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4
194회. 동료를 위해 죽어 줄 놈 있냐?
화상촌.
점심 무렵.
세 사람이 마을로 들어섰다.
구천노도 심통과 밧줄에 꽁꽁 묶인 사기꾼 황소와 석인이다.
두 사람 모두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은 퉁퉁 부었고,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였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수군거렸다.
그래도 심통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그는 사기꾼들의 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거칠게 밧줄을 잡아챘다.
고난의 행군은 객잔에 도착해서야 끝났다.
객잔 앞에서 심통은 지금까지 끌고 오다시피 한 황소와 석인을 앞세웠다.
밧줄에 묶인 중년인들을 보고 흠칫 놀라던 상도는, 뒤따라온 심통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심 어르신, 어서 오세요!”
“오냐. 공자님은 어디 계시느냐?”
“자살, 아니, 효자암에 계세요.”
“효자암?”
“예, 늘 나가 계시는 바위를 효자암으로 부르라고 하셔서.”
“누가?”
“공자님께서 자살 바위라는 말이 듣기 싫다고 바꾸라 하셨어요.”
“흐흐흐. 생뚱맞게 웬 효자암?”
의아해하는 심통에게 상도가 그간의 일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날 이후로 녹담평이 그곳에서 삼년상을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효자암이라고 하신 것 같아요.”
“쯧! 마음이 여리시다니까.”
심통의 말에 다 죽어 가던 황소와 석인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마음이 여리다니 잘하면 살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심통은 두 사기꾼을 앞세워 다시 효자암으로 이동했다.
“공자님. 다 구웠습니다.”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검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가에서 물고기를 굽던 녹담평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간이 의자에 걸터앉은 연적하는 꼬챙이 하나를 들고 물어뜯었다.
그러다 입이 심심하면 소홍주를 병째로 들고 마셨다.
연적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녹담평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연적하가 뼈만 붙어 있는 꼬챙이를 불 속에 집어 던질 때다.
‘우두둑’ 하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다가왔다.
상대를 확인한 연적하가 반색을 했다.
“심 노인! 생각보다 늦었네?”
“흐흐. 방향을 완전히 헛짚어서 조금 걸렸습니다.”
심통이 멋쩍은 표정으로 얼굴을 긁적였다.
만약 정주가 있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갔더라면 보름도 안 걸렸을 것이다.
하필 정반대 방향을 찍는 바람에 한 달 하고도 열흘이나 소요됐다.
“그런데 소삼은 안 보이네?”
“이놈들이 소삼의 뒤통수를 치고 제녕까지 튀었지 뭡니까? 결과적으로는 소삼만 운 좋은 놈이 됐지요.”
“돈은?”
“일만 오백 냥을 되찾았습니다. 그 새 천오백 냥이나 써 버렸더라고요.”
“와아! 두 놈이 한 달 열흘 동안 천오백 냥을 썼다고? 미친 거 아냐?”
“도박장은 기본이고, 최고급 기루에서 기녀들을 끼고 살았으니 그럴 법도 하지요. 몇 대가 놀고먹을 돈도 사기꾼들 손에 들어가면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서 아까운 줄 모르고 써 버리거든요. 또 사기를 쳐서 벌면 되니까. 개보다도 못한 놈들입니다.”
심통이 묶었던 황소와 석인의 줄을 풀은 뒤, 발로 차 연적하 쪽으로 보냈다.
“살려 주십시오!”
“공자님! 목숨만 살려 주십쇼!”
황소와 석인은 연적하 앞에 무릎 꿇고 소리쳤다.
무심한 눈으로 두 남자를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얼굴은 왜 이 모양이야?”
“틈만 나면 달아나려고 하지 뭡니까? 그럴 때마다 욱해서 손찌검을 좀 했습니다.”
“저런! 얼굴이 부어서 하마터면 누가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잖아. 쯧쯧!”
연적하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차자 황소가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올렸다.
