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17
1517회. 행정안전부 민방위 경보 통제소에서 알려 드립니다!
인천 르네상스 호텔.
이그제크티브 스위트룸.
거실에서 인천의 야경을 내려다보던 구인회가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마 대가(大哥), 구인회입니다.”
대가는 홍콩 홍련방 용두(龍頭)인 마천위의 호칭이다.
그는 널리 알려진 용두나 산주(山主)보다 대가 소리 듣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 아직 한국인가?
“예,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습니다.”
―만나 보니 어떻던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너의 마안(魔眼)으로도 알 수 없다니. 재밌군.
“출국 과정에 아무런 규제가 없던 것으로 보아 MDM(유전 변이 측정기)을 회피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본토에 가족이 없는 돌연변이의 해외 출국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적하의 경우 일반인으로 분류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출국했다.
연적하의 출국 절차를 대행한 구인회가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연 선생이 한국으로 간 이유는 알아냈나?
“사람이나 물건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면 석경장에 살던 연씨일 테고……. 물건이 뭔지 궁금하군.
“알아내겠습니다.”
―구 부장.
“예.”
―조만간 후천세계가 시작될 것이다. 후천세계의 주역은 돌연변이야. 중국이 돌연변이의 해외 출국을 막은 것도 그걸 알아서겠지. 예지 능력자가 나밖에 없는 건 아닐 테니까. 돌연변이는 핵무기에 비견되는 비대칭전력(非對稱戰力)이다. 국가 간에도 그런데 암흑가는 말할 것도 없지.
“예.”
―연 선생은 최소한 갑급(甲級) 돌연변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마저 뛰어넘은 특급(特級)인지도 모르지. 그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 선생이 찾는 게 사람이라면 그를 포섭하고, 물건이라면 연 선생보다 먼저 손에 넣어라.
“……예.”
돕지 말고 빼돌리라는 말에 구인회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구인회의 머뭇거림을 느꼈는지 마천위가 덧붙였다.
―연 선생과 적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자네가 한발 빨리 움직여서, 연 선생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찾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다.
“예.”
―이번 일만 성공하면 본부장 자리를 주지.
“최선을 다하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툭 끊어졌다.
구인회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천위가 노리는 게 뭔지 알겠다.
물건을 먼저 손에 넣어 연적하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다.
잘되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겠지만, 일이 꼬이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좋았던 연 선생과 홍련방의 관계는 물 건너가게 될 터였다.
“쯧! 대가님은 너무 극적인 걸 좋아하신다니까.”
가만히 있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굳이 빚을 지우려 한다.
물론 그게 삼합회의 일 처리 방식이라 뭐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본부장이라는 직위가 걸려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
“연 선생이 찾는 게 뭘까?”
인천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구인회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인천시 주안동.
아침이 되자 식탁에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일찌감치 학교에 간 연시우를 제외한 연정운 내외와 연서연, 그리고 연적하다.
식사가 끝나 갈 즈음 연서연이 연정운에게 물었다.
“아빠, 이분은 언제까지 우리 집에 계시는 거예요?”
“이분이라니, 사촌 동생이라니까.”
“아 네, 그렇다 치고요.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기로 한 거예요?”
“모른다.”
“예에? 왜 몰라요? 누굴 데리고 올 때 그런 거 미리 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반가워서 호텔로 가겠다는 거 그냥 붙잡아 온 거라…….”
연정운이 말끝을 흐렸다.
어젯밤은 분위기에 취해서 호텔로 간다는 사람을 끌고 오다시피 했다.
딸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아차!’ 싶기는 하다.
뭐 하나 빼먹은 거 같았는데, 이제 보니 기간을 정하지 않은 거였다.
중국인은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가족처럼 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하물며 연적하는 혈육, 고향 사람보다 더 가깝게 대해야 마땅하다.
그렇다 해도 기한을 정하지 않은 건 실수였다.
