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41
1241회. 열 번을 물어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메이지 잉그릿 파티샤 남작은 하워드 솔론 남작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이 든 기사와 두 명의 젊은 기사가 앉아 있었다.
타인록이 솔론 남작 또래에게 졌다고 했으니 저 둘 중에 하나이리라.
그녀는 나직이 진실의 눈을 영창했다.
“마티아 테스 알리티아스.”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 타인록이 긴장한 눈빛으로 잉그릿 파티샤 남작을 보았다.
유심히 두 청년을 보던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말했다.
“노기사의 옆에 있는 사람은 마나의 축복을 받았고, 맞은편의 사람은 영기 수련자가 맞다. 그런데…….”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패배의 당사자인 타인록이 급히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득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타인록과 눈을 맞췄다.
“영기의 질과 양을 가늠할 수가 없군요. 그에 반해 타인록 경의 영기는 알 수가 있어요. 이 정도면 대답이 됐나요?”
한마디로 흑마법이 아니라 영기에서 밀린다는 소리였다.
타인록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내 자랑 같아서 부끄럽지만 영기 수련에서 너클스 산맥의 야인들 중에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상은 넓으니까요.”
잉그릿 파티샤 남작은 타인록의 말을 일축했다.
청년에게 흑마법의 기운이 있다면 모를까?
영기의 양과 질에서 저 청년과 비교할 수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타인록은 수긍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수련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제국법으로 금한 비정상은 흑마법밖에 없어요. 저 청년이 다른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흑마법은 아니에요. 그 방법이 뭔지는 저 청년만 알겠죠.”
“대단히 실례되는 질문인데 진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습니까?”
“그런 건 없어요.”
잉그릿 파티샤 남작의 단호한 부정에 타인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참 만에 크레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타인록 님, 정 궁금하면 저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는 건 어때요? 같은 야인, 아, 이건 비하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에요. 같은 영기 수련자니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
타인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그놈이 자신에게 한 말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자신에게 ‘자라나는 새싹’이니, ‘후작가에 들어갔으면 성공했다’느니 한 놈에게 뭘 물어본단 말인가.
더 이상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잉그릿 파티샤 남작은 하워드 솔론 남작을 데리고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네 본심을 알고 싶구나.”
“모험가로 세상을 떠돌 생각입니다.”
“진심이냐?”
“예.”
“기사단장님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왔었다.”
“왜요?”
“왜는, 너 때문이지. 콜맨 소후작 때문에 영지가 휘청이고 있단다.”
“소후작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영지가 휘청여요?”
“그러니 기사단장님 걱정이 크시다. 소후작 주변에 그를 등쳐 먹는 사람들밖에 없다고.”
“그래서 저더러 후작가로 돌아오라고요?”
“너 외에 대안이 없잖느냐.”
“돌아가서 하나뿐인 형님을 죽이고 작위를 승계받으라 이건가요?”
“그 하나뿐인 형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 데도?”
“그야 아직 작위를 승계받지 못해서 그러는 거죠. 작위를 받으면 저에 대한 관심도 끊을 겁니다.”
“영지는? 영지민들은 생각하지 않느냐?”
“영지민들 때문에 혈육을 죽이라고요? 저는 그런 짓 못 합니다. 게다가 제가 형님에 맞서면 영지민들만 죽어 나갑니다. 영지민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돌아가지 않는 게 낫습니다.”
“너 정말 생각이 없구나?”
“예, 열 번을 물어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하아.”
단호한 그의 태도에 잉그릿 파티샤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지금 돌아가면 소후작 측과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사단장은 소후작을 싫어하지만 장자 승계를 당연시 여기는 귀족들도 많으니까.
하워드 남작의 경우 후작가를 떠난 시간이 길어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태번 문을 열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무심코 입구를 보던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흠칫 몸을 떨었다.
호기심에 힐끔 돌아본 하워드 솔론 남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옷에 새겨진 통일된 문양으로 보아 제국 기사단 같은데 왜 저렇게 놀라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세요?”
“코르보 마법 병단의 기사들이다.”
“헛.”
하워드 솔론 남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코르보 마법 병단은 제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부대로 가히 왕국 하나와 맞먹는 전력을 가진 부대였기 때문이다.
마법 병단의 마법사가 되려면 최소 4서클 메이지여야 한다던가.
“근처에 마법사들도 있을 게다. 너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왜죠?”
“소후작도 코르보 마법 병단의 앞에서는 허튼짓을 하지 못할 테니까.”
“아.”
하워드 솔론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코르보 마법 병단 앞에서 사고를 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잉그릿 파티샤 남작의 말대로 태번에 들어온 기사들은 코르보 마법 병단과 함께 움직이는 ―말이 함께지 실은 마법사들의 호위였다― 기사단이었다.
태번 안을 둘러보던 기사단장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옆모습이 낯익은 남자가 눈에 보여서다.
그가 생각에 잠기자 부단장 기슬리 코르마 자작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왠지 낯익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누굴 말씀하시는지?”
“저기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 말일세. 누굴 좀 닮지 않았나?”
기사단장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기슬리 코르마 자작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갈 때 기사들 중 하나가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입니다.”
