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9
199회. 반로환동을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구천노도 심통이 녹담평을 끌어내자, 연적하는 즐겨 앉던 바위 끝에 걸터앉았다.
황하의 흙탕물은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었다.
딱히 살려 둘 마음은 없었지만 갑자기 죽어 버리자 기분이 묘했다.
녹담평이 멍하니 있다가 얻어맞은 것도 그래서이리라.
“심 노인.”
“예.”
한쪽에서 녹담평을 쥐잡듯 잡고 있던 심통이 후다닥 연적하 곁으로 달려갔다.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어.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없는지 알아 봐.”
“오봉십걸들만 알아볼까요? 아니면…….”
심통이 연적하의 옆모습을 힐끔 살폈다.
노회한 심통은 그를 위해서라도 곁다리만 긁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상방에서 일하는 오봉십걸들보다 남궁세가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
그는 속이 여린 연적하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다.
“남궁세가 쪽이야 별일 있겠어? 정의맹에 고수가 한둘이 아닌데.”
“그렇기는 합니다만 유명교 놈들이 워낙 기괴해서.”
십두마병만 해도 칠파이문을 가볍게 찜 쪄 먹을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오봉십걸은 걱정하지 말라더니 남궁세가는 꽤나 챙겨 주려고 하네? 언제부터 녹림보다 정파를 더 챙겼어?”
“어이쿠! 더 챙기다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오봉십걸의 적은 삼류 방파지만, 남궁세가의 적은 유명교 아닙니까? 행여나 나중에 공자님께서 근심할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거지요.”
“심 노인의 손발이 근질거려서 그러는 건 아니고?”
“흐흐. 솔직히 그런 것도 약간은 있습니다.”
심통이 머리를 긁적였다.
천외천의 무공을 익히고 황하에 처박혀 지내려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쯧쯧! 최소한 십두마병과 맞상대해도 될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그런 소리를 해. 난 심 노인 뒤치다꺼리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도 십두마병쯤은 문제없습니다. 마물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부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마물만 보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면서.”
심통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솔직히 칠파이문의 장문인들도 마물 앞에서는 달아날 겁니다. 저 정도면 그래도 쓸 만한 거라니까요.”
“알았으니까 그 쓸 만한 무위로 형제들에게 별일 없나 알아보라고. 정의맹 쪽 소식은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니까 굳이 발품 팔고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아, 그건 그렇네요.”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객점에서 주워듣는 것만으로도 정의맹 소식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면 정말 객점 운영이 묘수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미시 초(오후 1시).
점심때가 되자 연적하와 심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적휘적 객점으로 걸어가던 심통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누군가 객점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흐흐. 공자님. 어느 얼빠진 놈이 또 소란을 피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삼보방과 천화방은 손을 뗐지만 가끔 시정잡배들이 객점에서 껄떡거리곤 했다.
심통은 그렇지 않아도 꿀꿀하던 참에 잘됐다는 눈치다.
“죽이거나 병신 만들 생각은 하지도 마. 천 부사(안찰사 부사 천량지)가 그러는데 포정사(성의 민정과 재정을 감독)가 우리 객점을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하더라. 사고 치면 오봉산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정사파를 막론하고 관부와 틀어지면 인생이 꼬이게 된다.
연적하는 이제 막 시작한 객점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지 않았다.
“염려 마십시오. 저라고 아무나 막 죽이는 건 아닙니다. 저는 죽어 마땅한 놈만 죽입니다.”
“알아. 죽어 마땅한 놈이 많은 게 문제지. 혈기를 조금만 죽이자고. 젊은 내가 심 노인에게 혈기 부리지 말라는 말을 해야겠어? 좀 바뀐 거 같지 않아?”
“공자님이 너무 착하신 겁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 며칠 전에는 어떤 상인이 식사하다 말고 나를 아수라 같은 놈이라고 하더라. 손님이라서 봐줬어.”
