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
131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연적하 일행은 침을 삼키며 기대에 찬 눈으로 솥단지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면 그냥 여행 중인 사람들 같다.
실제로 처음의 긴장도 지금은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태산에서의 승리에 이어 어제는 광명장원의 유명교도들이 꼬리를 말고 달아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연적하 일행은 일상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에 취해 현실을 망각 했다. 물론 그런 순간의 여유들이 지친 삶에 위로가 되니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저 멀리에서 광명장원의 유명교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흑암대의 고수 스물과 흑백쌍마, 그리고 암혼귀살 사도영이다.
전방을 살피던 흑마 장단평이 물었다.
“고만고만한 놈들만 모여 있으니 알아볼 수가 없군. 저놈들 중에 연적하란 놈이 있느냐?”
같은 십두마병이라 해도 흑백쌍마와 사도영 간에는 서열이 존재했다.
“마차를 등지고 앉은 어린놈입니다.”
사도영의 대답에 흑백쌍마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했다.
백마 주유심이 중얼거렸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네가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뛰어난 무위를 지닌 놈입니다.”
“흥! 자신 없는 얼굴 하지 마라. 놈이 어미의 배 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혔다 해도 우리에게는 안 된다.”
장단평이 가볍게 사도영을 나무랐다.
솔직히 사도영은 조금 억울했지만 변명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주유심이 말했다.
“우리가 놈을 맡겠다. 그동안 너는 흑암대를 데리고 주변을 정리해라. 최대한 저 어린놈의 정신을 사납게 만들어야 한다.”
“예.”
산책하듯 천천히 걷던 흑백쌍마가 돌연 앞쪽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사도영이 흑암대의 수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 들었겠지? 흑백쌍마께서 연적하를 끌어내면 나머지를 처리한다.”
“예!”
흑암대 고수들의 시선이 흑백쌍마의 뒤를 좇았다.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장단평이 검을 뽑아 들고 버럭 소리쳤다.
“우리는 광명장원의 흑백쌍마시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는 나와서 칼을 받아라!”
연적하가 아쉬운 눈으로 솥단지를 일견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를 향해 화용독심 남궁연이 빠르게 말했다.
“적하야. 십두마병이 누군지 모르니까 고수들은 한 번에 한 사람씩. 알지?”
십두마병을 동시에 죽였다가는 뒷감당이 어려우니 당연한 주문이었다.
“옙!”
이윽고 연적하가 검을 빼 들고 마주 달려갔다.
“그래! 내가 연적하다! 식전 댓바람부터 왜 몰려와서 난리야! 배고프니 빨리 끝내자!”
차차차창!
세 사람의 검이 중간에서 빠르게 얽혀들었다.
흑백쌍마는 오랜 세월 합격술을 갈고닦은 사람들인지라 마치 한 몸 같았다.
하나가 위를 공격하면 다른 하나는 아래를 노렸다.
연적하가 반격이라도 하려 하면 하나는 막고, 다른 하나는 저돌적으로 몰아쳐 왔다.
둘의 치고 빠짐이 어찌나 정교하던지 연적하는 한동안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었다.
사도영이 흑암대 고수 스물을 이끌고 나머지 공략에 나섰다.
구천노도 심통이 사도영을 막아섰다.
“혹시 네놈도 십두마병이냐?”
“흥!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다. 너희는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테니까. 쳐라!”
순간 흑암대 고수 스물이 나머지 다섯을 향해 쇄도해 갔다.
곧이어 흑암대 고수들과 연적하 일행의 혼전이 시작됐다.
청운검 남궁천과 남궁연의 경우 자타가 인정하는 고수지만 설차수 일행은 다르다.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의 무공은 흑암대에 밀렸다.
결국 남궁천과 남궁연은 설차수 일행을 보호하면서 싸워야 했다.
그래도 남궁천의 무위가 눈에 띄게 뛰어나 전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격렬한 시작과 달리 싸움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흑백쌍마는 강호 사파에서 녹림삼존만큼이나 유명한 전대의 마두들이다. 한때 그 다섯을 가리켜 오마왕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흑백쌍마가 십두마병의 공력을 얻었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다.
게다가 둘은 붙어 다니며 평생을 함께 싸웠던지라 합격술이 남달랐다.
연적하는 하나씩 처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곤란하기는 심통도 마찬가지였다.
심통의 무위는 사도영보다 뛰어났지만 연적하를 기다려야 하므로 시간을 끌었다.
그런데 사도영은 심통이 자신을 봐 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점점 광포하게 몰아붙였다.
사도영이 심통보다 뛰어난 것은 내공밖에 없다.
내공이 뒷받침된 무식한 공격은 초식의 오묘함을 종종 뛰어넘는다.
그러다 보니 심통과 사도영 사이에는 아슬아슬한 공방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헛!”
검을 휘두르던 사도영이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심통의 유엽도가 벼락처럼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치만 안쪽 방향으로 틀어졌어도 목이 꿰뚫려 죽고 말았으리라.
‘이런 우라질!’
심통의 얼굴이 한순간 굳었다.
그는 깜짝 놀라 가슴까지 철렁했다.
위기의 순간에 도를 내질렀는데 그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뻔했다.
한편 사도영은 아까부터 피해 다니던 심통에게 역습당했다고 착각해 이를 갈았다.
“이런 교활한 늙은이가! 감히!”
흥분한 사도영의 검식이 더욱 거칠어졌다.
사도영의 흉성이 폭발한 만큼 심통은 더욱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이대로라면 그를 살리려다가 자신이 죽게 될 판이다.