“공자님, 용서해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고향으로 돌아가 노모를 봉양하며 살겠습니다. 제발.”
“저, 저도 고향에 노모와 처자식이 있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심 노인 고생 많았겠어. 말 많은 사기꾼들 데리고 오느라고. 혀를 뽑아서 오지 그랬어?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잖아.”
“…….”
찔끔 놀란 황소와 석인은 다시 입을 다물고 이마를 바위에 처박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만 더 ‘살려 달라 용서해 달라’ 어쩌고 하면 혀를 뽑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뽑아 버릴까요?”
“그러면 안 돼. 여기 효자암이야. 효자암에서 그런 짓을 하면 되겠어?”
“아, 예.”
제 할 일을 마친 심통은 불가에 쪼그리고 앉아 꼬챙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러자 녹담평이 황급히 다가가 소홍주 한 병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하는 짓이 완전히 점소이다.
심통은 비릿한 눈으로 녹담평을 보며 물고기를 물어뜯었다.
녹담평은 끈적끈적한 심통의 눈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
의자에서 일어난 연적하가 뒷짐을 지고 황하를 향해 걸어갔다.
지난 한 달 열흘간의 심적 고통이 떠올랐다.
남초결의 무시와 일꾼들의 동정과 의심 어린 눈길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다.
부주의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사기꾼들에 대한 살의로 자다가 깬 날도 부지기수.
남들이 뒤에서 비웃을까 봐 대놓고 찾지도 못했다.
저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개운해질까?
“당해 보니 알겠더라. 살인보다 사기가 더 살 떨린다는 것을. 살인은 육체만 죽이는 거지만, 사기를 당하면 영혼까지도 말라비틀어지거든. 영혼이 죽으면 몸도 따라 죽게 돼. 그러니까 너희는 나와 심 노인을 두 번 죽인 거야.”
황소와 석인이 무릎걸음으로 연적하를 졸졸 따라가며 애원했다.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자비를…….”
문득 연적하의 시선이 삼 장(약 9 미터)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와류로 향했다.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적하의 말에 황소와 석인은 감사의 인사부터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다시 시커멓게 죽어 갔다.
“그런데 세상이 나를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네. 내가 독해지는 건 다 너희 같은 사기꾼들 때문이야. 이제는 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심 노인.”
“예.”
심통이 뜯어먹던 물고기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가서 사 장(약 12미터) 길이의 밧줄 두 개를 구해 와.”
“바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심통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람처럼 달려 바위에서 사라졌다.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심통이 양손에 굵은 밧줄 뭉치를 하나씩 들고 돌아왔다.
연적하가 녹담평을 바라보았다.
“어이 녹 형, 수고 좀 해 줘야겠어. 각각의 밧줄 끝에 두 놈의 허리를 묶어.”
“예.”
녹담평은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두 사람의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잘 묶었지? 풀리면 안 돼.”
“예. 끊어지면 몰라도 풀리지는 않을 겁니다.”
“잘했어. 녹 형, 낚시 할 줄 알아?”
“예?”
“낚시 몰라? 물고기 잡는 거.”
“아, 압니다.”
“두 사기꾼을 물고기라고 생각하고 끌어 올리는 거야. 알겠지?”
“끌어 올린다고요?”
바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 올린다는 말인가?
녹담평이 의아해할 때다.
뒤로 돌아온 연적하가 황소와 석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으아아!”
“아악!”
황소와 석인이 삼 장 아래의 와류로 떨어져 내렸다.
휘리릭.
갑자기 줄이 풀려 나가자 녹담평은 깜짝 놀라 밧줄 끝을 움켜잡았다.
팅. 티잉.
삽시간에 둘둘 말려 있던 두 개의 줄이 팽팽해졌다.
의자로 돌아가 앉은 연적하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이제 다시 잡아 올리는 거야. 늦으면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몰라.”
“이, 이걸 끌어 올리라고요?”
