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01
201회. 개와 늑대
안찰사 부사 천량지는 연적하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군관 임사성만 데리고 화상촌으로 갔다.
낡고 허름한 객점 앞에서 천량지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도가 쪼르르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나으리, 어서 오십쇼.”
“연 공자와 심 대인은 어디 있느냐?”
천량지는 구천노도 심통을 부를 마땅한 호칭이 없어 ‘심 대인’이라 했다.
“심 어르신은 출타하셨고, 연 공자님은 효자암에 계실 겁니다.”
잠시 객점을 둘러보던 천량지가 상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예?”
상도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어제 객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일이요? 아! 시정잡배 하나가 남 소저에게 추근거리다 끌려나간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상도는 정색을 한 천량지에게 어제 일어난 일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마침 심 어르신이 들어와 보고는 그를 끌고 나가셨습니다. 팔을 부러뜨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허! 어쩌자고 그런…….”
천량지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안찰사의 아들이 객잔에서 그런 진상 짓을 벌이다 당한 것이라니!
고개를 젓던 천량지는 효자암으로 이동했다.
바위 끝에 걸터앉아 있는 연적하를 보니 갑자기 명치 끝이 묵직해졌다.
안찰사의 아들이 한 짓으로 인해 꼬여 버린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연 공자, 오랜만이오.”
천량지의 인사에 연적하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 천 부사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
“하하! 지나는 길에 들렀소. 날이 제법 쌀쌀해지고 있는데 지낼 만하시오?”
“그래요? 언제부터인가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내공이 경지에 이르면 덥고 추운 걸 느끼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거요?”
“아! 그렇대요?”
“허어! 보통 사람인 나도 어디서 한 번쯤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몰랐소?”
천량지가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보통 사람인 자신도 아는 이야기를 무림인인 그가 모르다니?
‘표정을 보면 장난 같지는 않은데…….’
연적하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원래 모르는 게 많아요.”
“푸하핫! 농담도 원.”
천량지는 뜻밖의 대답에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아! 지금 웃을 때가 아닌데.”
“왜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제 심 대인이 손을 본 남자는 안찰사의 영식이오.”
“아! 그랬구나. 어쩐지 뒤끝이 있을 것 같더라니. 하여간 그 늙은이는 움직였다 하면 사고라니까.”
천량지가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안찰사께서 본관에게 범인들을 잡아 오라 하더이다.”
“‘범인들’이라고요? 난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
“하지만 안찰사의 영식은 범인으로 연 공자와 심 대인을 지목했소.”
말과 함께 천량지는 품 안에서 초상화를 꺼내 연적하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나라고요? 눈매가 왜 이래? 졸고 있는 사람처럼 그려 놨네.”
천량지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무림의 고수답게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난 죄가 없다’고 항변할 텐데 말이다.
“안찰사의 영식은 강도들에게 당했다고 했소. 그래서 안찰사께서도 범인들을 잡아 오라 명한 거요.”
“그럼 가서 사실대로 말해요. 당신 아들이 객점에서 진상 짓을 하다가 맞은 거라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적이지 못하오. 안찰사께서도 당신의 아들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게요.”
“무슨 소리예요?”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파렴치한 짓을 하다가 맞았다는 걸 선선히 받아들이겠소.”
“그럼?”
“그분은 끝까지 ‘아들이 강도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그럼 그러라고 해요.”
연적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녹림에 발 담그고 있는데 도적이면 어떻고 강도면 또 어떻단 말인가?
“결국에는 관병들을 동원할지도 모르오.”
“그래서요?”
연적하가 되묻자 천량지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관병들이 연적하를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최소한 도지휘사(정이품, 성의 군대를 지휘)가 나서야 일이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도지휘사가 고작 강도를 잡기 위해 군을 동원할 리 없다.
황족이 뼈가 부러지도록 맞았다면 혹 모를까?
안찰사 아들이 맞았다고 해 봐야 그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안찰사께서도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려 하겠지.’
도지휘사의 귀에까지 올라갈 정도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그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조용히 처리하려면 성내에 있는 관병들로만 연적하를 상대해야 한다.
‘불가능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 수준으로는 무리였다.
고민하던 천량지는 역발상을 했다.
“연 공자께서 안찰사에게 한 번만 머리를 숙여 주면 안 되겠소?”
“머리를 숙이라고요?”
“안찰사의 체면을 조금 세워 주면 이번 일이 잘 무마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이오.”
“난 죄가 없는데 그에게 사과를 하라는 건가요?”
“솔직히 안찰사께서 나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가족이 관계된 일이라 유야뮤야 넘어갈 수도 없으실 게요. 안찰사께는 이번 일에서 손을 뗄 빌미가 필요하오. 연 공자가 조금만 양보해 준다면, 안찰사께서도 연 공자의 뒤를 봐주지 않겠소?”
천량지가 은근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참에 개봉성의 고위 관리와 안면도 트고 특별한 혜택을 누리며 살라는 소리다.
순간 반쯤 감겨 있던 연적하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이 아저씨 안 되겠네.”
“…….”
천량지는 연적하의 날 선 반응에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서로 좋으라고 한 말인데 실수를 한 것일까?
