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49
1249회. 제국에서 사기꾼은 어떤 처벌을 받지?
두 달 전.
론디니움 제국 도시 페트로폴리스.
샤스트라 파라크티 대신전.
저녁 8시.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상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하던 사제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자 한 명의 사제만 빼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제들은 마지막 한 명의 사제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공동생활을 하는 그녀들인지라 하나만 남겨 두고 갈 수가 없어서다.
30분쯤 지났을까?
기다리다 지친 누군가가 옆사람에게 속삭였다.
“기도가 평소보다 많이 길어지네요. 혹시 깜빡 잠든 게 아닐까요?”
사제들의 저녁 기도 시간은 길어야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저 사제는 근 1시간 가까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사제도 사람인지라 피로가 누적되면 기도 중에 잠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가장 어린 비비안 사제가 선배들을 위해 살금살금 기도 중인 사제에게 다가갔다.
비비안 사제는 기도 중인 사제의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다른 사제들에게 돌아왔다.
“저어, 아무래도 ‘신비적 합일’ 상태이신 것 같아요.”
“…….”
비비안 사제의 말에 다른 사제들은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제들에게 ‘신비적 합일’은 샤스트라 파라크티와의 만남을 뜻한다.
일 년 전에 다섯 번째 ‘신탁을 받은 자’가 나왔는데, 또다시 ‘신탁을 받은 자’가 나오다니?
신전 역사상 그토록 빠른 주기로 신탁이 내려온 일은 없었다.
백 년 이내에 다섯 번째로 ‘신탁을 받은 자’인 하미쉬 사제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확인하고 올게요.”
비비안 사제에 이어 하미쉬 사제가 신상 앞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기도 중인 사제에게 다가간 하미쉬 사제가 갑자기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두 사제의 몸에서 성스러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신비적 합일’을 넘어선 ‘신의 임재(臨在)’ 현상이다.
깜짝 놀란 사제들은 제례를 따라 재빨리 두 사제의 뒤에 늘어섰다.
성스러운 광채에 휩싸인 두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제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윽고 다섯 번째 ‘신탁을 받은 자’ 하미쉬의 입이 열렸다.
“나의 딸들아, 내 말을 들으라. 모든 일은 신들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너희의 운명이 아니며, 너희의 책임도 아니다. 나는 너희의 기도를 들었고, 잊혀진 신전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다.”
뒤이어 그녀와 나란히 서 있던 시쉬트가 말했다.
“땅끝에서 온 나의 대리인이여, 모든 일은 신들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너의 운명이 아니며, 너의 책임도 아니다. 나는 남쪽 집 고운이[南宮姸]의 바람을 들었고, 잊혀진 신전에서 너를 만날 것이다.”
시쉬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광채도 사라졌다.
우두커니 서 있던 하미쉬와 시쉬트는 신성력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풀썩 쓰러졌다.
***
현재.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찬찬히 살피던 하미쉬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은 원래 북부의 귀족이었다고 들었어요.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 출신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알바 누베스 산맥의 ‘산의 부족’요.”
“아!”
“어머!”
하미쉬 사제와 시쉬트 사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내 정신을 차린 하미쉬 사제가 황급히 허리를 수그리며 말했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사도를 뵙습니다.”
“사도님을 뵈어요.”
멍하니 바라보던 시쉬트도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세 사람의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성기사들도 허리를 수그렸다.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엘리오가 사제들에게 물었다.
“내가 사도 맞아요?”
그러자 시쉬트 사제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께서 백작님을 대리인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사도가 맞으세요.”
“저를요?”
“네. 실은…….”
시쉬트 사제는 두달 전 샤스트라 파라크티 대신전에서 받은 신탁의 내용을 들려주었다.
“……알바 누베스 산에서 오셨다고 했죠?”
“네.”
“알바 누베스는 고대어로 ‘땅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백작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대리인, 즉 사도인 거죠.”
“그 신탁의 내용대로라면……. 제가 잊혀진 신전에 가서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을 만나야 한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잊혀진 신전이 어디에 있는데요?”
“남부 아드리아 왕국 이시카에 있어요.”
“와아! 멀리도 있네요?”
“본래 이시카의 신전이 최초에 세워진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신전이에요. 그런데 점차 사람들이 살기 좋은 중부로 이동하면서…… 이시카도 몰락했죠. 그래서 이시카의 신전을 잊혀진 신전이라고 불러요.”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은 그런 식으로 사제들을 불러서 만남을 갖나요?”
“아니요. 이런 신탁은 처음 있는 일이에요. 그냥 기도 중에 만나 주시지 어디로 오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대신전이 발칵 뒤집혔었어요.”
“기도 중에 만나면 되지 왜 잊혀진 신전으로 오라고 했을까요?”
그러자 하미쉬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제사장님께서는 어쩌면 샤스트라 파라크티님께서 이 땅에 현현하실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신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요?”
“네, 특정 장소로 사제를 부를 때는 신의 현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물론 확정적인 건 아닙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쪽 집 고운이의 바람을 들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건 사도님에게 내리는 신탁이니, 사도님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하미쉬 사제의 말에 엘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쪽 집 고운이’의 바람을 들었다니?
자신은 줄곧 북쪽에서 활동했는데 웬 ‘남쪽 집 고운이’란 말인가?
