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22
1222회. 마스터는 누구예요?
‘백작이 공왕 전하께 저래도 되는 겁니까!’라는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의 일갈에 좌중은 한동안 침묵했다.
될 리가 있나.
하지만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북부에서 그가 세운 공적과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것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궁정백 발터 골드만이 돌아왔다.
“전하, 크나우프 대공가로부터 마법 전송문이 왔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크나우프 대공가의 귀빈을 위해 비공정을 보냈다 합니다.”
그러자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대귀족들을 둘러보았다.
“크나우프 대공과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소?”
대귀족들이 서로를 보았지만 모두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이다.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궁정백에게 물었다.
“귀빈이 누구라는 말은 없던가?”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공왕 다음가는 권력자인 고문관 마그누스 허먼 후작이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에 동감이라는 듯 대귀족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을 돌아보았다.
“행정 장관은 크로우 자작가의 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궁정백은 라고아 백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시오.”
“예.”
행정 장관과 궁정백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이 자리에서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스탠 다이어 백작도 그저 해 본 말에 불과했던 듯 다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행동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
제국령 아발란트 공국.
남부 하마스크 자작령.
마리노 태번(tavern).
운송 책임자 레온 토로스는 승객들에게 숙소를 배정한 뒤 다시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가드 뒤발리에가 그에게 빈자리를 권하며 말을 걸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레온 토로스가 지친 얼굴로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이번 운송은 유독 힘이 드네요.”
육체적으로야 늘 하는 일이니 힘들고 말고 할 게 없다.
하지만 마음을 쓰는 건 다르다.
승객들 간 반목과 갈등이 생기면 운송 책임자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내일이면 파티마 공국이니 거의 다 왔습니다. 며칠만 참으십쇼.”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것 같습니다.”
때마침 웨인 스코트 부부가 내려오자 레온 토로스는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승객들이 하나 둘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귀족들은 웨인 스코트 부부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넸다.
모두 남작가 출신인데 이라이자 크로우만 자작가 출신이라 그러는 것이다.
뒤이어 안드리아 지터 가족이 내려왔다.
이라이자 크로우는 ‘흥!’ 하고 냉소를 치며 안드리아 지터 가족을 외면했다.
그때 엘리오 일행이 내려왔다.
그러자 가뜩이나 어색하던 식당 분위기가 완전히 이상해져 버렸다.
이라이자 크로우가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다.
“여보, 파티마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 아카데미가 어디죠?”
“로잔이오.”
“그렇다면 우리 처크는 로잔으로 보내요.”
“로잔에 입학하려면 크로우 자작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은 입학에 필요한 게 뭔지 알아봐 줘요.”
“그러리다.”
웨인 스코트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집안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편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라이자 크로우는 그것으로 만족이 안 되는지 아들에게 말했다.
“처크, 너도 들었지? 너는 로잔에 들어가기 전까지 괜히 딴짓하면 안 된다?”
“딴짓요?”
“용병이나 뜨내기 모험가의 검술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배워 봐야 용병밖에 더 되겠니? 크나우프 대공 같은 위대한 기사가 되려면 아카데미로 가야 돼. 알겠어?”
“네.”
운송 책임자 레온 토로스는 급히 모험가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젊은 모험가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레온 토로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라이자 크로우가 그만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파티마 공국에 가까울수록 기세가 등등해진 이라이자 크로우는 멈추지 않았다.
“말이 좋아 모험가지 너 모험가가 뭔지 알아?”
“모험을 하는 거 아니에요?”
“용병 길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게 모험가야. 제대로 된 모험을 하려면 기사가 되어야 해. 유명한 모험가들은 모두 기사란다.”
그건 맞는 말이다.
제대로 된 모험가는 거의 대부분 기사였다.
그리고 용병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람들이 모험가 등록을 하고 어비스로 달려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들 처크가 애매한 얼굴로 보자 이라이자 크로우는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했다.
“모험가는 대부분 사기꾼이나 도둑이라고 생각하면 돼.”
“…….”
어머니 말에 깜짝 놀란 처크는 모험가 일행의 자리를 힐끔거렸다.
열세 살짜리 아이도 위험을 느낄 정도로 아슬아슬한 발언이었다.
보다 못한 웨인 스코트가 한마디 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란다. 용병 길드에서 쫓겨나 어비스에서 살아가는 모험가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식당 분위기가 말도 못 하게 싸늘해졌다.
그때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던 싱크레어 지터가 분한 얼굴로 물었다.
“모험가가 정말 사기꾼 아니면 도둑이에요?”
안드리아 지터가 머뭇거릴 때 샤인 코울스로가 말했다.
“나쁜 사람 눈에는 나쁜 것만 보이고, 좋은 사람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인단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라이자 크로우가 샤인 코울스로에게 삿대질을 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거야? 딸이나 밖으로 내돌리는 돼먹지 못한 여자가,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해?”
“누가 누굴 밖으로 내돌렸다는 거예요! 당신이 추잡하게 살았다고 남들까지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샤인 코울스로의 말에 이라이자 크로우의 눈이 뒤집혔다.
