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6
166회. 나중에 말해 줄게
혼란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연적하는 일어나자마자 식당으로 향했다.
구천노도 심통과 청운검 남궁천, 화용독심 남궁연, 그리고 설차수 일행은 벌써 나와 있었다.
연적하는 평소처럼 심통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공자님, 지난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심통의 물음에 사람들이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연적하를 보았다.
평소와 같은 인사였지만 사람들의 눈빛은 뜨거웠다.
연적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사람들은 다시 식사에 몰두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적막한 가운데 젓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식사가 끝날 무렵 은월이 나타났다.
지난밤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꽤나 핼쑥한 얼굴이었다.
“저는 일을 나가야 해서 인사를 하려고 들렀어요. 계획하신 일들이 잘 마무리되시길 바라요. 베풀어 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공손히 인사를 한 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심통이 낯뜨거운 농담을 던졌다.
“흐흐. 보기와 달리 공자님의 정력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아가씨 얼굴을 보니 아주 반쪽이 됐네요.”
“하하!”
“풋!”
남궁천과 남궁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설차수 일행은 감히 소리내어 크게 웃지 못하고 어깨만 들썩거렸다.
오직 진설하만 착잡한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
아무래도 이제 연적하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은월과 동침하지 않았을 테니까.
오늘따라 차가 입에 썼다.
문득 진설하의 시선이 남궁연에게 닿았다.
역시 비범한 사람이라 그런가?
남궁연은 연적하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 역시 연적하를 남자로 보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사람이라니까.’
연적하 정도 되는 남자면 관심을 둘 만도 한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
무한 동북쪽 삼리진.
정오 무렵.
연적하 일행을 태운 마차가 강가에 멈춰 섰다.
잠시 후 마부 이사가 옆자리에 나와 있던 설차수를 보며 말했다.
“나으리. 저게 아까 마을 사람들이 말하던 서강인가 봅니다. 건너는 배가 근처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 봅시다.”
마차에서 내린 이사와 설차수가 강가로 걸어갔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선착장이 보였다.
선착장에 다가가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 쪽을 살피던 이사가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허! 저건 배가 아니라 뗏목 수준인데요?”
“그러게요. 저기에 마차가 올라갈 것 같습니까?”
“글쎄요. 힘들어 보입니다. 마차와 말을 따로 실어 날라야 할 것 같은데요?”
이사가 고개를 저었다.
말과 마차를 한 번에 옮기기에는 뗏목의 폭이 좁아 보였다.
“그럼 두 번에 걸쳐 건너가야겠군요.”
두 사람이 선착장에서 한창 도하 계획을 세울 때다.
뒤쪽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인마가 나타났다.
이윽고 중년의 사내 하나가 말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걸어왔다.
그의 허리춤에 걸린 도가 걸을 때마다 절그럭거리며 흔들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중년의 사내, 지옥도 종다소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청산방의 사람들이오. 급하게 강을 건너야 하니 양보해 주시오.”
그는 사람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일행에게 손짓을 보냈다.
십여 기의 말이 천천히 다가왔다.
대여섯 명의 마을 사람들은 말발굽에 차일까 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종다소는 여전히 선두에 남아 있는 두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실례합시다. 나는 청산방의 종다소라 하오. 당신들은 어디의 누구시오?”
종다소가 미심쩍은 눈으로 설차수와 이사를 보았다.
설차수가 청산방 사람들을 둘러보며 답했다.
“나는 설차수라고 합니다. 당신들도 한 번에 못 건널 것 같은데. 우리 일행도 오래 기다릴 수 없으니 그냥 도착한 순서대로 갑시다.”
종다소의 시선이 설차수의 허리춤에 걸린 검으로 향했다.
열한 명이나 되는 무인들을 앞에 두고 당당한 걸 보니 실력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일행이라면? 설마 저기 있는 마차까지 포함이오?”
“그렇습니다.”
때마침 마차 문을 열고 연적하 일행이 나왔다.
여섯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종다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나 이들이 흑운방과 관계된 자들일까 싶어서다.
청산방은 강 건너에서 흑운방과 싸움 중이다. 지금도 지원을 가는 상황이라 낯선 무림인들의 이동이 영 마음에 걸렸다.
망설이던 종다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근방에서 못 보던 분들 같은데. 당신들은 무슨 일로 강을 건너려고 하는 거요?”
설차수는 불안해하는 상대의 눈빛에서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이런 경우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려 줘야 한다.
“우리는 정의맹의 사람들입니다. 일을 마치고 정주로 돌아가는 중이지요.”
정의맹이라는 말에 종다소의 얼굴이 펴졌다.
“아! 정의맹의 분들이셨구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정의맹 분들이시라면 먼저 가셔야지요.”
종다소는 정사지간의 문파에 속했지만 마치 상급자를 대하듯 했다. 아직은 정의맹이 무림의 주인이다시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설차수에게 읍을 하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곧이어 청산방의 사람들이 천천히 나루터 뒤쪽으로 물러났다.
잠시 후 강 건너편에 있던 뗏목이 돌아왔다.
먼저 분리된 마차와 연적하, 심통, 남궁천 남매가 강을 건넜다.
뒤이어 설차수 일행과 이사, 두 마리 말이 넘어왔다.