그는 그것이 남궁연을 가리키는 말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세계와 강호는 그야말로 꿈에서도 닿지 못할 만큼 아득히 먼 곳이기 때문이다.
한참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엘리오는 그냥 털어 버렸다.
“다행이네요. 저도 아드리아 왕국으로 가는 길이었거든요. 잊혀진 신전에 가서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을 만나라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죠.”
그는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보고하고, 내친김에 우샤스 운드라(금사)의 정보도 얻을 생각이었다.
라헬의 태번(tavern).
근심 어린 얼굴로 술을 홀짝이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파비안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그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샤스트라 파라크티 사제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라니?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사도는 너무 나갔다.
“별일 없을 겁니다.”
태평스러운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태도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애가 탔다.
“이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성기사들의 무서운 점이 뭔지 아십니까?”
“그들이 일반 마나 유저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검술만 뛰어난 게 아닙니다. 성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단과 싸우다 죽는 걸 명예로 여깁니다. 죽을 자리에도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압니까? 남은 평생 죽음을 달고 다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건 좀 신경이 쓰이네요. 그래도 잘 해결될 겁니다. 라고아 경이 진짜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믿으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모험가님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자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혹시 모험가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신자입니까?”
“전혀요. 라고아 경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분입니다. 그분에게 신은…… 별 의미 없습니다.”
“그것 보십쇼. 그런 분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파비안은 하워드 솔론 남작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곁에서 지켜본 바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신은 그저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죽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신을 믿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니 큰일 났다고 말하는…….”
그때 태번 문을 열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사제, 그리고 성기사가 들어왔다.
밝은 표정을 보면 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잘 푼 분위기다.
넋 나간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는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다가갔다.
“백 골드.”
“예?”
“백 골드 내기했잖아.”
“아, 잘 마무리된 겁니까?”
“보면 몰라? 웃으면서 함께 돌아왔잖아. 돈이나 내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독촉에 하워드 솔론 남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정도의 거금이 없습니다.”
순간 엘리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백 골드를 벌었다고 내심 좋아했는데 돈이 없단다.
“뭐? 돈도 없으면서 백 골드의 내기를 해? 너 사기꾼이야?”
“아, 아닙니다. 돈은 어떻게든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백 골드를 언제 만들어 준다는 거야? 후작가에서도 쫓겨난 주제에.”
“모, 모험가 일을 해서 만들겠습니다. 보물을 발굴하면 바로 드리겠습니다.”
“지랄. 백 명의 모험가가 가면 그중 하나가 보물을 발견할까 말까라는데, 어느 세월에?”
“…….”
하워드 솔론 남작의 머리가 더욱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지금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홧김에 백 골드를 외쳤지만, 수중에 가진 돈은 이십 골드도 안 됐다.
그나마도 어비스의 여행 경비로 써야 하니 빈털터리라고 봐야 옳다.
본가인 솔론 후작가와 관계가 단절된 것이 오늘따라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사기꾼들을 제일 싫어해.”
그건 사실이다.
강호에서 사기당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사기라면 치를 떨었다.
“사기가 아니라……. 돈을 모으는 대로 갚아 나가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순간 울컥한 엘리오가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쾅!’ 하는 소리에 용병은 물론 사제와 성기사 들까지 엘리오를 쳐다보았다.
“진심은 말에 있는 게 아니라, 돈에 있다고! 재물에 마음이 있다는 말도 몰라?”
“압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아니 너는, 나한테 없는 돈으로 사기를 친 거야. 맞아? 틀려?”
“마, 맞습니다.”
“제국에서 사기꾼은 어떤 벌을 받지?”
“혀, 혀를 자르고, 이마에 문신을 새깁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정말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
갑작스러운 엘리오의 물음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최선을 다해 빠른 시일 내에 갚겠습니다.”
“또, 또, 사기를 치려고 그러네. 이 사람 아주 사기가 몸에 뱄어. 파비안, 너는 이 사람이 빠른 시일 내에 백 골드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
“못 갚죠. 솔론 후작가에서 도와주지 않는 한 못 갚습니다.”
파비안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귀족가 남작의 월급이 30실버인데 어느 세월에 백 골드를 모은단 말인가.
그건 정말 어비스에서 보물을 찾아야만 벌 수 있는 거금이었다.
어비스에서 빠른 시일 내에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처참하다.
그러니 하워드 솔론 남작의 약속은 그저 그의 바람으로 끝날 터였다.
엘리오가 이번에는 크레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크레아 씨,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솔론 남작이 빠른 시일 내에 백 골드를 갚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그걸 보증할 수 있어요?”
“보, 보증요?”
“당신은 솔론 남작의 일행이잖아요. 그러니까 솔론 남작의 약속을 보증할 수 있냐고요?”
“모, 못 해요. 못 갚을 거예요.”
크레아는 속으로 ‘솔론 후작가에 손을 내밀기 전에는 안 된다고요’라고 중얼거렸다.
하워드 솔론 남작의 머리가 한층 더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 그를 내려다 보던 엘리오가 말했다.
“백 골드를 갚기 전까지 당신은 내 종이야. 그게 싫으면 혀를 뽑고 이마에 문신을 새겨.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