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3
193회. 가자. 지옥으로
대화를 끝낸 파천마군 석무해는 십이마군과 함께 자살 바위를 떠났다.
화상촌을 벗어날 즈음 첫째인 귀영자군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정말 총순찰에게 칼자루를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왜?”
“무림 경험이 부족한 그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돼서 말입니다.”
“쯧쯧! 뱁새가 어찌 황새의 뜻을 알겠다고.”
석무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둘째인 적안축군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
“사실 저도 총순찰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어쩌시려고.”
“나쁜 마음?”
“녹림을 집어삼키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에라 이놈아.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를 해라. 산채도 싫다고 떠도는 총순찰이 녹림을 집어삼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적안축군이 헛기침과 함께 말을 바꾸었다.
“험, 험. 그건 그냥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총채주님이 계신데 왜 그에게 녹림의 칼자루를 맡긴다고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채주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혼란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석무해는 십이마군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인상을 팍팍 쓰고 있는 게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들이다.
차기 총채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그들은 연적하에게 집중되는 권력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자면 어쩔 수 없다.
십이마군들이 유명교의 적수가 못 되니 연적하라도 앞세워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뛰어들면 판이 커지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될 말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유명교와 정의맹의 양패구상. 총순찰은 나를 대신해 불쏘시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만약 너희가 유명교를 감당할 수 있다면 너희에게 맡기마. 누가 하겠느냐?”
석무해가 묻자 십이마군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쯧쯧!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욕심만 많아서. 녹림은 한 식구다. 이익을 보려면 능력이 되는 자를 앞에 세워야지. 남녀노소와 출신 성분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해.”
“…….”
석무해의 따끔한 일침에 십이마군들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
하택.
타는 듯한 붉은 노을 속에 염소수염의 늙은이가 도시로 들어섰다.
허리에 붉은 도갑의 유엽도를 찬 그는 구천노도 심통이었다.
심통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달려간 곳은 정주였다.
객잔 주인을 사칭한 놈이 정주가 고향이라고 해서 혹시나 싶어 간 것이다.
역시나 정주의 하오문에서는 그런 놈들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반신반의하고 갔던 길이라 크게 실망은 하지 않았다.
그 뒤 바로 개봉 북부의 도시 복양으로 갔다.
복양의 하오문을 뒤집었지만 허사였다.
그다음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개봉 동쪽의 하택이다.
심통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사기꾼들이 대도시를 떠돌아다닌다고 했겠다.’
그동안 하오문들을 족치고 다니면서 사기꾼들의 습성에 대해 많은 걸 알아냈다.
일단 그들의 주 무대는 대도시다.
그다음 신뢰를 얻기까지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성실하게 살아 간다.
상권을 파악하고, 인심을 얻게 되면 호구를 기다리다가 한탕 하고 튄다.
‘수중에 목돈이 있는 놈들이니 기루부터 뒤져야겠지?’
심통은 가장 크고 화려해 보이는 기루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기루의 호위무사들이 달려와 제지했지만 손짓 한 번에 날아갔다.
결국 기루를 관리하는 용호방이 나섰다.
그러나 삼류 방파에 불과한 용호방이 그의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잠시 후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이 든 용호방주 단수고가 얌전하게 무릎을 꿇었다.
심통은 살기를 꾹꾹 누르고 말했다.
“세 놈의 사기꾼을 찾고 있다. 황소, 석인, 소삼이라는 이름을 쓴다. 황소라는 놈은 인자하게 생겼고, 석인은 눈 밑에 큰 점이 있다. 소삼은…….”
심통은 소삼에 대해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놈들과 함께 다니며 바람을 잡는다. 큰돈을 가졌으니 흥청망청 쓰고 있겠지. 이 셋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흐흐흐. 대답이 쉽게 나오는구나. 하루 시간을 주겠다. 찾아라. 찾지 못하면 용호방의 방주가 바뀔 것이다.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헉! 예, 찾겠습니다! 반드시 찾겠습니다!”
심통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단수고가 황급히 물러났다.
기루에서 나간 심통은 곧바로 하택의 하오문을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쳤다.
심통으로 인해 하택의 뒷골목이 발칵 뒤집혔다.
심통은 본래 사파의 사람인지라 일 처리가 단순 무식했지만 효과는 빨랐다.
하루 만에 단수고가 이쁘장하게 생긴 기녀를 심통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데리고 왔다.
기녀, 월향이 심통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소녀 월향이라 하옵니다.”
“긴말할 거 없다. 그 세 사기꾼들에 대해 말하거라.”
“아, 예. 셋은 아니고요. 보름 전 눈 밑에 점이 있는 손님 일행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제녕에 가서 기루를 인수할 거라고 했어요. 둘 다 제녕에 가서 크게 사업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돈을 꽤 많이 써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심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수고를 노려보았다.
“만약 이게 네놈의 허튼수작이라면, 반드시 돌아와 목을 따 버리겠다.”
“어이쿠!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어르신을 속이려 하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월향이라는 년의 말만 듣고 데리고 왔을 뿐입니다.”
