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
147회. 이상한 게 보인다고?
점심 무렵.
식사 때가 되자 사람들은 짐꾸러미에서 먹거리를 꺼내 먹었다.
연적하 일행도 한자리에 모여 건량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선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어, 무사님들. 점심을 이런 곳에서 드시게 해 죄송합니다. 불편하시 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저녁은 뭍에서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오후에 장호진에서 하루 정박할 예정이거든요.”
유근식이 육포를 뜯다 말고 물었다.
“오후라면 언제쯤을 말하는 겁니까?”
“늦어도 유시경(오후 5시-7시)이면 장호진에 도착할 겁니다.”
“장호진에서 일박을 하고 간다 이거죠?”
“예, 날이 어두우면 배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서요. 저희는 장호진에서 묵었다가 가곤 합니다.”
“아, 예.”
유근식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이 별말을 하지 않자 선장은 허리 숙여 인사를 한 후에 돌아갔다.
설차수 일행은 피곤한지 선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청운검 남궁천과 구천노도 심통도 쉬어야겠다며 그늘을 찾아갔다.
어쩌다 보니 갑판에는 연적하와 화용독심 남궁연만 남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뱃전에서 주변 경치를 보고 있는 남궁연에게 연적하가 다가갔다.
“누님, 잠깐 얘기해도 돼요?”
“응. 뭔데?”
남궁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오전에 십두마병과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지금은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곁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은 상의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뭔데?”
“제가 익힌 무공은 기경팔맥 외에 신맥이라는 게 하나 더 있거든요.”
“신맥?”
“네, 여기가 신맥의 자리예요.”
연적하가 자신의 양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남궁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런데?”
“십두마병이 죽을 때마다 여기가 화끈거리면서 이상한 게 보이거든요.”
“이상한 게 보인다고?”
“네. 무저갱처럼 어두운 곳이 눈앞에 확 나타나는 거예요. 거기에 십두마병과 똑같이 생긴 게 있어요. 그런데 제가 현실에서 죽인 게 그곳에서도 죽어 가요. 그게 죽으면 저는 꿈을 꾼 것처럼 현실에서 깨어나고요.”
“하지만 너는 십두마병과 싸우면서 잠들거나 하지 않았잖아?”
“네, 찰나지간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거예요. 십두마병이 죽을 때마다 항상 그런 일을 겪어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음. 십두마병이 죽는 그 짧은 순간에 뭔가를 보게 된다는 거지?”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제가 그곳에 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호흡이 깊어지면 유체이탈을 할 수도 있다잖아요? 그런 식으로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았어요.”
“흐음. 그래서?”
“백산의 말대로라면 거기는 저승이잖아요. 제가 볼 때도 딱 저승의 모습 같았고. 이전에는 꿈을 꾸듯 저 혼자 저승 구경을 하다가 현실로 돌아오곤 했는데요. 팔주령을 가지고 다니면서부터 좀 이상해졌어요.”
“이상해져?”
“아까 마룡이 죽을 때 제가 또 저승에 빨려들었거든요. 그곳에 마룡과 같은 괴물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런데 그중 수백 마리가 저를 발견한 것처럼 똑바로 쳐다보더라고요.”
“우연이 아니었을까?”
“그것만이 아니에요. 이전에는 저승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두사가 죽을 때는 저승에서 그 인두사의 비명 소리를 들었어요.”
“소리가 들렸다고?”
“네, 인두사가 지르는 비명을 똑똑히 들었어요. 심지어 그곳의 다른 인두사들이 저를 보고 웃는 소리까지도. 점점 제가 저승에 다가가는 것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에요. 저처럼 산 사람이 저승에 갈 수도 있는 거예요?”
남궁연이 애매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신맥이라는 것도 생소한데 저승에 가서 뭔가를 보고 듣는다니 말문이 막힌다.
유명교와 관계된 것들은 이처럼 모든 게 새롭다.
한참 기억을 더듬던 남궁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렇지. 신맥에는 송과선(松果腺)이 있어. 거기를 ‘제삼의 눈’이라고도 해. 말하자면 정신의 눈이 있는 곳이라고 할까? 어쩌면 너는 정신의 눈이 떠진 걸지도 몰라. 그래서 지옥을 보는 건가?”
“정신의 눈요?”
“응. 오래전 읽은 책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어. 동방의 수도사들이 정신의 눈을 수련한다는.”
“그렇구나. 그런데 그 괴물들은 어떻게 나를 봐요? 팔주령을 가지고 다니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남궁연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내가 괜히 팔주령을 가지고 다니게 했나. 지금이라도 떼어 버릴래?”
“아니에요. 누님의 말대로 팔주령에는 뭔가 있어요. 제가 익힌 내공과 팔주령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가지고 다닐게요.”
“정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그제야 남궁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연적하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킨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궁연의 곁에 나란히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그런데 누님은 백산이 한 말을 믿어요?”
“유명교 교주가 염마왕을 이승으로 불러내려 한다는 거?”
“네.”
“흐음! 유명교주가 뭔가를 불러내려 한다는 건 사실일 거야. 그게 정말 염마왕인지 혹은 다른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염마왕이 염라왕 맞죠? 지옥을 다스리는.”
“아니 유명교주는 왜 그런 짓을 한대요?”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란다.”
남궁연이 씁쓰름한 얼굴로 강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 어리석은 짓에 휘말려 식솔이 떼죽음당한 게 떠오른 까닭이다.
***
남직례성.
합비 남쪽 소호.
무산소축.
