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7
167회. 내가 강호 초출인 줄 알아?
처음 유근식이 “기습이다!”라고 소리쳤을 때 연적하는 유명교의 짓인 줄 알았다.
유명교 이외에는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올 상대가 없었으니까.
순간 연적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검갑으로 지붕을 부수고 날아올랐다. 십두마병들의 주의를 끌어야 일행이 안전해진다고 믿어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십여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연적하는 발검과 동시에 화살을 모두 잘라 버렸다.
파파파파팍-.
더 이상의 공격이 없자 연적하는 허공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란 얼굴로 서 있는 십여 명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허둥대던 암습자들이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어딜!’
연적하는 지체없이 구천세법 육 식 천뢰무망(天雷無望)을 펼쳤다.
그가 허공에서 검을 휘두르자 뇌전의 검기가 남자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직!
검기에 직격당한 아홉이 뒤로 넘어갔다.
나머지 넷은 놀라서 활을 팽개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비연보를 펼쳐 그들 중 하나의 뒤로 떨어져 내렸다.
척.
어깨 위에 검신이 닿자 사내, 혈귀 춘상공은 석상처럼 굳었다.
“사살려 주십쇼.”
춘상공은 감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애원했다.
“돌아서 봐.”
“예, 예.”
연적하가 어이없는 얼굴로 사십 대 사내를 노려보았다.
“너 뭐야?”
“흑운방의 춘상공이라 합니다.”
“왜 우리 마차를 습격했어?”
“잘못했습니다. 청산방에 소협과 같은 고수가 계신 줄 알았으면 절대로…….”
“무슨 헛소리야. 누가 청산방이래?”
“헉! 청산방을 돕기 위해 오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아니거든. 와아! 십두마병들이 습격한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연적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십두마병들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문득 ‘서하촌까지 가는 길도 안전한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교가 자신의 행보를 알고 있으니 앞으로는 매사에 좀 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때 마차에서 내린 구천노도 심통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아니! 뭐 이런 병신 같은 것들이 다 있지? 너 이놈! 어디의 도적들이냐? 지금 감히 녹림 총순찰이신 우리 공자님을 털어먹어 보겠다는 거야?”
‘녹림 총순찰’이라는 말에 춘상공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정사지간인 흑운방에 녹림은 공포의 대명사였다.
“요, 용서해 주십쇼.”
연적하가 심통을 보며 말했다.
“심 노인, 도적이 아니라 흑운방이래. 우리가 청산방인 줄 알았대.”
심통이 춘상공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이 미친놈아!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죽이려고 들어? 죽인 다음에 아니면? 어? 잘못 죽였네? 이럴 거야? 청산방과 싸움 중이면 청산방이나 잡지 왜 지나가는 엉뚱한 사람들에게 활질이야?”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쇼!”
“네놈들 때문에 다 부서진 저 마차 어떻게 할 거야?”
“방주님께 말씀 올리면 새것으로 장만해 주실 것입니다.”
심통과 춘상공의 이야기를 듣던 연적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심 노인! 지금 마차가 문제야? 유 소협과 마부 아저씨가 죽을 뻔했다고!”
“흐흐. 그 애송이는 이런 놈들의 화살로 죽지 않습니다. 마부까지 데리고 피했던데요, 뭘.”
“그래서? 우리를 죽이려고 한 놈들을 고작 새 마차로 퉁치자고?”
그러자 심통이 춘상공에게 물었다.
“우리 공자님 말씀 들었지? 너 이놈. 어떻게 배상을 할 테냐?”
“저는…….”
“생각해서 대답을 잘해야 할 것이다. 공자님이 화가 나면 흑운방에 죄를 물을 수가 있으니까.”
그러자 춘상공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흑운방의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방주님께서 총순찰님이 흡족하실 만큼 충분히 배상해 주실 겁니다.”
춘상공은 흑운방 방주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렇게 심각한 사안은 방주가 직접 처리하는 게 옳았다.
아랫사람과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가 있는 곳이 어디야?”
“이 길로 조금만 더 가면 흥중촌이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그곳의 열래객잔에 계십니다.”
“알았어. 저 사람들 데리고 먼저 가. 말을 잘 전해야 할 거야. 딴소리 나오면 죄다 저 꼴로 만들어 주지.”
연적하가 숲 속에 널브러져 있는 아홉 명을 가리켰다.
춘상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죽은 게 아니었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살기를 뺐으니까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도 검기에 머리를 맞았으니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 깨워 보면 알겠지.”
“아! 예, 예.”
굽실거리던 춘상공은 숲 속으로 들어가 수하들의 목에 손을 얹었다.
펄떡거리는 맥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분명히 검기가 머리에 박히는 걸 봤는데 살아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한 그는 수하의 뺨을 때려 깨웠다.
“끄응!”
앓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뜬 수하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헤에…….”
‘헉! 미치겠군!’
정신을 차린 수하는 눈에 총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른 사람들을 깨우러 다녔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수하들을 이끌고 먼저 출발했다.
심통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공자님, 저놈들 눈동자가 죄다 맛이 갔던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몰라. 처음에는 유명교인 줄 알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거든. 그런데 다시 보니 꼬락서니가 아닌 거야. 그래서 살기를 뺐더니 저렇게 됐네?”
“흐흐. 흑운방에서 저것들 먹여 살리는 것도 일일 것 같습니다.”
