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53
253회.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전진파 장로 일월검 무무 진인이 아직도 검을 들고 있는 태을검 운학과 천궁검 이우신에게 다가갔다.
“납검들 하거라.”
운학과 이우신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검을 집어넣었다.
연이어 무무 진인이 구천노도 심통에게 말했다.
“빈도는 기찰대 삼 조 조장인 무무외다. 천지맹에서는 정사파 간에 싸움을 금하고 있소이다. 알 만한 분이 유명교와 싸워야 할 후배들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맹으로 함께 가 주셔야겠소.”
그러자 심통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무무 진인이 기찰대라면 인과관계부터 따져 보고 수습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누가 칠파이문 아니랄까 봐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웠다.
속 보이는 무무 진인의 언행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흐흐. 알겠소.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때 가더라도 일은 마무리하고 갑시다.”
“마무리할 일이 남았소?”
“흐흐. 저 싸가지 없는 놈들이 죄를 지어 팔을 부러뜨리기로 했소. 그런데 아직 두 놈이 남았지 뭐요? 마저 끝낼 테니 기다리시오.”
말과 함께 심통이 벼락처럼 운학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운학이 절영수의 수법으로 다가오는 심통을 후려쳤다.
심통은 가볍게 상체를 틀어 그의 손바닥을 뒤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눈앞에 훤하게 드러난 운학의 내관혈(손목의 혈도)과 곡지혈(팔꿈치 안쪽의 혈도)을 낚아채고는 빨래 짜듯 비틀어 버렸다.
콰직.
“끄악!”
운학의 날카로운 비명이 반점을 뒤흔들었다.
깜짝 놀란 무무 진인은 황급히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무슨 짓이오! 지금 기찰대의 정당한 법 집행을 거역하겠다는 거요?”
그 틈에 이우신은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무무 진인과 함께 온 네 명의 칠파이문 장로들도 부랴부랴 발검했다.
차차차창-.
오 대 일의 대치 상황이 되자 심통은 잠시 머뭇거렸다.
칠파이문의 장로 다섯과 싸우면 자신도 온전치 못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때 흑수선 석려시가 불쾌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흥!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이젠 떼거리로 덤비시려고? 사파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아나?”
그녀의 말에 사파 고수 아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홉 명의 고수들은 심통의 좌우에 길게 늘어서서 기찰대를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형국이다.
뒤늦게 흑수선을 발견한 무무 진인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소저, 천지맹의 한 축이 파천마군이심을 잊으셨소? 지금 이러는 건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외다. 소저는 지금 천지맹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소.”
흑수선은 무무 진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다시 생선의 가시를 발라냈다.
“우리 총순찰님, 생선 좋아하시나 봐요? 잘 드신다.”
“딱히 좋아하지는 않아. 그쪽에서 자꾸 주니까 성의를 봐서 먹는 거지.”
“어머! 정말요? 그럼 뭐 좋아하세요?”
“닭고기.”
연적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수선은 점소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얘! 이리 좀 와 봐.”
“예, 예,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한쪽 벽에 바싹 붙어 구경하던 어린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총순찰님께서 닭고기를 좋아하신대. 뭐 뭐 있니?”
“저희 집은 염수계(塩水鷄, 찜닭), 랄초계(辣椒鷄, 고추와 야채를 함께 볶은 닭요리) 가향굴계(家鄕屈鷄, 시골집 닭요리)가 맛있습니다.”
“다 가져와 봐.”
“예, 예.”
점소이는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싸움터를 통과해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무무 진인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흑수선과 심통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기찰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그는 묵직한 음성으로 경고를 날렸다.
“구천노도. 일을 더 크게 만들지 맙시다. 귀하는 기찰대의 지시를 어기고 사람을 상하게 했소. 그것만으로도 이미 중죄요. 기찰대와 맞서면 천지맹은 물론, 정사파에서 귀하가 설 자리는 없을 거요.”
