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8
1318회. 당신도 마나의 냄새를 맡은 거야?
쿰이 사라지자 엘리오 일행은 둔덕 끝에 일렬로 섰다.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거대한 신전의 모습은, 비록 그것이 박쥐라 불리는 우샤스 운드라의 것이지만 숨 막힐 정도로 웅장했다.
파비안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대단하네요. 마나 프트라스의 신전보다 큰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우샤스 운드라가 아니라 악신 샤이틴의 신전 아닙니까?”
하워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했다.
“아니야. 기간타스 대족장이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마족 세계에서 우샤스 운드라의 위치가 생각보다 높은 거 아닙니까? 박쥐라고 부를 정도로 경멸하는 신에게 저런 신전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엘리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신전은 우샤스 운드라에 대한 기간타스들의 평가와 어울리지 않았다.
“대장정의 끝이 보이는 듯하네요.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아침에 신전으로 가겠습니다. 혹시라도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은…….”
‘남아 있어도 된다’고 하려던 엘리오는 말을 흐렸다.
그랬다가 다른 마족의 눈에 띄면 비참한 꼴을 면치 못할 게 분명해서다.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파비안이 기어코 한마디 했다.
“미개척지에서 라고아 경의 옆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런 거지.”
“우리는 오래전에 라고아 경과 함께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선택의 기회를 때마다 주려고 그러십니까?”
“신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그래.”
“왜요? 마족이 많으니 부담되십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타메이온도 자기 집처럼 휘젓고 다니신 분이 무슨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몰록의 성에 비하면 신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순간 엘리오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코디악에 있던 몰록의 성에는 이보다 많은 마족이 있었다.
잠시 후 사위가 어두워지자 분지 곳곳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신전 건축에 동원된 마족 중 일부가 모닥불을 피운 것이다.
엘리오 일행은 천막을 치지 않고 다른 마족들처럼 모닥불만 피웠다.
캄캄한 가운데 반짝이는 불빛을 보던 크레아가 말했다.
“저 불빛만 보면 여기가 에브리마 평원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그녀의 연인인 하워드가 즉시 말을 받았다.
“그러게 나름 분위기가 있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심술맞은 파비안이 초를 쳤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끔찍할 거다. 발리족이 낙오된 부라퀴족 남자를 뜯어 먹고 있을지도 몰라.”
엘리오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이 헛헛할 시간이긴 하지.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히고 앉아 있을걸?”
크레아가 인상을 찌푸리자 하워드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형님. 몰록의 성 얘기나 좀 해 주십쇼. 그때가 지금보다 마족이 더 많았다면서요? 마족은 인간을 가축으로 여기는데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파비안이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위험하지 않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마족들이 나를 볼 때마다 침을 줄줄 흘렸다.”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어떻게? 그냥 라고아 경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 화장실까지 따라갔다.”
“진짜요?”
“어, 잠깐이라도 라고아 경의 눈에서 멀어지면 바로 잡아먹힐 것 같았거든.”
“마족들이 라고아 경을 두려워했다면서요? 그런데도 형님을 잡아먹습니까?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마족들이 다 생각하면서 사는 줄 아냐? 머리보다 본능을 앞세우는 것들도 많아.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는데 소름이 돋더라.”
“아아…….”
하워드의 입에서 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마족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그러니 어떻게 해? 라고아 경의 바지 자락을 잡고 늘어져야지.”
“우리도 그래야 하는 거죠?”
“어.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 라고아 경의 옆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늘이 무너져도 라고아 경 옆에 있으면 살 수 있을걸?”
그러자 엘리오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면 나도 죽어.”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북부의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졌을 때 그도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에이, 라고아 경은 안 죽을 겁니다.”
“누가 그래? 나도 메테오 스웜 맞아서 죽을 뻔했어.”
“…….”
그가 궁극의 마법인 메테오 스웜을 거론하자 한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한참 만에 파비안이 입을 열었다.
“험, 험, 메테오 스웜이 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모르지. 우샤스 운드라가 개입된 일이라면 이곳에 또 떨어질 수도 있어.”
“서, 설마요.”
“우샤스 운드라를 위해 짓는 신전을 봐. 메테오 스웜보다 더한 능력이 있을 수도 있어.”
“왜 그렇게 나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샤스 운드라를 죽일 자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왠지 꺼림칙하네.”
“라고아 경이 이기실 겁니다. 태양신도 죽였는데 박쥐 한 마리 못 잡으실라고요.”
파비안은 의도적으로 우샤스 운드라를 폄하했다.
그렇게라도 라고아 백작의 자신감을 살려 주고 싶었다.
“나도 태양신만 생각하고 왔는데……. 신전을 보니 느낌이 좀 이상해.”
구주에서는 카마 데비아스(천자마)가 우샤스 운드라(금사)보다 상위의 존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카마 데비아스는 어딘지 묘했다.
태양신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은둔을 선택한 신이었다.
그에 반해 우샤스 운드라는 어비스의 마족들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전까지 세워 주고 있다.
