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
130회. 심 노인이 총순찰 같아
일단 머릿수에서 밀리는 건원과 조정은 이를 악물고 심통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나 수적 우위에 있는 만리상방의 무사들은 달랐다.
특히나 대주인 경첨은 직접 모욕당한 당사자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보시오! 지금 나에게 놈이라고 했소?”
경첨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지만 구천노도 심통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크흐흣! 그럼 네가 놈이지 년이냐?”
심통의 조롱에 경첨의 수하들이 울컥한 얼굴로 도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만약 경첨이 성급 무위를 지녔다면 상대를 알아보는 안목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고작 현급 고수.
당연히 심통의 전신에 희미하게 서려 있는 무형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오냐! 이 늙은이야!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보자! 얘들아! 쳐라!”
경첨과 아홉 명의 무사들이 도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심통이 천지가 흔들릴 정도로 고함을 내질렀다.
“이놈의 개 종자들! 감히 녹림 총순찰님 앞에서 날붙이를 꺼내다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심통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휙 사라지더니 경첨 앞에 불쑥 솟아났다.
“헉!”
깜짝 놀란 경첨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심통의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퍽!
경첨은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걸 느끼며 한 바퀴 빙그르 돌았다.
거의 동시에 만리상방의 무사들 역시 한 대씩 맞고 나가떨어졌다.
휘청거리던 경첨이 겨우 자세를 바르게 했을 때는 이미 모두 끝난 뒤였다.
심통은 만리상방 무사들을 한 대씩 때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강한 태풍이 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제야 경첨은 노인이 천하의 고수임을 깨닫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뒷짐까지 지고 오연한 표정으로 서 있던 심통이 경첨에게 눈을 부라렸다.
찔끔 놀란 경첨이 어깨를 움츠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걸 보고 있던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가만 보면 심 노인이 녹림 총순찰 같아. 아주 호가호위가 따로 없어.”
“공자님, 호가호위가 무슨 말입니까?”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서 행세한다는 뜻이야.”
“흐흐! 예, 맞습니다. 공자님이 호랑이시고 제가 늙은 여우지요.”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놀리느라 쓴 말인데 심통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묘사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경첨은 청년과 노인의 대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저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녹림 총순찰인 건가?’
문득 ‘그에게 찍혀 정주의 유명 무가 세 개가 망했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곳 출신의 제자들은 상방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순하다 못해 멍해 보이는 얼굴로 그렇게 독랄한 짓을 하다니!
정말 외형만 봐서는 모를 일이다.
그때 심통이 경첨과 그 일행들을 보며 물었다.
“공자님, 저 싸가지 없는 놈들을 어떻게 할까요?”
“또 무슨 못된 짓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걸 물어? 나이를 먹었으면 사람이 혈기도 죽이고 그래야지. 아직도 자기가 십 대인 줄 알아?”
“어이쿠! 못된 짓이라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공자님을 무시하는 놈들은 용서가 안 돼서 그럽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어?”
“공자님 앞에서 칼을 들고 설쳤으니, 엄청 무시한 거지요. 저놈들이 파천마군 님 앞이라면 감히 칼을 뽑았겠습니까? 만만해 보이니까 그랬던 겁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경첨이 극구 부인했다.
“아, 아닙니다! 무시라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소협께서 녹림 총순찰이신 걸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칼에는 손도 대지 않았을 겁니다.”
“닥치거라! 이놈! 죄 중에 으뜸이 아무것도 모르는 죄다! 누구 앞에서 잔대가리를 굴리고 있어? 주둥이를 잡아 꽉 찢어 버릴까 보다!”
과거 구밀복검이라 불리던 심통은 상대의 어쭙잖은 변명에 짜증이 확 치밀었다.
만만하게 보고 설쳐 댔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디서 개소리란 말인가!
‘헙!’
흉포한 심통의 말에 경첨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녹림의 고수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음이 있어서다.
‘만만해 보였다’는 심통의 말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모르고를 떠나 일단 만만하게 본 것은 사실 같았다.
그건 은근슬쩍 설차수 일행 뒤에 숨은 건원과 조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태연하게 설차수 일행을 끌어들여 화를 모면하려 했다.
‘이 사람들을 어쩐다.’
잠시 상방 무사들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
“예.”
“밤새 불이나 때게 해. 불이 꺼지거나 약해지면 팔다리를 부러뜨려 버려.”
“그냥 잘라 버리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들었느냐? 지금부터 돌아가면서 불을 지켜라. 만약 불에 문제가 생기면 네놈들의 사지를 부러뜨릴 것이다.”
건원과 조정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만리상방에 넘겨지는 것보다 좋은 일이지만 은근 자존심이 상했다.
경첨 일행이 느끼는 좌절도 그들 못지않았다.
녹림도를 위해 밤새 불 관리나 하게 생겼으니 평생의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었다.
겨울밤은 길다.
노숙을 할 때는 더더욱 길게 느껴진다.
모닥불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남궁천이 연적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적하야.”
“예.”
“시간도 안 가는데 오랜만에 비무나 해 볼까? 내력은 쓰지 말고 초식으로만.”
말이 비무지 사실은 ‘무공 수련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소리였다.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시간이 안 간다고 비무를 하자는 걸 보니 남궁천은 천생 무인이다.
