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5
165회. 어떤 귀를 좋아하는데?
연적하는 은월의 뒤를 타박타박 따라갔다.
구천노도 심통이나 청운검 남궁천 등과 떨어져 독방을 쓴다 생각하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심 노인의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군.’
그동안의 여행에서 힘든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심통의 코 고는 소리다.
늙은이의 코 고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게 된다.
그 천둥 치는 소리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지런히 걷던 은월이 제법 큼직한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크기뿐 아니라 문의 장식도 보통의 다른 방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누가 봐도 특실의 느낌이 났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 은월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친절한 아가씨네.’
보통은 방문 앞까지만 안내를 해 주던데 방 안에까지 들어가다니?
그녀를 따라 들어간 연적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왠지 쿰쿰한 다른 방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와아. 냄새가 아주 좋네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잠깐 사용을 했더니 분 냄새가 남았나 봐요.”
은월이 얼굴을 붉혔다.
조금 전에 이곳에서 꾸미고 나갔는데 그때의 냄새가 남은 것일까?
무림의 고수는 오감이 예민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아, 그래요? 죄송할 건 없어요. 오히려 잡냄새보다 훨씬 좋네요.”
“그러시다면 다행이고요.”
배시시 웃던 은월이 입구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적하는 그녀가 방에 남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방을 한번 둘러본 그는 창가로 다가가 밤거리를 찬찬히 살폈다.
숙소를 잡으면 주변부터 살피는 게 습관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심통과 남궁천에게 배운 낯선 곳에서의 안전 수칙들 가운데 하나다.
한편 은월은 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렀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때 몸을 돌린 연적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
은월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급히 숙였다.
“……오늘 밤 은공을 모시려고요.”
“…….”
연적하는 둔하지만 바보가 아니다.
은월이 자신을 따로 데리고 온 이유를 알게 된 그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요. 딱히 그쪽을 구해 주려고 싸운 게 아니라서.”
뜻밖의 말에 은월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한의 남자들은 자신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려고 난리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은공께서는 뜻 없이 그리하셨는지 몰라도 소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기녀라고 하지만 아직 남자를 모르는 몸이옵니다. 은공에게 저만 보아 달라고 매달리지도 않겠습니다. 하룻밤 추억을 평생 마음에 품고 살 터이니…….”
“잠깐.”
연적하가 은월의 말을 끊었다.
“네?”
“아가씨는 내가 구해 줬다고 했지?”
정중하던 연적하의 말투가 살짝 거칠게 변했다.
그는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예.”
“아가씨는 싫다는데 오 채주가 자꾸 엉겨 붙으니까, 괴로워서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예, 그뿐 아니라 그는 강제로 저를 취하려고 했어요. 은공이 아니었으면 저는 끔찍한…….”
“오 채주가 그러는 게 끔찍했다고?”
“네.”
“그럼 나한테도 막 들이대면 안 되는 거잖아. 내 생각을 먼저 물어봐야지.”
“네?”
은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생각을 물어보라니?
지금까지 남자들의 구애만 받던 그녀에게 상당히 낯선 이야기였다.
“혼자 모시겠다 말하지 말고, 내 의견도 좀 물어봐 달라고. 아가씨도 오 채주가 싫은데 강제로 취하려고 해서 끔찍했잖아? 안 그래?”
그제야 은월은 연적하의 말을 알아들었다.
“혹시 은공께서는 제가 싫으신가요?”
“어.”
‘아니 왜?’
은월이 불신의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을 두고 무한의 풍류객들은 ‘무한일월(武漢一月)’이라 불렀다.
무한에 있는 하나의 달.
금을 타는 솜씨만큼이나 외모가 뛰어나 붙은 별명이다.
그런데 그 ‘무한의 하나뿐인 달’이 스스로를 주겠다는데 싫단다.
남자라면 그럴 수가 없다.
설사 고자라 해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거, 거짓말…….”
그러자 연적하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봐. 아가씨. 난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해. 내가 왜 아가씨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그, 그럼, 소녀가 왜 싫으신지 말씀해 보세요.”
“미안하지만 아가씨는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에게 강요하지 마. 설마 오 채주와 같은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헛!’
은월은 기가 막혔다.
그의 입에서 아까부터 왜 자꾸 징그러운 오 채주 이름이 나오나 했다.
‘내가 그 늙은이와 같다고?’
꽃처럼 아름다운 자신을 그 늙은 색마 따위와 비교하다니!
처음에는 지독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은 그의 표정을 보니 맥이 쏙 빠졌다.
그는 정말 싫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심지어 계속 엉겨 붙으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그렇게 소녀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가씨를 좋아하는 남자도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런 사람을 찾아보라고.”
순간 은월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천만에! 무한에서 자신을 거부할 남자는 없다.
‘아니, 딱 한 사람 있구나.’
무슨 운명인지, 하필이면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남자가 자신을 밀어낸다.
기가 막혔지만 싫다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은공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어요.”
“앞으로도 이런 일로는 보지 말자고.”
‘끙!’
칼 같은 남자다.
은월은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렀다.
바보인가?
무한일월이라 불리는 자신이 하룻밤 모시겠다는데 끝까지 저런 소리라니.
