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9
1259회. 신성 모독이라고요!
세차게 흐르는 물도 여울목에서는 잠시 쉬었다가 가기 마련이다.
대수림으로 가는 모험가와 용병 들에게 리베라 마을이 그런 곳이었다.
대륙 각지에서 몰려든 모험가와 용병 들은 리베라에서 최종적으로 장비를 점검한다거나, 파티에 필요한 인원을 보충했다.
현재 리베라에서 가장 세력이 큰 용병단은 샤크둠이었다.
그 말은 곧 샤크둠이 떠나기 전까지 그들의 말이 법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슈레이거는 ―도살자로 불리는 악명으로 인해― 샤크둠 용병단의 간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도살자 슈레이거가 들으라는 듯 언성을 높이자, 마을에 흩어져 있던 샤크둠 용병단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공터에 모여 있던 모험가와 용병 들이 판을 깔아 주듯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녀 일행을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수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미녀 일행을 에워쌌다.
샤크둠 용병단원들이 모두 모이자 슈레이거의 얼굴에 야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이! 형씨, 이제 슬슬 똥줄이 타지? 그러게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질이야! 옷을 보니 옛날에 신전 밥 좀 먹은 것 같은데, 괜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뒤로 빠져. 이쁜 아가씨들은 우리가 대수림에 모시고 갈게. 거절하면 죽어. 알지? 대수림에서는 우리 뜻이 곧 신의 뜻이야.”
용병의 말을 듣던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비안, 어때? 자신 있어?”
“무슨 자신요?”
“용병들 상대할 자신.”
“저와 하레브(성기사) 님만으로는 안 됩니다. 한 개 소대가 넘는 숫자잖습니까. 거의 두 개 소대쯤 되겠는데요?”
한 개 소대 정원이 십오 명임을 생각하면 두 개 소대는 과장된 것이었다.
“솔론과 타인록도 있잖아.”
“그들이 있어도 무립니다. 두 개 소대쯤 된다니까요.”
“엄살 부리지 말고. 죽을 것 같으면 오마르 경이 도와줄 거야. 그렇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들었지? 가 봐. 그리고 솔론, 크레아, 타인록! 당신들도 가서 도와.”
솔론과 크레아는 군말 없이 성기사의 옆에 가서 섰다.
하지만 타인록은 자신의 애매한 위치를 의식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솔론 남작이야 빚에 묶여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자신은 자유인인 까닭이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뭉그적거리는 그를 보던 엘리오가 차갑게 말했다.
“타인록! 눈알 굴리지 말고 확실히 해! 본인이 동료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지금 떠나. 안 잡아.”
그러자 타인록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나도 모험가님의 동료요?”
“그럼 뭐라고 생각했어? 동료가 별거야? 뜻이 맞아 함께 다니면 동료지.”
“알겠소.”
그제야 타인록은 어딘지 후련한 얼굴로 성기사를 향해 다가갔다.
슈레이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껏 ‘살고 싶으면 뒤로 빠지라’고 경고까지 해 줬는데 넷이나 더 늘어나다니.
어째 제대로 무시를 당한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한 건 비단 슈레이거만이 아니었다.
샤크둠 용병단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이것들이 우리를 뭐로 알고!”
“죽여 버려!”
“여자만 남기고 다 재껴!”
대수림 초입의 리베라는 영주도, 치안대도 없는 그야말로 무법 지대.
용병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천천히 세 남자를 압박해 들어갔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대신관에게 하사받은 롱소드를 뽑았다.
이른바 ‘슈팅 스타’라 불리는 신관급 성기사 전용 검이다.
하지만 아드리아 왕국에서 활동하던 용병들은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이윽고 샤크둠 용병단과 알메트 하레브 일행이 맞부닥쳤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용병들은 미모의 여자를 조심해 다루려 했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크레아가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용병인 까닭이다.
마나의 양과 질에서 여느 소드 익스퍼트보다 강한 성기가 알메트 하레브와 소드 익스퍼트 급인 타인록, 그리고 마검사인 솔론 남작과 소드 비기너 끝자락에 도달한 파비안의 활약 속에서 크레아는 훨훨 날아 다녔다.
용병들은 까딱 잘못하면 자기가 죽을 판이라 이내 죽기 살기로 싸움에 임했다.
챙! 챙! 채앵―!
“윽!”
“크읏!”
실력 차이가 들쑥날쑥인 용병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기사는 그렇다 치고 솔론 남작 일행만 해도 정예라 할 수 있었다.
실력이 달리는 용병들은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사람이 많으면 쓸 만한 사람도 나오는 법이다.
샤크둠 용병단에도 도살자 슈레이거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자 샤크둠 용병단의 정예 용병들이 전면으로 나섰다.
그때부터 싸움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한편 처음 시비가 붙은 사내와 싸우던 슈레이거는 크게 당황했다.
바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게 아니다.
남자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인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조금씩 자신이 밀리는 느낌이다.
‘이거 뭐지?’
슈레이거가 남자를 단숨에 처리하지 못하자 용병 둘이 슬쩍 끼어들었다.
