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0
1260회.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했어요?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갑작스러운 욕정으로 기껏 잘 다져 놓은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과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창녀를 찾아보겠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용병이 모이는 곳에는 마치 똥에 파리가 꼬이듯 늘 포주가 따라다녔다.
그러니 리베라에도 분명히 창녀를 거느린 포주가 있을 터였다.
괜히 성녀에게 눈독 들이다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과 원수가 되느니 창녀를 취하는 게 백번 나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엘리오가 발끈했다.
“무슨 개소리야?”
창녀라니?
평생 창녀의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혔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날 선 반응에도 파비안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성녀님과 뭘 어떻게 해 볼 생각은 하지도 마십쇼. 절대 안 됩니다.”
“너 샤스트라 파라크티 신도가 되기로 했냐?”
“아닌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지랄이야?”
“이게 다 라고아 경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본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저의 충정 어린 권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부디 그렇게 해 주십쇼.”
“못 하겠다면?”
“오마르 경과 함께 온몸으로 막겠습니다. 라고아 경이 제 발로 덫에 들어가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파비안의 눈에 떠오른 결기를 본 엘리오는 강제로 밀어붙일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성녀님에게 나와 한방을 쓰시겠냐고 물어봐. 성녀님이 그러겠다고 하면 내 말대로 하는 거야. 그럼 되지?”
“예? 저에게 그런 불경스러운 일을 하라는 겁니까? 성기사가 알면 저 죽습니다.”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 해. 결정해. 숙소 배정 내 말대로 할 거야? 성녀님에게 물어볼 거야?”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진퇴양난에 빠진 파비안이 우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독수공방하던 엘리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 결정은?”
“……여쭤보겠습니다.”
파비안은 뒤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성녀와 성기사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성녀는 성기사사 아니라 크레아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 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채근에 파비안은 다시 한번 애걸했다.
“그냥 참으시면 안 됩니까? 지금까지 잘 참아 오셨지 않습니까? 라고아 경이 손만 내밀어도 달려올 여자는 많습니다.”
“나는 오늘만 사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어.”
“진짜 너무하십니다.”
“서둘러. 성기사가 옆에 없을 때 물어보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야.”
“그걸 아시는 분이 그러십니까?”
“어, 어, 얘기 끝나 가는 것 같다. 뭐해? 성기사 옆에서 물어볼 거야?”
“갑니다. 가요.”
급히 돌아선 파비안은 성녀와 크레아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대화가 끝났는지 크레아가 파비안을 힐끔 돌아보았다.
파비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레아 씨. 성녀님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왔는데, 잠깐 비켜 주겠습니까?”
“아, 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말에 크레아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라던 대로 성녀와 둘만 남았지만 파비안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결국 루나 마일러스가 먼저 물었다.
“물어볼 게 있다고요?”
“그게 저어…….”
한참 머뭇거리던 파비안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결례인 줄 알지만 여쭙겠습니다. 라고아 경께서 성녀님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물론 성녀님께서 거절하시면…….”
“그럴게요.”
“예?”
뜻밖의 대답에 놀란 파비안의 음성이 높아졌다.
한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파비안은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아! 그러셨구나. 저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주변 눈치를 살피던 파비안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한껏 소리를 낮춰 다시 물었다.
“좀 전에 같은 숙소를 쓰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맞아요.”
“라고아 경과 성녀님 두 분이요?”
“네.”
“왜요? 아, 아닙니다. 말이 헛 나왔습니다.”
당황한 파비안은 손바닥으로 제 입을 ‘철썩!’ 후려친 후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가 달았을 때 두드리라는 말이 있다.
파비안은 여러 차례 손뼉을 쳐 태번 안에 있던 일행의 주의를 끈 뒤 말했다.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솔론 남작 일행 세 분은 이 층 첫 번째 큰 방, 오마르 경은 그 옆 작은 방, 성기사 님과 저는 세 번째 방을 쓸 겁니다. 이상입니다.”
고개를 갸웃하던 크레아가 눈치 없이 물었다.
“성녀님과 라고아 님은요?”
“험, 험, 두 분은 복도 끝 방을 사용하실 겁니다.”
한순간 묘한 침묵이 태번을 감돌았다.
곧이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의 성기사를 향했다.
그런데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표정이다?
성기사가 항의하지 않자 다른 사람들은 더 묻지 않았다.
말을 마친 파비안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제 발로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하레브 님.”
“클라우드 경.”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파비안이 먼저 운을 뗐다.
“숙소 배정은…….”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교단은 그렇게 꽉 막힌 곳이 아닙니다. 하물며 성녀님의 뜻이 그렇다면 성기사로서 받들어 모셔야지요.”
