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46
1446회. 조금 달라지신 것 같지 않습니까?
공교롭게 북부 왕국 연합군이 움직인 시기는 백야(白夜)의 시작과 맞물려 있었다.
엘리오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어둠이 찾아오지 않아서다.
물론 낮과 밤은 달랐다.
낮에 비해 백야의 밤은 마치 한 겹 막이 생긴 듯 약간 뿌옇게 느껴졌다.
그래도 칠흑같은 어둠이 아닌 게 어딘가.
야전에서 생활해야 하는 북부 왕국 연합군 측은 그것을 승리의 징조라 말했다.
3군으로 편성된 북부 왕국 연합군은 세 갈래로 나누어 진격했다.
전략은 비교적 간단하다.
1군과 2군이 중앙에서 길게 늘어진 전선을 북쪽으로 천천히 밀어 올리는 동안, 3군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마물을 섬멸한다.
1군과 2군은 마물의 남하를 저지하고, 3군이 섬멸하는 식이다.
서쪽에 타메이온이 있으니 살아남은 마물은 타메이온으로 달아날 터였다.
3군의 역할이 가장 크고, 위험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스카토스 왕국군은 3군에서도 선두에 자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군의 사기는 높았다.
최전방에 그랜드 마스터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부 왕국은 마력총에 더해 전략 무기인 타나토스를 보유한 상태라, 마물 정도는 부대 단위로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다만 소드마스터보다 강한 마족은 예외였다.
북부 왕국이 빠르게 마물에 점령당한 원인은 타나토스의 공급 부족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족을 상대할 무기나 사람이 없어서다.
상급 마족에게는 대소드마스터용 전략 무기인 타나토스조차 통하지 않는 터라 상위 마족과 마주치면 소드마스터도 줄행랑을 놨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3군의 선봉인 에스카토스 왕국군에 그랜드 마스터인 라고아 백작이 있다.
마족 군주들까지 격살한 라고아 백작과 함께하는데 마족이 두려울까!
1, 2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3군은 북동 방면으로 진군했다.
잠깐 쉬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 계속 걸었다.
고된 강행군이 계속됐음에도 병사들은 푸념을 늘어놓지 않았다.
북부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른 것은 아니다.
어쩌다 마물에 탈출로가 막힌 지역의 주민들이나, 마물 침공 소식을 알지 못한 화전민촌 등은 그 자리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때 피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마물과 마수 들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언제 마물의 먹이가 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고립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3군의 등장은 신의 은총과도 같았다.
3군이 고된 강행군에도 불만을 갖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설산 앞에서 마물을 격퇴하며 밤낮 없이 전진하던 3군의 선두가 멈췄다.
서부군 참모장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사령관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시에라 산맥입니다. 여기까지가 탈린 왕국이고 산맥 너머부터 알레크스 왕국입니다.”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지 않고 서진(西進)해 탈린 왕국을 수복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왜 멈춘 건가?”
“시에라 산맥에서 비행 중이던 아스타로이드족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아스타로이드족이 시에라 산맥에 있을지도 몰라서…….”
아스타로이드는 상급 마족으로 독수리 같은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녔다.
3군이 처음 만나는 상급 마족이라 멈칫한 것이다.
엘리오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다. 계속 간다.”
아비드 참모장이 참모들에게 손짓하자 부대가 천천히 시에라 산맥으로 들어갔다.
시에라 산맥.
동굴.
“아버지.”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아버지를 불렀다.
바칼 마을 촌장인 카슬리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짧게 말했다.
“쉿. 마족이 아직 근처에 있다.”
소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불안한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뒤 어둠 속에 삼십여 명의 바칼 마을 주민들이 숨소리를 죽인 채 떨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카슬리는 살며시 돌아섰다.
바칼 마을 주민들의 눈이 일제히 촌장을 향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지나간 모양이오.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카슬리가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눈을 부릅떴기 때문이다.
거의 동시에 카슬리는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몸에 덧씌워지는 걸 보았다.
천천히 돌아선 카슬리의 얼굴도 마을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헉!”
거대한 동굴 입구에 아스타로이드가 마치 철탑처럼 서 있었다.
마을 주민 중에 사냥꾼이 반사적으로 마력총을 쐈다.
펑―!
마력탄에 격중당했지만 아스타로이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타나토스라면 모를까? 상급 마족에게 마력탄은 돌팔매질과도 같았다.
그래도 기분이 상했는지 아스타로이드는 눈앞의 카슬리를 지나쳐 사냥꾼에게 손을 뻗었다.
사냥꾼은 본능적으로 달아났지만 이내 아스타로이드에게 잡히고 말았다.
“사! 살려 줘!”
사냥꾼이 소리치며 버둥거렸지만 아스타로이드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사이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동굴 밖으로 달아났다.
“꺄아악!”
“뛰어!”
“돌아보지 마!”
아스타로이드는 사냥꾼의 머리를 똑 떼어 씹으며 느긋하게 동굴 밖으로 걸어갔다.
동굴을 벗어난 남녀노소가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쥐 죽은 듯 고요하던 동굴이 한순간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러나 달아나던 사람들은 무엇엔가 쫓겨 다시 동굴 앞으로 모여들었다.
사방팔방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물이 새까맣게 둘러싸자 주민들은 와들와들 떨었다.
아스타로이드가 들고 있던 사냥꾼을 한쪽으로 휙 내던지자, 마물들이 개떼처럼 몰려갔다.
