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72
1372회. 엑시티움은 신의 선물이다
계획과 달리 쉐이드 왕국에서 전선이 고착되자 제국 황실은 마탑들을 닦달했다.
삼대마탑에 엑시티움의 대량 생산을 독려하는 한편, 용병 길드들을 압박해 헤르메티카 마탑과의 거래를 하나 둘 차단시켰다.
연금술 재료를 구하지 못한 헤르메티카 마탑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엑시티움은 기사와 마법사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사 지망생들이 대거 총사로 전향하듯, 마법사들의 관심 역시 마법 연구에서 연금술로 바뀌었다.
어떤 마법도 엑시티움을 능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그런데 연금술 재료를 구하지 못한다?
마탑들 간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헤르메티카 마탑은 아르테늄의 제작 중단의 뜻을 은밀히 황실에 전함으로 용병 길드와의 거래를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황실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애석하게도 황실은 블랙마켓 관리자 마젠타와 아도브 마탑의 비밀스러운 거래에 대해 알지 못했다.
황실이 엑시티움 대량 생산과 아르테늄 제작을 저지하는 일에 신경 쓰는 동안, 아도브 마탑의 신무기 개발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한 달 후.
삼대마탑들은 그들이 대량 생산한 엑시티움을 제국군에 납품했다.
제국령의 군대는 그동안 총병 중심으로 개편을 마친 상태였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제국군 21사단, 22사단, 23사단이 지원부대와 함께 임무 교대를 위해 쉐이드 왕국으로 출발했다.
황실은 3개 사단들로 인해 전쟁이 곧 끝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작 바탈리온 부대 하나만으로 남부 왕국군을 격퇴한 전력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두 달 후, 개편된 제국군 3개 사단이 쉐이드 왕국에 도착했다.
그사이 쉐이드 왕국에 주둔한 원정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큰 피해를 입은 31사단, 32사단, 36사단이 31사단으로 통합됐다.
34사단도 30사단에 합쳐졌다.
32사단의 해체와 함께 ―그들의 호위를 받던― 마법 병단은 포병 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하여 쉐이드 왕국에는 제1 집단군과 통폐합을 거친 30사단, 31사단, 35사단, 37사단, 포병 여단이 남게 되었다.
원정군에 9개 사단이 있었으니 무려 5개 사단 병력을 잃은 셈이다.
전멸당한 강철 군단과 기병대대까지 포함하면 실로 엄청난 피해다.
원정군 총사령관이 황태자였으니 망정이지, 대귀족이었으면 작위를 강등당해도 찍소리 못 할 참담한 전과였다.
원정군 3개 사단(30사단, 31사단, 35사단)은 교대할 부대에 주둔지를 내주고 제국령으로 복귀했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3개 사단(20사단, 21사단, 22사단)이 합류하자 황태자는 즉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전선에 태풍이 불어왔다.
남부 왕국들의 강철 골렘은 더 이상 전략 무기가 아니었다.
총병들로 구성된 3개 사단의 공세 앞에 강철 골렘은 허무하게 쓰러졌다.
몇몇 강철 골렘이 발악하듯 ‘죽음의 빛’을 뿌려 댔지만, 사거리가 짧은 탓에 지면만 새까맣게 태울 뿐이었다.
제국군은 쉐이드 왕국을 재차 탈환하고, 아드리아 왕국으로 진격했다.
아드리아 국경을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제국군은 ―아드리아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철 도시 페로무로스까지 함락했다.
페로무로스에서 제국군은 잠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말이 재정비지 실은 그동안 소모한 엑시티움의 재보급을 기다린 것이다.
***
제도 북구.
페르모사 에스텔라.
해거름 무렵, 엘리오는 창가 자리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몇 달 동안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지만, 그는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아직 ‘혼란의 선봉장’은 찾지 못했지만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목적지에 거의 근접했다는 것을.
제국 관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는 마치 강태공이 된 것처럼 차분하게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엘리오를 대신해 파비안이 뛰어다녔다.
그는 아리에트 알바노를 잊기 위해 정보 수집에 독하게 매달렸다.
아리에트 알바노와 연애를 할 때처럼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어둑어둑해질 즈음, 바르도스의 공연이 시작됐다.
최고급 숙소답게 당대 최고의 바르도스인 아리에트 알바노가 등장했다.
그녀의 얼굴은 파비안과의 결별이 거짓말인 것처럼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보통 여자가 아니라니까.’
자신 같았으면 진즉에 제도를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아리에트 알바노는 평소처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평상심이란 말인가!
검객으로 치면 절정의 수준은 가뿐히 넘어설 마음가짐이다.
그녀의 촉촉한 음색 때문일까?
갑자기 술이 당긴 엘리오는 여점원을 불러 맥주를 주문했다.
도시 야경을 보며 맥주를 홀짝이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라고아 백작님.”
멍하니 창밖을 보던 엘리오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트 알바노 양이었다.
“예?”
“잠시 앉아도 될까요?”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안이 차였다고 말한 뒤로 아리에트 알바노 양과의 자리는 처음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아리에트 알바노가 작정한 듯 말했다.
“제가 파비안 남작님과 헤어진 건 아시죠?”
끄덕끄덕.
“파비안 남작님의 아이를 잉태한 분이 아드리아 왕국의 남작이라 들었어요. 혹시 그분에게서 또 다른 연락이 왔나요?”
“아직요.”
“제가 너무 빠르게 포기한 걸까요?”
“글쎄요. 사람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달라서…….”