녹담평은 가슴이 철렁했다.
양손에 하나씩 밧줄을 잡고 있는 터라 힘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삼보방의 소방주가 그 정도도 못해? 여자들 때릴 때의 힘은 어디 갔어? 살리고 싶으면 빨리하는 게 좋아. 이제 슬슬 죽을 때가 됐으니까.”
“…….”
녹담평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무래도 연 공자는 자신을 이용해 복수를 할 모양이다.
두 사람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어깨가 무거웠다.
아무리 자신이 개망나니로 살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연 공자의 성격상 사기꾼들이 죽으면 자신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랐다.
사기꾼들이나 자신은 연 공자가 쳐 놓은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 같은 신세였다.
하지만 어떻게?
머리를 굴리던 녹담평은 재빨리 손목을 빙빙 돌렸다.
밧줄을 양쪽 팔뚝에 감자 점차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졌다.
두 사람 모두 정신을 잃었는지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끙!”
녹담평은 산모가 애를 낳는 것처럼 용을 썼다.
잠시 후 흙탕물에 흠뻑 젖은 두 사기꾼이 바위 위로 끌어 올려졌다.
녹담평은 그들의 맥을 살펴본 후에 축 늘어졌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심통과 술을 마시던 연적하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녹 형.”
“예?”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하루에 세 번씩 던지는 거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외공을 수련한다고 생각해.”
“세 번요?”
녹담평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단 한 번 끌어 올린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데, 이 짓을 하루에 세 번이나 하라고?
“왜? 좀 적은가?”
“아닙니다. 그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정 힘들면 끌어 올리지 말고 놔줘도 돼. 사기꾼들 때문에 녹 형이 고생하면 안 되지. 삼년상을 지내야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녹담평은 ‘끝까지 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는 데까지 해 보다가 너무 힘들면 그냥 놓아 버릴 생각이었다.
자신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단 한 번 팔뚝에 줄을 감았는데 아직도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일각(15분)이 넘도록 피가 통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외공 수련이 아니라 몸을 버리는 짓이었다.
황소와 석인은 한 시진 후에 깨어났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두 사람의 눈빛은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연적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녹 형. 잘 지켜. 만약 사기꾼들이 달아나면, 다시 잡아 올 때까지 녹 형을 묶어서 던질 거야.”
“예!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연적하와 심통은 밀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객잔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녹담평은 시중을 드는 삼보방의 수하를 불렀다.
“가서 애들을 더 데리고 와야겠다. 며칠간 이 사기꾼들을 지키려면 손이 부족하다.”
“예.”
삼보방의 수하는 동료를 부르러 효자암을 떠났다.
이윽고 녹담평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두 사기꾼에게 시선을 돌렸다.
척 봐도 희망이 없는 얼굴들이다.
“연 공자께서 너희를 하루에 세 번 던지라고 하셨다. 나도 힘드니까 그 전에 죽을 놈은 빨리 죽어라. 솔직히 네놈들에게는 지옥이 더 편할지도 몰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석인이 물었다.
“연 공자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석인은 연 공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고작 한 달 열흘 만에 자신들을 잡고, 생사에 신경 쓰지 않고 악랄하게 괴롭히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녹담평은 누가 들을세라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에 나직이 말했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
“…….”
순간 석인과 황소의 얼굴이 굳었다.
뒤늦게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는 자책이 든다.
그때 녹담평이 퉁퉁 부은 팔뚝을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봐라. 네놈들을 동시에 끌어 올리다가 이렇게 됐다. 팔뚝에 밧줄을 감아야 했거든. 이렇게.”
녹담평이 밧줄을 양쪽 팔에 둘둘 감아 보였다.
“앞으로 몇 번이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한 놈이라면 모를까? 두 놈은 무리다. 동료를 위해 죽어 줄 놈 있냐? 없으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다. 나도 병신이 되기는 싫으니까.”
잔혹한 질문 앞에서 황소와 석인은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