단수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심통은 ‘흥!’하고 냉소를 친 뒤 객잔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 단수고는 월향을 붙잡고 ‘그 말이 사실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
제녕.
옥적객잔.
“으헉!”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사내가 비명과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그 소란에 잠에서 깬 석인이 갈라진 음성으로 물었다.
“황 형, 악몽이라도 꾼 거야?”
“끄응! 염라대왕 앞에 불려간 꿈을 꾸었네. 나도 이제 늙었나. 별스러운 꿈을 다 꾸네.”
“꿈에 염라대왕을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데. 그거 길몽이야. 좋은 기운이니 나에게도 좀 나눠 줘.”
“그렇게 좋으면 다 가져가게. 나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고맙게 받겠네. 꿈값은 아침에 주지.”
다시 자리에 누운 황소가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그런 꿈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네.”
“옆자리가 허전해서 그런 건 아니고? 내일부터는 옆에 기녀를 끼고 자게.”
“그런가.”
시시덕거리던 두 사람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자 두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제법 큰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황소에게 석인이 나직이 말했다.
“이봐. 어째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죄다 무림인이잖아.”
황소의 얼굴도 살짝 굳었다.
흉악한 얼굴을 보니 사파의 무림인들이 몰려온 모양이다.
이럴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
황소와 석인은 슬그머니 몸을 돌려 이 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이봐. 거기 두 사람.”
황소와 석인이 흠칫 놀란 얼굴로 돌아섰다.
그들을 불러 세운 사십 대 남자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자, 제녕 하오문의 문주인 화락도 설도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쪽으로 와 봐.”
황소와 석인은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설도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어디 보자. 인자하게 생긴 얼굴과 눈 밑의 점. 맞네. 맞아. 씨벌! 고맙다. 덕분에 살았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황소가 황당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초면의 사내가 고맙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설도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주인 데리고 가서 이놈들 방 싹 뒤져.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그 방에서 나온 동전 한 문이라도 빼돌렸다가는 다 죽는다. 싹 챙겨 와.”
“예!”
식당에 있던 사내들이 우르르 이 층으로 올라갔다.
놀란 석인이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무림인이라 해도 이게 무슨 경우요?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요? 우리는 제녕의 추관(推官, 판관)으로…….”
“추관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눈 밑의 점을 보니 네놈이 석인이렷다. 사흘 내내 기루에서 지내는 추관도 있더냐? 이 사기꾼 새끼들아! 어르신께서 곱게 끌고 오라고 해서 안 건드리는 줄이나 알아.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개고생 한 걸 생각하면.”
설도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제야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석인은 황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한 번만 봐 주십시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미친놈! 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저승 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쓰라고?”
그러는 동안 사내들이 행낭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문주님, 다른 짐은 없습니다. 이거 두 개가 전부입니다.”
“돈은 얼마가 들었더냐?”
“각각 오천 냥 남짓 들어 있습니다.”
“와아! 이 새끼들 어디서 크게 한 탕 하고 왔구나. 가자. 어르신께서 기다리신다.”
설도가 앞장서자 하오문도들이 황소와 석인을 끌고 그 뒤를 따랐다.
***
제녕 외곽의 토지신묘.
“으흐흐흐흐.”
심통이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눈앞의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황소와 석인을 보니 해탈보다 더한 기쁨이 밀려온다.
한 놈 한 놈 뼈를 바를 듯 살피던 심통이 물었다.
“소삼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느냐?”
황소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답했다.
“어르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저 하찮은 목숨만 살려 주십쇼.”
“흐흐흐.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아직은 죽이지 않을 것이니. 소삼이 어딨는지나 말해라.”
“저희도 그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를 개봉에 남겨 두고 떠났기에…….”
황소는 어쩔 수 없이 둘이서 소삼을 배신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너희 둘이 또 그놈의 뒤통수를 쳤다는 말이냐?”
“예. 용서해 주십시오.”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살려 달라거나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면 혀를 뽑아 버리겠다.”
“…….”
깜짝 놀란 황소와 석인은 연신이 마로 바닥을 ‘쿵쿵’ 찍어 댔다.
“그 소리도 듣기 싫으니 찍소리도 내지 마라.”
그제야 황소와 석인은 고두배를 멈췄다.
심통이 이번에는 설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알지?”
찔끔 놀란 설도는 눈을 내리깔았다.
처음에는 심통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오문의 정보력은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저 유명한 구천노도 심통임을 알았다.
녹림 총순찰의 그림자와도 같은 절세의 고수.
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기꾼들의 행적을 쫓았다.
“예, 어르신.”
“오늘의 일을 잊어라. 수하들 입단속도 확실히 하고. 만약 이와 관련된 말이 내 귀에 들리면 너는…….”
심통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그어 보였다.
녹림의 어르신들이 고작 사기꾼들에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돌면 그런 망신도 없다.
사기꾼들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리고 오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염려하지 마십쇼! 감히 어느 분의 일이라고 입 밖에 내겠습니까!”
심통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설도는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이윽고 심통이 떨고 있는 황소와 석인에게 말했다.
“가자. 지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