“나 연적하야. 내가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해야 하는 건데? 지금 내가 녹림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녹림 출신이니까 고위 관리들 비위를 좀 맞춰 주라고? 어? 그런 거야?”
“그,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단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이 기회를 잘 살렸으면 해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 만약 그 진상을 두드려 팬 사람이 칠파이문의 장문인이었어도 사과하라고 할 거야? 아니잖아? 내가 만만해 보이니까 나에게 사과하라고 한 거 아냐! 부사라고 내가 대우해 주니까 보이는 게 없지?”
“아, 아니외다. 정말 안찰사 대인과 연 공자가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야아! 끝까지 오리발이네. 나와 안찰사가 잘 지내기를 바랐으면 그 사람이 와서 사과해야지! 자식 놈을 그따위로 잘못 키운 게 안찰사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어?”
“그건 그렇지만…….”
“그 진상 새끼가 내 자식이야? 아니면 내가 때렸어? 안찰사 자식이고, 심 노인이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때렸잖아. 그런데 왜 아무 관계도 없는 나더러 사과를 하래? 당신 미쳤어? 아님 내가 미친 건가?”
“내 실수요. 내가 말을 잘못했소.”
“아니야. 실수가 아니야. 당신과 안찰사는 나를 만만하게 본 거야. 그러니까 그따위 소리를 하지.”
“…….”
천량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만약 심통이 칠파이문의 장문인이었다면 거꾸로 안찰사에게 사과하라고 권유했을 것이다.
연적하와 심통이 녹림 출신이라 안찰사에게 숙이고 들어가라 했다.
그 말에 연적하가 저렇게 발끈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그가 만나 본 사람들은 죄다 안찰사와 연을 맺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기 때문이다.
“……하라고 해. 알았어?”
펄펄 뛰는 연적하 앞에서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천량지가 눈을 끔뻑였다.
“방금 뭐라고 했소?”
“이 사람이 이젠 대놓고 내 말을 씹어 먹네. 귓구멍이 막혔어? 안찰사에게 와서 사과하라고 해! 안 그러면 내가 찾아가서 안찰사 귓방망이를 날려 버릴 테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똑똑히 전해. 알았어?”
“…….”
너무도 끔찍한 말에 천량지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안찰사와 연적하를 중재시켜 보려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안찰사의 귓방망이를 날리겠다니?
뒤늦게 천량지는 눈앞의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자각했다.
어리고 순한 얼굴 뒤에 가려져 있지만, 그는 녹림의 총순찰이다.
천하 사파의 이인자.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수틀리면 혈육까지도 짓뭉개 버린다는 아수라.
문득 아침에 안찰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네. 하물며 상대가 녹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자네도 그를 너무 믿지 말게.
천량지는 자신의 안일함을 원망했다.
객점 계약을 성사시켜 주는 과정에서 그를 잘 알게 됐다고 착각했다.
그는 비록 녹림 출신이지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보통 사람들처럼 현실에 녹아들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안찰사에게 사과해 체면을 세워 달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보통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던가!
‘내가 미친놈이지…….’
한창 자책하고 있는 그의 귓가에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쭈? 대답이 없네?”
이젠 완전히 녹림도들을 대하듯 하는 연적하였다.
그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 유연하게 살아왔다.
상대가 자신을 도적 취급하면 도적처럼 행동하고, 호걸 대접하면 호걸이 되었다.
지금까지 천량지를 대우해 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제 그런 관계는 깨졌다.
천량지가 그를 녹림으로 생각해 무시했으니, 그에 걸맞게 행동한 것이다.
“알겠소. 내 안찰사께 그리 전하리다.”
“알겠소? 누가 말 놓으래? 당신도 그 파락호처럼 양팔이 부러져 봐야 정신 차릴 거야?”
“아, 알겠습니다.”
자포자기한 천량지는 자존심을 버렸다.
안찰사의 귓방망이를 날리겠다는 사람 앞에서 안찰사 부사가 뭐라고.
“사흘 준다. 가 봐.”
“…….”
천량지는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효자암을 떠나갔다.
초막 옆에서 훔쳐 듣고 있던 녹담평은 재빨리 무릎 꿇고 곡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평소와 다른 연적하의 거친 모습에 놀라 시키지도 않은 곡까지 하는 중이다.
갑작스러운 곡소리에 연적하가 짜증을 냈다.
“녹 형제. 정신 사나우니까 우는 건 마음속으로 했으면 좋겠어.”
“아이고……. 예.”
효자암이 다시 고요해졌다.
***
개봉으로 향한 관도.
군관 임사성은 천량지가 아까부터 자꾸만 한숨을 흘리자 조심스레 물었다.
“일이 잘 안 풀렸나 봅니다?”
임사성은 객점에 남아 있어서 천량지가 효자암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몰랐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남들처럼 살다 보면 개처럼 길들여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늑대였어.”
“연 공자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개와 늑대 사이에 일은 무슨.”
천량지는 스스로를 ‘개’라고 칭했다. 무림인들이 ‘관인’을 ‘황실의 개’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살다 보니 옳고 그름의 분별도 사라진 지 오래.
연적하에게 욕을 먹어도 싸다.
‘하아! 안찰사께는 뭐라고 해야 하나.’
사흘이라는 시간을 줬지만 그 안에 안찰사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