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98
1498회. 도력이 깃든 물건을 찾아야지
류청운이 ‘디피(dp)가 낮다’고 징징거리자 연적하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거야 삼합회가 힘쓰는 곳이니까 그렇지. 세상에서 힘쓸 일이 얼마나 있다고. 영화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 총 앞에 장사 없어.”
로디나 대륙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고 한 말이다.
그러나 돌연변이인 류청운은 연적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총요? 형님, 디피 이천부터는 총알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 홍련방 본가(本家)의 용두(龍頭) 님이 이천이에요. 저는 그것까지는 꿈도 안 꾸고……. 딱 오백만 넘겼음 좋겠습니다. 푸우!”
한숨을 내쉬던 류청운은 뒤늦게 창피했던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무십쇼. 내일 뵐게요.”
“어, 그래. 잘 가라.”
류청운이 나가자 홀로 남은 연적하는 다시 TV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블랙 스피어의 통제선 앞에 기자가 서 있는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바람개비가 미친 듯 돌아가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블랙 스피어에서 이렇게 세찬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걸 본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비스의 통로에서는 저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러다 뭐가 튀어나오는 거 아냐?”
저것이 어비스의 통로처럼 어딘가로 연결된 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 취재가 끝날 때까지 블랙 스피어는 잠잠했다.
잠시 후 화면은 블랙 스피어에서 과학자들로 바뀌었다.
연적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뉴스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일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다.
***
연적하가 홍련상회에 온 지도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연적하는 홍련상회의 직원들과 두루두루 친해졌다.
삼합회는 물론 상회에 고용된 일반인 직원들과도 안면을 텄다.
일반인 직원들은 연적하를 친절하게 대했다.
그가 부사장의 조카인 데다 삼합회 직원들과 호형호제하는 사람인 까닭이다.
나흘째 접어들자 엘리오는 홍련상회를 떠나 슬슬 활동 반경을 넓혔다.
장완구 일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도관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구천현녀가 자신의 간절한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아서다.
그는 그 문제로 현대의 도사를 만나 상담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도관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도시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다들 모른다며 지나갔다.
그 과정에 연적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전처럼 부처나 신선을 숭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찰이나 도관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던가.
도관을 찾아 헤맨 지 닷새 만에 그는 도시 외곽의 뒷골목에서 허름한 도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묘관(玄妙觀)이라.”
간판에 적힌 광고 문구를 보니 점집의 느낌이다.
그러나 닷새 동안 도관을 찾아다닌 연적하에게는 현묘관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현묘관.
청년의 질문에 현묘관의 관주인 무량 진인 위군명이 애매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구천현녀를 만나야 하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예.”
상대가 백발의 노인이었기에 연적하는 스스럼 없이 존대를 했다.
“본디 신선은 부른다고 척척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네. 신선이 자네 친구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전에는 부르면 나타났거든요. 그런데 구천현녀가 우주의 이치를 거스른 이후에 안 나타나서요. 혹시 천겁인지 뭔지를 받아서 소멸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구천현녀가 우주의 뭐를 거슬렀다고?”
무량 진인이 황당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모처럼만의 손님이라고 좋아했는데 어째 정신줄을 놓은 놈 같았다.
“하계에 있는 사람을 상계로 보내 줬거든요. 그것 때문에 천겁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상계의 신이요.”
“그러니까 누가?”
“마나 프트라스라고 아십니까?”
“흐음!”
무량 진인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몇 번이나 청년을 힐끔거리던 무량 진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니던 병원이 있나?”
“병원요? 없는데요?”
“평소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신이 보이거나 그러기도 하나?”
“아뇨?”
“그렇단 말이지. 조금 전에 상계의 신을 만난 것처럼 말하던데…… 언제 만났나?”
“팔 일쯤 전에요.”
“그럼 굉장히 최근인데…… 하아! 자네는 내가 볼 때 도관이 아니라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네.”
“제 문제는 중요하지 않고요. 구천현녀가 왜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지 궁금하다니까요. 도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천겁에 소멸한 것 같습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허어,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닌데…….”
“도사님.”
“왜 그러나?”
“제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질문에 대답이나 좀 해 주십쇼.”
간절한 청년의 말에 무량 진인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미친놈이라는 선입견만 제외하면 청년의 말은 평범하지 않았다.
‘우주의 이치를 거슬렀다’는 말과 ‘천겁’이 묘하게 상통했다.
한참 만에 무량 진인의 입이 열렸다.
“천겁은 인과응보의 다름 아닐세. 다만 그 수준이 생사존망을 좌우하기에 신선들도 두려워하지.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네.”
“좋은 것도 있습니까?”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들 하지. 천겁을 이겨 내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도 한다고 들었네.”
“그건 상관없고요.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고 응답이 없을 수 있습니까?”
“…….”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자 무량 진인은 수염을 매만졌다.
그러다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그 전에는 구천현녀가 나타났다고 했지?”
“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가 여섯 살 때, 창고에서, 구천현녀경이라는 거울을 통해서요.”
“그걸세!”
갑자기 무량 진인이 탁자를 ‘탁!’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흠칫 놀란 연적하가 눈만 끔벅이자, 무량 진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에 구천현녀가 도력을 잃었다고 했지?”
“예.”
“그거라고.”
“뭐가요?”
“도력이 문제라 이 말이네.”
“도력요?”
“현대 사회를 보게. 신을 찾는 사람이 없어. 요즘 사람들은 부처도, 신선도 믿지를 않아. 자네, 요즘 사람들이 뭘 믿는 줄 아나?”