아무래도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다고 생각한 연적하가 슬쩍 끼어들었다.
“삼촌, 무슨 일입니까?”
“네가 언제까지 우리 집에 머무를 건지 묻는구나. 나도 모른다고 했다.”
“아…….”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정운을 보았다.
보통은 난처한 질문에 얼버무리기 마련인데 그는 의외로 솔직한 면이 있었다.
사촌 누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연적하는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당분간 삼촌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호텔 요금 수준으로 숙박비를 지불하겠습니다. 삼촌 집에 있으면 한국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돈이라면 많으니 숙박비를 받는 것에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받아 주셔야 제가 마음 편하게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의논해 보시고 답을 주십쇼.”
연정운은 그 자리에서 연적하의 말을 통역했다.
연정운의 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빈방이 있는 데다, 식사야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될 일이었다.
최근 장사가 잘되지 않아 수입이 없던 터라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연정운이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는 딸에게 물었다.
“서연이 너는?”
“엄마가 좋다면 된 거지. 나는 엄마가 불편할까 봐 물어본 거였으니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연정운이 연적하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다 찬성이다. 그런데 숙박비를 호텔비만큼 주겠다는 건 좀 생각해 보자. 남도 아닌데 그렇게 받으면 내가 도둑놈이지.”
“삼촌,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받아 주셔야 제가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숙박비를 많이 받으셔야 제가 하루라도 빨리 나갈 생각을 할 거 아닙니까. 적게 받으면 준우 제대할 때까지 버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 그런가? 듣고 보니 네가 말한 대로 해야겠구나. 하하하!”
이윽고 연정운은 의아한 얼굴로 보는 처와 딸에게 연적하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제야 연정운의 처와 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식사를 마친 연정운이 딸에게 말했다.
“네가 시간 내서 적하의 학원 등록을 도와주도록 해라.”
“그럴게요. 학원보다 송도국제대학 한국어학당이 나을 거예요. 3월에 개강이니 잘하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접수 기간 지났다고 안 받아 주면 그때 학원을 알아볼게요.”
“그건 알아서 하고. 3월 개강이면 접수가 끝났을 텐데……. 오늘 당장 가서 알아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촌 동생의 일이니까.”
“예, 적하 씨랑 같이 가도 되죠?”
“적하 씨가 뭐냐? 그냥 적하라고 해. 당분간 한집에 살 건데 피차 빨리 적응해야지.”
“예, 예. 적하에게 말이나 해 두세요. 이따가 저 따라서 학원 알아보러 다니라고.”
연정운이 딸의 말을 통역하자 연적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경.
연적하는 사촌 누나인 연서연과 함께 집을 나섰다.
연서연은 휴대 전화의 동시통역 기능을 켠 뒤, 입 가까이 대고 말했다.
“내가 누나니까 말 놓을게. 괜찮지?”
휴대 전화에서 그녀가 한 말이 중국어로 흘러나왔다.
“예.”
“계속 중국에서 살았던 거야?”
“예.”
“그럼 외국에 나온 건 처음이야?”
“예.”
“중국에서는 무슨 일 했어?”
연서연은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답했다.
“숙박업을 잠시 운영했었습니다.”
“오오! 호텔?”
“아니요. 모텔이나 여관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부자 같던데? 우리 집에 있는 동안 호텔비만큼 내겠다고 했다면서?”
“여기저기서 받은 재산이 좀 있었습니다.”
과거 황제를 도와주고 받은 상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오오! 조상 찬스!”
“찬스가 뭔가요?”
“영어 몰라? 기회. 조상을 잘 뒀다고.”
“아하.”
연적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후손에게 그런 소리를 들이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 문득 연적하의 눈에 기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기골이 장대한 남자를 불러 세운 뒤, 검은 패드를 들이댄 것이다.
그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연서연이 설명하듯 말했다.