이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부지런히 두 마리 말을 마차에 붙들어 맸다.
다시 돌아가는 뗏목을 보며 설차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들으니 청산방과 흑운방 간에 싸움이 났다고 하는군요.”
“그들은 또 무슨 일로 싸운답니까?”
남궁천은 무림세가의 후계자답게 강호 분쟁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남궁천의 옆에 있던 진설하가 재빨리 답했다.
“서로 지지하는 상방이 다른데 두 상방이 충돌을 했다고 해요. 상권을 두고 싸움이 난 거죠.”
“그것 참! 어째 요즘은 가는 곳마다 상방 간에 싸움 소식을 듣는 것 같습니다?”
“정의맹이 유명교를 견제하느라 손을 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은 아무도 중재나 조정을 해 주지 않잖아요. 알아서 싸우고 끝내는 분위기니까.”
그러는 동안 출발 준비를 끝낸 이사가 마부석에서 소리쳤다.
“나리님들. 이제 타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유근식이 마부석 옆으로 이동했다.
모두가 마차에 타자 이사는 천천히 마차를 몰았다.
남궁천과 진설하는 마차에서도 한동안 무림의 정세에 관한 담론을 이어 갔다.
정작 처음에 운을 띄웠던 설차수는 시들한 얼굴이었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남궁연은 가끔씩 진설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은월과의 그 일 이후로 연적하에 대한 관심을 접은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조용히 있는 연적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남궁천과의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앉은 자리도 살짝 변했다.
연적하의 맞은편 자리를 고수하던 그녀가 지금은 남궁천과 마주 보고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연적하와 은월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주 잠깐 사실을 알려 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털어 버렸다
“누님,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요?”
“나중에 말해 줄게.”
심통이 가자미 눈으로 연적하와 남궁연을 힐끔거렸다.
그는 여전히 화사한 봄날 같은 남궁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 남궁연과 연적하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설하처럼 반응해야 정상이다.
‘허! 거참. 모를 일이네.’
심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궁연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할 뿐이다.
***
관도 옆의 숲 속.
흑운방의 암살대를 이끌고 있는 혈귀 춘상공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청산방에 심어 둔 간자(間者)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청산방주를 돕기 위해 타지에 나갔던 한 개 조가 긴급히 돌아왔다고 한다.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게 그와 암살대가 맡은 임무였다.
춘상공은 시위에 화살을 걸고 관도를 노려보았다.
암살대는 기본적으로 활을 다룬다.
열둘이나 되는 그의 수하들도 관도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첫 공격에 못해도 절반은 쓰러트려야 한다.
그래야 이쪽의 피해가 없이 상대를 제압할 수가 있다.
어떻게 올까?
걸어서?
말을 타고?
아니면…….
그는 텅 빈 관도를 보며 계속해서 적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말이다!
‘제길…….’
춘상공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무래도 마상에 있는 자들은 맞추기가 조금 까다롭다.
걷는 사람보다 움직임이 빠를 뿐 아니라 상체의 흔들림도 많아서다.
수하들을 둘러보니 한결같이 긴장한 얼굴들이다.
절반을 먼저 잡는 것에서 서너 명으로 목표를 낮춰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이쪽의 피해도 늘어날 걸 생각하면 피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이런 씨벌!”
잠시 후 드러난 모습에 춘상공은 저도 모르게 욕을 흘렸다.
말만 해도 어려운데 마차였다.
청산방에 부상자가 있다는 걸 알고 아예 마차를 동원한 모양이다.
마부 옆에 앉아서 사방을 경계하는 무사를 보니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 서너 명이 아니라 한두 명으로 더 떨어진다.
거의 적의 전력 전부와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도 방주의 명이니 어쩔 수 없다.
다소간의 희생이 나더라도 저들을 이 자리에 묻어야 한다.
춘상공은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왔다.
이사 옆에 앉아 있던 유근식은 깜짝 놀랐지만 신속하게 발검을 했다.
촤악!
정면으로 날아오던 화살이 잘려 나갔다.
“기습이다!”
쉬쉬쉬쉭-.
유근식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숲 속에서 십여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그가 이사의 뒷덜미를 잡고 마차에서 뛰어내린 뒤였다.
퍼퍼퍼퍼퍽-
마부석 주위로 다섯 개의 화살이 박혔다.
유근식은 재빨리 이사를 끌고 마차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첫 화살을 쳐 내고 마차 뒤로 가기까지 거의 한 호흡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차 뒤에 숨은 뒤에야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헉헉!”
화살 공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튼튼한 마차에 활을 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춘상공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손에 든 화살을 만지작거렸다.
기껏 준비한 기습인데 아무런 소득 없이 이대로 끝내려니 너무 아쉬웠다.
‘제길, 한 놈만이라도 나와라.’
딱 한 놈 만이라도 고슴도치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야 한 시진(2시간) 이상 쪼그리고 있던 보람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때다.
‘콰앙’ 소리와 함께 누군가 마차 지붕을 부수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옳거니!’
춘상공은 상대가 공중에서 멈칫한 순간, 재빨리 화살을 날렸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숨죽이고 있던 암살대 수하들도 기다렸다는 듯 화살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