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4
1294회. 저 파츠(parts)들이 강철 골렘입니다
어둡고 컴컴한 갱도에서 웅크리고 있던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말했다.
“다른 데도 다 이런 식이라면 보나 마나 아닙니까? 이제 그만 나가시죠?”
그러자 엘리오는 루나 마일러스를 돌아보았다.
“누님, 어떻게 할까요?”
루나 마일러스가 입을 열기 전에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먼저 말했다.
“외부인들 앞에서는 호칭에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오는 선선히 그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성녀 누님, 어떻게 할까요?”
알메트 하레브는 눈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괜히 호칭 문제로 노튼 셔우드 자작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서다.
“더 봐야지. 하나만 보고 전체를 알 수는 없잖아.”
성녀의 대답에 파비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갱도 속을 헤집고 다닐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거렸다.
“파비안, 눈 떠라. 감고 다니다가 머리통 깨진다.”
“하아! 예…….”
파비안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 무시무시하다는 마의 해역을 항해하고, 전설의 천공성까지 주저하지 않고 갔는데, 왜 이렇게 갱도가 무서운지 모르겠다.
성녀가 다른 갱도를 보겠다고 하자 노튼 셔우드 자작이 다시 선두로 나섰다.
‘제길, 여자가 간도 크지.’
노튼 셔우드 자작은 성녀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던 그는 지지대도 채 갖추지 못한 갱도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지금 개발 중인 갱도입니다. 수정 광맥이 뻗은 방향으로 굴을 파 들어가고 있지요.”
엘리오 일행이 갱도 끝을 보았다.
자작의 말처럼 광부들이 곡괭이로 흙벽을 연신 찍어 대고 있었다.
앞사람이 흙을 긁어내 뒤로 보내면, 뒷사람이 그걸 자루에 담아 한쪽에 쌓았다.
그럼 가장 뒤에 있던 사람이 그걸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엘리오가 자루를 들고 가는 사람을 힐끔 보자 노튼 셔우드 자작이 말했다.
“갱도 밖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흙을 자루에 담아 들고 가야 해서 속도는 더딥니다.”
“갱도에 지지대를 세워야 하지 않아요?”
“물론 세워야지요.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면 알아서 세울 겁니다. 자기들 목숨이 달린 일이라, 그런 건 시키지 않아도 잘합니다.”
그때 곡괭이로 수정 광맥을 건드리는지 ‘캉! 캉!’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엘리오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자 노튼 셔우드 자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곧이어 수정과 마나석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광부는 떨어져 내린 수정 더미를 따로 분류해 한쪽으로 밀어냈다.
또 다른 광부가 빈 자루에 수정을 가득 채운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수정에서 마나석을 분류하는 작업은 갱도 밖에서 합니다. 마나석 감정사도 따로 있지요. 어떻게? 다른 곳을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러자 엘리오는 루나 마일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봐도 모르는지라 그녀에게 맡긴 것이다.
루나 마일러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위쪽을 계속 봤으니, 이번에는 아래쪽도 봤으면 하네요. 아, 북서쪽과 남동쪽이라고 해야 하나요? 쉽게 말해 반대편도 보여 달라는 말이에요.”
순간 노튼 셔우드 자작은 놀란 눈으로 성녀를 보았다.
개미굴로 불리는 갱도에 처음 들어온 성녀가 어떻게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자신도 왕실 감찰관들과 십여 차례 드나드는 과정에 겨우 익힌 지형인데 말이다.
게다가 북서쪽과 남동쪽이라니?
어비스에서 어떻게 동서남북을 구별할 수 있다고?
그런데 성녀의 담담한 얼굴을 보면 왠지 반박하기 어려웠다.
“아, 그게…… 갱도가 개미굴처럼 생겨 먹어서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노튼 셔우드 자작은 반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다시 앞장섰다.
이젠 먼저 보낸 사촌 비셔스 셔우드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플래시(빛을 발하는 마법 도구)를 앞세우고 산만하게 얽힌 갱도 속을 휘젓고 다녔다.
자작의 뒤를 엘리오 일행은 묵묵히 따라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뒤처진 파비안은 숨 한 번 쉴 때마다 탄식을 늘어놓았다.
“하아! 아직 멀었습니까?”
“어이쿠! 머리야! 갱도를 좀 제대로 파지…….”
“셔우드 자작님!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못 쉬겠습니다. 이거 괜찮은 겁니까?”
듣다 못한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작작 하게. 남작은 기사가 돼서 이 정도도 참지 못하는가.”
“말씀 잘하셨습니다. 제가 기사지 광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기사가 하는 일과 광부가 하는 일은 엄연히 다릅니다.”
“어휴! 말이나 못하면.”
알메트 하레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남작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닌지라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도 좁은 땅굴 속을 다니는 게 영 불안했다.
근처에서 아주 작은 사고만 터져도 이대로 생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이 극에 달할 즈음, 노튼 셔우드 자작이 두 갈래로 갈라진 갱도 앞에서 멈춰 섰다.
어디로 갈지 망설이던 그가 왼쪽으로 접어들었을 때다.
“잠깐.”
엘리오가 노튼 셔우드 자작을 불러 세웠다.
자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노튼 자작. 내가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둡고 좁은 곳을 싫어합니다. 이만하면 많이 참아 줬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성녀 누님, 노튼 자작이 남동쪽으로 가고 있어요?”
“아니, 남서쪽으로 가는 중이야.”
