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6
326회. 자파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천지맹과 유명교의 협상을 구경하기 위해 구경꾼들이 관도를 가득 메웠다.
관도가 꽉 막히자 호위대 무사들이 제갈승운에게 달려왔다.
대주인 무쌍도 사마평이 물었다.
“총사님,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로 길이 막혔습니다. 저들을 어찌할까요?”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혼잡한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마평은 호위대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공손일랑 공손기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인(人)의 장막(帳幕)이라…….”
“만사가 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요. 백성들이 이리 많다면 유명교도 함부로 칼을 뽑기 어려울 겁니다.”
제갈승운의 눈에 서릿발 같은 냉기가 번득였다.
그는 평범한 구경꾼들을 방패로 여길 만큼 차가운 심장의 병법가였다.
***
삼백여 명의 천지맹 고수들이 백마사에 도착한 것은 오시 초(오전 11 시)였다.
천지맹 고수들이 앞마당에 들어섰음에도 유명교 고수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평소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유명교 교도들까지도 종적이 묘연했다.
천지맹 고수들 사이에 가벼운 소요가 일어났다.
낙양에 와서 접한 유언비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지맹 맹주인 무극상인이 제갈승운에게 다가갔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유명교가 보이지 않는데, 협상일을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걸 겁니다.”
“우리를 기다리게 한다는 겁니까?”
“황실에서도 전쟁의 중단을 환영한다고했습니다. 이제는 물리려고 해도 물릴 수가 없지요. 저들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니 기다리면 됩니다.”
“낙양에서 들은 소문으로 군웅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건지…….”
무극상인이 반신반의한 눈으로 제갈승운을 보았다.
총사의 위상은 과거와 달라져서 그의 말이 가지는 무게도 이전만 못했다.
제갈승운은 맹주가 불안해 하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백마사까지 왔으니 이제는 유명교가 협상에 임해 주기를 바라야 했다.
녹림도들도 정파 고수들만큼이나 불안한 얼굴이다.
유명교가 사파에 대해 우호적이라지만, 정파와 한데 묶인 지금은 안심할 수 없었다.
도적들은 목을 길게 빼고 백마사 안쪽의 동향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녹림도들과 달리 연적하는 태평했다.
유명교 속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전각 아래 그늘에 앉아 낙양에서 구해 온 향설주(香雪酒)를 홀짝였다.
“심 노인, 제대로 된 금 연주를 들으면 술맛이 좋아진다고 했지?”
“그랬지요.”
“뭐가 그랬지요야? 내가 지금 술 먹는 거 안 보여?”
“설마 이 자리에서 금 연주를 하라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요?”
“왜? 절에서 연주하면 안 돼?”
“안 될 건 없습니다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죄다 날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그럴수록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줘야지.”
“공자님께서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무슨 금 연주 한번 듣겠다는데 책임 운운이야?”
“공자님, 이 자리가 어디 보통 자리입니까? 정파나 유명교에서 고깝게 여길 수도 있어 드린 말씀입니다.”
“유명교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뭘 고깝게 여겨? 게다가 강호 기인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면서?”
“여흥을 즐기는 자리에서나 그렇다는 거지요. 하여튼 책임 지십쇼. 금아야.”
“예.”
“공자님을 위해서 연주를 좀 해 보거라.”
금아가 난처한 얼굴로 구천노도 심통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정사파 고수들이 내뿜는 기세로 가만히 있기도 힘든데 연주를 하라니?
하지만 스승과 사조의 말을 거역하기도 어려웠다.
쭈뼛거리던 금아는 매고 있던 금을 풀고 전각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았다.
띠잉. 띵…….
사마상여가 탁무군을 위해 지은 ‘봉구황’이라는 곡이다.
기루에서 일하던 금아는 자연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곡을 많이 알았고, 즐겨 연주했다.
금아의 연주에 흥이 난 월아가 나직이 ‘봉구황’을 불렀다.
연적하는 눈까지 지그시 감고 소녀들의 연주와 노래에 빠져들었다.
정사파 고수들은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금과 노랫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감히 연적하에게 가서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이 지나갔다.
몇몇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자고 투덜거릴 때다.
갑자기 안쪽에서 육백여 명에 달하는 유명교 교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압도적인 숫자에 술렁거리던 정사파 고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배나 되는 유명교 교도들 앞에서 천지맹의 열세를 실감한 것이다.
잠시 후 가까운 대불전으로 독심귀랑 양소란과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이 이동했다.
천지맹 맹주와 총사, 칠파일문과 사대세가 대표, 육마군이 뒤를 따랐다.
회의는 일각(15분) 만에 끝났다.
길고 참혹했던 전쟁의 끝은 너무도 간단했다.
협정문에 수결을 마친 백두마군들과 정사파 대표들이 대불전에서 나왔다.
선두에 있던 혼세검마 척진경이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절간에 웬 금 소리가?’
젊은 놈 하나와 늙은이 하나,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 둘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저것들은 뭐지?”
척진경의 물음에 양소란이 재빨리 답했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에요.”
“흥! 미친.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저런 짓거리를.”
그러나 척진경은 이내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전쟁도 끝난 마당에 녹림과 시비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다.
게다가 교주를 따르는 자들 앞에서 녹림과 싸워 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그들의 원수는 이제 천지맹이 아니라 배교자들일 테니 말이다.
척진경과 악불 방천각, 적월 공취산, 혼천혈귀 강상피가 먼저 대웅전 쪽으로 이동했다.