“모릅니다.”
“아이돌.”
“아이돌요?”
“그래, TV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젊은 애들. 그걸 아이돌이라고 하네.”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고요?”
뜻밖의 말에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부처나 신선 대신에 그런 연예인들을 믿다니? 미친 거 아닌가?
“아이돌이 무슨 뜻인지 아나?”
“뭔데요?”
“우상이라는 뜻이네. 진짜 신이 아니라 가짜 신이라 이 말이지.”
“아!”
심오한 무량 진인의 말에 연적하는 무심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우상들에 눈이 팔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선을 찾지 않게 되었다네. 자네 우리 십언시에 도관이 몇 개인 줄 아나?”
“몇 개인데요?”
“두 개일세. 그에 반해 노래방[歌厅]은 오십 개가 넘지. 한국 놈들 때문에 중국의 정신이 썩어 가고 있네. 도관이 두 갠데, 우상을 숭배하는 노래방이 오십 개라니! 이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나!”
“저어, 그런데 도력과 그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신과 신선이 어디에서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나?”
“도사님, 제가 모르는 게 많으니 묻지 말고 그냥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이야. 정확히는 신자들이지. 믿음의 힘이 도력의 원천이라 이 말일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신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
연적하의 눈이 번득였다.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게 뭔가 알 듯 말 듯 한 기분이다.
“도교의 신들도 태반이 잊혀졌네. 이제는 전통 도관에나 가야 그 이름이 남아 있을 지경이지. 구천현녀는 그래도 워낙 유명한 여선이라 아직은 정정하겠지만……. 그 차원 어쩌고 때문에 도력을 잃었다면서?”
“예.”
“도력을 잃었는데 믿는 신자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나?”
“묻지 말고 말씀을.”
“숨만 간당간당 붙어 있는 상태라 자네와 소통이 안 될 거라 이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력이 깃든 물건을 찾아야지. 그 거울! 구천현녀경은 범상한 물건이 아닐 거야. 이름부터가 구천현녀경이잖나. 그 거울의 도력이면 구천현녀도 응답할 걸세.”
“아! 그렇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도사님.”
연적하는 진심으로 무량 진인의 통찰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동안 막막했는데, 석경장에 가서 구천현녀경을 찾으면 된다니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무량 진인이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가서 거울을 찾게. 찾는 데 도움이 될 부적을 좀 써 줄까?”
과거 오룡궁에서 수련을 한 연적하는 부적의 효과를 알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예.”
“오백 위안(한화 약 9만 2천 원)일세.”
연적하는 급히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양복과 잡다한 물품을 사고 남은 돈이 3백 위안(한화 약 5만 5천 원)밖에 없었다.
“돈이 좀 부족한데요?”
“얼마나 가졌나?”
“삼백 위안요.”
“그거라도 주게.”
연적하는 재빨리 돈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량 진인은 서랍에서 미리 만들어 둔 부적 한 장을 꺼내 돈과 맞바꾸었다.
“써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네도 삼백 위안만 냈잖나. 효과는 비슷하니 걱정하지 말고 가져가게.”
“이 부적 이름이 뭡니까?”
“소원성취부(所願成就符)네. 몸에 지니고 있으면 효과를 볼 걸세.”
연적하가 애매한 표정으로 부적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신묘한 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부적 처음 봐?”
“아닙니다.”
연적하는 찜찜했지만 당당한 무량 진인의 태도에 부적을 챙겨 일어났다.
***
홍련상회.
사장실.
오후 3시.
동자건 사장과 진과월 부사장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동자건 사장이 탁자 위에 서류를 툭 던지자, 진과월이 물었다.
“뭡니까?”
“연적하에 대한 보고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읽어 봐.”
동자건의 손짓에 진과월은 서류를 집어 들고 빠르게 읽어 나갔다.
이윽고 진과월이 서류를 내려놓자, 동자건이 말했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주소를 너무 정확하게 말해서 좀 이상하다 싶었다. 너도 봤듯이 석경장은 문화대혁명 때(1966년~1977년) 불에 홀랑 탄 뒤로 재건되지 않았다.”
거기까지 말한 동자건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보고서에는 ‘문화대혁명 때 인민들이 서각의 책을 불태우다 석경장까지 소실됐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가 1977년.
지금으로 부터 무려 57년 전의 일이다.
스물 다섯살의 연적하가 57년 전에 소실된 석경장에서 살았을 수는 없다.
이건 기억의 문제 이전에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그 일 이후 연씨들이 석경장을 떠나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왜 우리의 연적하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연적하가 제 목숨을 구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저는 장락방의 손에 죽었을 겁니다.”
“그래, 그가 미친 것도 사실이고. 내가 궁금한 건 그가 왜 석경장을 들먹였냐는 거다. 미쳐서 떠돌 때 그곳에 들른 적이 있었나? 같은 연씨니까, 자기 집으로 믿고 싶었을지도……. 아니 애초에 연씨가 맞기는 한 거냐?”
“호패에는 분명히 연적하라고…….”
“쓰읍! 그 무협 드라마 소품으로도 쓰지 못할 엉터리 호패 얘기는 그만하고.”
“…….”
진과월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약속했으니 신분증은 만들어 주겠다. 그러나 신분증이 오는 즉시, 그놈을 내보내라. 상회 식구들도 그 녀석과 거리를 두게 하고.”
“예.”
진과월은 선선히 답했다.
평소 냉정한 동자건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것도 많이 봐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