“감히! 공자님에게 그런 소리를 했단 말입니까? 어느 상방의 놈입니까? 제가 가서 그놈의 상방을 작살 내 버리겠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면 그런 소리 했겠어? 자기들끼리 정주 얘기를 하다가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앞으로 착하니, 여리다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얼굴이 화끈거리니까.”
아까 그가 녹담평에게 ‘공자님 마음이 여리다’고 할 때도 민망했다.
평소 녹담평은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오늘 사기꾼들이 물에 빠져 죽은 뒤로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저승사자로 보일 것이다.
마음이 여린 저승사자라니? 그야말로 헛소리 중의 으뜸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쪽의 소란은 더 커져 갔다.
결국 머리가 허옇지만 혈기 왕성한 심통이 먼저 객점 안으로 들어갔다.
심통은 곧바로 화려한 복장의 사내를 질질 끌고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객점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창가에 앉아 상도를 가까이 불렀다.
“예, 공자님.”
“방금 시끄럽게 굴던 사람이 누구야?”
“자기 말로는 아버지가 개봉성 안찰사라는데 거짓말이겠죠?”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찰사는 성의 사법과 감찰의 책임자로 정삼품의 고위 관리다.
정사품 안찰사 부사인 천량지의 윗사람이기도 했다.
“소란은 왜 피웠는데?”
“처음에는 남 소저를 보고 수작을 걸었어요.”
“수작?”
“예, 한참 치근덕댔어요. 반 시진(1 시간)은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남 소저가 받아 주지 않으니까,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며 낄낄거리더라고요.”
“미친…….”
“그래서 남 소저가 뭐라고 하니까. 갑자기 어탕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그 난리를 친 거예요.”
“일행은 없고?”
“예. 혼자 다니는 걸 보면 확실히 안찰사 아들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자꾸 묻는 걸 보니 안찰사 아들이라는 말이 어지간히 걸리는 모양이다.
한 식경(약 30분)쯤 지나 심통이 손을 탁탁 털며 들어왔다.
그는 태평스러운 얼굴로 연적하의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여서 묻고 온 건 아니지?”
“어이쿠! 그럴 리가요. 개봉 가는 길 중간에 버리고 왔습니다.”
“어느 정도나 때렸어?”
“심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락바락 대들기에 가볍게 양팔만 똑 분질렀지요. 집에 잘 돌아가라고 다리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양팔을 부러뜨렸단다.
평소 심통의 지독한 손속을 생각하면 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자기가 안찰사 아들이라고 안 해?”
“그 이야기도 들으셨습니까? 자기가 장남이라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족보 들먹이는 놈들은 태반이 거짓말이라 바로 주둥이를 후려쳤습니다. 앞니가 쏙 빠지고 나서야 헛소리를 하지 않더라고요.”
“설마 이빨까지 부러뜨린 거야?”
“코도 조금 내려앉은 것 같았습니다. 이 바닥에서 그 정도야 애교 수준 아닙니까?”
심통이 태연스럽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녹림도들 사이에서 팔이 부러지고, 코가 주저앉는 건 일상다반사다.
몇 해 전 연적하에게 덤빈 무영신투 백교도 안면이 뭉개지지 않았던가.
‘그는 요즘 뭐하고 지내려나?’
심통은 갑자기 백교의 안부가 궁금했다.
물론 순수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에게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고 싶어서다.
“정말 안찰사 아들이면 어쩌려고?”
“안찰사 아들이나 되는 놈이 혼자 돌아다닐 리가 없지 않습니까?”
심통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사실 안찰사의 아들쯤 되면 호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맞다.
“그, 그렇겠지?”
연적하는 경험이 많은 심통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제가 누굽니까? 상판만 봐도 이놈이 시정잡배인지, 졸부의 자식인지 압니다. 그놈의 아비는 상방 대행수쯤 될 겁니다.”
“옷이 고급져 보이긴 하더라.”