“에이, 설마 평생 저러겠어? 시간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연적하는 애써 사실을 외면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바보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좀 그랬다.
연적하 일행이 다시 마차로 돌아가고 있을 때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청산방 사람들이 다가왔다.
화살이 박힌 마차를 발견한 지옥도 종다소가 흠칫 놀란 얼굴로 말을 세웠다.
“워워!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종다소는 강 건너편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설차수 일행을 바라보았다.
설차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조금 전에 흑운방 사람들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청산방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어이쿠! 그런 일이. 다치신 분은 없으시고요?”
“다행히 마차만 부서지고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쯧쯧! 그자들은 그렇게 앞뒤 없이 칼부터 휘두른다니까요! 저희가 조금만 일찍 왔어도 도와 드렸을 텐데.”
종다소는 이 기회에 정의맹 사람들이 청산방과 함께 흑운방을 쳤으면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니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눈치를 보던 종다소는 아쉬운 얼굴로 떠났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며 심통이 말했다.
“공자님, 저놈이 남의 손으로 코 풀어 보려고 눈알 굴리는 거 보셨습니까? 아무렴 여기에 저보다 못한 사람이 있을까 봐.”
“그랬어? 나는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네.”
“농담이시지요?”
“어? 어.”
연적하가 말을 얼버무리는 것 같자 심통이 물고 늘어졌다.
“공자님, 강호에서 이유 없는 친절은 없습니다. 하물며 칼을 쓰는 일에 친절이라니요. 그건 그냥 차도살인을 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알아, 알아. 내가 무슨 말을 못 한다니까.”
“정말 아는 거 맞지요?”
“이 사람이! 웃자고 한 소린데 죽자고 달려드네. 내가 아직도 강호 초출인 줄 알아?”
두 사람의 툭탁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이사가 채칙을 가볍게 휘둘렀다.
“이려!”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던 마차가 관도 위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
흥중촌.
열래객잔.
흑운방 방주 괴검 풍우성이 기막힌 얼굴로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아침에 청산방의 지원을 처리하라고 암살대를 보냈다.
그런데 오후에 돌아온 그들은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뒤통수를 몽둥이로 맞았는지 눈은 풀려 있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검기에 머리를 맞고 이 지경이 되었다고?”
춘상공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했다.
“예. 검기가 머리에 박히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저런 모습으로…….”
“이 미친놈아! 청산방의 지원 부대를 정리하랬더니 왜 엄한 사람들을 건드려 저 꼴로 만들어! 자그마치 아홉이나 바보가 됐으니 이제 어쩔 셈이냐!”
풍우성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춘상공을 노려 보았다.
솔직히 그가 처남만 아니면 밟아 죽였을 것이다.
“방주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허면 또 뭐가 남았느냐?”
“녹림의 총순찰이 배상을 받으러 오고 있습니다.”
“무슨 배상? 우리 애들을 아홉이나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그쪽은 상한 사람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마차 지붕이 부서졌습니다.”
“그건 제 놈이 부수고 나온 거라면서!”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 때문에 생긴 일이라서. 배상하지 않으면 흑운방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씨벌! 사람들 죄다 모아! 녹림이고 지랄이고 오늘 끝장을 봐야겠다!”
펄펄 날뛰는 풍우성을 춘상공이 만류했다.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하늘로 오 장(약 15미터)이나 날아 오르고, 그 상태에서 검기를 뿌려 대는 놈입니다. 그놈과 맞상대했다가는 몰살당하고 말 겁니다. 유명교 십두마병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는 놈이지 않습니까? 그냥 떠도는 소문이 아닙니다.”
“정말 그 정도 무위라고?”
“예! 소문이 오히려 축소됐습니다. 마차 안에는 그놈 일행도 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고수였습니다. 건드리면 우리는 그날로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배상을 해 주라?”
“예…….”
춘상공이 면목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일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아! 얼마면 되겠느냐?”
“마차를 새로 해 주고, 웃돈을 조금 얹어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쯧쯧! 순진한 놈. 너 녹림이 어떤 놈들인지 아느냐?”
“…….”
“그놈들은 눈만 마주쳐도 전 재산을 털어 가는 놈들이다. 그런데 배상을 요구했다. 그게 일이천 냥으로 해결될 것 같으냐?”
“헉! 허면?”
“인근의 솜씨 좋은 목수들을 죄다 불러 모아라. 일단 마차부터 수리해 줘야 할 테니.”
“예.”
“당분간 너는 청산방과의 싸움에 관여하지 말고 마차 수리만 신경 써라. 책잡히지 않게 새것처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 수하들은…….”
풍우성이 골치 아픈 눈으로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는 아홉 명의 사내를 보았다.
명치 끝이 묵직한 게 아무래도 당분간 음식을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하아! 의원은 뭐라고 하더냐?”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서 저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약을 쓰면 좋아진다고 하더냐?”
“그건 잘 모르겠답니다.”
한참 생각하던 풍우성이 호법 철장 경산조를 바라보았다.
“경 호법.”
“예.”
“자네가 소문이 나지 않게 저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관리하게. 아홉이나 저렇게 된 줄 알면 청산방에서 가만있지 않을 걸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녹림 총순찰인가. 지금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풍우성이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거대한 이두 마차가 객잔 앞에 멈춰 섰다.
곧이어 낯선 무림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연적하를 발견한 춘상공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방주님, 그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