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8
198회.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
출정 직전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은 대주들과 따로 모임을 가졌다.
“무림 정의를 위해 흔쾌히 대주 자리를 맡아 주신 여러 고인(高人)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출발에 앞서 뵙자고 한 것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제갈승운의 말에 천추대 대주 무상도제 장무덕이 입을 열었다.
“출발 전에 대주들만 따로 모은 것을 보니 꽤나 중요한 이야기인가 보구먼.”
“그렇습니다. 이번 유명교와의 전쟁은 황제께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황실이 유명교와의 관계를 끊었다는 말이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유명교도들의 뇌물 공세에 황실의 인물들이 여럿 포섭되었다고 합니다. 허나 유명교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위기를 느낀 것 같습니다.”
“결국 차도살인을 하겠다는 건가? 쯧! 이래서 황실을 믿으면 안 된다니까.”
장무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갈승운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저도 황실을 믿지는 않습니다. 언제 토사구팽 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남경에서 이토록 대규모 집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황제께서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맹의 이번 행사에는 약간의 제약이 따릅니다.”
“제약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척마대 대주 의천검존 이의정이 의아한 눈으로 제갈승운을 보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말인 까닭이다.
제갈승운이 씁쓰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실은 어젯밤에 금의위 지휘사 모양(毛驤)이 찾아왔었습니다.”
“모양? 황제의 최측근이라는 그 무장을 말하는 거요?”
장무덕이 아는 체를 했다.
무극문이 남경에 있어 그는 중앙 관료들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금의위 지휘사 모양에 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금의위는 황제의 친위 군사 기구로 감찰, 체포, 심문 등의 일을 한다. 그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 남경의 무림 문파치고 금의위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어젯밤에 은밀히 찾아와 두 가지 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첫째는 황제께서 근심하니 빨리 남경에서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명의 대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한 천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남경에 모였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그리고 둘째는 백성들이 놀랄 수 있으니 전체가 함께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로 대주님들을 모신 것입니다.”
의기대 대주 검왕 남궁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함께 움직이지 말라는 말은 설마 네 개 대가 따로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인원이 적은 의기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천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뭉쳐 다니면 반란이라도 일어난 줄 알 테니까요. 해서 네 개 대가 각기 다른 경로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
남궁벽은 반박할 말이 없어서 그냥 한숨만 쉬고 말았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그러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의정이 남궁벽을 위로했다.
“검왕,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 어차피 하남성까지는 큰일이 없을 것 같으니.”
“예, 저도 유명교가 정주에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남궁벽은 천하십대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지라 공손하게 답했다.
본래 남궁벽의 배분은 칠파이문의 장문인에 해당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일선에서 물러난 은거기인들이었다.
모두 납득하는 분위기가 되자 제갈 승운이 나섰다.
“해서 어제 급하게 금의위 지휘사와 함께 네 개의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척마대의 행로입니다. 북쪽으로 올라가 홍택호를 경유해 서주, 상구, 개봉을 지나 정주로 진입하십시오.”
“알겠네.”
이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승운이 멸사대 대주인 무극상인을 보았다.
“두 번 째는 멸사대의 행로입니다.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저주, 방부, 박주를 지나 정주로 진입하십시오.”
“그러리다.”
무극상인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승운의 시선이 이번에는 장무덕에게로 향했다.
“세 번째로 천추대는 멸사대와 같이 북서쪽이지만 진로를 약간 변경하였습니다. 저주까지는 같으나 그 이후로 회남, 부양, 주구를 거쳐 정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지.”
대주들의 시선이 남궁벽에게로 향했다.
남아 있는 방향은 서쪽. 합비를 경유해 왼쪽으로 크게 도는 길이다.
합비에는 유명교 교당인 무산소축이 있다.
제갈승운은 복수를 하라고 서쪽 길을 남궁벽에게 내줄 모양인데, 인원이 너무 적었다.
남궁벽이 묘한 눈으로 제갈승운을 보았다.
그는 제갈승운과 같은 배분이지만 나이가 더 많아 항상 선배 소리를 들었다.
제갈승운이 자신과 남궁세가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본래 몰살당한 의기대를 꾸려 나가던 문파는 소림사와 의천문이다. 하지만 제갈승운이 재편성을 하지 않아 소림사와 의천문은 척마대와 천추대로 빠져나갔다.
의기대가 재편성된 상태였다면 초반부터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갈승운은 문파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맡겼다. 솔직히 자신이라도 칠파이문의 지원이 없는 의기대를 피했을 것이다.
‘자아, 나를 배려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물을 먹이려는 것이냐?’
남궁벽은 제갈승운의 처사가 세상 인심이라는 걸 알기에 딱히 노여워하지 않았다. 남궁세가도 약한 세력을 찍어 누르며 무림 세가의 자리에 오른 까닭이다.
제갈세가가 남궁세가의 지위를 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네 번째로 의기대는 서쪽으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합비, 신양, 주마점, 허창을 경유해 정주로 올라가십시오.”
“알겠네. 그러지.”
남궁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합비에는 무산소축이, 허창과 정주 사이에는 저 유명한 은하장이 있다.
남궁세가를 멸문으로 이끈 무산소축과 의기대를 몰살한 은하장을 던져 준 것이다.