‘옘병!’
진땀을 흘리던 심통의 연적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연적하와 두 노마의 싸움은 팽팽하기만 했다.
‘공자님! 빨리 좀…….’
심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자신이 삼화취정의 단계에 올랐다 해도 앞뒤 없이 달려드는 십두마병과 적당히 어울려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윽!”
흑암대 고수 하나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남궁연의 검이 금방 새로운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벌써 그녀 손에 쓰러진 흑암대 고수가 셋이다.
남궁천에게 당한 자가 둘임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흑암대 고수들은 은연중에 남궁연과의 싸움을 피했다.
아무리 남궁천과 남궁연이 잘 싸운다 해도 모든 방위를 틀어막을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자 설차수 일행도 조금씩 흑암대와 얽혀 들어갔다.
그 와중에 흑암대 고수의 검이 설차수의 어깨를 가볍게 찔렀다.
“윽!”
마침내 설차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어깨를 부여잡고 뒷걸음질 쳤지만 흑암대 고수는 놓치지 않았다.
쉬이익. 쉭.
흑암대 고수의 검이 설차수를 핍박해 들어갔다.
깜짝 놀란 진설하가 재빨리 검을 틀어 흑암대 고수를 막았다.
진설하의 방비가 허술해진 순간이다.
빈틈을 노려 이번에는 다른 흑암대 고수가 흉맹하게 도를 휘둘렀다.
도가 진설하의 허리로 파고드는 것을 본 유근식이 끼어들어 막았다.
그런 유근식의 등을 흑암대의 검이 가르고 지나갔다.
“크윽!”
비명과 함께 유근식이 쓰러졌다.
“사형!”
진설하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남궁연이 뛰어들어 검을 세차게 흔들었다.
흑암대 고수를 향해 세 개의 검형(劍形)이 도도하게 밀려갔다.
대경실색한 흑암대원이 황망 중에 하나를 쳐 냈지만 나머지 두 개는 막지 못했다.
콰아앙!
“아악!”
검형에 맞은 흑암대 고수의 상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뜻밖의 신위에 진설하는 물론 남궁천까지도 눈을 부릅떴다.
제왕검형의 극에 도달하면 검기가 유형화된다.
남궁천은 하나의 검형을 만들고 남궁세가에서 무공 기재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남궁연은 그것을 무려 세 개나 뽑아낸 것이다.
뒤늦게 남궁연이 아차 싶은 얼굴로 남궁천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궁천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세워 보였다.
쓰러진 유근식과 부상을 당한 설차수를 본 남궁연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동안은 오라버니를 위해 애써 감추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자신이 무위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더 다치게 될지 모르는 상황.
남궁연은 동행하던 세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궁연이 창궁대연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휘이잉-.
남궁연의 옷자락이 강력한 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세차게 펄럭였다.
“차핫!”
남궁연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며 주변을 휩쓸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는 남궁세가의 절기 건곤무종보가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남궁천의 보법과 달랐다.
남궁연의 신형은 잔상만 남기고 유령처럼 설차수 일행의 주위를 맴돌았다.
차차차창-.
건곤무종보와 대연검법의 조화는 일전에 남궁천이 보여 줬던 것과는 격이 달랐다.
흑암대원들은 흐릿한 잔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연검법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병장기가 잘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섯이 픽픽 쓰러졌다.
흑암대 중에 아홉이 남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그들은 수비로 돌아섰다.
살다 보면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딱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연적하 일행의 싸움이 그랬다.
남궁연은 연적하에게 차례로 처리해야 한다고 새삼 주의를 주었다.
심통이 사도영과의 싸움을 질질 끈 것도 그래서다.
누가 십두마병인지 정확지 않지만, 유비무환이라고 위험한 일은 피하는 게 좋다.
그건 심통도 연적하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일이었다.
그래서 심통은 위태한 와중에도 사도영의 목숨을 취하지는 않았다.
유근식의 부상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본 심통의 집중력이 한순간 살짝 흔들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도영이 검을 뻗었다.
심통의 유엽도가 ‘챙’ 하고 뒤로 튕겨 난 순간, 사도영의 검 끝이 그의 심장을 노렸다.
심통은 한 바퀴 몸을 돌리며 유엽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건 그냥 오랜 세월 몸에 익은, 회피 후의 반격이라는 기본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일격필살의 수법으로 한 걸음 깊게 내디뎠던 사도영이 거기에 걸려 버렸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그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서걱.
유엽도의 날카로운 칼끝이 사도영의 목울대를 깔끔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큭!”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도영이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손아귀 사이로 붉은 피가 꿀렁꿀렁 솟아났다.
가슴이 철렁한 심통은 급히 연적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아, 안 돼!”
하필이면 바로 그때 연적하의 검이 장단평의 심장을 깊게 찌르고 있었다.
장단평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씨펄, 천하를 오시하던 흑마가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당했다고?’
뒤이어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장 아우!”
옆에 있던 주유심이 절규했다.
한 갑자(60년) 이상 함께 지낸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니 놀란 것이다.
사도영의 신형이 뒤로 넘어가고, 연이어 장단평이 털썩 주저앉았다.
연적하는 심통의 고함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헉!’
바닥에 길게 널브러진 사도영의 몸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급히 앞을 보니 장단평도 회생하긴 틀린 얼굴이다.
‘망한 건가?’
멍하니 서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소리쳤다.
“적하야! 네 앞의 마두에게 집중해! 여기보다는 그쪽이 먼저 죽을 거야!”
연적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연이 우선순위를 정해 주자 헝클어졌던 머리가 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