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
133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이가 없었던지 장문진 의원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한 달도 최소한 그렇다는 겁니다. 그 이상 걸릴지도 모릅니다.”
“마차도 안 됩니까?”
“예, 안 됩니다. 상체가 흔들릴 테니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그래도 꼭 타야 한다면요?”
“날이 추워 바로 덧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좋은 금창약을 계속 발라도요?”
유근식이 남궁천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명문의 무가에는 저마다의 비약이 전해져 온다.
무림 오대세가였던 남궁세가의 금창약은 특히나 유명하다.
당장 의원도 ‘좋은 금창약을 발라서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상대의 고집에 장문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염려는 되지만 무림인들의 강한 체력을 생각하면 불가하다고만 하기도 뭐하다.
게다가 그가 사용한 금창약은 어떤 명의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영약에 가까웠다.
문득 ‘이들은 어쩌면 꽤 유명한 문파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금창약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결국 장문진은 환자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치료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저토록 가겠다니 막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흐음! 지금이 여름철이었다면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겨울철이고, 또 좋은 금창약도 가지고 있으시니……. 하루만 더 치료를 받은 뒤에 가도록 하십시오.”
의원의 말에 유근식이 연적하를 보았다.
하루만 좀 봐 달라는 듯한 그의 눈빛에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차수도 부상을 입어서 차라리 하루 정도 쉬어 가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기한이 정해진 일도 아니니 그 정도 사정은 봐줄 수 있었다.
그제야 유근식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연적하 일행은 설차수와 유근식을 의원에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의원에서 객잔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두 남자가 빠진 터라 이번에는 청운검 남궁천이 독방을 썼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는 두문불출했다. 말은 안 했지만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
연적하는 점심 무렵에 구천노도 심통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남궁천은 아직 쉬고 있는지 식당에는 화용독심 남궁연과 진설하만 나와 있었다.
남궁연과 진설하가 벌써 식사 중인지라 연적하와 심통은 그 옆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한창 점소이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데 남궁천이 내려왔다.
남궁천은 먼저 와 있던 일행에게 눈인사를 하고 연적하 앞에 털썩 앉았다.
아직 겨울이라 객잔에 든 손님은 연적하 일행이 전부였다.
남궁연과 진설하는 식사가 끝나자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주위에 다른 손님이 없어서 조금은 풀어진 모습들이다.
뒤늦게 식사를 끝낸 연적하와 심통, 남궁천의 모습도 그녀들과 비슷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따뜻한 찻잔을 매만지던 연적하가 남궁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님.”
“응?”
“유 소협은 왜 함께 가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법 심하게 다친 것 같던데.”
“정파의 무인들은 협객행을 굉장한 명예로 생각하거든. 그러니 그에게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할 게다. 그 정도의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그래요?”
연적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뒤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인데 고작 그런 일에 목숨을 걸다니?
“공자님. 신경 쓰지 마십쇼. 본래 정파인들은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니까요.”
연적하는 심통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확실히 자신이 보기에도 유근식은 집착에 가까웠다.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다친 몸으로 따라가겠다니!
남궁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선배의 말씀대로 어떻게 보면 집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올바른 가치들이 지켜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통이 집착이라고 한 것을 남궁천은 헌신이라 했다.
“칼을 들고 직접 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누군가 해 줘야 할 꼭 필요한 일이지요. 적하야.”
“예.”
“모든 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큰일과 작은 일, 정과 사, 삶과 죽음. 너와 같은 고수는 모든 걸 다 포용해 줘야 해.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빡빡해져.”
연적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 것 같았다.
큰어머니와 와룡장의 원로들이 남궁천과 같았다면, 자신의 삶도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득 남궁천이 다시 보였다.
정파의 협의라는 게 위선만은 아닌 것 같다.
그때 진설하가 다가와 연적하의 앞으로 뭔가 불쑥 내밀었다.
둥글게 말린 종이 뭉치였다.
“연 소협, 제가 십두마병들을 정리한 건데, 괜찮은지 어떤지 한번 봐 주실래요?”
딱히 할 일이 없던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설하가 연적하의 옆자리에 얼른 앉아서는 둘둘 말린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는 초열마인, 화염마인, 일각마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에 달린 설명을 읽으려는데 진설하가 재빨리 말했다.
“몸이 용암처럼 검붉고 뜨거워서 초열마인이라고 붙여 봤어요. 그리고 손과 입에서 불과 용암을 뿜어내는 건 화염마인이고…….”
“아, 일각마인은 정수리에 뿔이 하나라서?”
“네, 누구라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이름을 지었답니다.”
연적하는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작명을 하니 괴물들이 눈앞에 선연하게 떠올랐다.
새삼 ‘누군가는 해 줘야 할 꼭 필요한 일’이라는 남궁천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큰일과 작은 일의 구별이 헛된 것이었구나.’
‘모든 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이구나.’
연적하가 존경 어린 눈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왜?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뇨. 형님이 존경스러워서요.”
“하하! 네가 이제 좀 사람 보는 눈이 생겼구나. 계속 존경해라.”
머쓱해진 남궁천이 농담으로 받아 넘겼다.