일 대 삼의 싸움이 시작됐다.
정예 용병들이 선두로 나서면서 판세가 뒤바뀌었다.
본래 한 손이 열 손을 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파비안의 염려대로 파비안과 솔론 남작 일행이 수세에 몰렸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이젠 척 봐도 아슬아슬했다.
구경하던 모험가와 용병 들은 샤크둠 용병단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샤크둠 용병단의 최강자는 단장인 일라인 실버인데 아직 일라인 실버와 그의 최측근은 참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라인 실버가 움직이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찌푸린 얼굴로 장내를 응시하던 일라인 실버가 팔짱을 풀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자처하는 라하크와 프랜스가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어들 것처럼 전투 자세를 취했다.
마침내 일라인 실버가 손을 까닥였다.
기다리고 있던 라하크와 프랜스가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용병들이 ‘와아!’ 함성을 지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폭발적인 기세로 적들의 저항 의지를 단숨에 꺾는 절묘한 수법이다.
지금까지 샤크둠 용병단의 적들은 여기서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모험가들은 수세에 몰린 상황임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야수처럼 득달같이 달려가는 라하크와 프랜스의 앞에 누군가 뚝 떨어져 내렸다.
베일럼의 호랑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다.
그가 벼락처럼 휘두른 롱소드에 라하크와 프랜스의 롱소드가 부러졌다.
콰창―!
검만 부러진 게 아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롱소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두 사람의 가슴을 때렸다.
‘꽝!’ 하는 폭발음과 함께 라하크와 프랜스가 뒤로 날아갔다.
흉갑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한 타격에 두 사람은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묵직한 폭발음에 싸움이 한순간 멎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라하크와 프랜스를 본 샤크둠 용병단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기세를 꺾으려다가 도리어 꺾이고 만 셈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덤덤한 얼굴로 일라인 실버에게 손을 까딱였다.
그러나 일라인 실버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도 라하크와 프랜스를 일격에 쓰러뜨릴 수 없는데 상대가 그걸 해냈기 때문이다.
“싸우기 전에 통성명부터 합시다. 나는 샤크둠 용병단의 단장인 일라인 실버요. 당신은 누구요?”
“알 것 없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꿇어라.”
순간 일라인 실버는 울컥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되받아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상대가 소드마스터라면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샤크둠 용병단은 아드리아 왕실에 충성을 다하고 있소. 아드리아 왕실의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꿇어라. 저항하면 죽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롱소드에서 시퍼런 광망이 뻗어 나왔다.
소드마스터의 상징과도 같은 마나 블레이드다.
순간 일라인 실버는 롱소드를 내던지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른 용병들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를 따라 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런 용병들을 한차례 둘러본 뒤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성기사와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의 시선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했다.
모두들 그가 저 사악한 용병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궁금한 얼굴이다.
특히 파비안이 그랬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크룰리에서처럼 용병단의 사지를 잘라 죽이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행동은 전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뚱한 표정으로 용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허리춤을 한차례씩 걷어차기만 했다.
힘을 실어 찬 것도 아닌데 용병들은 칼에 찔린 것처럼 소리를 꽥꽥 질러 댔다.
심지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게 생긴 도살자 슈레이거는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파들파들 떨며 울기까지 했다.
“안 돼! 안 돼에! 크흐흐흑!”
다른 다람들은 그의 절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파비안은 문득 짚이는 바가 있었다.
‘헉! 혹시 영기를 주입시키신 건가?’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용병들을 걷어차고 돌아오자 슬쩍 물었다.
“혹시 푸토코아의 기사들에게 했던 것처럼 저들에게 영기를 주입하셨습니까?”
“어. 아무리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도 성녀님 앞에서 피를 볼 수는 없잖아.”
“…….”
파비안은 동정의 눈으로 용병들을 보았다.
저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뒤늦게 용병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혀를 내둘렀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에게 영기를 주입하다니!
그야말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끔찍한 징벌이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만 깔끔하지, 마나의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강제로 영기를 주입하는 것은 사지를 자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만 튀기지 않았지 한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폐인이 된 샤크둠 용병단은 자신들의 상태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달아나듯 마을을 떠났다.
덕분에 엘리오 일행은 손쉽게 샤크둠 용병단이 사용하던 숙소를 얻을 수 있었다.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아무리 그라도 그렇지,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의 성녀와 한방을 쓰겠다니?
빈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왜 그런 무리수를 두려는지 모르겠다.
“성녀님과 내가 한방을 쓸 거라고. 그러니까 크레아 씨의 방을 알아봐. 정 빈방이 없으면 솔론 남작 일행을 한방에 몰아넣어.”
깜짝 놀란 파비안이 소리를 죽여 말했다.
“라고아 경, 지금까지 잘 참아 오셨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성녀님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렇지, 그건 정말 아닙니다. 행여나 성기사가 알면 진짜 큰일 납니다. 신성 모독이라고요! 이제 와서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과 원수가 될 일 있습니까? 리베라에 용병이 많으니 창녀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