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6
1336회.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나?
엘리오 일행은 지는 해를 받으며 하르키트의 역마차 사무소로 이동했다.
비록 하르키트가 제국군에게 점령당했지만 역마차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역마차 협회가 어느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국과 남부 왕국 모두가 역마차의 운행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전쟁의 여파로 역마차는 아침과 점심에만 한 번씩 있었다.
“……그리고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까지만 운행이 가능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페로무로스로 진입하지는 않습니다.”
역마차 사무소 직원의 말에 파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지는 페로무로스가 아니라 페로무로스 동부인 까닭이다.
“알았다. 아침 몇 시까지 오면 되나?”
“늦어도 9시까지는 대기소에 오셔야 합니다. 언제 도착한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출발 시간은 꼭 지키고 있습니다.”
“걱정 마라. 우리가 역마차로 북부에서 남부까지 온 사람들이다.”
사무소 직원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젊은 여행자와 그 일행을 보았다.
하지만 사실인지 허풍인지 알 길이 없는지라 이내 관심을 접었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적해졌다.
멀리서 마력포 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무심코 포성을 듣던 엘리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페로무로스는 반나절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웬 포성이지?”
그러자 파비안이 말했다.
“남부 왕국군이 페로무로스에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곳이 아드리아 왕국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아드리아 왕국도 저력이 있네?”
“모르셨습니까? 아드리아 왕국은 어지간한 공국보다 훨씬 강합니다.”
“…….”
엘리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35사단장은 페로무로스만 점령하면 남부 왕국들이 항복할 것처럼 말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강철 군단이 연전연승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쟁을 강철 군단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왜 그러십니까?”
파비안이 의아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아까 35사단장을 만났잖아.”
“그런데요?”
“35사단장은 페로무로스만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처럼 말하더라고.”
“전황이 제국군에게 유리하니 그러는 거겠지요. 남부 왕국에 엑시티움을 상대할 무기가 없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엑시티움은 강철 군단만 가지고 있잖아. 그중에서도 바탈리온 부대만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상태라고.”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는 쪽이 결국은 승리하니까. 헛된 망상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마르 경?”
파비안은 슬쩍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끌어들였다.
그의 안목과 경험이라면 자신의 말을 지지해 줄 것 같아서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라고아 경이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파비안, 자네의 주장은 아카데미 가르침에 충실한 대답이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말에 엘리오와 파비안 모두 턱을 치켜세웠다.
백작의 말이 계속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자기비판에 파비안이 물었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제국과 남부 왕국 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제국과 남부 왕국 양측을 다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네. 그런데 우리는 제국 쪽만 파고 있었잖나.”
이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말했다.
“라고아 경, ‘혼란의 선봉장’은 제국과 남부 왕국, 그 어느 편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부 왕국에도 마수를 뻗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부 왕국의 사정에 어둡습니다.”
“아!”
엘리오는 뒤늦게 자신이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음을 알았다.
우샤스 운드라가 남부 왕국에도 수작을 부릴 수 있는데 그걸 간과한 것이다.
“제국군의 동향은 본래 계획대로 라고아 경께서 살펴보십시오. 저는 남부 왕국을 둘러보고 이상 조짐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페로무로스 동부로 안 가시고요?”
“예, 저는 크라시온으로 가서 아드리아 왕국 국왕을 만나겠습니다. 그를 통해 남부 왕국의 상황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좋겠습니다. 혹시 우샤스 운드라의 활동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도, 너무 깊숙이 파고들지는 마세요.”
“그러겠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흔쾌히 답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무리할 마음이 없었다.
눈치를 보던 하워드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저와 크레아가 오마르 경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오마르 경 옆에서 심부름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 생각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갑자기 사람을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그때 가서 용병을 고용하는 것보다 하워드와 크레아가 훨씬 나았다.
두 사람의 검술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준다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걸세. 라고아 경, 이 두 사람을 제가 데리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저는 파비안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저희는 내일 아침에 크라시온으로 떠나겠습니다. 파비안 경, 지금까지처럼 라고아 경을 잘 모시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당부에 파비안이 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엘리오와 파비안은 ―코르보 마법 병단이 있는―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은 크라시온으로 가는 역마차에 올랐다.
***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32사단 주둔지.
오후 2시경, 제국군 주둔지에 두 청년이 나타났다.
엘리오와 파비안이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주둔지를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다가갔다.
당당한 두 사람의 걸음에 경비병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왔습니까?”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대신해 나섰다.
“나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오. 코르보 마법 병단을 찾고 있소. 이곳에 코르보 마법 병단이 있소?”
“코르보 마법 병단이라면 램지라 불리는 마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국 남작이십니까?”
경비병의 날카로운 시선이 파비안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남부 왕국 격전지에서 남작이라니 신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는 북부에서 작위를 받았소.”
