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63
263회. 얼굴을 보니 알 것 같군요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신당.
명상에 잠겨 있던 신모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잠시 후 꽃들이 만발한 마당에 유령처럼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모를 호위하던 여덟 명의 고수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냐?”
“교주님, 만수방을 대체할 방파를 찾는 건 조금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지?”
“지금 관부와 개방에서 대대적으로 교구현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눈이 풍지산으로 향하면 교주님께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흠.”
신모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유명교는 상방이나 방파를 통해 팔주령을 공급받고 있다.
만수방도 그중에 하나다.
그런 만수방을 몰살한 것은 그들이 판매한 팔주령에 문제가 있어서다.
팔주령의 가격은 은자 천 냥쯤 된다.
워낙 고가에 거래가 되다 보니 장난을 치는 자들이 생겨났다.
언제부터인가 모조품이 하나둘씩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수방은 운이 없었다.
그들은 하필 교주에게 모조품을 판매한 죄로 교주의 친위대인 팔황에게 몰살당했다.
만약 신모가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멸문까지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녀암과 만수방의 거래를 아는 자가 있더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일황 나업이 답했다.
“없는 것으로 압니다.”
순간 신모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없다’가 아니라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서다.
“아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송구합니다. 만수방도가 모두 죽은 탓에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알겠다.”
“그리고 백두마군들이 교주님의 존안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유월 초하루까지 풍지산으로 오라 해라.”
“존명.”
일황은 나타날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텅 빈 마당을 내다보던 신모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사람의 욕심이란.”
유명교에서 진짜 팔주령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다른 교당에서는 지금도 가짜가 유통되고 있을 것이다.
모조품 아래 죽어 갈 수도자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
지금은 수차례 시도해 보다가 안 되면 그제야 가짜임을 알고 파괴하는 식이다.
팔황이 만수방을 몰살한 것도 팔주령에 담긴 죽음의 무게를 알아서다.
문득 신모는 품 안에서 청류무령을 꺼냈다.
그리고 동여맸던 천을 풀고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툭툭.
청아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신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청류신이 저승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육명진언을 외우면 억지로 불러낼 수는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사십구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으니 그때쯤에나 부를 생각이다.
‘염마왕이 다스리는 저승보다 더 대단한 비밀이 뭘까?’
그녀는 수도자답게 내세에 관심이 많았다.
염마왕과 합일한 것도 그래서였다.
만약 권력욕이 있었다면 벌써 백마사로 달려가 유명교를 진두지휘했을 것이다.
***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현천각.
출정식을 하루 앞두고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은 제갈가의 호법인 상승검 제갈중영을 불렀다.
함께 차를 마시던 제갈승운이 제갈중영을 힐끔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사촌 동생이자 제갈가 최고의 고수였다.
제갈가 식솔들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출정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
“예.”
“아직 법보는 구하지 못했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나 우리에게 팔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갈승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칠파이문이나 오대세가 쪽으로 줄을 대고 싶어 했다.
무림세가도 아닌 제갈가에 선뜻 법보를 팔아 줄 사람은 없었다.
제갈승운이 밤톨만 한 꾸러미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니고 있거라.”
“이게 뭡니까?”
제갈중영은 꾸러미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헝겊으로 싸매서 풀어 봐야 그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무심코 꾸러미를 풀려는 순간이다.
“풀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어라. 부처님의 진신사리 중에 하나다.”
“헛! 이렇게 귀한 것을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남들이 알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으니 너와 나만 아는 비밀로 하자.”
“…….”
제갈중영이 의아한 눈으로 제갈승운을 보았다.
오늘날 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을 비밀로 하라니?
하지만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살다 보면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나을 때가 있으니까.
제갈중영은 묵묵히 법보를 갈무리했다.
“그것을 너에게 맡기는 것은, 그만큼 유명교와의 일이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식솔들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제갈중영의 대답에도 제갈승운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거듭 당부했다.
“식솔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알겠느냐?”
“예.”
“내가 은밀히 교구현의 관부에 협조 요청을 보내 놓았다. 지금쯤 관부와 개방에서 교구현의 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현무대는 시늉만 하고 돌아와도 된다는 소리다.”
“…….”
뜻밖의 말이지만 제갈중영은 묵묵히 사촌 형의 말을 들었다.
그 모두가 제갈가를 위한 일임을 아는 까닭이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사람들은 제갈가에 의지를 하는 편이다. 현무대주 역시 틈틈이 네 의견을 물어 올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매듭짓고 돌아가자 해라.”
“유명교의 지부를 발견해도 말입니까?”
“현재 현무대에는 법보를 가진 문파가 없다. 제마대의 술사가 전부인데, 아쉽게도 그들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아!”
제갈중영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현무대의 술사들과는 아직 손발을 맞춰 보질 않았다.
