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06
1506회. 그런데 서점에는 왜?
연적하와 크리스티는 서점에서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대낮부터 레스토랑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 패스트푸드점으로 간 것이다.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건강식 패스트푸드점으로 유명한 공부대왕(功夫大王)이었다.
크리스티가 무인 주문기로 걸어가며 설명하듯 말했다.
“공부대왕이 십언시에서 창업한 향토 음식점이거든요. 그런데 건강식에 맛도 위생도 뛰어나서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어요. 홍콩, 대만은 물론, 한국까지 진출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인 주문기에서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자, 잠시 후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음식들을 모두 빼 내자 서빙 로봇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유심히 살폈다.
지나다니면서 패스트푸드점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다.
그는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 때려 박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입을 열었다.
“주문할 때 카드로 하던데…… 현금으로는 주문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죠. 요즘 누가 현금 들고 다녀요? 오라버니 카드 없으세요?”
“어.”
“흠, 그럼 곤란한 일 많을 텐데. 아빠에게 카드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 보세요.”
“만들기 쉽냐?”
“신분증만 있으면 거의 그냥 만들어 줄걸요? 아닌가? 직업이 있어야 하나?”
“너도 아직 직업 없지 않냐?”
연적하는 크리스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홍콩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고 들어서다.
“아, 저는 아빠가 외국 생활한다고 하나 만들어 주셨어요.”
“아하.”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는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식사를 하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주로 크리스티의 물음에 연적하가 대답하는 식이었지만, 가끔 연적하가 질문할 때도 있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크리스티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식사 후에는 뭐 하실 거예요? 갈 데 없으면 같이 영화라도 볼까요?”
“서점에 다시 가려고.”
“책 좋아하시나 봐요?”
“전혀.”
연적하가 질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책을 좋아하느냐니?
듣기만 해도 살갗에 송충이 서너 마리가 달라붙는 느낌이다.
“그런데 서점에는 왜?”
“내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정도는 알아 둬야 하잖아.”
“와아! 되게 철학적이시다. 책 진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철학이 뭐냐?”
“음, 뭐랄까, 형이상학적인 거를 추구하는 거요?”
“쉽게 말해 줘야지. 더 어렵네.”
“한마디로 눈에 안 보이는 걸 좋아하신다, 이 말이죠.”
“난 귀신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 거 말고요. 관념 같은 거요. 예를 들면 이상, 꿈, 사랑, 어떻게 살 것인가? 등등 많잖아요.”
말을 하면서도 크리스티는 연적하가 참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생각이 깊은 것 같은데, 막상 까 보면 어린아이처럼 유치했다.
‘아니, 그런데 철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나?’
대체로 소학교만 나와도 그 정도 개념은 장착하고 살아가지 않나?
물론 철학자들이 무슨 주장을 폈는지에 대해서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의 뜻은 일자무식도 알 거다.
그러고 보면 연적하는 생각의 깊이에 비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렇다.
성인이라면 신용카드를 어떻게 만드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게다.
그런데 그는 몰랐다.
기억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하기에는 그 뒤의 말들이 자연스럽다.
‘왜지?’
알 듯 말 듯 한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머릿속을 간질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아가씨가 또각또각 걸어와 탁자 옆에 선 때문이다.
무심코 여자를 올려다보던 크리스티는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다가온 여자는, 같은 여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부지불식중에 TV 드라마 속의 삼각관계를 떠올린 크리스티가 눈을 찌푸렸다.
그때 정장을 입은 여자, 임초연이 정중하게 말했다.
“연적하 씨, 진소향 씨, 시간 좀 내주셔야겠습니다.”
임초연을 본 연적하가 알은체를 했다.
“아! 그때 경찰서의 그 공안 아가씨?”
“아가씨가 아니라 경사입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순간 진소향이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낀 크리스티가 차갑게 물었다.
“내 이름은 진소향이 아니라 크리스티예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는 거죠?”
“아, 홍콩에서 유학하시면서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셨나 보군요. 하지만 저뿐 아니라 모든 공안이 크리스티 씨를 진소향으로 부를 겁니다. 크리스티로 불리기를 바란다면 개명을 하시면 됩니다, 진소향 씨.”
임초연은 상대가 싫다는데 굳이 진소향이라는 이름을 거듭 사용했다.
한순간 크리스티와 임초연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가 예의 그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무슨 일로 그러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 모두 어제 오후에 배주대곡을 방문하셨더군요. 그 일과 관련해 몇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대화를 이어 갈까요? 아니면 여기서 할까요?”
“앉으세요.”
말과 함께 크리스티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초연은 마치 일행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크리스티가 내준 자리에 앉았다.
죽고 죽이는 일에 익숙한 연적하는 태연하게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반해 납치를 당했던 크리스티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임초연이 휴대 전화를 탁자에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 두 분과의 대화는 녹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대화를 시작해 보죠. 진소향 씨는…….”
순간 크리스티가 말을 끊었다.
“제 이름은 크리스티예요. 알면서도 계속 진소향이라고 하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임초연은 진소향을 힐끔 보았지만 그녀의 협조가 필요한지라 슬쩍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진, 아니 크리스티 씨는 홍련상회 진과월 부사장의 딸입니다. 그리고 연적하 씨는 진과월 부사장의 손님으로 홍련상회에 머무르고 있죠. 맞습니까?”
“네.”
크리스티는 선선히 대답했다.
