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0
1290회. 웨이브도 지났는데 뭐가 있을라고
다음 날.
엘리오 일행은 파르톤 산과 작별하고 페트라 산을 향해 나아갔다.
파르톤 산을 등지고 걷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지난번에 이쯤에서 암습을 받았는데.”
“아닌데? 거긴 사막이었잖아요?”
크레아의 반박에 하워드 솔론 남작이 설명하듯 말했다.
“물론 방향은 다르지만, 거리상으로 그렇다 이거지. 이쯤 갔을 때 마력탄이…….”
그가 말끝을 흐리자 크레아는 긴장된 얼굴로 연신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푸하핫! 뭘 그렇게 놀라. 아무렴 어떤 멍청이가 같은 짓을 또 하려고? 게다가 우리 뒤통수를 노리던 용병단은 그 자리에서 다 죽었는데.”
하워드 솔론 남작의 놀림에 크레아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혹시나 해서 그런 거죠. 게다가 좀 이상한 것도 있고요.”
“뭐가 이상해?”
“마력총요. 그날 한꺼번에 마력탄 수십 발이 날아들었잖아요? 그 정도로 많은 마력총을 가진 용병단이 있을까요?”
“어비스잖아. 당연히 있지.”
“당연하다고요?”
“제국 군대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지만, 남부 왕국군이 광산을 지키고 있잖아. 어비스에 있는 남부 왕국군에서 마력총이 밀반출됐을 거야.”
“그런가…….”
“군수품 관리자들이 마력총을 뒤로 빼돌려 판매하는 건 유명하잖아.”
그건 사실이다.
군수품 관리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마력총을 빼돌릴 수 있었다.
장부의 숫자만 조작하면 되니 땅 짚고 헤엄치기다.
그들은 숫자를 조작해 빼돌린 부품으로 부대 밖에서 마력총을 재조립한다거나, 멀쩡한 마력총을 ―파손이나 수리 불가 등의 이유로― 폐기 처분했다 하고 암시장에 팔아먹곤 했다.
‘용병단이 왕국의 내전이나 영지전에 참여하고 받은 마력총보다 밀반출된 마력총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크레아는 파르톤 산을 힐끔 돌아보았다.
지난번 암습의 기억 때문인지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든다.
‘그, 그래도 우리에게는 성녀님과 라고아 백작님이 계시니까…….’
일인 군단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어떤 상처도 치유해 주는 성녀가 있으니 겁먹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녀는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엘리오는 귀가 얇은 사람이다.
그는 즉시 파르톤 산 방면으로 영기를 발출해 이상을 점검했다.
영기는 카오스의 영향으로 파르톤 산 중턱에 못 미쳐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 정도 거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까지가 마력총의 유효 사거리이기 때문이다.
꼬박 하루를 이동하자 지평선에 거무스름한 산의 형상이 나타났다.
페트라 산이다.
산이 얼마나 크던지 지평선 전체에 걸쳐 길게 누워 있었다.
에브리마 평원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달랐다.
“와아! 저 정도면 산맥 아닌가요?”
엘리오의 말에 루나 마일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산이 높지는 않은데 정말 넓구나!”
험준한 산봉우리는 없지만 어찌나 넓은지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남부 왕국들이 페트라 산을 독점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엘리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정도 크기면 설사 론디니움 제국이라도 통제가 불가능할 터였다.
페트라 산이 보이는 평원에 엘리오 일행은 야영지를 만들었다.
하워드 솔론 남작과 타인록이 천막 세 개를 세울 동안 파비안도 눈치가 보였는지 간이침상과 탁자 등을 설치했다.
크레아는 파비안이 피운 모닥불에 솥단지를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요리는 크레아의 몫이 됐다.
그녀의 요리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엘리오는 크레아가 원하는 음식 재료를 마하담에서 꺼내 주기만 했다.
그런 엘리오를 옆에서 지켜보던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슬쩍 물었다.
“실례지만 라고아 경의 아공간 창고는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왜요?”
“천막은 물론 탁자와 의자, 침상에 식재료까지……. 끝이 없는 것 같아서요.”
“생각보다 크지 않아요. 영주성 창고 하나 정도 되려나?”
“허! 영주성 창고 하나요?”
성기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공간 창고의 크기는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 높이 1미터다.
고위 마법사들은 그 속에 마법서나 보석, 희귀 연금술 재료 따위를 넣고 다녔다.
천막이나 침상, 탁자 따위의 잡화는 넣을 수도 없다.
‘아니, 설사 공간이 크더라도 아공간 창고에 누가 그런 걸 넣는다고.’
누구라도 비싸고 진귀한 물건들로만 채우려 할 터였다.
그런데 그곳을 생활 잡화로 채우다니.
알메트 하레브는 라고아 백작이 가진 아공간 창고의 크기와 용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일행은 모닥불 주위에서 노닥거리다 하나 둘 흩어졌다.
웨이브가 끝난 어비스의 밤은 적막하기만 했다.
첫 불침번은 타인록이었다.
그는 근처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모닥불 옆에 가득 쌓아 놓았다.
‘이 정도면 밤새 충분하겠지?’
다른 때 같았으면 딱 필요한 만큼만 주워 왔을 테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성녀만 따라다니는 성기사를 제외하면 모두가 가족 같은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는 흐뭇한 눈으로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응시했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 믿어지지 않는다.
처음 하워드 솔론의 호위기사로 배정받을 때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보살핌이었다.
그 결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검술을 배우게 된 때문이다.
아득하던 소드마스터의 경지가 이제는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그것도 무늬만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진짜 소드마스터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배운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는 영기가 가진 힘을 온전히 이끌어 내 준다.
