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5
175회. 법보와 객잔
연적하의 이야기에 곤륜삼선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명교에서 수도사를 제물로 바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유언비어 정도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황실에서 유명교 법사를 가까이 두지 않았을 테니까.
태을 선인은 반신반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말을 들을수록 기가 막혔다.
세상에! 수도사 열 명을 제물로 바친 자들이 십두마병이란다.
그럼 백두마군, 천두마왕은?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인지는 정의맹 사람들을 만나 보면 알게 될 일…….’
사파인 녹림 총순찰의 말만 듣고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사안이 중대했다.
“소협의 말씀은 잘 들었소. 그런데 소협의 그 검도 법보 같은 거요?”
태을 선인이 연적하의 검을 가리켜 보였다.
아까부터 그게 궁금했다.
자신의 검으로는 마물의 몸에 생채기도 낼 수 없었다.
일각마인의 머리를 자른 건 태무 선인의 벽사검이다. 자신과 태령 선인은 태무 선인을 돕는 데 그쳤다.
그런데 조금 전에 본 연적하는 달랐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마물을 처치했다. 분명 어느 문파의 법보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녹림이니 누군가에게서 빼앗았으려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았다.
“이거요?”
연적하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검을 들었다.
와룡장의 연씨에게 빼앗은 것이라 무슨 내력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소.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오. 그저 빈도의 검으로는 마물의 피부를 뚫을 수가 없었기에 물어본 것이니.”
“그런데 법보가 뭐예요?”
“아, 그건 부처나 신선들의 힘이 깃든 특별한 물건을 의미하는 거외다. 인간의 공력으로는 마기를 깨고 본체에 충격을 줄 수가 없소. 마기와 상극인 부처나 신선의 힘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오. 그런 이유로 불문이나 도문에서는 법보가 보물이기도 하고. 해서 호기심에 물어본 거라오.”
“이 검이 법보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몰라요.”
“…….”
태을 선인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검에 대해 모른다고? 그렇다면 역시…….’
연적하가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몇 해 전에 연씨에게서 빼앗은 거거든요.”
“아…….”
태을 선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연씨에게 빼앗은 거란다.
태을 선인은 착잡한 눈으로 검을 보았다.
녹림의 손에 들어간 법보가 너무 안타까웠다.
만약 그가 평범한 녹림의 고수였다면 어떻게든 되찾았을 것이다.
머뭇거리던 태을 선인이 정중하게 부탁했다.
“연 소협, 아무쪼록 천하창생을 위해 그 법보를 잘 사용해 주시기 바라오.”
“그, 그럴게요.”
연적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곤경에 빠진 자신을 도와준 노도사들의 부탁인지라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사형과 연적하의 대화가 끝나자 태령 선인이 슬쩍 물었다.
“연 소협,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오?”
“서하촌에 일행이 있어서 그리로 돌아가려고요.”
“아, 우리도 오늘 밤 머물 곳을 찾아야 하는데. 서하촌이 이곳에서 멉니까?”
“아니요. 반 시진만 가면 돼요.”
“그렇군요. 사형, 우리도 서하촌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태령 선인의 눈이 태을 선인을 향했다.
“그렇게 하자꾸나. 연 소협, 우리가 서하촌까지 동행해도 되겠소? 이쪽으로는 처음이라 말만으로는 길을 찾기 어려워서 말이오.”
“괜찮아요.”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삼선은 와룡장의 늙은이들과 달리 심성이 착해 보여서 함께 다녀도 될 것 같았다.
***
서하촌.
무하객잔.
연적하는 술시 말(오후 9시)경에야 객잔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구천노도 심통이 쉬고 있던 주인을 불러냈다.
주인은 곤륜삼선에게 방을 내주고, 내친김에 저녁까지 차려 준 뒤 돌아갔다.
식사 중인 연적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심통이 물었다.
“공자님,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쩝, 쩝. 채주를 포함해 십두마병 셋이 죽고, 넷은 달아났어.”
