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1
331회. 절대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사실 연적하는 단지 진우생의 본심을 알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사돈인 진청교는 고관이며 그의 혈족들 대부분이 성공한 삶을 살았다.
거리를 꽉 메운 마차만 봐도 진청교 가문의 성세를 알 수 있다.
그런 진청교 혈족들의 눈에 이우석 집안이 좋아 보였을 리가 없다.
남자들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사돈집의 형편을 비웃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여자들을 보고 아이들은 한술 더 떴다.
금이야 옥이야 받들어져 온 진청교의 손자들에게 이우석의 집은 시궁창 같았다.
“돼지우리 같아.”
“아냐. 돼지우리도 여기보다 커.”
“정말?”
“내가 봤어. 열 배는 클걸?”
“집에서 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숙모가 돼지 아냐?”
“그럼 웃기겠다. 꿀꿀, 꿀꿀.”
한 아이의 돼지 울음 흉내에 나머지가 배를 잡고 ‘꺄르르’ 웃어 댔다.
바로 그때 연적하가 참지 못하고 냉소를 쳤다.
“흥!”
그가 작정하고 공력을 쏟아 낸 탓에 코웃음은 음공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태풍이 쓸고 지나갔다.
지붕이 들썩거리고, 마당에 쳐 둔 차양막이 훌러덩 뒤집어졌다.
“…….”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시장통처럼 시끄럽던 잔칫집은 삽시간에 공동묘지처럼 적막하게 변했다.
진청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뭐가 그의 비위를 거스른 거지?’
그에게 연적하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연적하는 천하십대고수에 못지않은 고강한 무위를 가졌지만, 자신의 혈족조차도 멸문시켜 버리는 잔혹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의 외숙과 혼인으로 엮였다고 안심할 일만은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상황.
기분에 따라 혈육도 베어 버린다는 그가 자신들을 배려해 줄 리가 없다.
“여, 연 공자, 무슨 일이십니까?”
얼마나 긴장했던지 진청교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의 불안한 심리 상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뭔가 사달이 났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하나 둘 일손을 놓고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났다.
진청교의 혈족들도 싸한 분위기에 연신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래, 적하야. 무슨 일로 그러는 건지 나도 좀 알자.”
이우석의 말에야 연적하는 입을 열었다.
“외숙. 유화가 진우생과 혼인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그건 무슨 소리냐? 안 된다니?”
“진우생의 집안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진우생이 집안 어른들의 강요로 마지못해 하는 혼례라고 하더라고요. 진우생의 혈족들은 ‘여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닭장 같다’고 했어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유화가 ‘돼지우리’에 살고 있으니 ‘돼지’라고도 하고. 그런 개쓰레기 같은 집안에 우리 유화를 시집보낼 수는 없지 않나요?”
‘개쓰레기 같은 집안’이라는 말에 진청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내 대에 멸문인가…….’
아니 연적하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멸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설사 운 좋게 연적하를 피한다 해도 관료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혼사를 알선한 금의위 남진무사의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까.
“여, 연 공자, 오해입니다. 어른들의 강요로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닙니다. 우생이는 기쁜 마음으로 이번 혼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닭장’과 ‘돼지우리’라니요? 누가 감히 그런 망발을 입에 올렸다는 말씀이십니까? 정말 우리 진가에서 그런 소리를 한 자들이 있다면 내 손으로 쳐 죽이겠습니다.”
“이봐요. 노인장.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어요.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어요?”
연적하는 이미 혼례를 깰 생각이었기에 사돈을 노인장이라 했다.
진청교 역시 그런 연적하의 뜻을 알고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녹림의 방식으로 나오는 것은 가장 끔찍한 결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청교는 식솔 중에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사돈댁을 ‘닭장’에 ‘돼지우리’라 하고, 신부를 ‘돼지’라 하는 덜떨어진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연 공자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 진가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연적하가 진씨들 속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지목했다.
“저 여자들이 귓속말로 ‘여긴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닭장 같다’고 했어요. 돼지우리 소리는 저 여자들의 치마폭에 있는 애새끼들이 했고요. 저 개쌍놈의 새끼들은 유화가 ‘돼지우리’에 살고 있으니 ‘돼지’라고 하더군요.”
연적하는 아이들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마치 아이들이 무림의 마두라도 되는 듯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지적당한 여자들은 모두가 진청교의 며느리들이었다.
사색이 된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버님,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우리가 왜 그런 소리를 했겠어요?”
그녀들은 연적하가 자신들의 귓속말을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시치미를 뗐다.
연적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후. 이 몸은 오십 장 밖에서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 당신들은 옆사람 귀에다 대고 속삭였겠지만, 그건 내 귀에 대고 외치는 것과 같아. 어디서 오리발이야? 외숙의 집안을 욕하다가, 이젠 나까지 거짓말이나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죽고 싶어?”
말과 함께 연적하가 진씨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순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진씨들 모두가 풀썩 주저앉았다.
마음이 약한 이는 벌써 오줌까지 줄줄 흘렸다.
이 정도면 혼례는 이미 파탄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기탱천한 진청교가 며느리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정녕 너희가 그랬더냐!”