하지만 심통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예 그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기찰대 옆의 이우신을 노려보았다.
이우신의 잘생긴 얼굴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큰일 났군.’
입만 살았다고 무시한 심통의 무위는 부친인 군자검 이연익에 비견할 만했다.
부끄럽게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대로 행동한 셈이다.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해도 멀쩡한 팔을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기찰대까지 떴으니 버티기만 하자.’
조금 수치스럽지만 시간을 끌면 유야무야 끝날 거라 믿었다.
한편 대치가 길어질수록 무무 진인은 속이 부글거렸다.
기찰대 지시의 거부로 시작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사파 간 싸움으로 변질됐다.
그럴수록 무무 진인은 물러설 수 없었다.
정파 기찰대가 구천노도 하나를 어찌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고 싶지 않아서다.
결국 무무 진인은 옆에 있던 무당파 장로 천성 도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천성 도사는 조용히 뒷걸음쳐 반점을 빠져나갔다.
심통은 단번에 무무 진인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대가리 숫자에서 밀리니 지원을 요청하러 간 것이리라.
여기서 정파인들이 더 몰려오면 이우신의 팔을 부러뜨리는 일은 어려워진다.
별것 아니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정파 기찰대가 보란 듯 가로막아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이놈!”
결국 심통은 호통과 함께 이우신에게 몸을 날렸다.
“어딜!”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무무 진인이 심통의 앞을 검 끝으로 막았다.
순간 심통의 허리춤에서 유엽도가 빠져나왔다.
채채챙-.
심통과 무무 진인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른 기찰대는 눈앞의 사파 고수들을 견제하느라 차마 싸움에 뛰어들지 못했다.
심통은 무무 진인의 검을 뒤로 튕겨 낸 뒤에 이우신에게 성큼 다가갔다.
누가 봐도 여유 있는 몸짓이다.
깜짝 놀란 이우신은 자신의 절기인 천궁섬을 펼쳤다.
쉬익-.
검이 유성처럼 날아갔다.
단 일 합만에 뒤로 밀린 무무 진인도 이를 악물고 다시 심통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뿔싸!
그때는 이미 심통과 이우신의 검이 얽힌 상태였다.
무무 진인의 입장에서는 싸움의 연장이지만, 보기에 따라 둘이서 하나를 합공하는 형국이다.
아홉 명의 사파 고수들이 욕을 하며 벌 떼처럼 기찰대를 덮쳤다.
“더러운 놈들! 합공이냐!”
“우리는 허수아비인 줄 알아?”
“뒈져라!”
남은 기찰대를 향해 아홉 자루의 칼이 떨어졌다.
“헉!”
“이 무슨!”
당황한 기찰대 고수들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
칠리하촌에서 정사파 간에 충돌이 여러 번 있었지만 감히 기찰대를 공격한 자들은 없었다.
그런 불문율이 오늘에 와서 깨져 버렸다.
기찰대 고수들은 입구까지 몰리자 문을 부수고 거리로 튀어 나갔다.
콰당!
기찰대가 빠져나가자 무무 진인은 더 버티지 못하고 창문을 부수고 자리를 벗어났다.
와장창!
기찰대가 달아난 거리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반점은 급속도로 잠잠해졌다.
방해가 사라지자 심통은 이우신의 검에 유엽도를 붙였다.
그 상태에서 그가 운룡풍호를 펼치자 이우신의 검은 풍차처럼 돌아갔다.
차라라랑- 퍽.
한순간 이우신의 손아귀를 찢고 빠져나간 검이 반점 벽에 박혔다.
이우신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완패다.
구밀복검이 입만 살아있는 마두가 아니라 절정에 이른 도객이라니!
넋을 잃고 서 있는 이우신에게 심통이 다가갔다.
자포자기한 이우신은 심통이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는 데도 저항하지 않았다.
심통이 막 이우신의 팔을 비틀려는 순간이다.