진짜 소드마스터에 육박한 능력을 발휘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응?’
멀리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자 타인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어비스에서 마주치는 것은 뭐든 위험했다.
경각심을 일깨운 타인록은 발소리를 죽이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 모닥불가로 되돌아온 타인록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야영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서다.
“하기야 웨이브도 지났는데 뭐가 있을라고.”
그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은 뒤 품 안에서 육포를 꺼내 씹었다.
***
파르톤 산과 페트라 산의 중간 지역.
추격조가 돌아온 직후 헬독, 바이퍼, 슬라터 용병단장이 다시 모였다.
헬독 용병단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모험가들이 페트라 산으로 가는 것으로 보아…… ‘해골 골짜기’를 통해 미개척지로 가려는 것 같소. 페트라 산에서 기습합시다.”
그러자 바이퍼 용병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될 말이오. 광산에 남부 왕국은 물론 유명 용병단이 죄다 몰려 있는데……. 그곳에서 소란을 일으켰다가는 금방 뒤를 잡히고 말 게요.”
“어비스에서는 남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괜찮소. 자기들 일이 아닌데 누가 우리 뒤를 추격한단 말이오?”
“그야 모를 일. 마력총이 아니라면 봐도 모른 체할 테지만……. 우리가 가진 마력총이 좀 많소? 그 소리면 제국군이 광산에 쳐들어온 줄 알 게요.”
그 말에 헬독 용병단장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정도 마력총 소리면 페트라 산이 뒤집힐 터였다.
하지만 페트라 산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모험가들이 미개척지로 들어가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것 같소?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헬독 용병단은 미개척지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오.”
“알고 있소. 하지만 페트라 산에서 일을 벌일 수는 없소. 그건 우리에게 너무 위험하오. 소란의 원인을 조사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마력총을 노리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소.”
“그렇지만 페트라 산 외에 다른 적당한 장소가 없지 않소. 미개척지로 들어가면 언제, 어디로 돌아올지 모르는데.”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슬라터 용병단장이 입을 열었다.
“미개척지 입구 정도는 괜찮잖아. 입구도 무서워서 못 가겠다면 용병 때려치워야지.”
헬독 용병단장이 신경질적으로 슬라터 용병단장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먼저 미개척지로 들어가자는 거요?”
“뒤를 밟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오래도록 뒤를 따라가다가는 언젠가 들키고 말걸? 우리가 먼저 ‘해골 골짜기’를 통과해 화망을 구성하고 기다리는 건 어때? 웨이브가 끝나서 마물도 어슬렁거리지 않을 거 같은데.”
일리 있는 말이지만 헬독 용병단장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놈들이 ‘해골 골짜기’로 오지 않으면? 모두 헛고생하는 거 아니오?”
“어깨 위에 달린 건 돌덩이리야? 그놈들이 미개척지를 조사했고, 페트라 산으로 가고 있으면 당연히 ‘해골 골짜기’를 지나겠지.”
“아니, 씨벌, 미개척지를 조사했다고 다 미개척지로 간다는 보장이 없잖소. 그냥 거기에 뭐가 있나 싶어 알아본 거면 어쩌려고?”
“어쩌긴 하루 기다렸다가 안 오면 마는 거지. 거기서 살게?”
“누가 거기서 산다고 했소! 어디 가서 놈들을 다시 찾느냐 이 말이오!”
“‘해골 골짜기’로 온다니까.”
“안 오면?”
“와.”
“안 오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오면 얼마 줄래?”
순간 화가 난 헬독 용병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반말하지 마, 이 새끼야! 누군 반말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
지켜보던 바이퍼 용병단장은 제멋대로인 슬라터 용병단장이 폭주할 줄 알고 긴장했다.
그런데 의외로 슬라터 용병단장은 욕을 먹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그럼 해.”
뜻밖의 반응에 헬독 용병단장이 멈칫했다.
한차례 주먹다짐을 기대했는데 어째 말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너무도 차분한 슬라터 용병단장의 태도에 헬독 용병단장은 금방 흥분을 가라앉혔다.
욕을 퍼붓고 응어리졌던 속이 풀어진 것도 한몫했다.
“에이, 말을 말아야지.”
헬독 용병단장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무거운 침묵이 용병단장들 위로 내려앉았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짜던 바이퍼 용병단장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슬라터 용병단장의 의견도 괜찮은 것 같지 않소? 드래곤 레어와도 같은 페트라 산을 피하면, ‘해골 골짜기’ 건너편이 제격이긴 한데……. 아, 물론 저 빌어먹을 놈들이 미개척지로 간다는 전제하에.”
그러자 슬라터 용병단장이 추임새를 넣었다.
“간다니까.”
슬라터 용병단장의 반말에 바이퍼 용병단장은 발끈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 때문이다.
바이퍼 용병단장이 헬독 용병단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헬독 용병단장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 마냥 반대만 하는 것도 모양새가 빠져서다.
그렇게 세 개 용병단은 모험가 일행에 앞서 ‘해골 골짜기’를 통과하기로 했다.
***
모닥불 앞에서 졸던 크레아는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뭐지?’
귀를 쫑끗 세워 보았지만 평원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아아! 놀래라.’
이윽고 그녀는 잠을 쫓기 위해 손바닥으로 머리를 툭툭 때렸다.
반짝―!
때마침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이끌며 밤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어쩌면 저걸 보기 위해 깬 것인지도 모르겠다.
크레아는 재빨리 지금의 일행에 아무런 변고가 생기지 않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