진씨도 아닌 여자들이 진씨를 망치다니?
진청교는 당장 달려가 정신 나간 며느리들을 쳐 죽이고 싶었다.
그의 턱에 길게 난 허연 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며느리들을 죽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손주들까지 그 비슷한 짓을 했으니 이대로라면 대가 끊길 판이다.
뒤늦게 여자들은 연적하가 자신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음을 알았다.
설상가상으로 연적하에게 죄를 덮어씌웠다가는 줄초상이 날 분위기.
여자들은 급히 땅바닥에 엎드려 사죄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저희들이 어리석어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어요! 제발 저희와 아이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여자들이 자백하자 상황은 더욱 난감해졌다.
진청교는 자신이 한 약속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축하객으로 온 남진무사 동유수와 안찰사 서경진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울고불고하는 진청교의 식솔들을 보며 혀를 찼다.
강호의 생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짓으로 이게 무슨 사달인지 모르겠다.
그때 진씨 일족과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정천호 풍만표가 앞으로 나섰다.
풍만표는 진우생의 외숙이었다.
백무상이 조심스럽게 풍만표의 뒤를 따랐다.
“연 공자, 다시 뵙소이다.”
은근 거리를 두던 며칠 전과 달리 풍만표가 먼저 정중하게 읍을 했다.
백무상도 착잡한 얼굴로 묵례를 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입을 가볍게 놀려 이렇게 되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예, 그러네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만에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진씨 집 여자들과 아이들이 헛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서로 간에 인사가 끝나자마자 백무상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연 공자, 그날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오. 외부인인 내가 알아야 얼마나 알겠소.”
그러자 연적하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백 대협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
백무상이 울상을 지었다.
아니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혼례에서 양가 집안의 잡음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혼인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남자가 못마땅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잘될 리가 있나.
‘내 입이 진씨 가문의 혼사를 망쳤구나!’
백무상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풍만표가 말했다.
“연 공자, 나도 어제야 여동생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소. 사실 혼사를 두고 오락가락한 것은 있으나 그건 질자(煙子, 진우생)의 문제가 아니오. 질자가 이 혼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외다.”
풍만표는 양가의 문제를 어떻게든 당사자들의 문제로 바꾸려 했다.
일단 혼례를 치르고 나면 진가에 피바람이 불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연적하가 씁쓰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까 진우생을 봤어요. 도살장에 끌려 나온 소의 눈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문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겠다’는 그런 눈 말이죠. 그런 놈에게 우리 유화의 인생을 맡길 수는 없어요. 함께 살 남자도 그런데 집안 분위기까지 이런 꼴이면 지옥이죠.”
그러자 이번에는 진우생이 달려 나왔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살장의 소라니요! 저는 절대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이 한목숨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진우생이 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문틈으로 신부를 보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정말 그런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아까부터 이 혼사가 틀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형수님들과 조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진심은 통한다.
진우생의 혼이 실린 말에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인생 다 산, 거지반 죽어 가는 눈이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마치 진설하를 만나러 나가는 남궁천처럼 열정으로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아들의 태도 변화에 진청교는 가슴이 먹먹했다.
‘장하다. 이놈!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형수와 조카를 살리겠다고 목숨까지 걸다니!
어제까지 ‘이 혼사 꼭 해야 하냐?’고 대들던 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연적하가 진우생을 쏘아보았다.
“진우생. 두 번 묻지 않을 거야. 잘 생각해서 답해. 당신, 내 사촌과 혼인하고 싶어?”
“하고 싶습니다! 꼭 하게 해 주십시오! 다른 여자는 싫습니다.”
연적하는 진우생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 이렇게 혼인하고 싶어 안달 난 놈이 아까는 왜 그랬지?’
연적하가 망설이자 진청교가 거들었다.
“연 공자님, 저렇게 원하는데 허락해 주시지요. 덜렁거리고 멍청해 보여도 무과에 장원급제를 한 녀석입니다. 제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정주에 저만한 놈도 없습니다.”
풍만표도 한마디 했다.
“연 공자, 질자의 본심이 저렇소이다. 저토록 바라는 혼사이니 아량을 베풀어 주시지요.”
한쪽에서 듣고 있던 이우석도 넌지시 말했다.
“그래, 적하야. 사돈댁과 사위의 진심을 알았으니 너도 조금만 양보를 했으면 좋겠구나.”
이우석은 마음을 정했는지 사돈과 사위라고 칭했다.
그 말에 진청교와 풍만표, 백무상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마음 약한 연적하가 머뭇거리자 진청교는 며느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는 뭣들 하고 있느냐! 연 공자와 사돈어른께 사죄하지 않고!”
화들짝 놀란 며느리들과 아이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잘못했어요! 엉엉!”
아이들이 펑펑 울자 연적하가 다시 한번 ‘흥’ 하고 냉소를 쳤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공력은 물론 살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내심 안도하고 있는 진청교와 그의 식솔들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죠. 하지만 나중에 유화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를 만나게 될 거예요. 오늘 일은 그날 이자까지 붙여서 다시 계산하도록 하지요.”
뒤끝 강한 연적하의 말에 진청교와 진씨 일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