순간 경비병의 표정이 묘해지자, 파비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내가 모시고 온 분은 제국의 백작이시오.”
“대귀족님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이시오.”
순간 흐트러져 있던 경비병들이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랜드 마스터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오는 남의 이야기인 양 멀찍이서 딴청을 부렸다.
머뭇거리던 경비병이 공손하게 설명을 추가했다.
“남작님, 램지 마을은 저기 보이는 강을 따라 십 분 정도 내려가면 나옵니다.”
“자네들은 어디 소속인가?”
“32사단입니다.”
파비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돌아섰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멀어지자 경비병 중 하나가 사령부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강줄기를 따라 십 분쯤 내려가자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선 엘리오와 파비안은 물어물어 코르보 마법 병단을 찾아갔다.
지휘 본부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던 코르보 마법 병단의 단장 킬리언 헤일 공작이 요란하게 그를 맞이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엘리오 라고아 경이 아닌가! 남부로 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는군. 어서 오게!”
“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얼굴은 전보다 좋아 보이십니다?”
인사를 건넨 엘리오는 킬리언 헤일 공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파비안도 공작에게 허리를 숙였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그래, 자네는 전보다 더 발전했군. 그 나이에 벌써 소드 익스퍼트에 근접하다니……. 역시 라고아 경을 모시는 기사답군.”
“과찬이십니다.”
킬리언 헤일 공작의 칭찬에 파비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주제를 아는 파비안은 자연스럽게 출입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 파비안을 눈여겨보던 킬리언 헤일 공작이 엘리오에게 물었다.
“그랜드 마스터께서 이런 곳에 그냥 오지는 않았을 테고, 무슨 일인가?”
엘리오는 대답에 앞서 킬리언 헤일 공작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다.
단순히 제국 고위층에 있는 인맥으로서가 아니라, 라르바 오마르 백작처럼 자신의 속내를 조금은 드러내도 될 것 같았다.
“실은…….”
엘리오는 ‘북부 히르헤라의 균열’과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 신들이 개입했음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처음에는 황당한 얼굴로 듣던 킬리언 헤일 공작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어비스에서 엘리오가 ‘악신 샤이틴의 오른팔 격인 안타르 신을 죽였다’고 할 때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엘리오는 우샤스 운드라가 ‘혼란의 선봉장’이라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아니, 사실이겠지.”
킬리언 헤일 공작은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랜드 마스터나 되는 인물이 허튼소리를 할 리 없으니 물으나 마나 한 소리였다.
“제국과 남부 왕국 간 전쟁이 신들의 음모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군. 아니, 그보다 이 사실이 마나 프트라스 교단에 들어가면 이단 심문관을 보낼 걸세.”
마나 프트라스가 창조신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이단의 수괴 소리를 듣게 될 터였다.
엘리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마나 프트라스 교단이 무슨 짓을 벌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그의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이단 심문관이 이단 판정을 내리면……. 마나 프트라스 교의 교황이 황제를 움직여 경을 심판하려 할 것이네.”
“제국군이 동원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렇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에게도 지금 나에게 했던 말을 하지 말아야 하네.”
“우샤스 운드라를 찾아 처리하는 건 괜찮겠죠?”
“우샤스 운드라가 마나 프트라스를 배신하고 악신에게 붙었다면……. 그래도 되지 않겠나? 마나 프트라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것 같은데.”
우샤스 운드라의 처분은 마나 프트라스가 부탁한 일이기에 엘리오는 피식 웃었다.
킬리언 헤일 공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전황을 살피러 온 거군. 누가 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맞나?”
“예. 아마도 그자가 ‘혼란의 선봉장’일 겁니다.”
“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란 사람은 황태자네.”
“…….”
예상치 못한 말에 엘리오는 놀란 눈으로 킬리언 헤일 공작을 보았다.
“하지만 황태자가 우샤스 운드라일 수는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겠죠?”
엘리오가 자신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신들의 몸은 영체라, 폴리모프로 얼마든지 원하는 형태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황태자 곁에 고위 마법사들이 있으니 그건 어려울 터였다.
“내가 은밀히 황태자 주변의 인물들을 조사해 보겠네. 갑자기 오래전에 사장되었던 엑시티움이 튀어나오질 않나, 수상쩍은 게 한둘이 아니야.”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저에게 꼭 알려 주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 우샤스 운드라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경밖에 없지 않나. 그를 찾기 전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도록 하게. 마나 프트라스 교단은 물론 제국군과도 충돌하지 말라는 말일세.”
“예.”
엘리오는 ―믿어 달라는 얼굴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 그때 스파이크 고어 기사단장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작 각하. 제국군 정보부 참모들이…… 뵙기를 청합니다.”
“나를?”
“아니요. 라고아 경을 찾습니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단장이면 인사차 왔겠지만, 정보부 참모들은 아니다.
“라고아 경? 나에게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