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53
1353회. 더 미친놈이 승리하는 싸움
페로무로스 북서부.
고대 도시 자쿰.
남부 왕국의 삼림 깊은 곳에는 폐허가 된 고대 도시들이 산재해 있다.
자쿰도 그중에 하나다.
잊혀진 고대 도시들이 그렇듯 자쿰도 도시 중앙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피라미드만 겨우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피라미드 입구.
팬텀 부대 3소대장 어반 윈저 남작이 불안한 얼굴로 뒤쪽을 힐끔거렸다.
그걸 본 기수(旗手)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 들어가 말리고 싶다.”
“안쪽 제단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기수는 아직 삼각형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다.
“북부의 귀족에게 정신 마법을 사용한단다.”
“북부요? 그쪽은 아직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이. 게다가 그 북부의 귀족이…….”
말하다 말고 어반 윈저 남작의 시선이 어둠에 잠긴 숲으로 향했다.
푸드덕―!
멀리서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자 어반 윈저 남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이야. 씨발.”
“팬텀 부대 소대장님이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 안쪽에서 심문당하는 북부 귀족이 누군지 알면 너도 새가슴 될 거다.”
“누군데요?”
“……몰라도 된다. 총병들 딴짓 못 하게 한 바퀴 둘러나 보고 와.”
“에이, 남자가 뭘 그렇게 줄 듯 말 듯 하십니까?”
구시렁거리면서도 기수는 남작의 명을 시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피라미드 안쪽 제단.
사방 벽에 촘촘하게 꽂혀 있는 횃불로 제단은 대낯처럼 환했다.
마력총으로 무장한 팬텀 부대 1, 2소대가 물샐틈없이 제단을 에워쌌다.
중앙 제단의 나무 의자에 한 청년 기사가 묶인 채 앉았고, 그 앞에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가 서 있었다.
참모인 콜 우드 자작이 긴장한 얼굴로 랜드 게티 백작을 보았다.
팬텀 부대의 호위 속에 잊혀진 고대 도시 자쿰으로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을 이송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건 랜드 게티 백작도 마찬가지인 듯, 최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각하?”
콜 우드 자작의 부름에 랜드 게티 백작이 움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나?”
“메이지(4서클 마법사)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랜드 게티 백작은 4서클 메이지를 힐끔 보았지만 답을 주지 않았다.
기다리던 콜 우드 자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려우시면 참모장님께 다시 한번 여쭤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심문 준비를 마쳤다고 하시면서 슬쩍 떠보십시오.”
“좋은 생각이다.”
랜드 게티 백작은 참모장과 연결된 마법 통신구를 꺼내 참모장을 불렀다.
“참모장님?”
―랜드 게티 백작? 무슨 일인가?
“클라우드 남작의 심문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다니? 정신 마법을 쓰라고 하지 않았나?
“라고아 백작이…….”
순간 참모장이 랜드 게티 백작의 말을 끊었다.
―랜드 게티 백작.
“예.”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팬텀 부대가 백작에게 있는데 두려운가?
“아, 아닙니다.”
―백작의 고민은 나도 알고 있다. 라고아 백작은 미친놈이야. 그래서 권위와 질서, 법과 규칙 따위를 무시하고 제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친놈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다. 우리도 그놈 못지않게, 아니, 그놈보다 더 미쳤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더 미친놈이 승리하는 싸움이란 말이다.
문득 랜드 게티 백작은 참모장이 진짜 미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만큼이나 참모장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참모장의 말대로 이건 미친 자들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미친놈이 승리할 것이다.
마침내 랜드 게티 백작은 자신도 미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라고아 백작에게 보여 주어라. 제국군을 건드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제국의 뜻을 개인이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게 해 주란 말이다!
“예!”
마법 통신을 마친 랜드 게티 백작이 4서클 메이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시작해라.”
4서클 메이지 엠블 그로스컬 남작이 히죽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클라우드 남작의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마법 스펠을 영창했다.
“미 에스타 라 마스트로 데 비아 아니모.”
“컥!”
짧은 비명과 함께 파비안의 몸이 경직됐다.
상체를 비틀며 저항하는 파비안의 귓가로 뜻을 알기 어려운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크윽! 꺼져! 새끼들아!”
파비안이 의자에 앉은 채 미친 사람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쿵! 쿵! 쿵! 쿵―!
그 기괴한 모습에 랜드 게티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 마법을 쓰라고 명령만 내렸지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클라우드 남작이 날뛰자 엠블 그로스컬 남작이 손을 떼고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기사는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하지만 튼튼한 몸과 달리 기사의 정신은 말랑말랑해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이윽고 엠블 그로스컬 남작은 다시 클라우드 남작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가 마법 스펠을 영창하면 클라우드 남작이 펄떡펄떡 뛰는 걸 몇 차례 반복했다.
클라우드 남작의 부릅뜬 눈과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핏물이 터져 나오면서 펄떡거리던 움직임도 조금씩 약해져 갔다.
그 끔찍한 광경에 콜 우드 자작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멀쩡한 기사 하나를 폐인으로 만드는 걸 보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엠블 그로스컬 남작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거의 다 끝나 갑니다. 이제 한두 번만 더 하면 저항하지 않을 겁니다. 소드 비기너라고 들었는데…… 거의 소드 익스퍼트처럼 반발이 심하군요. 이렇게 오래 버티는 기사도 흔치 않습니다.”