무산낭랑 이매화가 ‘쾅!’ 소리가 나도록 서탁을 후려쳤다.
유명교에 입교한 이후 오늘처럼 화가 난 적은 없는 것 같다.
“뭐라! 이초량과 백산이 죽은 것 같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녹림의 총채주가 왔다면 모를까? 고작 총순찰에게 십두마병이 둘이나 죽었다고?”
이초량과 백산의 길잡이를 맡았던 귀랑도 호풍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주의 선착장에서 놈들의 마차를 발견하시고 두 분이 급하게 따라가셨습니다. 속하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싸움이 끝난 뒤였는데…….”
호풍이 말끝을 흐렸다.
강변에서 목격한 자들의 말을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돼서다.
이매화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싸움이 끝난 뒤라서 뭐? 제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내 저놈의 혀를!”
“그것이 너무도 기괴한 소리인지라 차마 입에 올리기가 민망해서.”
“들은 대로 말해!”
“예, 예, 강변에서 구경하던 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노고수 두 사람이 강물 위를 달려 배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꿀꺽.”
호풍은 말하다 말고 긴장이 되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던 이매화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호풍이 서둘러 말했다.
“도를 쓰는 노고수가 죽자 그의 몸이 마룡으로 변했다 합니다.”
“마룡? 미친놈. 십두마병의 길안내를 하라고 보냈더니 어디 가서 술을 처먹었구나.”
“속하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목격한 자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도를 쓰던 노고수는 죽어 마룡이 되었고, 검을 쓰던 노고수는 뇌신이 되었다고.”
이매화의 눈에서 번갯불 같은 안광이 번득였다.
‘도를 쓰는 자는 이초량, 검을 쓰는 자는 백산이 분명한데……. 마룡과 뇌신은 무슨 소리인지.’
호풍에게 술을 먹었다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당장 이초량과 백산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이매화의 음성이 조금 누그러졌다.
“마룡과 뇌신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
“마룡은 도마뱀 머리에 코끼리만큼이나 큰 몸통을 가졌는데 등에는 박쥐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그 날개로 하늘을 날아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청년의 검에 맞아 죽었다고…….”
“청년이라면 연적하를 말하는 것이냐?”
“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뇌신은?”
“머리는 사람인데 몸통이 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뇌신이라고 부른 것 같았습니다. 몸통의 두께가 다섯 자(약 150센티)쯤 되고 길이는 오 장(약 15미터)에 달했다 합니다. 입으로 운무를 뿜어내다가 그 역시 청년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데…….”
“그런데?”
“마룡과 뇌신 모두 죽자마자 허깨비처럼 스르륵 사라졌다고 합니다.”
“허깨비처럼 사라졌다고?”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한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그러니까 이초량과 백산이 죽은 뒤에 마룡과 뇌신으로 변했는데, 연적하가 그것마저도 죽이자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후후후.”
이매화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살다 살다 오늘처럼 황당한 소리는 처음 듣는다.
‘십두마병에게 두 개의 목숨이 있다는 건가?’
그 기괴함에 비하면 자신의 초혼제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목격자들이 헛소리를 했을 가능성은?”
“속하도 답답해서 두 놈을 은밀한 곳으로 끌고 가 고문까지 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죽으면서도 끝까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죽으면서도 사실이라고 했다?”
“예.”
“알겠다. 허면 지금 연적하가 가는 곳이 어디라고 하더냐?”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배가 향하는 곳은 구강이었습니다.”
“구강?”
“예. 분명히 구강으로 가는 배라고 했습니다.”
“구강이라. 구강에 뭐가 있다고. 응?”
한순간 이매화의 눈에서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가만! 구화산에서 냉면검귀 공거인을 죽이고 구강으로 간다고?’
구화산에 삼도산채가 있다면 구강에는 장강수채가 있다.
공교롭게도 두 곳의 채주는 십두마병.
‘이것 봐라. 혹시 십두마병이 장악한 산채를 정리하고 다니는 건가?’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흥! 아무래도 파천마군이 본교를 적대시하려는 모양이다.”
“헉! 파천마군이요?”
호풍은 갑자기 파천마군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얼굴이다.
“그래. 연적하가 장강수채의 채주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파천마군의 지시가 아니라면 그놈이 왜 산채를 쑤시고 다니겠느냐?”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총호법 독심귀랑 양소란이 입을 열었다.
“허면 장강일괴에게 연락을 할까요?”
“연락이 무슨 소용 있다고. 그보다 지금 무산소축에 남아 있는 호법이 누구지?”
“혈검과 옥불이 있습니다.”
“흐음!”
이매화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십두마병 둘이 당했는데 다시 둘을 보내려니 내키지 않아서다.
그때 양소란이 말했다.
“당주님, 제가 혈검과 옥불을 데리고 장강수채로 달려가도 되겠는지요?”
“자네가 간다고?”
이매화가 놀란 눈으로 양소란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교당 밖을 나가지 않던 그녀가 장강수채에 가겠다니 의외였다.
“백산의 복수를 해 주고 싶어서요.”
“그와 교분이 있었던가?”
“저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굴곡이 심하더라고요. 남 같지 않아서 종종 어울린 적이 있답니다.”
“자네가 나서 주면 나야 좋지만.”
이매화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양소란과 오랜 세월 친자매처럼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다.
“후후. 당주님. 제가 고작 녹림 총순찰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독심귀랑이라면 녹림삼존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던 여걸인데.”
이매화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독심귀랑, 혈검, 옥불은 무산소축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셋과 장강일괴의 힘이면 상대가 설사 파천마군이라 해도 걱정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