀는 시인하지 않았지만 연지안은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묵묵히 듣던 구천현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나는 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나에게 천문이 없으니 너를 적하에게 데려다주지 못한다.”
“아니요. 있을 거예요. 구천현녀님은 네 번째 하늘에 있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잖아요. 그가 누군지 말해 볼까요? 네 번째 하늘에는 틀림없이 구천현녀님을 닮은 진신(眞身)이 존재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 구천현녀님이 현세에 현현한 것처럼, 선계의 구천현녀님에게 나타나서 부탁을 했겠죠.”
“…….”
“천자마와 금사에게도 돌아갈 진신이 있는데, 구천현녀님에게 진신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 제 생각에 구천현녀님은 네 번째 하늘과 현세를 잇는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네 번째 하늘에 있는 구천현녀님의 진신은 누구죠?”
그러자 구천현녀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결국 네가 거기까지 생각해 냈구나. 과연 무불통지다운 통찰력이다. 네 번째 하늘에 있는 나의 진신은 샤스트라 파라크티다. 인간인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할 초월적인 존재지. 하계의 인간인 너를 위해 설명하자면, 설사 부처라 해도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발 끈조차 매 주지 못할 것이다.”
“구천현녀님뿐 아니라 나의 진신이기도 하죠.”
“지금의 너는 득도와 거리가 머니 그 말을 부끄럽게 여기거라.”
“여기까지 말했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구천현녀님은 아시겠죠?”
그러자 구천현녀가 복잡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동정, 연민, 측은함 등과 비슷한 감정들로 범벅이 된 눈빛이었다.
한참 만에 구천현녀가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천문을 열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 가는 길은 없다. 네가 네 번째 하늘로 가려면 금선탈각(金蟬脫殼) 해야 한다. 그것은 현세의 육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네 번째 하늘에 육화(肉化)해야 한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육화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너를 네 번째 하늘에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너 역시도 근원을 따져 보면 샤스트라 파라크티에 속해 있으니까. 신이 자신의 일부를 육화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아…….”
남궁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지금의 육체가 소멸되고, 네 번째 하늘에서 새로운 몸을 얻게 된다는 소리였다.
연적하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희생도 아니다.
아니, 이대로 홀로 늙어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백배 나았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가 되어 육화하겠느냐?”
“네, 하겠어요!”
“간단히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네가 물방울이라면, 나는 강물이고, 샤스트라 파라크티는 바다다. 본질은 같으나 수용의 범위가 천지차이다. 나조차도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깃들면 흔적도 없이 녹아들게 될 텐데, 너는 오죽하겠느냐?”
“나의 자아가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금방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녹아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결국 너는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게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는 아주 잠깐이지만, 남궁연으로 지낸 기억을 가지게 되겠지.”
“얼마나 오랫동안 나로서 남을 수 있나요?”
“길어야 일 년?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나도 알 수 없다. 그런 식의 육화를 해 본 적도 없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어서. 그래도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육화하겠느냐?”
남궁연은 잠깐 머뭇거렸다.
기껏 네 번째 하늘로 갔는데, 결국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흡수되어 사라지는 운명이라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가 망설이자 옆에서 연지안이 만류하고 나섰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길어야 일 년이라잖아요. 고작 아버지와 일 년을 살기 위해서, 남은 육십 년을 버리실 건가요?”
그러나 그 말이 도리어 남궁연의 결심을 부추겼다.
연적하와 함께 일 년을 사는 것과 홀로 육십 년을 사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함께하는 일 년이었기 때문이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가 되어 육화할게요.”
“어머니!”
애잔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던 구천현녀가 말했다.
“네 자아가 존속하는 기간은 전적으로 네 의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오래 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다. 연적하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면 육화한 남궁연이 홀로 남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샤스트라 파라크티로 돌아가겠지만…….’
구천현녀는 남궁연이 일 년 만이라도 연적하와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윽고 구천현녀는 남궁연과 연지안이 작별 인사할 시간을 주었다.
연지안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궁연이 흐느끼는 연지안의 손을 잡았다.
“지안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는 네 아버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했단다. 네 아버지도 나와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야.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지.”
겉모습은 이십 대지만 어느덧 환갑을 앞둔 남궁연에게 연적하는 정말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네, 하겠어요!”
“간단히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네가 물방울이라면, 나는 강물이고, 샤스트라 파라크티는 바다다. 본질은 같으나 수용의 범위가 천지차이다. 나조차도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깃들면 흔적도 없이 녹아들게 될 텐데, 너는 오죽하겠느냐?”
“나의 자아가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금방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녹아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결국 너는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게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는 아주 잠깐이지만, 남궁연으로 지낸 기억을 가지게 되겠지.”
“얼마나 오랫동안 나로서 남을 수 있나요?”
“길어야 일 년? 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나도 알 수 없다. 그런 식의 육화를 해 본 적도 없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어서. 그래도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로 육화하겠느냐?”
남궁연은 잠깐 머뭇거렸다.
기껏 네 번째 하늘로 갔는데, 결국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흡수되어 사라지는 운명이라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가 망설이자 옆에서 연지안이 만류하고 나섰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길어야 일 년이라잖아요. 고작 아버지와 일 년을 살기 위해서, 남은 육십 년을 버리실 건가요?”
그러나 그 말이 도리어 남궁연의 결심을 부추겼다.
연적하와 함께 일 년을 사는 것과 홀로 육십 년을 사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함께하는 일 년이었기 때문이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일부가 되어 육화할게요.”
“어머니!”
애잔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던 구천현녀가 말했다.
“네 자아가 존속하는 기간은 전적으로 네 의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오래 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다. 연적하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면 육화한 남궁연이 홀로 남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샤스트라 파라크티로 돌아가겠지만…….’
구천현녀는 남궁연이 일 년 만이라도 연적하와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윽고 구천현녀는 남궁연과 연지안이 작별 인사할 시간을 주었다.
연지안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궁연이 흐느끼는 연지안의 손을 잡았다.
“지안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는 네 아버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했단다. 네 아버지도 나와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야.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지.”
겉모습은 이십 대지만 어느덧 환갑을 앞둔 남궁연에게 연적하는 정말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알아요. 저도 더는 반대하지 않을게요. 그곳에서 아버지와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라요.”
“고맙고, 미안하구나. 네 옆에 오래 있어 줘야 하는데……. 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죽을 걸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너무 고역이라.”
“이해해요. 어머니 말씀처럼 저와는 삼십삼 년이나 살았잖아요.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가세요. 그리고 두 분 오래오래…….”
연지안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북받치는 감정에 그녀의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신의 팔자는 왜 이렇게 기구한지 모르겠다.
기억도 흐릿한 아버지에 이어 이제는 어머니마저 떠나보내야 하다니!
슬픔에 잠긴 두 모녀의 귓가로 구천현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죽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그리 슬퍼하느냐. 이제 그만 가자꾸나.”
사라졌던 구름이 어느 틈에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구천현녀가 구름을 밟고 거울로 걸어가자 남궁연은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뒤이어 구천현녀와 남궁연이 구름을 밟고 거울로 들어갔다.
거울은 방 안에 있던 구름을 남김 없이 빨아들였다.
잠시 후 거울 속 구천현녀와 남궁연을 태운 구름이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연지안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금선탈각이라더니, 방 한가운데 남궁연이 정좌한 자세로 숨져 있었다.
“어머니!”
연지안의 서러운 통곡에 석경장 식솔들이 안채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