“주작대와 청룡대의 술사들을 빼 오고 싶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현무대의 무력으로도 유명교 지부 하나를 감당하기 어렵겠습니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갈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피하라는 말이다.”
“예, 최대한 충돌을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법보가 사용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참! 듣자 하니 법보를 사용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이건 가지고만 있으면 됩니까?”
“그건 단지 항마의 기운으로 몸과 정신을 지켜 줄 뿐이다. 행여나 그것을 믿고 싸우다가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아! 예. 더욱 행동에 유의하겠습니다.”
사촌 동생의 다짐에 제갈승운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문득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불가강야(不可强也)’라는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어서 강제로 할 수가 없다’던가!
하지만 이처럼 안팎으로 충실하게 다져 놓았으니 큰일은 없을 것이다.
제갈승운은 그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기찰대 옥사.
정오 무렵.
화용독심 남궁연이 예정에도 없이 옥사를 방문했다.
경비 무사는 그녀를 옥사로 안내하고 부리나케 기찰대 대주에게 달려갔다.
무영신투 백교는 남궁연을 보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바르게 했다.
총순찰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절절맨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니 당연하다.
남궁연은 창살 너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자 백교는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별호는 화용독심(花容讀心).
마음을 읽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니 도둑이 임자를 만난 셈이다.
“남궁 소저, 어째서 그렇게 보십니까요?”
그래도 남궁연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교는 마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정말 저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훔친 게 아닙니다.”
“정말 저는…….”
독백에 지친 듯 백교의 음성이 점점 작아졌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당신이 훔치지 않았다는 건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보다 더한 걸 감추고 있군요.”
“…….”
백교가 흠칫 놀란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가?’
잔뜩 긴장한 백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백교 역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남궁 소저의 말씀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법보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 왔는데, 그보다 더한 걸 감추다니요?”
남궁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흘 전만 해도 사람들은 무허산인에게 여래신주가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하지만 술에 취한 무허산인이 법보를 자랑하면서 널리 알려졌죠. 출정식까지 나흘 남았으니, 그게 필요한 사람은 나흘 안에 훔쳐야 했죠.”
“…….”
“무영신투 백교. 손버릇 나쁜 당신이 여래신주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소, 소저, 제가 훔치지 않았다고 하셨으면서 왜 그런 말씀을…….”
“다급해진 당신은 무허산인의 주위를 맴돌았을 거예요. 왜냐면 아무리 무영신투라고 해도 제마대의 숙소까지 들어가서 훔쳐 낼 자신은 없었으니까.”
“예, 제가 무허산인을 지켜본 건 맞습니다.”
백교는 거의 자포자기한 얼굴이었다.
그는 남궁연이 무서웠다.
왜 사람들이 ‘그녀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말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당신이 왜 굳이 심 선배를 만났는지가 궁금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보니 알 것 같군요.”
“알 것 같다고요?”
백교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세상천지에 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
왜냐고?
그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니까.
소문처럼 그녀에게 귀신이 붙어 있지 않은 한,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곧 천지맹에 잡혀갈 것을 알았어요. 법보를 도둑맞고, 무영신투가 주위를 맴돌았다는데, 안 잡아가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그, 그래서요?”
“당신은 연적하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죠. 오봉산채를 배신한 과거가 있으니까.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심 선배였던 거죠. 심 선배와의 인연만 알려져도 천지맹에서 당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하아! 정말 화용독심이라는 별호답군요. 인정합니다. 그런 이유로 심통과 만났습니다. 그러니 범인은 제가 아니라고 말씀 좀 잘 해 주십시오.”
“그런데 말이죠. 옥에 갇혀 있는 동안 당신은 잘 먹었더군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라면 식욕이 떨어져야 당연한데 말이죠.”
“소저, 그건 제가 워낙 낙천적이라 그렇습니다. 도둑들은 본래 낙천적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심 선배에게 도와달란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는 거죠. 그게 아마도 당신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겠죠?”
“…….”
한순간 백교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남궁연을 보았다.
“무영신투. 신투가 잘 훔친다는 뜻이면, 무영은 고절한 신법을 의미하죠. 무허산인이 법보를 밤새 도둑맞은 게 아니라면, 범인을 금방 특정할 수 있겠죠? 예를 들자면 정주에 도모(掏摸, 소매치기)로 유명한 남린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는 항상 남린이 있다고 할 정도죠.”
남린의 이름이 나오자 백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무허산인의 주위를 맴돌다가 범인을 발견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범인이 장물을 누군가에게 파는 것까지 봤겠죠. 그쯤 돼야 비밀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아! 소저의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부탁이니 제 일에 신경 쓰지 말아 주십쇼. 염려해 주신 것은 감사하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백교는 남궁연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녀가 자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