큼지막한 닭다리를 손에 들고 뜯어 먹던 연적하가 나직이 말했다.
“그만.”
순간 심통은 미련없이 이우신의 팔에서 손을 떼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심통이 빈자리를 찾아 앉자 연적하가 물었다.
“심 노인, 변태처럼 아까부터 왜 자꾸 사람들 팔을 부러뜨리는 거야?”
“자르지 말라고 하셔서 그런 겁니다만?”
“잘 타이르라는 말일 수도 있잖아. 한 대 쥐어박으라는 뜻일 수도 있고.”
“에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공자님 속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헛소리야? 나도 내 속을 모르는데, 심 노인이 어떻게 알아?”
“아니 아까는 분명히 그 눈빛이…….”
“눈빛이 뭐?”
연적하가 표독스럽게 심통을 노려보았다.
심통이 동의를 구하듯 아홉 명의 사파 고수들에게 말했다.
“어이. 입들 쳐 닫고 있지 말고, 아까 연 공자님 눈빛이 어땠는지 말들 좀 해 봐. 다들 봤잖아?”
그러나 아홉 명의 고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총순찰 연적하와 구천노도의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얼굴들이다.
답답해진 심통이 제 가슴을 ‘퍽퍽’ 두드릴 때다.
갑자기 떨어져 나간 문으로 기찰대 고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천성 도사의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온 정파 기찰대다.
그 숫자가 무려 스물.
일 개 조가 다섯이니 기찰대 네 개 조가 모인 셈이다.
점창파 태상장로이자 그들 중 최고 고수인 태을상인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무림의 맹약을 어기고 기찰대를 공격한 죄인들이 누구냐! 이리 나와 오라를 받으라!”
쩌렁쩌렁한 노도사의 외침에 점소이와 주인은 얼른 계산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연적하와 흑수선, 심통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인 양 돌아보지도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무무 진인이 나섰다.
“구천노도! 그리고 거기 아홉 명의 반도(叛徒)들! 증인이 이렇게 많은데 이제 와 발뺌할 생각이냐!”
순간 연적하가 뼈만 남은 닭 다리를 무무 진인을 향해 휙 내던졌다.
툭.
닭 뼈가 발치에 떨어지자 무무 진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조롱도 이런 조롱이 없었다.
“연 공자!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수하들의 잘못을 대신 사죄해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아! 좀!”
연적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기찰대와 사파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척 보니 도사님들 같은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람을 잡아가네 마네 그래요? 그 동네가 원래 그런 동네인가? 얼굴은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살벌하네.”
당황한 무무 진인은 태을상인이 궁금해할까 봐 얼른 말을 돌렸다.
“이유를 불문하고! 기찰대를 공격하는 것은 천지맹을 공격하는 것과 같소! 일이 더 커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구천노도와 그쪽에 있는 아홉 명을 순순히 내어 주시오! 시비는 천지맹에서 따로 가릴 것이오!”
“풋! 뭘 거기까지 가서 가려요? 그냥 여기서 가려도 되는데.”
연적하는 웃으며 별생각 없이 말했다.
싸움의 원인이 분명한데 천지맹까지 가자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가 거부하자 태을상인이 다시 나섰다.
“나는 점창파의 태상장로이자 기찰대 일 조 조장인 태을상인이오. 연 공자, 당신은 녹림의 총순찰인데 이렇듯 법도를 어기면 되겠소? 저 사람들이 기찰대를 공격했다면, 두말 할 것도 없는 반도요. 당신은 천지맹의 규율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어길 셈이오?”
두 도사들의 똥고집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귓구멍이 막히셨나?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누가 잘못해서 이 지경이 됐는지 먼저 가리자는데, 왜 자꾸 법도와 규칙을 내세워? 심 노인.”
“예.”
“나는 답답해서 못 하겠으니까, 구경만 하지 말고 정리 좀 해 줘 봐.”
“흐흐흐. 정리 말씀이십니까?”
심통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