애슐리 넬슨 남작이었다.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확실하냐고 되묻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가까운 사이이니 그녀의 눈이 정확할 터였다.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 기사 하나를 손짓으로 부른 뒤 말했다.
“마법 병단의 킬리언 헤일 공작님에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이곳에 있다고 전해라.”
“예!”
기사가 태번을 떠나자 기사단장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자리로 걸어갔다.
이윽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옆에 선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코르보 마법 병단의 기사단장 스파이크 고어 백작입니다.”
입에 음식을 한가득 넣고 씹던 엘리오가 옆을 돌아보았다.
기사단장과 다섯 명의 기사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 고어 백작님. 반가워요. 어? 넬슨 남작님도 계셨네요? 잘 지내셨죠?”
엘리오가 애슐리 넬슨 남작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애슐리 넬슨 남작이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늦었지만 백작님의 봉작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애슐리 넬슨 남작의 인사가 끝나자 기사단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피에스트라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 뵙는군요. 남부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히르헤라에서 잠적한 흑마법사의 한패가 대수림에 있다는 제보가 있어서요. 그놈마저 잡으려고 왔어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천공성을 찾는 일은 보류하신 겁니까?”
“이미 찾았는데요?”
“헉!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오마르 경, 우리가 천공성을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답했다.
“찾았지요.”
“찾았다잖아요. 오마르 경은 빈말은 안 한다니까요.”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 오마르 경이라는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코르보 마법 병단의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오.”
“아티오니아스의 영주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입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스파이크 고어 백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눈이 마주친 순간, 상대가 자신보다 아득히 위의 존재임을 알아차렸다.
‘소드마스터구나.’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니 가슴이 떨렸다.
그랜드 마스터와 소드마스터의 증언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스파이크 고어 백작은 다시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축하드립니다. 수천 년간 아무도 찾지 못한 천공성의 신비를 드디어 푸셨군요. 킬리언 헤일 공작 각하께서 알면 아주 기뻐하시겠습니다.”
“헤일 공작님도 근처에 계시겠네요?”
“예, 그렇지 않아도 기사 하나를 보내 라고아 백작 각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걸…….”
그때 태번 문을 벌컥 열고 검은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저 유명한 코르보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이었다.
열두 명의 마법사들이 들어오자 태번의 분위기가 대번에 달라졌다.
코르보 마법 병단은 일반인과 귀족 모두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법사는 두려움의 대상인데, 전장을 누빈 마법사들 특유의 섬뜩한 기운마저 더해져, 보통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을 발견한 기사들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킬리언 헤일 공작은 기사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해 보인 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엘리오도 앉아서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킬리언 헤일 공작님.”
“아하하핫! 라고아 백작! 이게 얼마 만인가! 소식은 전해 듣고 있었네. 크나우프 대공가의 콧대를 시원하게 꺾어 주었다지?”
“콧대를 꺾다뇨. 그냥 남자들 간의 소소한 결투였습니다.”
“잘했네. 내 언제고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사고를 칠 줄 알았지.”
“그를 잘 아십니까?”
“알다마다. 제 형의 위세를 믿고 얼마나 나대는 인간인데. 우리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과도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네.”
“예? 왜요?”
“마법사들과 만날 때마다 대련을 하자고 달라붙었거든. 그것도 꼭 만만해 보이는 마법사들에게만 그랬다네. 그러니 좋아 보일 리가 있나.”
“그랬군요.”
“그런데 자네는 이곳까지 어쩐 일인가? 피에스트라에서 천공성을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가만히 보던 기사단장 스파이크 고어 백작이 알은체를 했다.
“라고아 백작께서 천공성을 발견하셨답니다.”
“그래? 고어 백작의 말이 사실인가?”
킬리언 헤일 공작이 놀란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소드마스터인 줄 알았던 사람이 그랜드 마스터였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짧은 시간에 수천 년간 이어 오던 천공성의 신비까지 풀었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허어! 그게 운으로 될 일인가? 놀랍군 놀라워. 자네는 우리 마법사들의 숙원을 해결해 준 고마운 사람이네. 가만,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자리를 좀 옮길까? 내가 분위기 좋은 곳을 알고 있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던 엘리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 일행과 같이 가도 되죠?”
“오마르 백작과 클라우드 남작 말인가? 괜찮네. 그쪽이 오마르 백작이겠군. 어떻소? 오마르 백작, 자리를 옮기시겠소?”
“예, 분위기 좋은 곳이라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 베일럼의 호랑이라더니 시원시원하군. 그럼 가세나.”
킬리언 헤일 공작과 마법사들, 그리고 엘리오 일행이 태번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태번은 다시 이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숨 죽이고 대화를 엿듣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잉그릿 파티샤 남작에게 물었다.
“남작님,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라면 이번에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는 그분 아닙니까?”
“맞다. 마법과 검술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시지. 저분이 라고아 백작이셨다니……. 하마터면 내가 큰 죄를 지을 뻔했구나.”
하워드 솔론 남작이 동경의 눈으로 굳게 닫힌 태번 문을 바라보았다.
마검사인 그에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완벽한 이상형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