“부모의 재산만 믿고 싸가지 없이 나대는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요.”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인데 돈은 뺏지 않았지?”
“수고비 조로 조금 받았습니다. 제가 그놈을 개봉에 가는 길 중간쯤까지 데려다줬으니까요.”
“아, 그러니까 양팔을 부러뜨리고, 이빨을 깨고, 코도 주저 앉힌 다음에, 돈까지 뜯어냈다고?”
“다 공자님에게 배운 건데요 뭐.”
“내가 그랬다고?”
“에이,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공자님도 두드려 팬 다음에 돈을 받아 내셨잖습니까?”
“무슨 헛소리야! 나는 손해 배상금을 받은 것뿐이야. 수고비니 뭐니 하며 돈을 뺏지는 않았다고!”
연적하가 펄쩍 뛰었다.
자신의 마차를 강에 수장시키거나, 부수어서 배상금을 받기는 했다. 그 이야기가 왜 지금 심통의 입에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심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배상금이나 수고비나 오십보백보죠. 저도 주루를 차리려면 부지런히 모아야…….”
“이 늙은이야! 손님이 꼬장 좀 부린 걸로 뼈를 부러뜨리고, 돈까지 빼앗으면 어떻게 해! 객점 평판이 나빠져서 손님 줄어들면 책임질 거야? 여기가 무슨 오봉산인 줄 알아?”
연적하가 언성을 높이자 남수경이 재빨리 다가왔다.
“연 공자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소리를 좀 낮춰 줘요. 왜 화가 난 거예요?”
“이 늙은이가 아까 그 진상 손님을 끌고 가서…….”
연적하는 차마 사실을 다 밝힐 수 없어서 “때렸다”로 끝냈다.
때렸다는 말에도 남수경은 깜짝 놀랐다.
“어머! 정말요? 심 어르신. 그래도 우리 손님인데 너무 심하셨어요.”
“손님은 무슨. 그런 진상은 받지 않아도 된다.”
“…….”
남수경은 그 모두가 자신을 위해 한 일인지라 반박하지 못했다.
그 남자가 선을 넘은 건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치근덕거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파락호 짓을 했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비웠기에 망정이지, 보았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던 남수경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심통에게 눈알을 부라려 보인 후에 식사를 마저 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심통의 손속이 과하기는 했지만 그자가 한 짓을 생각하면 뭐라 하기도 그랬다.
묵묵히 어탕을 먹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심 노인.”
“예?”
“그래도 앞으로 수고비는 받지 말자. 낭인도 아닌데 수고비가 뭐야.”
“배상금은 괜찮겠습니까?”
연적하가 빈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으로 머리의 열기가 후끈 밀려왔다.
심통이 물고 늘어지는 건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끙! 누가 손해를 입히면 배상금은 받아야지. 낭인들처럼 돈 받고 호위하는 게 아니라면, 수고비는 입 밖에 내지도 마. 실컷 두들겨 팬 뒤에 수고비를 달라는 건 오봉산에서나 통할 말이라고.”
“예, 앞으로 확실히 하겠습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앞으로 안 하겠다’가 아니라 확실하게 하겠단다.
“괜히 돈 모으겠다고 무리하지 마. 주루 살 돈이 부족하면 보태 줄 수도 있어.”
연적하는 살살 심통을 꼬드겼다.
괜히 늙은이가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보다 그편이 나았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빌려준 돈은 금방 회수할 수 있을 터였다.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이가 있는데 괜찮겠어? 심 노인 나이면 돈 모으다가 훅 갈 수도 있어.”
“흐흐. 반로환동을 노려볼 생각입니다.”
“반, 뭐?”
“경지가 깊어지면 오히려 젊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착각인지 모르지만 요즘 귀밑머리가 까맣게 새로 나는 것 같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반로환동을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러면서도 연적하는 심통의 귀밑머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가 정말 반로환동 할 것 같으면 돈거래는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