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8
338회. 낙월독정(落月毒情)
해사방 방주 취일배 금불위는 류왕채촌에 들어설 때만 해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제길, 괜한 짓을 벌인 건가?’
썩어도 준치라고 당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천오백 냥을 불렀는데, 실패한다면?
두 재력가에 찍히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허창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삼보절명 당운망과 알고 지낸 지 삼 년쯤 되지만 무공이나 독공, 암기술 따위를 본 적이 없다.
당운망이 술에 취해 과거사를 떠벌릴 때 잠깐잠깐 들은 게 전부다.
그런데 왜 그를 추천했냐고?
그야 당연히 자신과 연이 닿은 사람들 중에서 그가 최고수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라면 최상급 낭인이라 할지라도 한 줌 혈수로 만들어 버릴 수 있겠지?’
아니, 그래야 한다.
당운망의 능력이, 그가 취중에 뱉은 말의 반만 돼도, 연적하를 녹여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냐는 건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 대해 과장한다. 특히나 술꾼들은 허풍이 심하다.
문제는 자신이 당운망과 만날 때마다 그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그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까지가 허풍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아야 했다.
대화가 끝나 갈 즈음에도 완전한 믿음은 없었다.
“본래 이런 일은 선금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니 일부터 처리해 주지. 자네와 그들을 위해서라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걸세.”
말과 함께 당운망이 강가에 있는 거목을 가리켰다.
그때만 해도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별생각 없이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두둑-.
놀랍게도 멀쩡하던 나무가 무성하던 잎을 떨구더니 말라비틀어졌다.
그러더니 상단부터 스르륵 녹아내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모두가 한 호흡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독공이 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무림의 절대고수라 해도 피하지 못하리라.
“보았나? 독공이란 이런 것일세.”
“예, 예, 어르신. 염려하지 마십시오. 돈 문제로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선배님’이던 호칭이 어느새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당운망은 흡족한 표정으로 금불위를 보았다.
이십 년 만에 완성한 ‘낙월독정(落月毒情)’이 그를 놀라게 한 모양이다.
그의 안목이 부족해 모를 테지만 ‘독정(毒情)’은 검사로 치면 ‘심검(心劍)’의 단계다.
‘달도 떨어트릴 독의 마음’이라는 이름을 괜히 붙인 게 아니다.
자신도 독공을 연마하다 생사지간의 기로에서 터득한 절초 중의 절초.
‘낙월독정’에는 평생에 걸쳐 터득한 백팔 가지 독의 정수가 담겨 있다.
‘후후! 천하십대고수들도 당해 내지 못할 독을 낭인 따위가 무슨 수로…….’
당운망은 옷깃을 떨치며 돌아섰다.
금불위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의 발뒤꿈치만 조심조심 바라보았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는 당운망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에야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
천지장원.
신시 정(오후 4시).
집무실에 앉아 장부를 살피던 건원 표국 소지웅 행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그러자 처마 밑에서 쉬고 있던 청주삼협이 그의 앞으로 달려가 시립했다.
연적하도 느긋하게 몸을 일으켜 청주삼협의 옆에 섰다.
잠시 후 청주삼협의 대형인 장위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 행수님?”
소지웅이 청주삼협과 연적하를 둘러본 후에 말했다.
“내가 왕 국주의 위협에 놀라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천하인들이 건원표국을 우습게 여길 걸세.”
“모레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 자고로 표국의 일 중에 위험하지 않은 게 없네. 여기서 내가 겁먹은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건원표국에 오겠나?”
“…….”
맞는 말인지라 장위안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만약 소지웅이 평범한 상단의 인물이라면 숨어 지내도 상관없다.
하지만 건원표국의 대리인으로 허창 분점의 주인이다.
그런 그가 숨어 지낸다면 허창 분점은 개점하자마자 휴업을 하게 될 것이었다.
둘째인 일수한이 물었다.
“소 행수님, 허면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우선은 나에게 적의를 가지지 않은 인물들을 만나 볼 생각이네.”
소지웅은 영하대곡의 공조생을 떠올렸다.
무곡산장의 모임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 일단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런 인물이 있습니까?”
일수한의 물음에 소지웅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하대곡의 공조생이 그런 사람이지. 가 보세나.”
소지웅이 마당으로 내려서자 장위안이 앞장서고, 일수한과 백옥조가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연적하는 마치 다른 일행인 것처럼 두세 걸음 거리를 두고 네 사람을 따라갔다.
***
상청현으로 가는 관도.
신시임에도 해가 뜨거워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관도를 따라 걷던 소지웅은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그를 중심으로 청주삼협이 품자(品字) 형태로 단단하게 에워쌌다.
다른 호위들은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청주삼협과 연적하로 안 되면 누굴 데리고 와도 안 된다는 걸 알아서다.
그들로부터 이십 장(약 60미터)쯤 떨어진 곳에 죽립을 쓴 한 노인이 철퍼덕 주저앉았다.
노인 외에도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눈에 띄지 않았다.
노인이 눌러쓰고 있던 죽립을 슬쩍 올렸다.
삼보절명 당운망이다.
그는 허리춤에 매여 있던 조롱박을 풀어 들고, 마치 기갈이 난 사람처럼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그 모습이 여느 촌 동네의 노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당운망은 절반쯤 빈 조롱박을 옆에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모두가 낯선 일반인들뿐이다.
당운망이 옷자락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내는 시늉을 했다.
우선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파천만리(破天萬里)부터 펼칠 생각이다.