연적하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두 분 모두 홍련상회와 관계된 분들이라는 거죠. 그런데, 두 분이 방문한 배주대곡은 홍련상회의 라이벌 회사입니다. 방문 전까지 두 분은 배주대곡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고요. 갑자기 왜 배주대곡을 방문하신 겁니까? 그리고 배주대곡에서 누굴 만났죠?”
크리스티가 연적하를 힐끔 보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음……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배주대곡을 방문하지 않았어요.”
“크리스티 씨가 어제 오후 3시에 배주대곡 정문을 나오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그저께 저녁에 고향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납치를 당했어요. 거기서 바로 모전구에 있는 술집으로 끌려갔어요.”
“납치를 당했다고요? 누가? 왜요?”
“모르겠어요. 그들이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저를 하루 동안 가둬 두고 감시를 했어요. 다음 날 생수를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이번에는 배주대곡 사장실이더라고요. 거기서 부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저를 납치한 게 사장이 한 짓이라며, 미안하다고 한 뒤 보내 줬어요. 그날 배주대곡에서 나올 때 찍힌 걸 거예요.”
“그날 만난 부사장이 이 사람인가요?”
임초연이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사진 속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크리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사람이 저를 보내 줬어요.”
“크리스티 씨를 납치한 게 사장이라고 했고요?”
“네.”
“혹시 그곳에서 마화동 사장을 봤나요?”
“아니요. 부사장과 웬 노인, 그리고 보안팀장이라는 남자만 있었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연적하 씨에게 묻겠습니다. 연적하 씨는 어제 왜 배주대곡에 갔습니까?”
“배주대곡에서 크리스티를 납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를 풀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
그의 대답에 임초연은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배주대곡은 십언시 흑사회의 중심인 장락방이 만든 회사입니다. 그런 곳에서 납치를 했는데, 풀어 달라고 부탁하러 갔다는 겁니까?”
“밑져야 본전인데 말이라도 해 봐야지요.”
“흐음! 여색만 밝히는 줄 알았는데 대단한 의협심을 가지셨군요. 그래서 배주대곡 관계자는 만나셨나요?”
“네.”
“누굴 만나셨습니까?”
“사장, 부사장, 고문, 보안팀장요.”
“약속도 없이 간 걸 텐데 용케 그들을 만나셨네요? 입구에서 순순히 보내 주던가요?”
임초연은 크리스티의 앞이라 그가 허풍을 친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장락방에서 그를 만나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내 주던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싹 만나 보고, 나왔습니다.”
“…….”
연적하의 뻔뻔한 말에 임초연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용 유전 변이 측정기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아시죠? 나사(NASA)에서 제작한 유전 변이 측정기(MDM)입니다. 돌연변이 등록법에 의거 차원력의 유무를 측정하겠습니다. 패드 중앙에 손바닥을 올려 주십시오.”
연적하는 거부하지 않고 패드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패드에 그려진 흰색 원이 반짝이며 한 바퀴를 돌더니 이내 꺼졌다.
“손을 떼도 됩니다.”
그 말에 연적하는 손바닥을 뗐다.
검은 패드 중앙에 ‘Dimension Power 0’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임초연이 조금은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일반인이시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추가적으로 확인할 일이 있으면, 그때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적하가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임초연은 더 묻지 않았다.
진소향(크리스티)은 차원력이 700이나 된다.
그런 진소향도 납치한 배주대곡을 상대로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임초연은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미련 없이 떠났다.
한편 크리스티는 패드의 숫자를 본 뒤로 너무 놀라 눈만 끔뻑였다.
오차가 심하다는 중국산 MDM도 아니고 나사의 MDM으로 한 조사에서 차원력이 0이라니?
그건 눈앞의 연적하가 돌연변이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는 소리다.
‘말도 안 돼.’
차원력이 강한 만큼 신진대사도 빠르다.
배주대곡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당연히 연적하가 배주대곡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내심 연적하의 차원력이 어마 무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Dimension Power 0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아,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절 구하러 배주대곡에 갔다는 말에 놀라서…….”
“너도 못 믿겠냐? 믿어라. CCTV에 찍혔다잖냐.”
“믿어요.”
“그래. 고맙다.”
“아니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저를 구해 주기 위해서 가셨던 건데.”
“알면 잘해.”
“네, 잘할게요! 오라버니!”
크리스티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왜 유전 변이 측정기에 0이라고 뜨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이름은 왜 바꾼 거냐?”
“……그게 소향은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라서요.”
“그게 어때서?”
“제가 소학교 다닐 때 가출을 했어요, 그 여자.”
“아…….”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유학 간 곳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었거든요. 크리스티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니 점점 그 여자가 지어 준 이름이 싫어지더라고요.”
“…….”
“아빠가 다니던 단골 술집 마담이었대요. 그래서 오라버니가 술집 마담에게 작업당했을 때, 아빠가 무척 실망하셨었어요.”
“그게…… 그러니까……. 나는 진짜 몰라서 당한 거야. 내가 도우미 싫다고 했더니,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가 와서 굳이 굳이 술을 따라 주더라고.”
“그래도 싫지는 않으셨나 보네요? 그러니 넙죽넙죽 받아 먹고 그 지경이 됐지.”
“아유, 배부르다. 소화도 시킬 겸 이제 그만 일어나자. 너도 가서 할 일 해야지?”
궁지에 몰린 연적하가 설레발을 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거리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연적하는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터덜터덜 신랑서점으로 걸어갔다.
서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두우로의 눈이 번득였다.
‘씨발,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여자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아작 났을 병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