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50
1350회. 매사를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는 말게
원정군 참모 랜드 게티 백작이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파비안은 조사관이 절절매는 걸 보고 상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파비안 클라우드. 북부 에스카토스 왕국의 남작. 일찍부터 천재 기사 소리를 들었다지?”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원정군 총사령관의 참모인 랜디 게티 백작이네.”
“아, 예.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북부의 남작을 체포하신 겁니까? 저는 딱히 남부 왕국을 이롭게 한 기억이 없는데, ‘적을 이롭게 한 죄’라니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하네. 갑자기 체포되니 놀랍고 어리둥절할 테지. 하지만 그렇다고 경에게 아주 책임이 없는 건 아니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경도 들어서 알겠지만, 남부 왕국군이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네.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거짓 정보인지, 진짜 뭐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직 알려진 바 없지만……. 여하튼 최근 들어 크라시온에서 대반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네.”
“저는 조사관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그야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정말 처음 듣는 소리인지 아니면 남부 왕국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것인지……. 그런데 조사관은 후자로 믿는 것 같더군. 참고로 말하자면 제국군 조사관들은 경과 같이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라네. 무슨 일을 맡겨도 잘해 내는 실로 비범한 인재들이지.”
“…….”
파비안은 할 말이 없었다.
문득 남부 왕국의 신무기가 대반격과 관계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 제국군에게 흘리고 싶지는 않았다.
북부 왕국과 남부 왕국이 동맹임을 생각하면 그러는 게 기사의 도리였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표정 변화를 살피던 랜드 게티 백작이 말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클라우드 남작이 지금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위험한 줄타기요?”
“그래, 두 사람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처럼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야. 그런데 하고 있는 짓들을 보란 말이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크라시온에서 남부 왕국 대귀족들과 만나고, 자네는 남부 왕국군 중대장과 잦은 회합을 가졌네. 그것도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 전선 하루 거리에서 말이야. 그게 제국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 같은가?”
“물론 좋아 보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오마르 백작님과 저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라고아 백작님과 함께 이 전쟁의 배후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 전쟁의 배후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나? 어비스를 독점하려는 몇몇 남부 왕국들이 이 빌어먹을 전쟁의 배후야. 신들이 배후에 있다는 말은 하지 말게. 그랬다가는 제국군뿐 아니라, 이단 심문관들과도 만나게 될 테니까. 한때 천재 소리를 듣던 남작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라 믿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남부 왕국을 이롭게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북부 왕국과 라고아 백작님을 생각해서라도 보내 주십시오. 백작님은 제가 이 전쟁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서론이 길었군.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제 낮에 라고아 백작이 강철 군단 군단장인 스타우런 후작을 죽였네. 직전에 내가 라고아 백작을 만났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더군.”
“라고아 백작님은 목숨의 빚은 반드시 돌려주시는 분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가려 가면서 했어야지. 스타우런 후작은 황태자 전하의 최측근이었네. 심지어 황태자 전하께서 ‘정히 복수하려거든 전쟁이 끝난 뒤에 하라’고 통 크게 양보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네.”
“본래 추진력이 남다르신 분이십니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 꼬박꼬박 추임새를 넣자 백작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전에 지적했음에도 금방 잊고 고작 소드 비기너 주제에 그랜드 마스터 흉내를 낸다.
랜드 게티 백작은 벼락처럼 손을 뻗어 클라우드 남작의 뒷머리를 잡아 책상에 처박았다.
쾅! 소리와 함께 파비안의 머리가 책상에 박혔다.
상체를 기울인 랜드 게티 백작이 클라우드 남작의 귓가에 속삭였다.
“말했잖느냐. 위험한 줄타기를 하지 말라고. 너를 체포한 진짜 이유가 뭐냐고? 너의 목숨이 누구 손에 달려 있는지 알려 주기 위함이다.”
“저어…… 목이 불편해서 그러는데 바른 자세로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살기등등한 백작의 말에도 파비안은 끝까지 허세를 부렸다.
그런 모습에 짜증이 난 백작은 클라우드 남작의 머리를 책상에 한차례 더 내려찍고는 ―마치 더러운 걸 만진 사람처럼― 손을 탁탁 털었다.
“라고아 백작이 스타우런 후작을 죽인 순간부터, 그는 제국의 적이다. 우리 제국군이 그가 남부 왕국에 붙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제국군이 북부 왕국의 행보에 신경이나 쓸 것 같으냐? 황태자 전하와 제국군은 너희들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
“아이고, 머리야.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저를 풀어 주실 겁니까?”
“너의 생사는 라고아 백작의 태도에 달려 있다.”
“예? 어떤 태도요?”
“그가 스타우런 후작을 죽인 일로 황태자 전하께 죄를 청하면 너는 살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즉결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
순간 파비안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죄를 청한다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행위다.
황태자를 뭣같이 보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
파비안에게 백작의 말은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저기요. 백작님. 잘못은 라고아 백작님이 했는데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황태자 전하의 존엄을 위해 네 한 몸 희생한다 생각해라.”