북부에서 남부, 그것도 땅 밑에 있는 어비스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어쩌면 카마 데비아스보다 우샤스 운드라가 더 어려운 상대일지 모른다.
“신전은 악신 샤이틴의 입김으로 그렇게 됐을 겁니다. 기간타스들도 우샤스 운드라를 ‘박쥐’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우샤스 운드라가 악신 샤이틴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잖아.”
“샤이틴이 베풀어 준 것일 수도 있지요.”
“악신 소리를 듣는 신이 베풀어 준다고?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하지 마.”
“쩝, 그래도 저는 라고아 경이 이길 거라고 믿습니다.”
“나도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질 거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엘리오는 자신의 말에 모순이 있음을 알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워드가 짐짓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
“인생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어차피 태어나면 한 번은 죽는 인생, 저는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나는 용 머리 산 암벽에 이름을 새기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저도 만족해요.”
크레아의 표정도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이윽고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의 시선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한마디 하는 분위기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흐음! 나는…….”
그때 마족 두 명이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발리족 족장인 맨자민 리마와 부라퀴족으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하던 말을 멈추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드마스터인 그가 긴장할 정도로 남자의 기세는 무지막지했다.
한 박자 늦게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직 엘리오만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맨자민 리마가 자신들을 빤히 보는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라자 코트라 님. 저 부라퀴족 사내가 자신을 마족 군주라고 했습니다.”
무리를 둘러보던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가 눈을 찌푸렸다.
“맨자민. 저들은 부라퀴족이 아니라 인간이다.”
깜짝 놀란 맨자민 리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예에? 인간이라고요? 그, 그럴 리가.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그건 내가 묻고 싶구나.”
이윽고 라자 코트라는 청년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인간이여, 너희는 왜 부라퀴족 행세를 했느냐?”
“너희가 아니라 부라퀴족이라고 한 건 나야. 이 사람들은 내 일행이고. 당신이 어비스에 있는 부라퀴족의 대족장인가?”
“그래, 내가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다. 너 역시 인간으로 보이는데 왜 자신을 부라퀴족이라 하느냐?”
“내가 인간으로 보인다니 허풍이 심하군. 나는 부라퀴족 출신의 군주인 엘리오 라고아다. 군주에 대한 예의부터 갖추어라.”
말과 함께 엘리오는 라자 코트라와 맨자민 리마에게 영기를 발출했다.
쓰아아아―.
들판에 강풍이 불어오는 듯한 맑은 소리와 함께 미증유의 힘이 두 마족을 쓸어 갔다.
발리족 족장인 맨자민 리마는 저항했지만 이내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맨자민 리마보다는 오래 버텼지만 그 역시 석화 저주에 당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엘리오가 허공을 움켜잡자 라자 코트라의 몸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었다.
후드드득―!
대족장이 다가오자 엘리오는 그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코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직도 내가 인간으로 보여?”
엘리오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마주한 라자 코트라는 흠칫 놀랐다.
밤하늘처럼 새카만 눈동자는 심연을 보는 듯했다.
대족장인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힘도 그렇지만, 저 눈빛은 결단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아,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로군. 부라퀴족 대족장이 될 만도 해.”
엘리오는 잡았던 멱살을 놓고, 주먹으로 그를 가볍게 툭 밀었다.
라자 코트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 맨자민 리마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라자 코트라와 맨자민 리마의 구속이 풀렸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자 라자 코트라는 즉시 머리를 조아렸다.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가 군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덩달아 고개를 숙인 맨자민 리마는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타메이온에서 온 군주가 자신의 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처분만 기다리는 그녀의 귓가로 타메이온에서 온 군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인사는 됐고, 내가 군주라는 걸 확인했으면 그만 가 봐.”
순간 맨자민 리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냥 가라니?
상위 마족들도 보복을 하는데, 하물며 신의 반열에 오른 군주가 그냥 가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군주의 담담한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가, 감사합니다.”
극도로 긴장한 탓에 저도 모르게 말이 더듬더듬 나왔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갑자기 마족 군주가 변심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부라퀴족 대족장인 라자 코트라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군주님! 타메이온과 어비스의 부라퀴족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부라퀴족의 자랑인 군주님을 모시게 해 주십시오.”
맨자민 리마는 뜨악한 얼굴로 연인을 보았다.
하지만 부라퀴족의 대족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소리인지라 만류할 수 없었다.
뚱한 얼굴로 대족장을 보던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내 일행이 인간인 걸 알았지?”
“늙은 인간에게서 마나의 악취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오의 시선이 이번에는 발리족 족장에게 향했다.
“어이, 발리족. 아까 낮에 우리를 향해 인간의 냄새가 난다고 했지? 당신도 마나의 냄새를 맡은 거야?”
“아, 아닙니다. 그냥 부라퀴족치고는 남자들이 왜소해 보여서 넘겨짚은 것뿐입니다.”
“아하.”
그제야 엘리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위 마족인 발리족이 마나를 간파할 수 있다면 고민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것도 대족장은 돼야 가능한 모양이니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