“아래서도 반대편으로 가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안 되겠네. 내가 진짜 어지간하면 믿고 가는 사람인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노튼 셔우드 자작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바, 반대쪽이라니요? 그건 오해십니다. 갱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보니…….”
“됐고요. 파비안이 힘들어 하니까 빨리 가자고요.”
“아, 예. 조금 서둘러 보겠습…….”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오가 언법을 사용했다.
“빈 들판의 아들(공야자)과 늙지 않는 푸름(청불노)의 제자, 남쪽 하늘 연못(연남천)의 이름으로 명하니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하십쇼. 페르돔 광산에서 마도 시대 유물인 강철 골렘이 발굴됐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예, 발굴됐습니다. 어이쿠! 제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왜 입이 따로 놀지?”
노튼 셔우드 자작이 손바닥으로 제 입을 철썩철썩 후려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계속해서 말했다.
“강철 골렘이 발굴된 갱도가 남동쪽에 있습니까?”
“예, 남동쪽의 갱도에서 나왔습니다. 헉! 저에게 지금 정신 조작 마법을 거신 겁니까?”
뒤늦게 상황을 인식한 노튼 셔우드 자작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정신 조작 마법에 당했으니 그 후유증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요. 정신 조작 마법과는 다른 거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에 따른 후유증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제 그만 빙빙 돌리고 강철 골렘을 발굴한 곳으로 안내해 주시죠. 노튼 자작도 나를 쫓아내고 싶을 거 아닙니까.”
“하아! 정말 후유증이 없습니까?”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죠. 후유증 없습니다.”
“송구합니다만 마검사시니 마나를 걸고 맹세해 주십쇼.”
기사의 명예야 있으나 없으나 그만이니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마나의 맹세는 다르다.
마나를 두고 허튼 맹세를 하면 마나의 축복이 사라진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나의 맹세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엘리오는 영기 수련자라 하나 마나 한 맹세지만 상대가 하라니 했다.
“후유증이 없다는 것을 마나를 두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강철 골렘이 발굴된 곳을 구경시켜 주시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발굴 현장을 보셨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떠벌리려고 해도 말할 사람이 없어요. 내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지 않아요.”
그러자 파비안이 불쑥 끼어들었다.
“사실입니다. 라고아 백작님은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습니다.”
파비안의 말에 발끈한 엘리오가 반박했다.
“야! 원만하지 않다니? 북부에서 빙벽을 지키느라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나를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네?”
“그 와중에 만난 사람의 절반은 두드려 패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걸 원만하지 않다고 하는 겁니다.”
“그거야 상대가 나쁜 짓을 하니까 그런 거지. 나는 남이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한 그루 나무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이야.”
“예, 치명적인 가시가 많은 나무죠. 건드린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그게 나무 잘못은 아니잖아. 건드린 사람들 잘못이지.”
엘리오도 양심이 있는지라 완전히 부인은 하지 않았다.
듣고 있던 노튼 셔우드 자작이 확인하듯 말했다.
“그럼 백작님 약속만 믿고 가겠습니다.”
“노튼 자작, 말만 하지 말고 좀 갑시다. 얼른 보고 나가게.”
엘리오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그제야 돌아와 오른쪽 갱도로 진입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자 좁던 갱도가 갑자기 넓어졌다.
그뿐 아니다.
갱도 벽에는 플래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혀 있었다.
마침내 노튼 셔우드 자작이 멈춰 섰다.
사람 하나 들락거리던 갱도와 달리 십여 미터 폭의 거대한 공동(空洞)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명의 광부들이 동굴 벽에 달라붙어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수정이 아니라 강철로 된 덩어리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노튼 셔우드 자작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가 마도 시대 유물이 출토된 갱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수정 광맥이 아니라, 강철로 된 파츠(parts)가 묻혀 있습니다.”
“강철 파츠요?”
“그렇습니다. 강철 골렘이 원형으로 나온 건 아닙니다. 저 파츠들이 강철 골렘입니다.”
“저걸 마도 공학자들이 조립을 한 겁니까?”
“아니요. 그럴 만한 마도 공학자는 세상에 없을 겁니다. 파츠들이 스스로 한데 뭉쳐서 형상을 이룹니다. 저렇게요.”
노튼 셔우드 자작의 손가락이 공동 한쪽을 가리켰다.
강철 덩어리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일정한 모습을 갖춰 나갔다.
골렘의 손가락은 물론, 팔이나 다리의 관절 부위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엘리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람이 조립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모양을 만들다니!
마치 마법을 보는 것 같았다.
조립된 부품들은 ―두 개의 선로 위에 놓인― 강철 상자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졌다.
“저게 강철 골렘이 된다는 건가요?”
“이곳에서는 강철 조각들이 서로 끌어당겨 뭔가 만들어집니다만, 조립 공장에 가면 사람이 조금 거들어 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위치를 잡아 주지 않으면 서로 호응하지 않거든요.”
그러자 루나 마일러스가 말했다.
“그건 조립된 파츠의 무게 때문에 그럴 거예요. 서로를 당기는 힘보다 무게가 무거우면,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맞습니다. 양쪽의 생김새를 보아 서로 맞겠다 싶은 파츠를 가까이 대면, 철썩 하고 달라붙습니다. 서로 다른 부위는 들이밀어도 안 붙습니다.”
비밀을 공유하게 된 때문일까?
노튼 셔우드 자작은 묻지도 않았는데 강철 골렘의 제작 공정을 술술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