그러자 랜드 게티 백작이 짜증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닥치고 마법에나 열중해라!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길어야 10분이면 끝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예…….”
엠블 그로스컬 남작은 신경질적으로 클라우드 남작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머리가 가볍게 움직이는 걸 보니 힘이 쪽 빠진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한번에 성공할 것도 같았다.
마나홀의 마나를 전부 개방한 그가 막 마법 영창에 들어가려 할 때다.
제단 한쪽에 내려놓았던 랜드 게티 백작의 마법 통신구가 불안하게 깜빡였다.
“각하! 마법 통신구가!”
콜 우드 자작의 외침에 랜드 게티 백작은 무심코 마법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나를 밀어 넣자 귀에 익은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랜드 게티 백작!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대답해! 대답하라고!
황태자이자 원정군 총사령관인 루이스 프레이저 3세였다.
깜짝 놀란 랜드 게티 백작이 자세를 바르게 하며 답했다.
“황태자 전하! 소신 랜드 게티 백작이옵니다. 무슨 일…….”
―닥치고! 지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참모장의 명으로 클라우드 남작을 심문 중에 있습니다.”
―클라우드 남작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심문한단 말이냐!
“적을 이롭게 한 죄…….”
―이 미친…… 누구 계획이야!
“참모장께서 직접…….”
―당장 멈추고! 클라우드 남작을 총사령부로 데려와! 알겠느냐?
“예!”
―클라우드 남작의 상태는? 그에게 정신 마법을 걸었느냐?
“……예.”
―…….
황태자가 갑자기 침묵하자 랜드 게티 백작이 물었다.
“전하?”
잠시 후 마법 통신구에서 황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클라우드 남작의 정신에 문제가 생기면……. 황태자도 그와 똑같이 만들어 준다. 멀쩡한 황태자를 만나고 싶다면 잘 치료해서 데리고 와라. 1시간 준다.
랜드 게티 백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라, 라고아 백작이시오?”
그러나 대답 대신 다시 황태자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치고 출발해! 1시간이라는 말 못 들었느냐! 서둘러 오란 말이다! 어? 라고아 백작? 내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걸 백작도…….
그 말을 끝으로 마법 통신이 끝났다.
제단에 적막이 감돌았다.
클라우드 남작의 머리통을 잡고 있던 엠블 그로스컬 남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속할까요?”
그러자 콜 우드 자작이 버럭 소리쳤다.
“이놈! 황태자 전하의 명을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어깨를 움츠린 엠블 그로스컬 남작에게 랜드 게티 백작이 말했다.
“치료부터 해라. 클라우드 남작의 정신은…… 어떠하냐?”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다니?”
“마지막 단계에서 멈춰서…… 아직 제정신인지 아닌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랜드 게티 백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제국의 황태자를 인질로 잡다니?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더 미친놈이었다.
“하아! 최선을 다해 치료해라. 그가 정신을 차리면 총사령부로 이동한다.”
***
페로무로스 북서부.
원정군 총사령부.
이번 사태의 원흉인 원정군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랜드 게티 백작과 팬텀 부대보다 한발 앞서 황태자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평소와 달리 활짝 열린 집무실 문을 본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 당했구나!’
자신도 총사령부에 있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다니 기가 막혔다.
그가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로한 황태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참모장!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어째서 나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었던 거요! 당신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시오!”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재빨리 실내를 둘러보았다.
황태자의 호위를 맡고 있는 기사단은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바탈리온 부대, 팬텀 부대, 쉐도우 부대만 엑시티움으로 무장하고 정작 총사령부의 경호 부대를 옛 방식대로 놓아둔 탓이다.
상석에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앉았는데, 그 옆에 참담한 얼굴로 황태자가 서 있었다.
“전하! 용서해 주십시오! 하오나 소신이 그렇게 한 것은…….”
“닥치시오!”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잔뜩 모욕당한 황태자는 참모장의 변명을 들어 줄 마음이 없었다.
참모장 또한 딱히 할 말이 없던 터라 고개를 푹 숙이고 처분을 기다렸다.
상석에 앉아 있던 엘리오가 황태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늦네? 1분 늦을 때마다 귀싸대기 한 대씩 날리겠습니다.”
그러자 황태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아직 10분이나 남았소! 참모장! 게티 백작은 어디 있기에 이리 늦게 오는 건가!”
“고대 도시 자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자쿰까지 얼마나 걸리나?”
“늦어도 40분이면 닿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
황태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단의 무리가 집무실로 달려왔다.
마침내 랜드 게티 백작이 팬텀 부대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팬텀 부대는 즉시 주변으로 흩어져 경계 태세를 취했다.
곧이어 피라미드의 제단에 있던 랜드 게티 백작 등이 집무실로 들어갔다.
엘리오의 시선이 파비안을 향했다.
기사와 마법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서 있는 파비안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씨발 것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엘리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벼락처럼 황태자의 멱살을 움켜잡은 그는 황태자를 질질 끌고 가 파비안 옆에 나란히 세웠다.
“내가 똑같이 만들어 준다고 했지! 이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