“뭐라고! 야! 너 지금 말 다했어? 당신은 뭐 해요! 저 여자가 지금 나를 욕하고 있잖아요!”
아내가 닦달하자 웨인 스코트는 마지못해 나섰다.
여자들의 말싸움이 다시 남자들의 싸움으로 번졌다.
흥분한 웨인 스코트와 안드리아 지터가 한데 엉켜 뒹굴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가드들이 초장부터 뛰어들어 두 남자를 뜯어말렸다.
“놔! 놓으라고!”
“때려! 때려 봐! 이 새끼야!”
레온 토로스가 다급하게 두 남자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를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뒤쪽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이라이자 크로우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너! 코랄 상회에서 일한다고 했지? 좋아! 파티마 공국에서도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지 보겠어! 내가 이렇게 끝낼 줄 알아!”
그녀의 말에 안드리아 지터가 움찔했다.
크로우 자작가에서 코랄 상회에 손을 쓰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겁먹고 머리를 숙일 수는 없었다.
“마음대로 하쇼! 코랄 상회가 크로우 자작가의 눈치를 볼 것 같으쇼!”
물론 보고도 남는다.
안드리아 지터는 크로우 자작을 찾아가 백배 사죄할 생각이었다.
가드들이 안드리아 지터 가족을 숙소로 올려 보냈다.
그것만 봐도 실질적인 승자가 웨인 스코트 부부임을 알 수 있다.
식사를 마친 엘리오가 운송 책임자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레온 토로스는 서둘러 모험가에게 다가갔다.
“파티마 공국에서 크로우 자작가가 잘나가요?”
“크로우 자작령은 백작령에 버금갈 정도로 크고 발전한 곳입니다.”
잘나간다는 소리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가 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레온 토로스는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나 귀족들이 싸우는 거 처음 봤다. 그런데 완전 개싸움이네.”
그러자 파비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재밌지 않습니까? 싸움은 개싸움이 제일 재밌는 거 같습니다.”
“보는 맛은 있더라. 지터 씨도 잘 싸우던데?”
지난번에 그렇게 얻어터지고 또 싸운 걸 보면 용자라 할 수 있었다.
“가드들이 많으니까 용기를 냈을 겁니다.”
“그나저나 싸웠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내야지. 치사하게 집안은 왜 들먹이나 몰라.”
“저도 상회를 들먹거려서 조금 놀랐습니다.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부모가 누군지 보고 싶네.”
“곧 만나게 될 겁니다.”
엘리오는 이라이자 크로우를 힐끔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리노 태번.
안드리아 지터는 손바닥으로 얼얼한 광대뼈를 매만졌다.
전에 맞았던 자리를 또 맞았는지 유독 광대뼈가 아팠다.
“하아!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샤인 코울스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라이자 크로우의 말에 화가 나서 그만 또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녀는 오늘의 일로 남편이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됐다.
“잘했소. 그런 여자는 욕을 먹어도 싸.”
“그런데 크로우 자작가에서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죠? 그 여자가 코랄 상회까지 들먹였잖아요.”
“그때는 내가 찾아가 사죄할 생각이오. 앞뒤 사정을 듣고 나면 크로우 자작님도 용서해 주실 게요.”
“찾아간다고 만나 주실까요? 크로우 자작님도 만나 뵙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코랄 상회도 작은 상회가 아니니 만나는 주실 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드리아 지터의 표정도 어두웠다.
크로우 자작가에서 세게 나오면 자신이 코랄 상회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을 보던 샤인 코울스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죠?”
돌이켜 보면 어이가 없다.
모험가에게 싱크레어의 검술 지도를 맡긴 것 때문에 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눈치를 살피던 싱크레어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싱크레어는 모험가 일행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그녀를 본 파비안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꼬마야, 누굴 찾느냐?”
“마스터요.”
“그분은 조금 전에 밖으로 산책을 나가셨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요?”
“후후, 우리에게나 어둡지 그분 눈에는 대낮처럼 환할 게다.”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나도 그 이치는 모른다. 나중에 마스터를 만나거든 여쭤봐라. 그런데 왜 혼자 내려왔느냐?”
“그냥요. 그런데 아저씨.”
“파비안이라고 해라.”
“네, 파비안 씨. 마스터도 용병 길드에서 쫓겨났어요? 말해 주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푸하핫! 너의 마스터는 용병 길드에 들어간 적이 없으시다.”
“아, 그래요? 다행이다.”
안도하는 싱크레어 지터에게 파비안이 물었다.
“쫓겨나지 않았다니 좋으냐?”
“네.”
“왜? 범죄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고. 일하던 곳에서 쫓겨나면 슬플 거 같아요.”
“어린애가 별 생각을 다 하네?”
“……어쩌면 우리 아빠는 상회에서 쫓겨날지 몰라요.”
파비안이 이라이자 크로우 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저 여자가 한 말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요?”
“내가 너 같은 어린애에게 거짓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니요!”
싱크레어 지터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아니기를 바랐다.
“알면 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마스터에게 말해라. 그럼 다 해결이 될 게다.”
“네! 저어, 그런데……. 마스터는 누구예요?”
싱크레어 지터는 살짝 파비안의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마스터가 누구길래 다 해결이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