“헛! 십두마병이 일곱이나 모여 있었던 겁니까?”
“어.”
“그걸 공자님께서 혼자?”
“아니. 저쪽에 있는 도사님들이 도와줬어.”
“곤륜삼선이요?”
“응. 저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싸우고 있었을 거야.”
연적하는 잠시 먹던 걸 중지하고 대별산채의 일을 대충 설명했다.
“……그때 저분들이 짠 하고 나타난 거야. 저분들이 일각마인 하나를 잡고 있는 동안, 얼른 한 놈씩 처리했지. 진짜 꼼짝없이 아침까지 싸워야 하는 줄 알았어.”
“다행이로군요. 그나저나 상처 치료는 잘 하신 겁니까?”
“어, 저분들이 곤륜파에 전해 온다는 금창약을 줘서 발라봤어. 천 형님이 주고 간 약만큼이나 효과가 좋은 것 같더라고.”
“그래도 날이 밝으면 꼭 의원에 들러 보십시오. 날도 따뜻해지고 있는데 덧나면 큰일입니다.”
“알았어. 나도 그럴 생각이야.”
심통이 더 묻지 않자 연적하는 식사에 열중했다.
식사가 끝나자 심통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공자님.”
“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총채주님의 부탁을 끝냈으니 이제 공자님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봉산으로 돌아가실 건지, 아니면 더 강호를 유람하실 건지 궁금해서요.”
“…….”
연적하는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산을 내려온 것은 이기어검의 수련에 한계를 느껴서였다. 그때 심통이 쉴 것을 제안했다. 개구리도 멀리 뛰기 전에 쪼그려 앉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것이 정주에서 파천마군을 만나 녹림산채의 정리로 바뀌었다.
이제 그 일도 끝났으니 심통의 말대로 다음을 생각할 때이긴 하다.
오봉산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세상을 더 떠돌아다닐까?
고민하던 연적하가 심통에게 되물었다.
“심 노인 생각은 어때?”
“저야 무조건 공자님을 따라가는 거지요.”
“아니, 내가 어디로 가는 게 좋겠냐고. 심 노인은 경험이 많으니까 잘 알 거 아냐.”
“저라면 오봉산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왜?”
산채로 돌아가라는 말에 연적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봉산을 내려와서야 녹림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녹림은 도적들의 집단, 힘없는 사람들을 등쳐서 먹고 살아간다.
얼마 전에 만났던 이철산과 한채연, 하소백도 녹림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평생 놀고 먹을 돈까지 모아 놨는데 녹림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연적하가 인상을 구겼지만 심통은 아량곳하지 않았다.
“공자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난세가 아닙니까? 정의맹과 녹림, 유명교가 큰 전쟁을 앞두고 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상방까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싸움질 아닙니까?”
“아, 서론이 너무 길어. 본론이나 말하라고?”
“정의맹과 상방에 공자님의 지인들이 쫙 깔려 있으니까, 오봉산채로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만약 공자님이 정처없이 강호를 유랑한다고 해 보십시오. 지인들에게 큰 변고가 닥쳐도, 연락이 안 되니 도와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지난번 풍 형제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침 공자님께서 가까이 계셨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풍 형제와 탁 형제는 죽었을 겁니다.”
“젠장. 그러니까 지인들을 위해서라도 한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상방이나, 정의맹 쪽에 발을 담그셔야 할 겁니다.”
“미쳤어? 내가 왜 그런데로 가?”
“거 보십시오. 그러기는 싫으시지요? 그러니까 지인들이 공자님에게 연락하기 쉽게 오봉산채로라도 가 계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쩝.”
연적하는 심통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의형제들과 남궁천, 남궁연 남매를 생각하면 그게 최선 같기는 하다.
흔들리는 연적하를 보며 심통이 실실 웃었다.
“남은 심란한데 왜 웃어?”