“제가 남작에 불과하지만, 저에게 문제가 생기면 정말 큰일 날 겁니다.”
그러자 랜드 게티 백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스타우런 후작의 죽음과 함께 큰일은 이미 벌어졌다. 세상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엑시티움의 일선 부대 보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스타우런 후작 죽음 이전까지 엑시티움은 바탈리온 부대에서만 다뤘다.
그러나 후작이 죽고, 황태자와 원정군 참모장은 엑시티움의 사용처를 제1 집단군 산하의 총병 부대로 늘렸다.
지금이야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뿐이지만, 전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부대로 확대될 수 있었다.
황태자는 제국이 망하는 걸 그냥 지켜볼 사람이 아니니까.
스타우런 후작의 죽음이 기사와 마법사로 대변되는 구시대의 몰락을 가속화한 셈이다.
한편 파비안은 그랜드 마스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제국 백작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권력의 중추에 있던 스타우런 후작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걸 보고도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오니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하지?’
***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다음 날.
엘리오가 머무르는 샬레(남부의 산장)로 킬리언 헤일 공작이 찾아왔다.
샬레의 작은 응접실에 엘리오와 킬리언 헤일 공작이 마주 앉았다.
엘리오가 묻기 전에 킬리언 헤일 공작이 먼저 말했다.
“누가 한 일인지 알아냈네. 우리가 예상했던 사람은 아니더군.”
“아니라고요?”
엘리오가 놀란 눈으로 킬리언 헤일 공작을 보았다.
제국군 정보부도, 황태자도 아니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파비안을 체포했단 말인가!
“원정군 참모인 랜드 게티 백작이 페로무로스 북서부에 주둔 중인 제1 집단군을 동원해 벌인 일이었네.”
“원정군 참모면 황태자가 시킨 일일 텐데요?”
“그게 명확하지가 않네. 원정군 참모장의 입김이 들어갔을 수는 있지만, 황태자의 지시라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네.”
“참모들이 독단적으로 그런 큰 일을 벌였다고요?”
그러자 킬리언 헤일 공작이 묘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큰일이라고 했나?”
“그럼 이 시국에 북부의 귀족을 체포한 게 작은 일입니까?”
“이왕 중립적인 위치에 서기로 했으니 백작에게도 쓴소리를 해야겠군. 원정군 참모장은 레이드 코스탁 후작으로 소드마스터네. 참모인 랜드 게티 백작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지. 백작에게 비하면 그저 그런 대귀족들일 테지만, 제국 후작과 백작에게 북부의 남작을 체포하는 건 사건 축에도 들지 못하네.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는 즉결 처분도 가능하지. 제국의 대귀족들이 두려워하는 건 백작이지, 백작의 가신이나 주변 인물들이 아니라네.”
“예,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 지인들이 저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된다면……. 제가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그때는 알게 되겠죠.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렇게 해서 백작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 상관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이 한둘인 줄 아나? 가까운 사람들을 잃고 복수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이 말일세.”
“공작님은 이번 일이 참모들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나에게 정보를 흘린 33사단장의 말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네. 황태자가 당한 모욕을 갚기 위해 벌인 짓이라 하더군.”
답답해진 엘리오는 날숨을 내뱉었다.
33사단은 원정군 총사령부와 같이 있으니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킬리언 헤일 공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 해도 한 가지 의문이 남네. 참모들이 대체 뭘 믿고 그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어. 바탈리온 부대가 백작에게 당한 걸 그들도 알 텐데 말이야.”
묵묵히 듣던 엘리오가 입을 열었다.
“파비안을 구하려면 총사령부로 가서 랜드 게티 백작과 만나면 됩니까?”
“노파심에 하는 말이네만…… 매사를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는 말게. 그렇게 해서 당장은 원하는 바를 이루겠지만……. 그 일로 누군가는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몰라. 백작의 사람들이 모두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지 않나.”
“저 그렇게 힘만 앞세우는 사람 아닙니다. 제가 천재는 아니지만 잔머리를 쓸 줄은 압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대한 해결책을 말해 보게.”
“그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알게 해 줄 겁니다.”
“어허! 매사를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라니까.”
“그래서 머리를 쓸 겁니다.”
“어떻게?”
“그들이 파비안을 인질로 잡았으니, 저도 황태자를 인질로 삼을 생각입니다. 이런 식의 싸움은 더 미친놈이 이기게 되어 있거든요.”
“결국 또다시 힘으로 해결하겠다?”
“이게 왜 힘입니까? 전략이지요. 너희가 파비안이면 나는 황태자다, 이겁니다.”
“계속 그런 식이면 누군가 피를 흘리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건 황태자일 겁니다.”
“…….”
킬리언 헤일 공작이 질린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이건 마치 석상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잘 알아들은 것 같더니,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게 황태자를 인질로 하겠단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악한 발상에 공작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런 머리로 잘도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군.”
“예?”
“아닐세. 사람이 신도 아니고,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겠지. 이럴 때 보면 백작은 확실히…… 사람이야.”
킬리언 헤일 공작은 ‘단순 무식한’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