한동안 마물의 쩝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사냥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맛을 본 마물들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그러나 마물은 아스타로이드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인간을 덮치지 않았다.
카슬리는 공포에 질린 딸을 꽉 껴안았다.
‘마나 프트라스시여!’
그가 백야의 하늘을 올려다볼 때, 머나먼 하늘에서 뭔가 반짝였다.
눈 깜짝할 순간 다가온 그것은 거대한 검이었다.
쐐액―!
화살처럼 날아든 검이 아스타로이드의 가슴에 깊숙이 들이박혔다.
상급 마족인 아스타로이드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아스타로이드는 검 손잡이를 잡아 뽑으려 했지만, 검은 오히려 아스타로이드의 몸을 관통했다.
가슴에 구멍이 났다고 해서 아스타로이드는 바로 죽지 않았다.
오히려 광포화 상태에 접어든 듯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에게 상처 입힌 상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아스타로이드의 머리 위로, 조금 전에 가슴을 관통한 검이 또다시 떨어져 내렸다.
콰드드드―!
기이한 파열음과 함께 아스타로이드의 몸이 둘로 쪼개졌다.
상급 마족의 최후를 본 마물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서로를 붙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백야의 하늘에 예의 검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곧이어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하던 검들이 시에라 산맥에 떨어져 내렸다.
동굴 앞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황급히 동굴 안으로 몸을 피했다.
쿠쿠쿠쿵―!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은 근 십 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사위가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에스카토스 왕국군 깃발을 든 부대가 산길에 나타났다.
인간의 군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그건 촌장인 카슬리도 마찬가지였다.
에스카토스 왕국군 깃발에 이어 주민들의 본국인 탈린 왕국군 깃발이 지나갔다.
그걸 본 카슬리 촌장은 영주에게 세금을 바칠 때마다 속으로 욕했던 걸 반성했다.
만세를 외치던 카슬리는 황급히 탈린 왕국군 기사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기사님! 마족을 죽인 게 어느 분이십니까?”
“라고아 백작 각하시다.”
탈린 왕국군 기사는 마치 자기가 마족을 죽인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었다.
“아! 탈린 왕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3군이 수복했으니 네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도 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삼십여 명의 주민들은 군대의 행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천천히 행렬을 거슬러 내려갔다.
슬래시 랜드 영지군.
하워드 부대장의 뒤를 따라가던 클라크가 동료 병사에게 말했다.
“너무 좋다. 씨벌. 칼 한 번 안 뽑아 보고 승리하다니! 나도 라고아 백작님 만세다.”
병사들이 풀어질까 염려된 하워드가 가볍게 주의를 줬다.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으니 너무 좋아하지 마라. 마족 군주의 군대를 만나면 손아귀가 찢어지도록 칼을 휘둘러야 할 테니까.”
“라고아 백작님이 싹 쓸어버리는 게 아니고요?”
“영주님 손아귀를 잘 보면 찢어진 흉터가 있다. 글라체스 요새에서 그렇게 된 거라 하시더라. 그날 검을 쥘 힘이 없는 사람은 천으로 묶어서 싸웠단다.”
“진짜요?”
“라고아 백작님이 마족 군주를 상대할 동안, 다른 마족과 마물은 구경만 하고 있을 것 같으냐? 오래 살고 싶으면 마음 단단히 먹고 긴장 풀지 마라.”
“아, 예…….”
클라크는 찔끔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하워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파비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벌써부터 뭘 그렇게 겁을 줘?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텐데.”
“너무 뺀질거리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워드는 같은 남작이었지만 영주인 파비안에게 존대를 사용했다.
파비안이 소드 익스퍼트 직전의 단계인 만큼 한편으로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용병 출신들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살아남았던 거잖아. 너무 뭐라 하지 마.”
“쩝, 압니다. 다만 방심하고 있다가 죽게 될까 봐 그럽니다. 아는 사람이 죽는 것만큼 찜찜한 것도 없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파비안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병들 중에 일부는 하워드가 용병 시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다.
영주와 영지병의 관계인 자신과 달리 조금 더 애틋한 게 당연했다.
“그런데 라고아 백작님 말입니다.”
“백작님이 왜?”
“조금 달라지신 것 같지 않습니까?”
“달라지셨다고?”
“예.”
고개를 갸웃하던 파비안이 이번에는 크레아에게 물었다.
“크레아 참모도 그렇게 생각하나?”
“전체적으로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를 두고 말하는 거라면 그런 것 같아요.”
“흠.”
파비안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셋 중에 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리라.
하워드가 설명하듯 말했다.
“5년 동안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많이 점잖아지셨습니다. 묵직해졌다고 할까요? 솔직히 이전에는 파비안 경과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건 그래요. 5년 만에 분위기가 그렇게 바뀔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해요.”
파비안이 하워드와 크레아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나는 예전 그대로 촐랑거리는데, 백작님은 점잖다 이거네?”
하워드가 얼른 수습에 나섰다.
“제가 언제 파비안 경이 촐랑거린다고 했습니까? 저는 단지 파비안 경에 비해 백작님이 더 점잖아졌다고 했을 뿐입니다. 눈빛도 세상을 달관하신 눈빛이었습니다.”
“…….”
파비안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라고아 백작의 분위기며 눈빛이 예전과는 다른 것 같았다.
5년 전에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는데, 지금은 하워드의 말처럼 말과 행동에 무게감이 있었다.
‘고작 5년 동안에 말이지…….’
조만간 슬쩍 찾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