“웃기지 않습니까? 쓰지도 못할 돈을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웃을 일이야? 울어도 시원치 않은데.”
“흐흐. 너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산채가 그렇게 싫으시면 하가촌에 객잔이나 주루를 하나 사 두는 건 어떻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뒹굴거리기에 딱 좋은 것 같은데.”
“나더러 객잔 주인이 되라고?”
“돈 있을 때 사 두고 평생 공짜로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요. 도둑놈들 틈 속에다가 돈을 쌓아 두면 잠이나 제대로 자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거금에 눈이 돌아간 누군가 들고 튀면 잡을 일도 막막하다.
귀가 얇은 연적하가 고민하자 심통이 부추겼다.
“여행 다니면서 보지 않았습니까? 객잔 하나 가지고 있으면 남부러울 게 없다니까요. 이 무하객잔도 보십쇼. 주인이 그냥 돈 많은 한량 아닙니까? 숙수 하나 고용해 놓으면 평생 먹을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졸리면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자고. 이런 게 신선놀음이 아니면 뭐가 신선놀음이겠습니까?”
연적하의 눈이 반짝였다.
듣고 보니 녹림이나 상방보다 객잔 주인이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평생 맛있는 요리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졸리면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잔다는 것도 괜찮았다.
“그럴까?”
연적하가 넘어오자 신이 났는지 심통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촌장에게 말하면 객잔 하나 구하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공자님께서 객잔을 사면, 저도 작은 주루를 하나 장만하겠습니다. 저희 주루에서 공짜로 술을 드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다가 졸리면 객잔에 가서 주무시는 겁니다. 캬햐! 좋다!”
“오! 그거 참 재밌는 생각인데? 맞아. 산채에서 무슨 수로 돈을 지켜? 죄다 도둑놈들뿐인데. 괜히 쌓아 두고 있다가 도둑맞으면 나만 손해지.”
“맞습니다. 돈은 묻어 두는 거 아닙니다. 제대로 쓸 줄을 알아야지요. 저만 믿으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평생 놀고먹게 해 드리겠습니다.”
“심 노인도 내 옆에서 주루 할 거지?”
연적하는 혼자 객잔을 산다는 게 살짝 불안한 눈치였다.
“그렇다니까요. 제가 그림자처럼 공자님을 따라다니면서 모시겠습니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공자님과 제가 주루와 객잔을 사면, 굳이 산채로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연적하는 산채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아 가며 사는 것보다 객잔 주인이 훨씬 나은 것도 같다.
“알았어. 심 노인만 믿을게.”
“그런데 제가 주루 살 돈이 조금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조금 융통해 주셔야 합니다?”
“일단 객잔부터 사고, 돈이 남으면 빌려줄게.”
“흐흐.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공자님만 믿고 추진하겠습니다.”
“하아! 인생 참 모르는 거야. 철산이가 객잔을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내가 갑자기 그걸 하게 됐네?”
“그가 객잔을 사려면 최소한 십 년은 쓰지 않고 모아야 할 겁니다.”
“채연이랑 같이하기로 했다니까 좀 더 빨리 살 수도 있어.”
“셋이 함께 다니더니 결국 그쪽이랑 연결된 모양입니다? 그럼 소백이는 어떻게 한답니까?”
“소백이는 그 옆에다가 다관(茶館, 찻집)을 차리겠대.”
“공자님에게 같이 하자고 매달리지는 않던가요?”
“어허! 내가 어딜 봐서 다관 같은 걸 할 사람이야? 객잔이면 또 몰라도.”
연적하는 벌써 객잔 주인이 다 된 것 같았다.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곤륜삼선은 연적하와 심통을 힐끔거렸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물인 법보를 가지고서, 고작 한다는 게 객잔이란다.
그것도 마물이 준동하는 이 종말의 시대에.
태을 선인의 시선이 연적하의 허리에 걸려 있는 검으로 향했다.
정말 객잔을 할 거면 저걸 팔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