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3
163회.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은월은 금을 퉁기며 연적하를 살며시 훔쳐보았다.
본래 이 배에는 올 계획이 없었다.
금을 연주하러 다니던 기루의 부탁으로 왔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연적하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있었다.
고산유수에는 사연이 있다.
언젠가 스승에게 ‘고산유수유지음(高山流水有知音)’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춘추시대에 백아라고 거문고를 잘 타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종자기를 만났다.
백아가 산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종자기는 ‘산을 보았다’고 했다.
강물을 떠올리고 연주하면 그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자신의 소리를 안다고 생각해 그를 지기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듬해 약속 장소에 간 백아는 종자기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병에 걸려 이미 세상을 뜨고 난 뒤였다.
백아는 거문고의 현을 끊고, 거문고를 부순 후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처음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술자리의 여흥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연주하고 싶었다.
백아처럼 마음에 한 사람을 담기를 소원했다.
지인이든 정인이든 관계없이 꼭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은월만이 아니라 기루를 전전하는 모든 예기들의 꿈인지도 모른다.
뚱 띠잉-.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가 끝났다.
사람들은 칠현금의 마력에 사로잡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은월은 조용히 금을 정리한 후에 말없이 물러갔다.
멍하니 서 있던 유근식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칠현금 연주를 처음 듣는 게 아닌데, 정말 뛰어나구나.”
“그렇죠? 마치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보통 아가씨는 아니네요.”
진설하가 놀란 눈으로 은월의 뒷모습을 보았다.
무공으로 치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그녀가 아직 이십 대 초반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청운검 남궁천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주를 들었지만 이런 연주는 처음입니다. 은월이라…….”
“남궁 대협께서는 기루에 자주 다니셨나 봐요?”
진설하의 말에 남궁천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십여 년 전에 후기지수들과 몇 차례 모임을 가진 게 전부입니다.”
남궁천의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 진설하는 몇 번을 더 놀려 먹었다.
연적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구경하다가 선수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호반의 불빛이 보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머리가 흩날렸다.
밤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도 다 간 모양이다.
‘하아! 벌써 반년이 지났구나.’
팔자에도 없이 정의맹 협객들이나 한다는 강호행을 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사람을 죽였다.
비록 그는 죽어 마땅한 악인이지만, 마지막 그의 눈빛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미친개 한 마리를 죽여도 찜찜한데 하물며 사람을 죽였음에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길의 끝이 보인다는 점이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다가갔다.
“무슨 생각해?”
“대별산채요. 대별산채에 대해 아세요?”
“하남성 신현의 서하촌에서 동북 방면으로 이십 리쯤 들어가면 황산이 있어. 대별산채는 그곳에 있지.”
“황산에 있는데 왜 대별산채라고 했대요?”
“대별산맥은 호광성, 하남성, 남직례성을 가르는 거대한 산들이야. 황산은 그중 하나고. 삼성의 패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이름으로 지은 게 아닐까?”
“꿈이 큰 도적들이네요.”
“오봉산채는 어땠어?”
“음, 채주 형님이 소박하셨어요. 그래서 지나는 상인에게 은자 한 냥씩만 받으셨죠. 너무 적게 걷어 들인다고 불만을 가진 산적들도 있었어요. 상인들은 그것도 많다고 속이려 했지만.”
“아! 훌륭한 분이시구나.”
“에이, 어차피 도적인데 훌륭한 건 아니고요. 그냥 다른 도적들에 비해 욕심이 적은 정도?”
“대별산채와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큰 형님은 항상 남들 눈에 띄지 말고 오래가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괜히 눈에 띄어 봤자 토벌대만 몰려온다고.”
“훗! 현명하신 분이야. 다행이다. 그런 분과 인연을 맺게 되어서.”
남궁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연적하가 좀 더 잔악한 도적들과 어울렸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풍연초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님들 덕분에 세상 살아가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누님.”
“응?”
“대별산채가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위험할 거야.”
“그렇죠? 이번에 오 채주가 저를 아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다른 채주들은 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요.”
“무한과 정주, 낙양을 오가는 상인들이 많으니까. 다른 지역은 소문이 퍼지기 전에 가서 미처 몰랐던 거지. 지금쯤 너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야. 우리가 동쪽으로 대륙을 절반쯤 돌았으니까.”
“그건 유명교도 알 거라는 거잖아요.”
“그렇겠지.”
“만약 유명교가 저를 노리고 있다면, 대별산채에서 큰 싸움이 나겠죠?”
“그들이 너를 노린다면.”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별산채로 가려면 무한에서 북쪽으로 보름쯤 올라가야 한다.
그 정도면 유명교가 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누님은 유명교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무림에 괴물의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십두마병을 죽인 사람은 네가 처음일 거야. 유명교에서 그런 손해를 보고 가만히 있을까?”
남궁연은 연적하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죠.”
한순간 연적하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솔직히 그는 유명교가 준비를 하든 말든 두렵지 않았다. 싸우다가 정 안되겠다 싶으면 비연보로 달아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심통, 남궁천, 남궁연, 그리고 설차수 일행이다.