“돌연변이 등록 계도 기간 끝났잖아. 그래서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불심 검문하는 거야. 중국은 돌연변이 등록이 더 엄하다고 하던데, 길에서 조사 안 해?”
“아, 중국은 돌연변이 등록하지 않으면 벌금이 십만 위안(한화 약 1,800만원)이나 돼서요.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역시 중국! 한국은 걸려 봐야 벌금이 십만 원도 안 돼. 그래서 일단 버티고 보는 사람이 많아. 그러다 보니 저런 식으로라도 찾으려고 하지.”
“한국은 벌금이 약하다고 하더니 진짜 그렇네요.”
“벌금만 약한 줄 알아? 판사들 인심은 더 후해. 마약하다 걸려도 훈계 방면이야. 그래서 범죄자의 천국이라고 하잖아. 외국에서 못된 짓 하다가 걸리면 죄다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할 정도라니까.”
“그 정도라고요?”
“너도 조금 지내다 보면 중국으로 돌아가기 싫어질걸?”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입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봐, 저 돌연변이 남자 봐 봐. 경찰 멱살 잡고 들어 올리잖아.”
연서연의 말에 고개를 돌리던 연적하가 눈을 부릅떴다.
팔 척(약 2미터 40센티미터) 장신의 남자가 경찰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래도 됩니까?”
“되겠니?”
그녀의 말대로다.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벌 떼처럼 몰려와 장신의 남자를 에워쌌다.
경찰들이 테이저 건을 쐈지만 장신의 남자는 끄떡없었다.
오히려 크게 웃으며 들고 있던 경찰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약 3미터 높이에서 내팽개쳐진 경찰은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서연이 그걸 보고 흠칫 몸을 떨며 말했다.
“돌연변이 무섭네. 저 경찰 크게 다쳤을 텐데…….”
“총은 왜 안 쏩니까?”
“총 쏘면 총 쐈다고 시민 단체들이 난리를 치거든. 그럼 경찰서장이나, 현장 책임자가 괴로워져. 대국민 사과하고, 시말서 쓰고, 징계 먹고……. 그러느니 그냥 저렇게 몸으로 때우는 거지.”
“저러다 누구 하나 죽겠는데요?”
“어쩔 수 없어. 범죄자 천국이라고 했잖아. 흉기도 안 든 사람에게 총 쏘면 나락 간다니까.”
“돌연변이는 존재 자체가 흉기잖습니까?”
“그래도 한국은 범죄자 인권 보호가 최우선이야. 법조계 풍토가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아이고! 또 한 사람 잡혔다.”
장신의 남자가 벼락처럼 낚아챈 경찰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만하십시오!”
“선생님! 던지면 안 됩니다!”
경찰들이 소리쳤지만 그는 욕설과 함께 들고 있던 경찰을 멀리 집어 던졌다.
날아가 담벼락과 충돌한 경찰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보다 못한 젊은 경찰 하나가 권총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멈춰! 이 새끼야! 움직이면 쏜다!”
“쏴! 쏴 봐! 이 병신아! 쏠 줄은 아냐? 크크큿! 따라오면 뒈진다! 이 짭새 새끼들아!”
돌연 몸을 돌린 거구의 사내가 이번에는 신기시장으로 달려갔다.
분노한 경찰이 허공으로 공포탄 한 발을 쐈다.
탕!
총소리에 놀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다.
애에에에에에에엥―!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큰 사이렌 소리가 인천시를 뒤흔들었다.
“이건 또 뭐야?”
“전쟁인가?”
“민방위야? 한다는 말 없었는데?”
달아나던 시민들이 멈칫한 순간,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거리를 덮었다.
―행정안전부 민방위 경보 통제소에서 알려 드립니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20분. 서울, 수원, 춘천에 있는 블랙 스피어에서 괴생명체가 나와 국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즉시 블랙 스피어로부터 먼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행정안전부 민방위 경보 통제소에서 알려 드립니다! 현재 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