그러자 아리에트 알바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누군가의 후실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제가 그러듯 저의 상대 역시 저만 바라보기를 바라요.”
엘리오는 눈을 끔뻑였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엘리오가 별 반응이 없자 아리에트 알바노는 계속해서 말했다.
“파비안 남작님은 그날 이후로 다시 찾아오지 않으시더라고요. 좀 몰인정하다고 해야 하나, 차갑다고 해야 하나.”
“맺고 끊는 게 분명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데…….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좀 더 사과하고 매달려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하면 받아 줄 의향은 있고요?”
“아드리아 왕국의 귀족분이 끝까지 파비안 남작님과의 결합을 원한다면…… 저는 못 받아 줘요.”
“소피아 남작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파비안을 꼬신 여잔데, 임신까지 하고 포기할 리가 있나.
“파비안 남작님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도요?”
“신경 안 쓸 겁니다.”
그가 볼 때 이 싸움은 소피아 남작에게 유리했다.
소피아 남작은 신분뿐 아니라, 생각 자체가 아리에트 알바노와 달랐다.
“저는…… 그렇게는 못 살아요.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예. 그래서 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엘리오는 측은한 눈으로 아리에트 알바노를 보았다.
파비안과 아리에트 알바노의 사랑은, 소피아 남작으로 인해 꼬였다.
이제 해결책은 소피아 남작이 파비안을 포기하든, 아리에트 알바노가 파비안의 후실이 되든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리에트 알바노를 보니 후실로 행복하게 살 것 같지 않았다.
“백작님이 도와주실 수는 없나요?”
“제가요? 어떻게 도우라는 거죠?”
“소피아 남작이 순수한 마음으로 파비안 남작님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백작님이 한마디 해 주시면…….”
엘리오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전부터 제가 파비안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니 조심하라고. 소피아 남작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녀의 배 속에는 파비안의 아이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파비안에게 ‘너의 아이를 버리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기는…….”
아리에트 알바노가 말끝을 흐렸다.
‘제가 키울 수도 있어요’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맴돌았다.
그런 아리에트 알바노의 마음을 아는지 엘리오가 쐐기를 박았다.
“누구도 어머니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리에트 알바노가 나직이 말했다.
“……헤어지는 수밖에 없겠네요.”
엘리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째 해맑은 얼굴로 공연을 하는 것 같더라니.
파비안에게 헤어지자 말해 놓고, 정작 그녀는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리에트 알바노는 탁자 위의 빈 술잔에 술을 가득 붓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훌쩍 떠났다.
파비안은 밤이 꽤 깊어서야 돌아왔다.
엘리오는 그에게 아리에트 알바노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라고아 경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모양이네요.”
“욕이냐?”
“전혀요. 라고아 경이 다른 대귀족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겁니다.”
보통의 대귀족들 같았으면 소피아 남작을 자신에게서 떼어 놓든지, 아기만 데려다 키우게 했을지도 모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그걸 가능하게 할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대귀족들과 달리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노예부터 황제는 물론, 수인들까지 인격적으로 대했다.
그런 그가 소피아 남작과 배 속의 아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안 봐도 훤하다.
“그래서 너는? 이제 완전히 정리가 된 거냐?”
“아직 감정의 잔재가 조금 남아 있지만…… 어떻게든 정리는 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 남구의 술집에서 묘한 말을 들었습니다.”
“뭔데?”
“술집에서 어쩌다 연금술사와 알게 돼 함께 술을 마셨는데요. 그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엑시티움은 신의 선물이다.”
“신의 선물?”
엘리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최고의 감탄사지만 때가 때라서 그런지 꽤나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자기가 어쩌다 엑시티움을 뜯어보게 됐는데…… 지금의 연금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랍니다. 그걸 50년 전에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답니다.”
“수준이 낮은 연금술사라서 그런 거 아냐?”
“어디 마탑인지 밝히지는 않았는데, 말하는 걸 보면 마탑 소속 같았습니다. 연금술사가 마탑에 들어가려면 마법사보다 배나 어렵습니다.”
수준이 높다는 말이었다.
“너 아르테늄에 대해 못 들었냐? 연금술 실험 중에 만들어진 실패물이라잖아.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지. 엑시티움도 그랬을지 누가 알아?”
“여하튼 ‘엑시티움을 조사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엑시티움은 5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혼란의 선봉장’은 지금 튀어나왔어. 둘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다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신의 선물’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우샤스 운드라가 떠올라서요.”
“그건 단순한 격찬의 말이잖아. 너무 집착하지 말고 머리를 좀 식혀. 너 요즘 무리하는 것 같더라. 쉬엄쉬엄해도 돼.”
“아, 예.”
파비안은 고집부리지 않았다.
아리에트 알바노의 일로 자신이 무리하고 있는 건 사실인 때문이다.
그때 엘리오가 말했다.
“그 연금술사나 더 만나 봐. 지금 시국에 엑시티움을 뜯어봤다는 게 조금 걸린다.”
“마탑들이 요즘 마법 연구보다 연금술에 공을 들인다잖습니까. 마공학의 최고 인기품이 엑시티움이라 건드려 봤을 겁니다. 연금술사가 그러더라고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설마 그러다 제2, 제3의 엑시티움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신의 선물이라잖습니까? 엑시티움이 쉽게 만들어지겠습니까?”
“모방품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잖아.”
“그건 또 그렇네요? 당분간은 연금술사들을 좀 파 보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너 요즘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아서요.”
부지불식간에 본심을 말한 파비안이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