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00
200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남직례성.
합비 남쪽 소호.
무산소축.
인시(오전 3시-오전 5시) 무렵.
굳게 닫혀 있는 무산소축의 쪽문을 한 사내가 다급하게 두드렸다.
탕탕탕.
새벽 미명(未明)에 방립까지 눌러써서 사내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잠시 후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일꾼 하나가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컴컴헌데 이 새벽에 뉘시오?”
“무산소축의 주인인 무산낭랑을 만나러 왔다. 안에 계시느냐?”
“우리 당주님은 정주로 떠나신 지 오래입니다만. 누구십니까요?”
“허면, 이곳의 책임자는 누구냐?”
“총관님께서는 아직 남아 계십니다요.”
방립의 사내가 대문 안으로 발끝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에게 안내해라.”
“아니, 뉘신지는 알아야 안내를 하든 말든 할 게 아닙니까요. 이 컴컴헌 새벽에 아무나 뫼시고 갔다가 일이 잘못되면 저는 죽습니다요.”
그러자 방립의 사내가 품 안에서 영패를 꺼내 하인 눈앞에 바싹 들이밀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영패에 쓰인 글은 남진무사.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인은 글자를 모르는지 고개만 갸웃거렸다.
방립의 사내가 하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본관은 금의위의 사람이다. 급한 일이니 서둘러라.”
“아! 예, 예.”
금의위라는 말에 하인은 허리를 굽실거렸다.
객청.
방립의 사내와 무산소축의 총관 혈귀 완사석이 마주 앉았다.
억지로 잠에서 깬 완사석이 충혈된 눈으로 방립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시간에 자신이 왜 금의위를 만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주님을 찾는다고 하던데, 헛걸음하셨소.”
“그에 관해서는 이미 들었소. 본관이 당신을 만난 것은 한가지 전해 줄 것이 있어서요.”
“뭘 전해 준단 말이오?”
영문도 모르고 눈만 끔뻑이는 완사석에게 방립의 사내가 서찰을 내밀었다.
“이게 뭐요?”
“정의맹의 고수들이 남경에서 정주를 향해 네 갈래 길로 가고 있소. 이 서찰에는 그들이 어느 길로 가는지가 기록되어 있소.”
“헛! 그게 정말이오?”
완사석은 행여나 사내의 마음이 변할까 봐 재빨리 서찰을 낚아 챘다.
방립의 사내, 금의위 남진무사 지일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의맹에 일격을 가하려면 최대한 빨리 그걸 전해야 할 게요.”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소? 아니, 그보다 왜 금의위에서 이런 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오?”
완사석이 기이한 눈으로 방립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파나 사파나 별다를 게 없소. 정의맹의 세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걸 원치 않는 분들이 계시오. 아니, 하나의 세력이 천하를 좌우하는 걸 꺼려 한다고 보는 게 맞소. 유명교와 황실의 관계가 돈독해서 도와주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 우리가 당신들을 돕는 이유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시오?”
“하하. 말씀만이라도 고맙소.”
완사석은 일단 감사 인사부터 했다.
어차피 이 서신의 내용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지일강이 방립 끝을 더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본관이 이곳에 왔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라야 하오.”
“걱정하지 마시오. 비밀을 지켜 드리리다.”
“이곳까지 안내한 문지기가 내 신분을 알고 있소. 그의 입을 막아 주셔야겠소.”
“염려 놓으시오. 그의 처리는 노부가 직접 할 테니.”
뒤처리까지 확답을 받고서야 지일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어둠을 틈타 떠나려는 걸 알고 완사석은 붙잡지 않았다.
***
개봉.
술시(오후 7시-오후 9시) 무렵.
그날도 개봉성 안찰사 사연휘는 늦게까지 업무를 보다가 퇴청했다.
대문을 두드리려던 사연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이면 굳게 닫혀 있어야 정상인 대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다.
열린 대문 사이로 환하게 밝혀진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화톳불까지 피운 걸 보니 아예 잠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을 오가던 하인들이 일시에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사연휘는 그중 하나와 눈을 맞추고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스러운 게냐?”
“대공자님께서 외출을 하셨다가 강도를 만나 크게 다치셨습니다.”
“뭐라? 문정이가 강도를 만나 크게 다쳐? 어느 정도나 다쳤기에?”
“두 팔이 부러지고, 이와 코도 깨졌습니다.”
하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연휘는 안채로 달려갔다.
그가 큰아들의 방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
처 신유정이 앞으로 마중을 나오며 묵례를 했다.
“오셨습니까?”
사연휘는 처를 일견한 후에 큰아들이 누워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친을 본 사문정은 허둥지둥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한쪽에 비켜서 있던 의원이 급히 다가가 사문정의 양팔을 잡아 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사연휘가 참담한 얼굴로 아들을 보았다.
사문정은 차마 부친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었다.
“황하를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강도가 누군지 알 수 있겠더냐?”
사연휘는 안찰사답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미시(오후 1시-오후 3시) 경에 화상촌의 객점에서 납치를 당했습니다. 처음 보는 늙은이였는데 완력이 강한 걸로 보아 무림의 고수 같았습니다.”
“대낮에 객점에서 납치를 당했단 말이냐?”
“예.”
“어찌 그런 일이. 강도는 몇 명이나 되더냐?”
“두 명인 것 같았습니다.”