파천만리는 ‘만 리 밖 하늘을 깨뜨린다’는 이름처럼 원거리에서 시전하는 독공이다.
그의 손바닥에서 일어난 잠력이 바람을 타고 한쪽으로 흘러갔다.
백옥조의 근처에 앉아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느껴져서 바람 속에 잘 익은 과일의 냄새가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주변에 과일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뭐지?’
분명히 꽃향기는 아니었다.
아주 잘 익은, 농염한 과일 향기였다.
처음에는 백옥조의 체향인가 싶어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두리번거리는 그를 본 백옥조가 물었다.
“연 소협? 왜 그래요?”
“아, 어디서 과일 냄새가 나서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과실수가 안 보이네요.”
“과일 냄새요?”
백옥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오라버니들, 과일 냄새가 느껴져요?”
장위안과 일수한이 고개를 저었다.
가볍게 코를 킁킁거리던 장위안이 한마디 했다.
“연 소협의 내공 경지가 깊어서 우리가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아하!”
백옥조가 부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과 나이가 같은데 벌써 최상급 낭인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외모로 봐서는 그냥 떠돌이 낭인 같은데 언제 그런 수련을 했는지 모르겠다.
“연 소협, 지금도 나나요?”
“아뇨. 이젠 안 나네요.”
순간 장위안이 눈을 찌푸렸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도 아닌데 나던 냄새가 갑자기 안 난다고?’
그럴 수도 있던가?
뭔가를 곰곰 생각하던 장위안의 안색이 가볍게 굳었다.
“연 소협. 혹시 모르니 운기를 해 보시오.”
장위안의 말에 일수안과 백옥조가 깜짝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강호 경험이 많은지라 대형의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운기요?”
연적하는 숨을 들이마시며 단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구천여일진경의 구결에 따라 진기를 일주천시켰다.
전과 다르게 폐가 따끔거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체의 변화다.
“폐가 따끔거리는데요?”
“누군가 독을 쓴 것 같소. 다른 곳에 이상은 없소?”
“예, 그냥 숨 쉴 때마다 조금 거슬리는 것뿐이에요. 다른 데는 이상 없어요.”
장위안이 의아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독에 당한 것 같은데 숨 쉴 때 거슬릴 뿐이란다.
독이 특별한 건지, 그의 공력이 대단한 건지 일순 알 수가 없다.
청주삼협과 소지웅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누군가 독을 쓴 걸 알고도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뒤늦게 연적하도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냈다.
백옥조가 물었다.
“큰 오라버니, 우리는 모두 함께 있었는데 왜 연 소협만 독에 당한 거죠? 과일 냄새도 연 소협만 맡았잖아요. 그럴 수도 있나요?”
“그만큼 독공의 조예가 깊은 자라는 소리다. 먼 거리에서 어느 한 사람만을 특정해 하독(下毒) 하다니……. 실로 고명한 수법이구나.”
연적하가 애써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수법은 고명한지 모르겠지만 독은 별로네요. 이런 독으로는 토끼나 잡을 수 있으려나?”
“연 소협, 그런 말씀 마세요. 아직은 숨 쉴 때 불편하겠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독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에요.”
백옥조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독은 무위의 높고 낮음과 관계가 없다. 신화지경에 도달한 고수들도 독을 경계한다. 당가가 대단한 업적 없이 무림 세가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백옥조가 장위안을 돌아보았다.
“큰 오라버니, 금불위가 당가를 끌어들였을까요?”
“그럴 리가 없다. 허창에 당가의 사람도 없거니와 당가를 끌어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듣고 있던 소지웅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장 소협 말이 맞네. 늑대를 쫓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럼 누가 하독을 한 걸까요?”
“모르지. 강호는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으니까.”
장위안은 대답과 함께 주변을 살폈다.
사방 십 장(약 30미터) 안에는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흐음! 십 장 밖에서 하독했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
그 정도 거리라면 상대가 이미 평범함을 벗어났다는 소리다.
최상급의 낭인이라 할지라도 당해 낸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틀림없이 연 소협이 패한다.’
입술을 물어뜯던 장위안이 두 아우들에게 말했다.
“둘째와 셋째는 소 행수님을 모시고 천지장원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연 소협과 함께 여기에 남아 하독한 자를 찾아보겠다.”
“…….”
일수한과 백옥조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연적하가 아니라 소지웅 행수를 보호하는 게 먼저였다.
일수한과 백옥조, 소지웅이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의동생들과 소지웅을 떠나보낸 후에 장위안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지금은 어떻소?”
“그대로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괜히 우리가 소협을 끌어들여 어려운 일에 휘말려 들게 한 것 같소. 미안하오.”
씁쓰름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던 장위안이 목청껏 외쳤다.
“어느 고인이 하독을 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얼굴이나 좀 봅시다! 나는 청주삼협의 첫째인 장위안이오!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만 말고, 내가 두렵지 않다면 나와 보시오!”
상대를 자극하는 일종의 격장지계(激將之計)였다.
이십 장 밖에서 당운망은 ‘에구구’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죽립을 고쳐 썼다.
‘파천만리’에 당하고도 저리 멀쩡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낙월독정’까지 써야 일이 끝날 것 같다.
하지만 ‘낙월독정’을 쓰려면 십 장 안쪽까지 접근해야 한다.
장위안이라는 놈의 꼬임에 넘어간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멍청한 놈, 나오란다고 나오는 바보가 어디 있다고.’
당운망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그들 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