원망 가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던 그녀는 조용히 떠나갔다.
은월이 방에서 나가자 연적하는 침상에 걸터앉았다.
방에 떠도는 향기가 그녀의 분 냄새라고 생각하자 왠지 불쾌했다.
싫은 건 싫은 거다.
‘쯧쯧’ 혀를 차던 그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냄새가 빠질 때까지 식당에서 차가운 물이라도 마실 생각이다.
식당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연적하는 아까 앉았던 창가 쪽 벽에 불을 밝혔다.
깨끗하게 정리된 탁자에는 먹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주방을 뒤지니 술 한 병이 나왔다.
그는 홀로 자작자음하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두 번째 잔을 비울 즈음 뒤에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응? 적하니? 안 자고 뭐하고 있어?”
화용독심 남궁연이었다.
“누님이야말로 이 시간에 왜 나왔어요?”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러는 너는?”
“방에서 냄새가 나서요. 냄새 빠지게 창문을 열어 두고 나왔어요.”
“은 소저가 특별히 준비한 방 같던데, 냄새가 났다고?”
“네, 조금 나더라고요.”
“그랬구나…….”
말끝을 흐리던 남궁연이 지나가듯 물었다.
“은 소저는 어쩌고?”
“몰라요. 그 아가씨를 왜 저에게 물으세요?”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그는 남궁연이 자신과 은월을 한 묶음처럼 생각하는 게 싫었다.
“둘이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
직설적인 그녀의 물음에 연적하는 잠시 침묵했다.
다른 사람들은 은월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멍청하게 자신만 아무 생각 없이 그 여자를 쫄래쫄래 따라갔던 것이다.
“……제가 거절했어요.”
순간 남궁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답답한 마음에 식당으로 왔다가 이렇게 놀라운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남궁연은 연적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랬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그렇게 아름다운 소저가 취향이 아니라고?”
남궁연은 기가 막혔다.
은월은 여자의 눈으로 봐도 미녀였다.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취향이 아니라고 거절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이야? 아니, 그 아가씨의 어디가 어때서?”
망설이던 연적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귀가 좀 이상하게 생겼잖아요.”
“귀가?”
남궁연은 은월의 귀를 떠올려 보았다.
조금 귀 끝이 뾰족하긴 했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네.”
그의 진지한 얼굴에 남궁연은 무심코 귀를 매만졌다.
“어떤 귀를 좋아하는데?”
남궁연은 말을 내뱉고서 ‘아차’ 했다.
하필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자신답지 않았다.
“누님 귀요.”
“풋!”
조마조마하게 듣고 있던 남궁연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웃어요?”
“그냥 재밌어서. 진 소저의 귀는 어때?”
“평범하죠.”
남궁연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보니 아까부터 자꾸 귀 얘기로 흐르고 있다.
별 내용도 아닌데 괜히 가슴이 간질간질한 게 즐거웠다.
남궁세가가 멸문한 뒤로 이렇게 행복한 시간은 처음인 것 같다.
두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하남성.
여주.
은하장.
총관 칠절마도 신양이 뭔가를 들고 다급하게 혼세검마 척진경을 찾아갔다.
“당주님.”
“무슨일이냐?”
“무산소축에서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말과 함께 그는 공손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척진경에게 내밀었다.
유명교의 비문(秘文)이 적혀 있는 종잇조각이다.
비문을 읽던 척진경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연적하가 대별산채로 간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놈이 파천마군의 명으로 녹림에 있는 십두마병을 정리하고 있다? 거 참. 그렇게 찾을 때는 안 보이더니만.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와 주는 건가.”
그간 사대신장인 대력귀의 복수를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을 했었다. 그런데 귀신처럼 종적이 묘연하더니 엉뚱하게 대별산채로 가고 있단다.
“무산소축에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데 어찌하시려는지요?”
“어쩌긴, 어차피 우리가 찾아다니던 놈이 아니더냐. 남은 세 신장들도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파천마군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녹림과의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도 될 일이다. 어차피 파천마군도 그 정도는 예측하고 있을 게다. 그놈 혼자 십두마병을 정리할 수 있다고 믿었겠느냐? 연적하도 쓰고 버리는 패임이 틀림없다.”
“허면 신장 셋을 모두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무산소축에서도 셋이나 보낸다는데 과하지 않겠습니까?”
신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십두마병 여섯이면 칠파이문 하나도 말살할 수 있는 전력이다.
고작 연적하 하나를 잡겠다고 그런 전력을 투입한다니?
그런 사실을 무림인들이 알기라도 하면 크게 체면 상할 일이었다.
척진경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직 무산소축의 이 당주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무산낭랑은 치밀한 여자다. 그녀가 셋을 보내고도 협조를 요청할 정도로 뛰어난 놈이라 생각하는 게 옳다.”
“속하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즉시 음산귀, 무쌍귀, 무영귀에게 대별산채로 가라 해라. 반드시 연적하를 죽여 은하장의 체면을 세워야 할 것이다.”
“존명!”
신양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당주의 말마따나 그를 쳐 죽여야 하남성에서 은하장의 체면이 선다. ‘대력귀가 그에게 참살당했다’는 소문을 잠재우려면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