환영신마 웅재귀와 무산낭랑 이매화, 월하선자가 조금 거리를 두고 그 뒤를 따랐다.
백두마군들이 사라지자 십두마병들과 유명교도들도 썰물처럼 안쪽으로 물러갔다.
정사파 고수들의 시선이 맹주인 무극상인에게 향했다.
무극상인은 총사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넨 뒤 대불전 앞의 계단에 올라섰다.
“오늘, 유명교 백두마군들과 전쟁 중단의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천지맹은 해체될 것입니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 그리고 정파 혈맹과 녹림의 영웅분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자파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무극상인이 군웅들을 향해 공수(共手, 두 손을 맞잡고 인사)의 예를 올렸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 대표들도 무극상인과 군웅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인사를 마친 칠파일문과 사대세가 고수들이 먼저 밖으로 이동했다.
정파에 속한 방파들도 서둘러 백마사를 벗어났다.
녹림의 채주들과 여섯 마군들은 떠나기 전에 연적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귀영자군이 무리를 대표해 인사했다.
“태상호법님, 이제 저희도 산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가. 다시 얼굴 보지 말자고.”
“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강녕하십시오.”
서둘러 인사를 마친 귀영자군은 채주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우두커니 서서 정사파 군웅들을 바라보는 연적하에게 심통이 말했다.
“가셔야지요?”
“어, 그럴까?”
“화상촌의 남연객점으로 가실 겁니까?”
“우선은 그래야겠지?”
“무당파로 가기 전에 기름진 음식이나 실컷 드시고 가십시오.”
“객점이 잘돼야 기름진 걸 실컷 먹을 텐데.”
“아니, 수중에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심 노인 주루 사는 데 보태 주면 남는 돈도 없어.”
“정말 도와주시게요?”
“내가 언제 흰소리하는 거 봤어?”
그러자 심통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저희 주루에서 평생 공짜로 술을 드셔도 됩니다.”
“나 공짜 좋아하는 사람 아니야.”
“아, 예, 예, 잘 알지요. 어련하실까요.”
주루를 차릴 생각에 신이 난 심통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연적하 일행이 백마사를 막 빠져나갈 때다.
먼저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궁세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청운검 남궁천이었다.
“하하! 이 능구렁이 같은 녀석! 연아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그동안 나를 감쪽같이 속인 거야?”
“소, 속이다니요? 형님이 둔한 걸 왜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어이쿠! 이 녀석이 누구더러 둔하대?”
남궁천이 손을 뻗어 연적하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참 남궁천이 연적하를 잡고 호들갑 떨고 있을 때, 검왕 남궁벽이 다가왔다.
“적하야.”
“예. 백부님.”
“너와 연이의 혼사는 남궁세가를 재건한 뒤에 논의했으면 한다. 너도 한동안은 무당파에서 지내야 할 테니 그편이 나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연적하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백부님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 무당파에서 내려오는 대로 찾아오도록 해라. 그때 길일을 잡자꾸나.”
남궁벽은 연적하가 고아나 다름없는 터라 자신이 혼사를 주재할 생각이었다.
“예.”
연적하가 승낙하자 남궁벽은 만족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렸다.
남궁연은 부끄러운지 멀리서 눈인사만 하고는 부친의 뒤를 따랐다.
“누군 좋겠다.”
남궁천의 말에 연적하가 물었다.
“형님도 따라다니던 소저가 있지 않나요? 창인문의 진 소저는 어쩌시고.”
“어쩌긴 집으로 잘 가고 있지.”
“진 소저랑 잘 안 돼요?”
“안 되긴. 잘돼서 탈이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
“혼인을 하시면 되죠.”
“남궁세가가 이전의 위용을 되찾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나라도 아버지 어깨의 짐을 덜어 드려야지.”
“존경합니다. 형님.”
“쳇! 존경은 무슨. 아버지 말씀대로 무당파에 가거든 술법이나 잘 배워 둬라. 오늘 백두마군들의 흉흉한 눈빛을 보니 가슴이 섬뜩하더라.”
“예. 형님도 더 높은 경지로 가시길 바라요.”
“그래,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형님이 되도록 노력하마.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심 선배도 건강하십쇼. 귀여운 아가씨들도 열심히 배우고.”
남궁천은 연적하 일행과 일일이 눈을 맞춰 인사를 한 후에 떠나갔다.
멀어져 가는 남궁천을 보며 심통이 중얼거렸다.
“청운검도 참 별종이야.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동네 아낙네들처럼 수다스러우니, 원.”
월아가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다정다감하신 분 같아요. 저희에게도 좋은 말씀을 하고 가시는 걸 보면.”
이에 질세라 금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남자들이 다 남궁 공자님 같으면 좋겠어요.”
제자들의 칭송에 심통이 헛기침을 터뜨렸다.
“험! 이런 남자도 있고 저런 남자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너희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모양인데, 본래 색마들이 다정다감하니라.”
“쯧쯧! 말하는 거 하고는. 그래서 지금 우리 형님이 색마라는 거야?”
“어이쿠! 청운검이 색마라니요? 단지 다정다감한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한 말입니다. 공자님만 해도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겪어 보면…….”
“겪어 보면?”
“흐흐, 이미 임자가 있으신 분이 뭐하러 그런 평판에 연연하십니까?”
“아휴! 저 마두.”
고개를 젓던 연적하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정사파 고수들이 떠난 직후, 유명교 고수들이 백마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백마사를 나오자마자 남북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