알메트 하레브는 성녀가 육화한 샤스트라 파라크티라는 걸 사제들에게 따로 들었기에 일절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교리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감춰야 할 흠이 아니라 고귀한 사건이다. 비록 그것이 정욕에 의한 것일지라 해도 말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솔직히 파비안은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은 어떻게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막으려 했는데, 정작 성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어디 성기사뿐인가.
성녀만 해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성녀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뻔한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아무리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성녀쯤 되면 거절해도 불이익받을 일이 없다.
오히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음탕한 죄인으로 낙인찍혀 손가락질당하게 될 게다.
거절할 수 있고, 거절하는 게 당연한데, 성녀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고민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뭘 잘못 알고 있었나?’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파비안은 터덜터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예상과 다른 사람들 반응에 풀 죽어 있는 파비안에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말을 걸었다.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나?”
“있었는데,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런가? 전에 주군을 잃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의 자네와 비슷했네.”
“제가 세상을 잘못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굉장한 고백이로군. 무엇이 자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나?”
“라고아 경과 성녀님이 숙소를 함께 사용하는 것 말입니다. 저만 신성 모독이라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성기사님조차 당연시하는 걸 말이죠.”
“흠. 나는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네.”
“혹시 오마르 경도?”
“앞서가지는 말게. 자네가 보인 반응이 정상적이라는 것과 그것에 동의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
“자네도 신과 결혼해서 후손을 낳은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 혹은 책으로 읽었거나.”
“예.”
“신이 왜 육화를 한다고 생각하나?”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건 인간의 해석에 불과하네. 육화를 해야 사람과 가까워진다면 그걸 전지전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왜 육화를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인간의 감정도 알고 보면 이 보잘것없는 육체에서 나온다네. 비물질로 존재하면 고통이나 쾌락을 알지 못하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도 영 틀린 건 아니군.”
“헉! 설마 신들이 쾌락을 위해서 육화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쾌락을 위해서라고 하지는 않았네. 그보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 중이네. 물론 쾌락은 그중에 하나 일 테고.”
파비안은 너무도 급진적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말에 눈만 끔뻑거렸다.
“신전에서 ‘인간은 신을 닮았다’고 가르치지 않나. 그게 외형만을 말하는 건 아닐 걸세. 그렇다면 나머지는 감정일 테지.”
파비안이 소리를 한껏 낮춰 물었다.
“설마 성녀님의 목적이 라고아 경과 그렇고 그런 일을 하는 것에 있다는 겁니까?”
“쯧쯧! 자네 머릿속에는 오직 쾌락밖에 없나?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일세. 쾌락은 그중에 극히 일부일 뿐이고.”
“와…….”
파비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육화를 인간의 구원이라는 고결한 목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쾌락이라니!
하기사 아무리 신이라도 몸이 없으면 쾌감을 느끼지 못할 터였다.
입을 헤 벌리고 있는 파비안에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털어 버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그거야말로 신성 모독이니까.”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여사제들은 남자를 멀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녀님은 남자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해도 괜찮은 겁니까?”
“쯧쯧! 머릿속이 음탕한 생각으로 가득하군.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처음의 마음요?”
“순수한 마음으로 라고아 경과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을 걱정하라 이 말일세.”
“이미 틀렸습니다. 이젠 감정과 쾌락이라는 말밖에 안 떠오릅니다.”
“자네는 보면 볼수록 놀랍군.”
“뭐가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네. 그런데 자네는 그걸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해내고 있잖은가. 신에 대한 경외감을 되찾기 바라네.”
“라고아 경은 신을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나?”
“개미에게는 사람이 신적 존재로 보일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사람이 신입니까?”
“오호! 그래서?”
“신의 앞이라고 주눅 들 거 없다. 인간도 성녀와 잠자리를 할 수 있다.”
“성기사에게 맞아 죽고 싶지 않다면 거기까지만 하게.”
“이르시게요?”
“소드 익스퍼트의 성기사가 이 정도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못 들을 것 같나? 참고로 아까부터 불편한 얼굴로 자네를 힐끔거렸네.”
“그,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설마 모르고 그런 건가? 여하튼 성녀의 잠자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 가지지 말게.”
“제가 언제 성녀의 잠자리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큰일 날 말씀을.”
파비안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왠지 얼굴이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엄지손가락으로 목 긋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엘리오가 루나 마일러스에게 다가갔다.
“우리도 이만 올라가야죠?”
“엘리오.”
“네?”
엘리오가 첫날밤을 치를 때처럼 긴장한 눈으로 루나 마일러스를 보았다.
“겉보기에만 이렇지, 내 나이는 벌써…….”
“그래서요? 막상 다시 만나니 내가 아직도 철이 안 든 것 같아서 싫어요? 삼십 년 넘게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