“그러죠.”
연적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전과 달리 이제는 검의 조절에 익숙해서 남궁천을 다치지 않게 할 자신이 있었다.
모닥불 주위에 둥그렇게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절반이 반대편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연적하와 남궁천이 그 맞은편으로 가서 마주 보고 섰다.
사람들은 모닥불과 마차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남궁연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간 진설하가 슬쩍 말을 걸었다.
“연 소협과는 어릴 때 만나셨다면서요?”
“네.”
그간의 동행으로 제법 친해져서 그런지 남궁연은 무덤덤한 얼굴이다.
“어렸을 때 어땠어요?”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예?”
뜻밖의 대답에 진설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아직 연적하가 와룡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남궁연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
바로 그때 연적하와 남궁천의 비무가 시작됐다.
남궁천이 먼저 건곤무종보를 밟으며 다가가 대연검법을 펼쳤다.
연적하는 가볍게 그의 검을 받아 주었다.
차차차창-.
한차례 현란한 검격이 두 사람 사이를 오고 갔다.
잠시 거리를 벌렸던 남궁천이 단숨에 대연검법 십이 식을 풀어냈다.
이미 검의 고수인 남궁천은 거리 조절에 능숙했다.
검 끝이 파도처럼 연적하에게 밀려 갔다가 홀연히 물러났다.
연적하의 경우, 실전으로 검술이 다져졌다고는 하지만 남궁천만큼 섬세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남궁천과의 비무는 그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남궁천의 검법이 자연스럽게 제왕검형으로 넘어갔다.
대연검법이 차분하고 우아하다면 제왕검형은 말 그대로 제왕의 기세였다.
내력을 신지 않았음에도 검풍이 쉬익 쉬익 뻗어 나갔다.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구천세법을 응용해 받아 냈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초식과 무초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습이다.
그런 연적하의 모습에 남궁천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밀어붙이려고만 하더니 이젠 들어오고 나가는 게 부드럽다.
남궁천은 외부인들 앞인지라 최후의 절초인 창궁무애검법을 꺼내지 않았다.
물론 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무사들도 없었지만 만사가 불여 튼튼이라 하지 않던가!
남궁천이 다시 대연검법으로 돌아가자 연적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대로 끝내려니 뭔가 심심한 느낌이다.
차라랑.
돌연 연적하가 힘주어 검을 쳐올리자 남궁천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순간 연적하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 갔다.
동시에 상단에서 검이 벼락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구천세법의 이 식 용무천상이다.
초식의 응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정하고 펼치는 용무천상은 무시무시했다.
내력을 쓰지 않았음에도 칼끝에서 일어난 검풍이 남궁천에게 몰아쳐 갔다.
“헉!”
대경실색한 남궁천은 건곤무종보로 피하며 현란하게 검을 흔들었다.
치익. 치익. 치익. 치익-.
남궁천의 검이 검풍을 가를 때마다 허공에서 비단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왕검형과 대연검법이 뒤죽박죽 섞였다.
나중에는 뭐가 뭔지도 모를 초식들이 남궁천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남궁천은 뭔가에 홀린 듯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용무천상의 끝에서 연적하는 검을 곧게 뻗으며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렸다.
쉬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칼날 같은 검풍이 남궁천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남궁천은 본능적으로 검을 세웠다.
창궁무애검법의 기수식이다.
짓쳐들어오는 검풍 앞에서도 남궁천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파앗.
남궁천의 검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검풍이 흩어졌다.
남궁천은 위험이 사라졌음에도 생각에 잠겨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비무는 그것으로 끝났다.
복성상방 통천대 대주 건원과 만리상방 소천대 대주 경첨의 눈이 마주쳤다.
건원은 경첨의 눈빛에서 그도 저 사내의 정체를 모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외천의 고수가 한둘이 아니구나!’
내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저토록 강맹한 검풍이라니?
그것도 그렇지만 칼이 번득이는 것만 봤지 검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쉬지 않고 칼이 부닥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연적하야 녹림의 총순찰이니 그렇다 쳐도, 저 삼십 대 남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가 마지막에 보인 자세는 정중동(靜中動)의 극치 같던데…….’
삼십 대에 그게 가능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비무가 끝나자 진설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드디어 끝났네요. 그런데 아까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말은 뭔가요? 혹시 연 소협 집안이 무림의 시비에 휘말리기라도 했나요?”
“음, 그건 직접 듣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남궁연은 ‘타인이 연적하의 아픈 과거를 두고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 말할지 말지는 연적하가 결정할 문제였다.
“아, 네.”
눈치 빠른 진설하는 더 묻지 않았다.
비무를 보고 난 뒤로 상방의 무사들은 연적하 일행과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날라 불을 피웠다.
녹림 총순찰이 자신들의 소속을 알기에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연적하는 상방 무사들을 보내 주었다.
밤새 일하느라 축 처져 있던 상방 무사들은 살았다는 얼굴로 뿔뿔이 흩어졌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던가!
얼어붙은 건량을 씹던 이사가 다시 한번 솥단지를 걸었다.
연적하 일행이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행복한 얼굴로 냄새를 맡고 있을 때다.
광명장원의 고수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주위를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