그들은 십두마병들에게 뒤를 잡힐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별산채에는 저 혼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남궁연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혼자 가겠다니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십두마병들이 셋 이상 오면 설차수 일행은 반드시 죽을 테니까.
“설 소협 일행도 이젠 십두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만큼 얻었잖아요. 그러니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그들이 허망하게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천 형님이나 연 누님이 다치는 것도 싫고.”
잠시 생각하던 남궁연이 말했다.
“그럼 서하촌까지만이라도 함께 가자. 어차피 길 안내가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
“네?”
“너도 무리할 필요는 없어. 십두마병 셋 이상은 파천마군도 감당하기 어려워. 네가 몸을 피한대도 그는 너를 비난하지 못할 거야.”
“알아요. 저는 이런 일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아요.”
“…….”
남궁연이 문득 연적하를 보았다.
‘이런 일’이라는 말이 왠지 그와 자신의 거리를 느끼게 만들었다.
설차수 일행만 하더라도 십두마병의 정보를 모으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은 강호 정의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연적하는 자신의 일을 폄하하고 있었다.
물론 파천마군이 시켜서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타의에 의해하게 된 일이라 해도, 그것은 옳은 일이다.
정파에서 나고 자란 남궁연은 연적하가 정의로운 일을 추구하길 바랐다.
배가 동호수채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연적하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부채주 혈비도 정상백이 허겁지겁 뒤쫓아 왔다.
“총순찰님! 오 채주가 쓰던 전각으로 모시겠습니다.”
“됐어. 그냥 가서 이사 아저씨에게 마차나 가지고 오라고 전해.”
“밤도 늦었는데 하루 주무시고 가시지요.”
“괜찮아. 조금만 나가면 바로 객잔인데 뭐. 신경 쓰지 마. 객잔 음식이 여기보다 좋아.”
“그, 그래도…….”
정상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음식 맛이야 객잔이 더 뛰어나겠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술과 여자가 있었다.
‘설마 술과 여자보다 음식을 더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머뭇거리고 있는 정상백을 향해 심통이 말했다.
“너, 정상백이라고 했느냐?”
“예.”
“이젠 정 채주지? 정 채주,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총순찰님께서 객잔으로 가시겠다면 가시는 거다. 모시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면 숙박비라도 챙겨 드리든가.”
“아! 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씀하신 것들을 다 준비하겠습니다.”
굽실거리던 정상백은 잰걸음으로 바쁘게 사라졌다.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심 노인, 다 늙은 사람이 무슨 돈을 그렇게 뜯어? 죽으면 가지고 갈 수도 없는데.”
“흐흐, 원래 늙을수록 돈이 없으면 불쌍한 법입니다. 공자님이야 젊으시니까 돈이 없어도 빛나시지만, 늙은이들은 돈이 없으면 지지리 궁상입니다.”
“쯧! 말이나 못하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은월이 나섰다.
“저어, 이 앞 동두촌에 제가 잘 아는 객잔이 있어요. 그리로 가실 거면 제가 모셔도 될까요?”
“그래요 그럼.”
연적하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동호수채를 나가면 가까운 곳에서 하루 묵어야 한다.
‘동호에서 활동하는 예기가 소개할 정도면 제법 괜찮은 곳이겠지?’
늦은 밤이지만 저녁 식사도 확실히 챙겨 줄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멀리서 이두 마차가 다가왔다.
연적하 일행은 신임 채주 정상백의 환송을 받으며 동호수채를 떠났다.
마부 이사와 설차수 사이에 은월이 껴서 앉았다.
허리를 세우고 전방을 주시하던 설차수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저 멀리 먼저 출발한 기녀와 악사들이 어둠 속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어이구. 마을까지 제법 멀 텐데. 태워 줄 자리도 없고. 고생들 하겠네.”
그러자 은월이 냉랭한 어조로 그의 말을 받았다.
“오늘 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고생 좀 해도 돼요.”
“응? 배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 채주가 저를 겁간하려 할 때 저 기녀들이 갑판에 금침(急枕)을 깔아 주었거든요. 악사들은 오 채주의 거짓말을 제가 폭로하지 못하게 막았고요.”
“허! 그런 일이. 기녀들끼리는 친하게 지낼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입니다?”
“네. 저 여자들은 창기고 저는 예기라 서로 약간의 거리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다른 언니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은월은 아까 배에서 당한 일이 뼈에 사무쳤다.
그 일로 연적하를 알게 되었지만 인간에 대한 배신은 또 다른 것이었다.
“동호수채에는 처음입니까?”
“네, 그동안 동호수채에는 안 나갔어요. 본래 가기로 했던 분은 황 아주머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대신 갔다가…….”
은월은 생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달빛을 받으며 일다경(약 20분)쯤 관도를 달리자 점차 집들이 나타났다.
“거의 다 왔네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동두촌이에요.”
은월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달빛에 의지해 주위를 살피던 은월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설 소협, 연 공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