잠시 후 연적하는 십두마병에 대한 글을 모두 읽고 진설하에게 돌려주었다.
“아주 좋은데요? 이름만 봐도 그 괴물들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정말요? 다행이다.”
종이를 다시 도르르 말던 진설하가 무심코 말했다.
“일각마인이 있으니, 언젠가 뿔 두 개인 이각마인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네요.”
“흠…….”
연적하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런 괴물이 있다면 얼마나 강할까?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남궁천이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 보겠다고 한마디 던졌다.
“뿔이 두 개면 우마왕이네?”
“형님, 우마왕이 누구예요?”
연적하의 물음에 남궁천이 웃으며 답했다.
“서유기라는 책에 소머리를 가진 요괴가 나오는데, 그 요괴의 이름이 우마왕이다.”
“아! 소 요괴구나.”
“그래.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너도 읽어 보거라. 꽤 재미있으니까.”
사람들은 한동안 남궁천이 꺼낸 서유기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분에 십두마병으로 인한 찜찜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졌다.
***
보은의원.
환자를 위해 마련된 방에서 쉬고 있던 설차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유근식에게 물었다.
“유 사제, 어지간하면 그냥 여기 남아 몸조리나 해. 불안 불안해서 못 보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이면 좋아질 겁니다.”
“마음이야 그렇겠지. 몸이 따라가야 할 텐데, 정말 괜찮겠느냐?”
“예, 인간의 가능성을 믿으세요.”
“자료 수집은 나와 진 사매가 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아득바득 따라가려고 그래?”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에요.”
뜻밖의 말에 설차수가 눈을 끔뻑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다른 이유가 있었어?”
한참 망설이던 유근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형,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특히 진 사매에게는 절대 안 돼요.”
“알았어. 뭔데 그래?”
설차수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자고로 비밀이란 그걸 알게 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한 법이다.
“남궁 소저의 곁에 더 있고 싶어서요.”
“뭐? 누구?”
“남궁 소저요.”
농담이라고 생각한 설차수가 픽 웃으며 말했다.
“에라! 이놈아.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그러다 괜히 목 부러진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됩니다.”
“진짜야?”
“예.”
설차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유근식의 음성이 진지한 걸 보니 진심인 모양이다.
그동안 남궁연에 대해 별말 없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니, 너, 전에는 그런 소리 한 적이 없었잖아.”
“오늘 반해 버렸습니다.”
“갑자기?”
“예, 그녀가 우리 목숨을 구해 줄 때, 심장이 찌르르 떨렸습니다.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그건 너무 놀라서 그런 거 아니냐? 나도 오늘은 심장이 떨렸었다. 진짜 염라대왕 앞으로 가는 줄 알았다니까.”
“사형, 그런 거 아닙니다. 저의 떨림은 설렘이 동반된 그런 떨림이었습니다.”
“인마, 정신 차려. 원래 놀라서 심장이 쫄깃해질 때랑 설레는 거랑 느낌이 비슷해.”
“절대 다르다고요. 남궁 소저에게서 운명적인 뭔가를 느꼈습니다.”
“허! 그러니까, 정의맹에서 맡긴 대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서 함께 있고 싶다?”
“겸사겸사죠. 일석이조라고나 할까요?”
“조심해라. 너 남궁 소저를 감당할 수 있겠냐? 오늘 칼 쓰는 거 보니까 후기지수 중에 최고수 같던데. 화용독심이 한 성깔 한다는 소문은 알고 있지?”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진심이고 나발이고 네 목숨 알아서 잘 챙겨라. 남궁 소저가 화나면 말려 줄 사람이 연 소협밖에 없다. 그런데 연 소협이 너를 위해 나서 줄 것 같지는 않구나.”
“사형, 왜 그렇게 비관적이십니까?”
“네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거야. 그나저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 사랑을 느꼈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설차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괜히 들뜬 유근식이 제 처지를 잊고 갑자기 몸을 홱 뒤집었다.
“원래 그런 말이 있지 않습, 윽!”
등이 방바닥에 닿지 유근식은 비명과 함께 다시 몸을 틀었다.
“사제, 진정해. 무슨 말이 있다는 거야?”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솔직해진다고요. 저는 등짝에 칼을 맞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남궁 소저를 연모하고 있다는 걸 말이죠.”
“쯧! 네게 대단한 책임감이나 협의 같은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물론 그런 마음도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일석이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아! 당분간 그런 이야기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 남들이 알면 상황 파악 못 하는 놈이라고 욕한다.”
“사형, 저 그렇게 눈치 없는 놈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가 내색이나 할 것 같습니까?”
“절대 하지 마. 그걸 내색하는 순간, 바로 넌 이상한 놈 되고 마는 거다.”
“아휴!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저어, 그런데 사형이 보기에 말입니다. 남궁 소저에게 남자가 있는 것 같습니까?”
“있겠냐? 경국지색의 외모에 어마무시한 무공까지 지녔는데. 어지간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게다. 내가 말했잖아. 쳐다보지도 말라고.”
설차수가 안타까운 눈으로 유근식을 보았다.
가능성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어야 응원을 할 텐데, 본인은 그런 자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