이의정이 복잡한 눈으로 제갈승운과 남궁벽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의기대 전력으로 무산소축과 은하장은 무리다.
그런데 남궁벽은 그런 불합리한 결정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남궁세가를 말려 죽이겠다는 제갈승운과 그걸 선선히 받아들이는 남궁벽을 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게 생겼구먼. 나중에 무당파가 문제를 제기하면 어쩌려고.’
이의정은 제갈승운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명무실해진 남궁세가야 조용히 넘어간다 쳐도 무당파는 다르다.
무당파가 반감을 가지면 칠파이문의 도가 문파들도 제갈세가를 밀어 내려 할 것이다.
‘설마 무당파까지 주저앉히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막을 수는 없었다. 약간의 희생이 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제갈승운이 대주들을 둘러보며 주의를 당부했다.
“지금 말씀드린 경로는 오늘 아침 금의위 지휘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경로를 벗어나면 다른 마음을 먹은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니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대주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승운이 ‘다른 마음’이라고에 둘러 표현했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황실의 협력은 양날의 검이다.
지금이야 혜택을 누리지만, 토사구팽 될 때를 대비해 책잡힐 짓은 하지 않는 게 낫다.
긴급회의가 끝나자 네 명의 대주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무장한 정의맹 고수 천오백여 명이 남경을 빠져나갔다.
***
개봉.
화상촌.
극한의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황소와 석인이 그랬다.
처음 갑자기 황하에 던져졌을 때는 기절할 만큼 물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요령이 붙어 처음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밧줄로 묶인 것은 허리지 손발이 아니다.
황소와 석인은 황하에 뛰어들면 부지런히 손을 놀려 머리부터 밖으로 빼냈다.
녹담평이 위에서 밧줄을 잡고 있기에 버티고만 있으면 아무 이상 없었다.
뜻밖에도 녹담평만 고생하고 있는 셈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 효자암으로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녹담평은 밧줄로 황소와 석인의 허리를 묶었다.
황소와 석인은 녹담평이 발로 밀어내기 전에 스스로 황하로 뛰어내렸다.
어딘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동작들이다.
심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소와 석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담겨 있지 않았다.
첫날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고 불고 매달리던 놈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심통은 바위 끝으로 다가가 길게 목을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씨벌!”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두 사기꾼 놈들이 손으로 밧줄을 움켜잡고 소용돌이 속에 둥둥 떠 있었다.
녹담평은 그만 끌어 올리라는 뜻인 줄 알고 부지런히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심통이 녹담평을 걷어찼다.
“병신 같은 놈아! 누가 끌어 올리라고 했느냐!”
녹담평은 밧줄을 다시 풀어내고는 심통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공자님, 지금 보니 사기꾼 놈들이 밧줄에 매달려 놀고 있습니다.”
바위 끝에서 아래를 확인한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와아! 저 사기꾼 놈들. 저러던 놈들이 올라와서는 죽은 척 늘어져 있었던 거야? 야아. 무섭다. 심 노인이 알아서 잘 처리해.”
연적하는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 간이 의자로 돌아갔다.
“녹가야. 이제부터는 노부가 말하기 전까지 밧줄을 끌어 올리지 마라.”
“예.”
심통은 바위 끝에 쪼그리고 앉아 아래를 주시했다.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힘이 빠졌는지 사기꾼들의 머리가 수면 아래로 잠겼다가 올라왔다.
힘든 건 사기꾼들만이 아니다.
반 시진 동안 양손으로 밧줄을 잡고 있는 녹담평은 이미 전신이 땀투성이였다.
잠시 후 수면 아래로 내려간 사기꾼들의 머리통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제야 심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끌어 올려.”
“예? 예.”
녹담평은 밧줄을 팔목에 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반 시진 넘도록 힘을 쓴 녹담평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지만 얼마 못 가서 힘이 쪽 빠졌다.
투두두둑.
기껏 감았던 밧줄이 풀려 나갔다.
녹담평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밧줄을 당겼다.
그러나 한번 빠진 힘은 다시 충전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줄을 팔에 감으려 했지만 줄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이제는 줄을 잡고 있기도 버거운 상황.
줄을 붙들고 낑낑거리는 그를 보고 있던 심통이 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쭉 빼고 밑을 살피던 심통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녹가야. 이제 그만 놔도 되겠다.”
“놓으라고요?”
“당길 힘은 있고?”
“어, 없습니다.”
“그럼 저승길 가게 놔주라고. 새끼야.”
“아!”
그제야 녹담평은 두 사기꾼들이 이미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이미 익사할 때가 지나긴 했다.
그는 손에서 힘을 뺐다.
두 개의 밧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위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
녹담평은 황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놓아 버린 생명의 무게가 가슴을 눌렀다.
사흘간 두 사기꾼들과 지내는 동안 미운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시원하면서도 허전한 감정이 밀려 들었다.
잠시 인생무상에 잠겨 있는 그의 엉덩이를 심통이 강하게 걷어찼다.
“개잡놈아! 비키거라! 어디서 꼴값을 떨고 있어? 네놈도 공자님 마음이 여려서 살아 있는 거야. 나 같았으면 열두 번도 더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