“두 명?”
“예, 저를 잡아간 늙은이에게 동료가 하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십 대 후반으로 보였습니다.”
“인상착의를 기억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신유정이 종이 두 장을 슬쩍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때 화공을 불러 그려 두었습니다.”
“잘했소.”
사연휘가 그림을 받아 들고 매의 눈으로 살폈다.
염소수염의 평범한 늙은이와 게슴츠레한 눈매의 소년이었다.
곰곰 생각해 봤지만 이런 얼굴에 맞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사연휘가 총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 총관, 이들이 누군지 알아보겠는가?”
장량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도 인상착의를 설명할 때 들었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흠!”
사연휘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장량은 한때 하남성을 주름잡던 정사지간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모른다고 했으니 범인들은 개봉 출신이 아니라는 소리다.
‘역시 외지에서 흘러 들어온 것일까?’
정의맹과 유명교의 쟁투로 몰려다니는 무림인들이 늘어났다.
십중팔구 그들 중 하나가 벌인 일이리라.
신유정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사문정을 보며 말했다.
“아휴! 멀쩡한 애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놓았네. 저렇게 착하고 여린 애를, 세상천지에 그런 못된 놈들이 있나. 그 강도들을 꼭 좀 잡아 주세요.”
“염려하지 마시오. 만사를 제쳐 놓고 놈들을 잡아 법대로 처리하리다. 황실도 무림인들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들었소. 내 이번에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야지요. 불법 무도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갑자기 생각난 듯 사연휘가 사문정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 먼 곳을 호위도 없이 갔느냐? 멀리 갈 때는 항상 호위를 데리고 다니라 하지 않았더냐?”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 나갔다가 그리되었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쯧쯧! 지금 천하가 무림인들의 다툼으로 소란스러운 것을 모르느냐? 그들이 떼로 몰려다니기에 관에서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목숨을 부지한 것은 다행이나 경솔한 행동이었다.”
“…….”
사문정은 면목이 없어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러자 모친인 신유정이 아들을 대신해 변명했다.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요즘 갑자기 글공부하느라 저도 답답했을 겁니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게 했더니 혼자 갔던 모양입니다.”
“당분간 성 밖으로는 나가지 말거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외진 곳에서 무림인들과 부딪치면 무슨 흉한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예.”
가주인 사연휘가 주의를 주자 방 안에 있던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
다음 날.
사연휘는 등청을 하자마자 곧바로 부사 천량지를 불러들였다.
“어제 우리 큰아이가 황하 인근에서 강도를 만난 모양일세.”
“저런. 아드님은 무사하십니까?”
“어찌나 잔악한 놈들인지 양팔은 물론 이빨과 코까지 부러뜨렸더군.”
“헛! 대체 어떤 자들이 그런 짓을.”
“그걸 자네가 좀 알아내야겠네. 다행히 대낮에 벌어진 일이라 범인들을 확실하게 보았더군.”
사연휘는 두 장의 종이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지난밤 안사람이 화공을 불러 강도들의 인상착의를 그린 것일세.”
조심스럽게 종이를 들어 펼치던 천량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헉! 심통과 연적하를 닮았다?’
천량지가 놀라자 사연휘가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리 놀라는가? 아는 자들인가?”
“아닙니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자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아닐 겁니다.”
“그들이 누구기에?”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영식(令息)께서 강도를 당한 게 맞습니까?”
“그렇네. 뼈가 부러지도록 때리고 돈까지 빼앗았으면 그게 강도지 뭔가?”
사연휘가 대답을 독촉하듯 천량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던 천량지는 그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 후에 말했다.
“제가 아는 이들은 녹림의 총순찰과 그의 수하입니다.”
“녹림 총순찰이라고? 허면 저 늙은이가 녹림 총순찰이고 젊은 놈이 그의 수하라는 말인가?”
“아닙니다. 젊은이가 총순찰이고, 노인이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절세고수입니다.”
“녹림은 무공의 높고 낮음으로 서열이 정해진다고 알고 있네만.”
“그렇습니다. 총순찰 연적하의 무위는 이미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자네는 그를 어떻게 알게 됐는가?”
“그게 실은…….”
천량지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말했다.
“그런 자들이 왜 강도짓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객잔에서!”
“그러니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 같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무리 녹림 출신이라 해도 자기가 먹는 물에 침을 뱉으려 하겠습니까?”
“…….”
사연휘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는지라 반박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사연휘가 말했다.
“우선 자네가 그들을 만나 보게. 그럼 알게 되겠지. 그들이 한 짓인지 아닌지.”
“알겠습니다.”
천량지는 종이를 잘 접어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보던 사연휘가 차갑게 말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범인이라면 내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네.”
“대인, 연적하는 생각이 꽉 막힌 마두가 아닙니다. 그는 분명 아닐 겁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네. 하물며 상대가 녹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자네도 그를 너무 믿지 말게.”
“예. 저 역시도 그들이 녹림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가서 일 보게.”
“예.”
천량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연휘에게 묵례를 하고 나갔다.
홀로 남은 사연휘는 복잡한 얼굴로 수염을 매만졌다.
모든 게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
한창때의 혈기 왕성한 젊은 도적이 왜 객잔을 사서 은거를 한단 말인가?
또 그런 자가 힘들게 산 객잔에서 강도짓을 벌였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거 참. 모를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